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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수용소의 노래조회수 : 847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7시 38분 29초
  • 글: 차한 박사

     

    1. 들머리

     

    요즈음 대한민국호(號)가 엄청난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법무장관이 건국 이래 최초로 지휘권을 발동하여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한 친김(親金)주의자에 대해 불구속을 지시하는 일이 생기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제 대한민국호의 좌초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

    비단 동국대 강 교수뿐이랴. 적지 않은 소위 지식인들과 종교인들과 예술인들과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반미, 반일, 민족, 자주, 민주, 인권, 자유, 평등, 평화, 통일 등을 합창하며 대한민국호의 파선을 재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외침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시작이 되었지만 특히 문민정부라는 이념적 과도기를 거치고난 후 이제 완전한 친김(親金)내지 종김(從金) 정부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들어오면서 그 극(極)을 향해 치닫고 있다.

    2005년 한해만 보더라도, 가장 흥행이 되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그 아류(?)라 할 수도 있는 ‘천군’ 등을 통해 판타지로 포장된 폐쇄적 민족주의와 북존남비(北尊南卑)의 메시지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너무도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었고, 또 맥아더 동상 철거 주장과 같은 일견 과격한 액션은 그 스펙트럼을 확실히 하면서 그 동안 혼돈된 국가관과 민족관의 이슬에 젖어버린 이들에게 끝내기 수순의 퍼포먼스로 기획, 실행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호의 좌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2003년 노동당에서 제작한 ‘력사적인 6. 15 북남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대중투쟁의 조직과 지도방법’(이하 ‘노동당 문서’라 칭함)에 따른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아는 국민도 드물지만 또 대부분의 국민이 이와 같은 김정일의 책략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현실일 뿐이다.

    노동당 문서 중 ‘전략적 지도원칙’에 이은 ‘전략전술적 지도방법’을 보면 “우리 당의 정책적 요구를 반영하여 혁명발전의 요구와 군중의 의식수준에 맞게 제시하여야 할 것”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다. 이는 ‘조선노동당’을 지칭하는 ‘우리 당’의 정치적 기본구호를 군중의 요구와 정서, 조성된 정세에 맞게 구체화하여 작성해서 제시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이 노동당 문서는 “현 시기 대중투쟁에서는 ‘자주’, ‘민주’, ‘통일’을 자기 실정에 맞게 구체화한 구호를 들고 나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2천만이 갇혀 있는 저 거대한 북녘의 수용소로부터 전달되고 있는 이러한 대중투쟁의 구호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 이면에 감추어진 거짓과 기만의 술수를 확인하고 아울러 이 나라를 향한 주님의 긍휼을 함께 구해보도록 하자.

    2. 민족(民族, nation, race)

    민족이란 말은 다의적(多義的)이어서 그 정의를 내리기가 무척 어렵지만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유행어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민족이란 너무나도 고귀하고 또 선험적(先驗的)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라고 말할 때 그 ‘우리’는 누구인지 정말 우리는 냉철히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우리’ 속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온 정치가, 법조인, 자유언론인, 국군, 기업인, 중산층 등도 들어 있어야 마땅하며 아울러 해방이후 북한 공산화 과정에서 고향의 집과 땅을 모두 버리고 남으로 내려온 140만 명의 실향민도 ‘우리’에 포함이 되어야 하고 또 지금도 끊임없이 탈북하여 중국, 몽고, 시베리아, 동남아 각지를 유랑하며 남한으로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수십만의 탈북자들도 마땅히 포함이 되어야 한다.

    이뿐이랴. 소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수십만의 동포들과 또 동요계층 및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갖은 박탈과 억압 속에 신음하는 약 1,500만 명 이상의 북녘동포들도 ‘우리’에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또 범위를 넓혀 보면 세계 각국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은 물론 구미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 미국보다 한국이 좋아 한국인이 된 이한우씨나 이다도시, 로버트 할리 같은 이들도 ‘우리’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다니엘 헤이와는 반대로 최근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수많은 버림받은 코시안(Kosian)들도 ‘당신’이라며 ‘우리’ 밖으로 내몰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폐해는 역사 속에서 너무도 잘 가르쳐져 왔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학습능력은 실로 미천하기 짝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치의 아리안주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나 대동아공영(大東亞共營)을 부르짖으며 일본이 한반도와 아시아를 침탈했던 것도 그렇고 또 오늘날도 오대양육대주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각종 인종분규들도 다 ‘민족’이란 슬로건 하에 자행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에 기인한 것이지만 가까이는 조선시대의 사색당파(四色黨派)처럼 참여정부에 들어서까지도 더욱 불거지고 있는 지역감정 및 각종 님비현상들도 이러한 폐쇄적 민족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인류애를 그 바탕으로 하지 않는 ‘민족’이란 구호는 단지 증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의 외침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일의 아버지(김일성이라 하는 김성주)는 동족을 치기 위하여 스탈린과 모택동 등 외세를 불러들여 300만 명의 남북한 동포를 죽였고 또 김정일 자신은 여러 가지 구제 수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willful negligence)으로 북한동포 300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다.

    그런데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 100일에 즈음하여 소위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의 담화에서 “지금 해외동포들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했으며 평양방송도 1995년에 “우리 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 민족’이고, 현대 우리나라는 수령이 세운 김일성 조선”이라고도 했다. 더 나아가 1996년 평양방송은 ‘김일성 민족’에 이어 다음과 같이 ‘김정일 민족’을 새롭게 소개하면서 결국 그들이 선동하는 ‘민족’이란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 우리는 태양의 나라에서 사는 ‘김일성 민족’, ‘김정일 민족’, 태양이 영원하듯 ‘김일성 민족’, ‘김정일 민족’은 영원무궁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결코 ‘김일성 민족’도 ‘김정일 민족’도 아니며 단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후손이요, 곧 하나님의 자손일 뿐이다(창1:26; 행17:26-29),.

    “또 그분께서 인류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를 찾게 하려 하심이요, 혹시라도 그분을 더듬어 찾다가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행17:26,27상, 이하 흠정역)

    3. 자주(自主, independence, autonomy)

    스스로가 주인이란 한자어 뜻풀이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자주(自主)란 북녘에서건 남녘에서건 민족(국가)이 주체가 되어 타민족(타국가)의 도움을 받지 말고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보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미 전술하였듯이 김일성은 외세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6.25라고 하는 사대주의적 전쟁을 일으킨 바가 있다. 따라서 김일성에겐 애사당초 ‘자주’를 외칠 자격이 전무한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은 남한이 먼저 북침하였던 것이라고 전 인민들을 세뇌시켜온 것이며 또 최근에는 강 교수 등을 통해 ‘통일전쟁’이라는 또 다른 거짓된 내재적 접근법을 선전하도록 하여 ‘자주’에 대한 원초적 반역을 남한의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외세를 등에 업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지금도 살아 계시는 수백만의 전쟁세대들의 증언은 차치하고서라도) 중국 단동에 소재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 곧 1950년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택동 중국공산당 주석에게 보낸 자필편지 등을 통해서도 확실하게 입증이 된다.

    또한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동양학과 아나톨리 바실레비치 토르크노프 교수가 문서 해지된 자료들을 근거로 펴낸 ‘조선전쟁의 수수께끼와 진실’이나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기자로 근무하면서 평양특파원을 지낸 바도 있는 하기와라 료(萩原 遼)가 워싱턴에서 6.25 때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수거해온 160만 페이지의 방대한 자료를 모두 섭렵한 끝에 출간한 ‘조선전쟁-김일성과 맥아더의 음모’에서도 김일성의 비(非)자주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사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고 난 이후엔 강대국에서일지라도 자주국방의 개념은 영원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생겨난 것이며 또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나 북중 및 북소 군사동맹도 생기게 된 것이다. 아울러 정치와 국방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경제, 과학, 문화 등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주’는 그 폐쇄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것이 바로 21세기 지구촌의 모습이다.

    특히나 에너지와 식량을 자기들이 원수로 여기는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오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자주’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거짓과 증오와 교만 속에 ‘자주’를 외쳐온 김씨왕조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북한이 세계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필연적 순리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잠10:18; 16:18).

    “멸망에 앞서 교만이 있으며 넘어짐에 앞서 거만한 영이 있느니라.”(잠16:18)

    4. 민주(民主, popular rule, democracy)

    민주주의란 주지하다시피 그리스어(語)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이 합친 것으로서 ‘국민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전적 정의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으로서 귀족제나 군주제 또는 독재체제에 대응하는 뜻이다.

    ‘직접민주주의’나 ‘대의(代議)민주주의’ 또는 ‘사회적 민주주의’ 등 민주주의의 해석과 실행에는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원칙은 같은데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은 대략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은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을 통하여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적어도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치강령과 후보들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모든 구성원의 민권(民權)을 보장하여야 하는데 이 민권에는 출판, 결사, 언론의 자유가 포함되며 적법절차 없이 국민을 체포·구금할 수 없다. 넷째, 정부의 시책은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는 효율적인 지도력과 책임 있는 비판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의 관리들은 계속적으로 의회와 언론에서 반대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은 독립된 사법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여섯째, 정권교체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어떠한가. 선거라는 형식은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오직 노동당 후보 1인이 후보로 나와 100%의 찬성으로 당선되는 기가 막힌 선거만이 있으며, 노조도 없고 노동당이 주관하지 않는 언론도 전무한 상황이다. 또 정부의 시책은 인민의 복리증진이 우선이 아니라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선군(先軍)정치여서 인민들은 김정일과 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정부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반대의견도 결코 허락될 수 없고 입법 및 사법제도도 유명무실한 것이며 정권교체는커녕 오직 ‘대를 이어 충성’해야 하는 것이 소위 ‘조선민주주의’인 것이다.

    “화 있을진저, 불결하고 더러운 여자 곧 학대하는 도시여! 그녀 안에 있는 통치자들은 울부짖는 사자요, 그녀의 재판관들은 뼈를 갉아먹되 이튿날까지 기다리지 아니하는 저녁때의 이리요, 그녀의 대언자들은 경솔하고 배신하는 자들이요, 그녀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침해(侵害)한 자들이로다.”(습3:1,3,4)

    5. 인권(人權, human rights, civil liberties)

    1966년 제21차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인권의 국제적 보장을 위하여 채택되어 1976년에 발효된 ‘국제인권규약’(國際人權規約, International Covenants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 국제인권규약은 ‘조약’(條約, treaty)으로서 체약국(締約國)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중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인 A규약은 이른바 생존권적 기본권을 대상으로 노동기본권·사회보장권·생활향상·교육권 등을 각 체약국이 그들의 입법조치로써 실현 달성할 것을 내용으로 하며, 이의 실시상황을 UN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인 B규약은 이른바 자유권적 기본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체약국이 이를 존중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것의 실시 확보를 위하여 인권심사위원회와 그리고 필요에 따라 특별조정위원회를 설치할 것과 선택의정서 참가국에 대해서는 개인이 인권심사위원회에 직접 청원(請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연합(UN)의 방침을 좇아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중고교생 두발제한은 인권침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교육부에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등 다방면에서의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북한은 어떠한가?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아리랑 공연을 참관하였던 이들에 의해 “어쩌면 저 많은 사람들이 하나와 같이 움직일까?”, “무슨 힘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참가시킬 수 있는가?”라며 기적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데 대하여 쏟아지는 놀라운 찬사들이 우리 언론에도 보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연의 꽃이라 할 2만 명 규모의 대규모 카드섹션에 참가한 학생들이 수개월간 겪어야 했던 인권침해 덕에 아리랑 공연이 뜨게 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곧 불량학생이라고 낙인찍혀 가족과 함께 평양에서 추방되지 않기 위해 몽둥이질을 감수하고 소변을 참아 방광염에 걸리는 등 그 어린 학생들의 인권이 처참히 짓밟힘을 당한 결과 그러한 기적 같은 공연이 가능하게 된 사실은 감춰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 이 핵심계층인 평양의 학생들에게 뿐이랴? 수많은 탈북자들의 수기 곧 ‘수용소의 노래’, ‘꼬리 없는 짐승들의 눈빛’,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 ‘김정일 로열 패밀리’, ‘김정일 요리사’, ‘DMZ의 봄’, ‘두만강 건너는 예수’, ‘내래 예수 믿갔시오’ 등에 나오는 도저히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들을 보면 북한의 인권상황은 한마디로 ‘인권’이란 단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의로운 자들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기뻐하나 사악한 자들이 다스리면 백성이 애곡하느니라.”(잠29:2)

    6. 자유(自由, freedom, liberties)

    자유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내용을 획일적으로 정식화(定式化)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자유의 원리의 공통된 내용을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보편적 인권’의 원리로서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의 각 개인의 자유와 발의권(initiative)의 원리이다. 이것은 개성과 그 활동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며, 이성적 전달(communication)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이 형성될 것을 믿는 입장이다. 따라서 개인의 정신적·사회적 활동의 자유에 대한 비인간적·강제적 구속과 획일화를 가능한 한 제거하려 한다. 예컨대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 곧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고와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비롯하여 재판에서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존중하는 것 등은 이 원리의 전형적 표현이다.

    둘째는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로서 이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자유를 모든 남녀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권리로서의 참정권(參政權), 정치에 있어서의 토론과 설득과정의 중시, 정치에 대한 사고와 비판의 자유, 보도에의 권리(알 권리), 정치적 집회·결사활동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보호 등의 정치적 자유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상기한 자유의 범주 가운데 어떤 항목이 북한에서는 가능한 것일까? 

    신체의 자유? 죄명도 모르고 즉시 수용소행이 비일비재하다. 거주·이전의 자유? 통행증 없이는 군과 군 또는 도와 도 사이의 경계도 넘어갈 수 없다. 종교의 자유? 지금도 수많은 순교자가 배출되고 있다. 사고와 표현의 자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만이 실질적인 최고 행위규범이다. 집회․결사의 자유? 어떤 노조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다. 직업선택의 자유? 전적으로 노동당이 결정한다. 재판에서의 정당한 절차의 존중? 남편이 자기 부인을 직접 공개처형하기도 한다. 참정권? 오직 김정일에게만 있다. 알 권리? 이것도 오직 김정일에게만 있다. 소수자의 권리보호? 평양에서조차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동국대 강 교수는 북한에도 자유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만약 강 교수가 북한에 가서 그가 주장하는 대로 “6.25전쟁은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이다”라고 한마디만 해보면 북한에 자유가 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7. 평등(平等, equality, impartiality)

    평등사상은 고대 노예제시대에는 아테네의 자유민 사이에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중세암흑기 이후에는 성경보급의 영향으로 ‘하나님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농노제와 함께 공장제 수공업을 기초로 하는 도시가 발전하여 시민계급이 형성됨에 따라 ‘법 앞의 평등’(equality before the law)이라는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그래서 결국 평등사상은 신분제적 불평등을 바탕으로 한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성장·발전함에 따라 일반화가 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헌법 제11조에서 다음과 같이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어떠한 형태로도 창설할 수 없으며, 훈장(勳章) 등의 영전은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따르지 않는다.”

    이외에도 우리 헌법에 명시된 ‘여성근로자의 부당한 차별의 금지, 혼인과 가족생활의 양성(兩性)의 평등’(36조), ‘교육의 기회균등’(31조), ‘선거권과 투표권의 평등’(41·67조) 등은 모두 ‘법 앞의 평등’의 기본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정말 평등한 사회인 것일까?

    일례로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약 45억 달러의 비자금을 맡겨두고 식량구입에는 한푼도 쓰지 않아 수백만의 동포들을 굶겨죽이면서도 세계 최고급 꼬냑과 곰발바닥 요리와 매일 매일 비행기로 실어 나르는 파리의 아이스크림과 수단산(産) 수박을 즐기고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초근목피(草根木皮)도 못 구해 인육(人肉)을 먹기도 하는 수많은 인민들이 있는 사회가 곧 북조선 ‘김정일왕국’이다.

    크게는 20%의 핵심계층, 60%의 동요계층, 20%의 적대계층으로, 작게는 51계층으로 인민들을 충성도에 따라 세세히 분류하여 모든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곳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멸망하고 주의 원수들은 어린양의 기름같이 되리니 그들은 타 버리고 연기가 되어 사라지리로다.”(시37:20)

    8. 평화(平和, peace, harmony)

    굳이 네이버 국어사전의 ‘평화’에 대한 정의(① 평온하고 화목(和睦)함. ② 전쟁이 없이 세상이 평온함)를 참조하지 않더라도 ‘평화’의 반대 개념이 ‘전쟁’인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어찌되었든 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후보 시절 “남북관계만 잘되면 나머지는 다 깽판 쳐도 좋다”내지는 거듭 “전쟁이냐 평화냐”를 외친 결과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 대통령과 온 국민의 바람대로 지금 북한은 남한과 전쟁할 준비를 포기하고 있는 중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래 전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 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은 사실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 박사에 의하면 북한은 남한과 달리 전술무기 외에 전략무기도 가지고 있는데 이 전략무기들에는 ‘서울 불바다’ 무기,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장거리 유도탄 등이 있다고 한다. 서울 불바다 무기는 아름드리 굵기의 야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프로그 미사일, 170mm 야포, 한 번 쏘았다 하면 36발이 거의 동시에 날아가는 240mm 구경의 공포의 다연장 로켓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대구경 포들은 수도권 전역에 분당 1만발 정도의 포탄을 쏟아 부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사정거리 300km의 스커드B, 500km의 스커드C를 600기나 남한 공격을 위해 배치해놓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유도탄의 중량은 500kg으로 한 발을 가지고도 ‘삼풍 참사’를 재현해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유도탄이라면 한국의 어느 도시든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으며 어느 원자력발전소를 겨냥해 수백 대를 집중 사격하면 한국이 체르노빌로 변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 인구를 3회 이상 살상할 수 있는 엄청난 화학탄과 생물학 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한 다양한 투발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 불바다’ 무기와 유도탄 공격뿐 아니라 이러한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 등에 대해서도 우리에겐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2월 북한은 이들 기존의 엄청난 무기 외에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온 세계에 선언하였다! 1990년대 초부터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워 당도 인민도 모두 다 군(軍)에 귀속시킨 김정일에 의해 이처럼 ‘조선인민 공화국’은 시나브로 ‘인민군 공화국’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리게 된 것이다(미3:5).

    “나는 화평을 원하나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7)

    9. 통일(統一, unification, uniformity)

    황장엽씨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란 제목의 글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방안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안’과 관련하여 한 김일성의 발언내용을 참고로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며 “김일성이 연방제와 관련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심간부들에게 강조하였다”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연방제는 통일전선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적 방안이다. 연방제를 실시하여 북과 남이 자유롭게 내왕하면서 자기 제도와 자기 사상을 선전하게 되면 공화국은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된 국가이기 때문에 조금도 영향을 받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남조선은 사상적으로 분열된 자유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남조선에 나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주체사상 선전을 대대적으로 하면 적어도 남조선 주민의 절반은 쟁취할 수 있다.

    지금 인구 비례로 보면 남조선은 우리의 2배이다. 그러나 연방제를 실시하여 우리가 남조선 주민의 절반을 쟁취하는 날에는 공화국의 1과 쟁취한 남조선주민의 1을 합하여 우리 편이 2가 되고 남조선이 1로 된다. 이렇게 되면 총선거를 해도 우리가 이기게 되고 전쟁을 해도 우리가 이기게 된다. -중략-

    그러나 태권도 부대를 한 100만 명 조직하여 권총이나 한 자루씩 채워 남조선에 내보내면 같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이남 출신이고 누가 이북 출신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남침이라는 구실을 주지 않고도 능히 우리가 남조선의 친북진보세력과 힘을 합쳐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중략-

    연방제를 실시하여도 무력에 대한 통수권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에는 우리가 무력을 쓸 수 있다. 이번에 국방위원장이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헌법을 고친 것은 그 때문이다.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이기 때문에 국가수반과는 관계가 없다.”

    이 글에서 보듯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이란 단지 대남적화 통일의 전술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남북관계만 잘 되면’이라는 코드의 주가가 날로 치솟고 있으며 심지어는 강 교수같이 아예 ‘통일내전(內戰)’인 6.25전쟁이 맥아더 때문에 한 달 만에 김일성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것을 노골적으로 원통해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즉 한반도의 무조건 통일을 그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날로 팽배해 지고 있는 것이다.

    통일? 물론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된 민주, 인권, 자유, 평등, 평화 등 ‘추구하는 가치가 실질적으로 같아야’ 하는 것이다(고후6:14-16상; 요이1:10,11)!

    “누구든지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한 채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지니 이는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가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이기 때문이니라.”(요이1:10,11)

    10. 마무리

    인질사건이 며칠씩이나 계속되면서 범인이 인질을 방패로 하고 버티게 되면 인질로 사로잡힌 사람들 간에 기묘한 감정이 생겨서 인질범을 숭배하게 된다. 이것은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고 불리는 병적 현상이다.

    실제로 1973년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와 인질이 된 여성 간에 연애감정이 싹터서 사건 해결 후 그 둘이 결혼한 예가 있다.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인간은 범인을 미워하기는커녕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동국대 강 교수와 같은 친김(親金)내지 종김(從金) 세력들은 마치 인질이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범인에게 감화되듯이 핵을 무기로 남북한을 인질로 삼고 있는 김정일을 숭배하지 못해 안달이 나고 있다.

    특별히 북녘의 저 거대한 수용소로부터 전달되는 민족, 자주, 민주, 인권, 자유, 평등, 평화, 통일 등을 끊임없이 목이 터져라 합창하며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앙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수용소의 노래’는 사실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채택된 ‘고전적인 사탄의 전략’의 김정일 버전으로서 이미 이브가 넘어간 적이 있었듯이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또 당할 수 있는 것이다(창3:1-5).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벧전5:8,9상)

     

    “화 있을진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고 어둠으로 빛을 삼으며 빛으로 어둠을 삼고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이여!”(사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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