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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하나님의 과학: 피의 화학적 성질 3 조회수 : 827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3시 21분 37초
  • 3.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니나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4-26).

     

    이 구절 가운데는 우리가 특히 관심을 기울일 말씀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를 서로 서로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피다. 인류는 한 피에서 나왔고 그 피는 첫 인간이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피였다.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고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죄는 아담의 피에 영향을 끼쳐서 궁극적으로 그에게 죽음을 가져왔다고 기록한다. 모든 인류의 피가 아담의 피를 공유하기 때문에 오직 죄가 없는 피만이 그것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피는 바로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피이다.

     

    첫 아담의 죄가 전 인류의 피를 부패시켰으므로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죄가 없는 피만이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들의 사면이 없다.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것이 바로 피이다.” 비록 이브가 아담보다 먼저 죄를 지었지만 이브의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한 것은 바로 ‘아담의 죄’이다.

     

    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을 여자의 씨(The Seed of the Woman, 창3:15)라 부르는데 이는 그분만이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그분의 피’에는 아담의 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역자 주:마태복음 1장을 펴고 2절부터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성경은 모두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에는 ‘beg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것’(was born)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그분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직 예수님만이 여인에게서 나온 사람이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도서출판 예향의 『말씀의 비밀을 찾아서』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비록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어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으므로 당신이나 나 같은 죄인이 아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단 한 가지 해결책은 ‘죄 없는 피’뿐이며 오직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에게 그 피를 줄 수 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우리는 이 속죄하는 피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 예로, 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피 흘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죽임 당한 양과 염소의 피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어린양께서 오시기 훨씬 전에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예표들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피가 없이는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피가 드려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은 죄인에 대해 공의와 죽음을 요구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의 두 돌판을 주셨을 때 - 긍휼이 아니고 공의를 요구하는 율법, ‘그것을 범한 혼은 죽으리라’고 말한 율법 - 그 율법은 ‘완전함’ 이 아니면 죽음을 요구했다.

     

    그분께서는 또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의 형태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피 위에 지어진 것이며 그 안에서의 모든 의식 역시 피 속에서 거행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여 반드시 죽을 것을 아셨으므로 은혜 가운데 율법에 의해 정죄된 범죄자가 안식을 주는 피를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성막과 희생단과 피를 주셨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양(God's Perfect Lamb)

    송아지와 염소와 양의 피는 죄인을 완전하게 속죄할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자신을 직접 희생하심으로써 구약 시대의 끝에 죄를 없애려고 오신 그분을 가리킬 뿐이다.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셨고, 마지막에 그분께서는 자기의 고귀하고 영원한 피를 온 세상을 위해 ‘단 한 번’ 영원히 흘리셨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어떤 희생 제사도 필요 없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희생된 짐승의 피는 부패하기 쉽고 썩어서 빨리 없어지지만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흘리신 피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피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부패할 수 없는 것으로 불린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주 예수님의 피는 죄 없는 피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썩을 수가 없다. 죄는 부패를 초래하지만 죄가 없는 곳에는 부패가 있을 수 없다.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는 예수님의 몸에 흘렀던 피가 왜 죄 없는가를 지적할 것이다. 예수님의 몸속을 흘렀던 핏방울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마치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상처받은 이마와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흘러 나왔던 그 피처럼 여전히 신선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찢어지지 않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던 피, 채찍질하는 자가 그분을 채찍질했을 때 무거운 가죽 끈이 그분의 몸을 찢어 놓았을 때 그분의 등으로 흘러내렸던 피, 가시관 밑에서 스며 나와 그분의 손, 머리, 발로 흘러내렸던 피는 썩지 않는 피였으므로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다윗이 시편 16장에서 주님을 가리켜 말했던 것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나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행2:27).

     

    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죽음 속에서 세 밤과 세 낮 동안 무덤 속에 있었으나 썩지 않는 피를 지녔기 때문에 그 몸은 부패되지 않았다. 나사로의 누이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악취가 난다고 말하였지만 그분의 육신에는 부패의 유일한 원인인 ‘죄성을 띤 피’가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썩음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피의 한 방울까지도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옛날의 대제사장처럼 하늘에 있는 긍휼의 자리 위에 피를 뿌리기 위해 지성소 안으로 즉 하나님의 존전으로 가셨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눈에 보이는 긍휼의 자리와 언약궤는 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하여야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3-26).

     

    속죄를 이루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사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에 피를 드리기 위해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 피는 오늘도 그곳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호소하며 우리를 위해 승리를 주고 있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제사장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다만 피를 드렸을 뿐이며 그때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2000년 전이나 똑같이 지금도 순결하고 능력 있고 신선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하늘나라에 있는 금잔 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었던 성막의 제사장은 반복해서 피를 뿌려야 했다. 성막의 모든 가구들 중에 의자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성막 내에 있었던 희생 제단, 분향 제단, 등잔대, 주님의 언약궤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성막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스라엘의 성막에는 의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희생 동물의 피를 뿌렸던 이 땅에 속한 제사장의 일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앉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코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고귀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2-14).

     

    썩지 않고 영원하며 신성하고 죄 없으며 모든 것을 이긴 고귀한 피는 이미 흘러내렸다. 그 피는 그 당시에도 유용했으며 지금도 유용하며 세세 무궁토록 그 능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형용사로써 그리스도의 피를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 피가 고귀하다고 했으며 다윗은 썩지 않는다고 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마귀)를 이겼다.”고 말하며 그것이 ‘모든 것을 이기는 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피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피의 권능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피 없이는 결코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오늘날에도 율법은 그 성격을 바꾸지 않았고 피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은 여전히 죽음을 집행하고 있다(고후3:7).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정의는 아직도 진리이다. 율법의 행위로부터 난 사람들은 저주 아래 있다. 율법 자구는 사람을 살리지 않고 죽이기 때문이다(고후3:6).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너의 선행, 도덕 행위, 열렬한 종교심, 십계명 혹은 도덕의 황금률을 진정으로 지키려고 하는 점을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고 하셨다. 당신은 내가 피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다고 생각하는가? 즉 피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였다고 생각하는가? 들어보라,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은 적어도 칠백 번이나 피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묘사된 하늘에 있는 구속된 무리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선행이나 율법을 지키는 데 충실했음을 노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노래함을 보게 된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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