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4.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 오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났더니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치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마1:18-20).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代言者)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마1:22-23).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보고도 어떤 이가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음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성경 기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처녀였던 유대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는 어떤 육적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생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경이 이 점을 너무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말씀을 주의 깊이 그리고 신중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결코 이 문제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Jesus Sinless) 그 외에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죄 없는 인간이셨음을 가르친다. 아담으로부터 오늘날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따라서 저주와 영원한 죽음에 무릎 꿇어야만 하지만 참 사람 예수님(The Man Jesus)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그 자신 위에 돌리시고 그들의 죽음을 대신하시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분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족속을 한 피에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께서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부터 육신을 받았다 해도 죄성을 띤 피가 그분의 몸에 있지 않는 한 그분께서는 여전히 죄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죄성을 띤 인간의 피를 갖지 않은 채 육신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준비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다. 피의 기원( Origin of the Blood)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동맥과 정맥에 흐르는 피는 산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태아의 몸에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피의 형성은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서 태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후에 이루어진다. 이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예로서 달걀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정되지 않은 달걀은 인간의 난자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과 똑같다. 당신이 수정되지 않은 달걀을 부화시키려 한다면 곧 실패할 것이다. 부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따뜻한 곳에 두면 그것은 완전히 말라붙어 결코 병아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달걀을 수컷의 정자로 수정시켜 보자. 그 후에 따뜻한 곳에서 부화시키면 태아 속에 있는 생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몇 시간 후에는 그 생명이 눈에 띄게 성장한다. 또 조금 후에는 ‘피’가 있음을 보여 주는 빨간 줄무늬가 생긴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모세가 성경에서 말한 대로 생명이 피에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는 그 생명을 위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종류의 육체의 피도 먹지 말라.”(레 17:14) 산모의 피는 태아의 피와 상관없음(Mother's Blood Separate) 산모의 자궁에서 자라나고 있는 태아는 산모로부터 단 한 방울의 피도 받을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도 분명히 그렇다고 말한다. 산모는 자기의 자궁 내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는 태아가 몸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태아에게 있는 모든 피는 태아 자신에게서 생성된 것이다. 수태될 때부터 태아의 출생 때까지 단 한 방울의 피도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후산물로 더 잘 알려진 임시의 조직 덩어리인 태반은 산모와 태아 사이를 서로 연결해 준다. 그것은 모든 수용성의 영양분들 - 단백질, 지방분, 탄수화물, 염류, 무기질, 항체조차도 - 이 산모에게서 태아로 자유롭게 전달되고 태아의 신진 대사 작용으로 생긴 노폐물이 산모의 혈액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정상적인 경우에 실제로 단 한 방울의 피도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태아가 가진 모든 피는 태아 자체에서 생성된 것이다. 산모는 그 피에 전혀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과학의 증거(Testimony of Science) 위의 설명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하여 나는 몇 가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려 한다. 호웰(Howell)의 『생리학 교과서』 제2판 885 페이지와 886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태반의 전반적인 기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반이 본래 산모의 탈락막에 있는 큰 혈액의 공간에 잠겨 있는 태아의 혈관성 융모돌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는 실제로 접촉되지 않는다. 그들은 태아의 혈관벽과 융모돌기의 상피 세포층에 의하여 서로 분리되어 있다.” 윌리암스(Williams)의『산과학의 실제』제3판, 133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융모돌기의 혈관 안에 있는 태아의 피는 융모상피의 이중으로 된 세포층에 의하여 산모의 피와 분리됨으로써 융모 사이의 공간에 있는 산모의 피와 한 번도 접촉할 수 없다.” 다시 같은 책의 136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가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간호사들에게 잘 알려진 책에서 인용하여 보겠다. 즉 간호사 자브리스키(Louise Zabriskie)가 지은 『간호사를 위한 산과학』제5판, 75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의 혈액 순환이 시작되면 그것은 산모의 혈액 순환과는 분리되며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 산모와 태아 사이에 서로 교환되는 모든 영양분과 노폐물은 혈관 벽을 통하여 모체의 혈액 순환에서 태아의 혈액 순환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위의 책의 82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는 태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산모의 피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태아의 심장은 탯줄의 동맥을 통하여 태반의 혈관으로 피를 내 보낸다. 이 태반의 혈관은 자궁 조직의 안과 밖을 감싸고 있고 자궁의 혈관과 매우 밀접하게 놓여 있어서 그 혈관 벽을 통하여 태아로부터 산모에게로는 노폐물이, 산모로부터 태아에게로는 영양분과 산소가 확산되도록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이런 상호 교환 작용은 삼투 현상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혈액간의 직접적인 혼합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산모의 피는 태아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아의 피도 산모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준비(God's Wonderful Provisio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처녀 탄생을 위해 얼마나 놀랍게 준비하셨던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피가 여자로부터 여자의 후손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셨다.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죄 없는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나왔지만 피는 다른 근원에서 나오는 방법을 준비하셨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자에게서 태어났는데 죄가 없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특히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마리아가 죄 없는 처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셨다는 질문의 해답이 아니다. 마리아도 그녀의 아버지가 죄인이므로 분명히 죄를 입고 태어난 죄인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기는 하셨지만 아담의 피는 공유하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말한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자녀 즉 인간의 자녀들은 육과 피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며, 예수님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우리와 같은 것의 일부 즉 몸을 취하셨음을 주목하라. 그러나 그리스도께 적용된 ‘took part’라는 말은 자녀들에게 적용된 ‘partakers’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took part’로 번역된 말은 자기 자신의 본성을 벗어나서 어떤 일에 참여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Partakers’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코이노네호’(koynoneho)이며 이 단어는 ‘완전히 함께 공유하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완전하게 공유한다. “예수님께서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다”는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메테코’(metecho)인데 이 단어는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 참여하다’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가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한 부분, 즉 육신만을 공유할 뿐이다. 그분의 피는 초자연적인 수태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완전하신 인간이셨다. 육신적으로는 그분께서 다윗의 씨였지만 그분의 피는 거룩하게 만들어졌다. 인간이 창조될 때 아담의 육신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 넣으셨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그 일 후에 아담의 몸에서 피가 생겨났다. 그러나 첫 아담의 피는 죄로 인해 부패되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셨으므로 모든 인류에게는 죄가 있다. 마지막 아담 속에서 새롭고 거룩하며 죄 없는 피가 생성되었고 결국 거룩한 피가 나왔다. 하나님의 피(Divine Blood) 처녀 탄생이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님에 의한 수태뿐이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영양분을 주었고 그래서 그분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죄 없는 피요, 거룩한 피며 고귀한 피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피는 지금까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무죄한 피(Innocent Blood)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지었도다.” 가룟 유다는 마태복음 27장 4절에서 이처럼 고백했다. 진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무죄하셨다. 주님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분께서 인간인 아버지에 의해서 수태되지 않고 ‘거룩하신 아버지’에 의해 수태되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 결과 생물학적으로 주님께서는 거룩한 피, 즉 죄 없는 피를 갖고 계셨다. 또 그 피에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결코 썩을 수가 없다. 썩지 않는 피(Incorruptible Blood)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피는 썩게 되었다. 사람은 죽자마자 곧 썩기 시작하며 부패는 먼저 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고기에서 피를 모두 짜내는 이유이다. 또 그것이 부식 방지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방부제 약을 피 속에 넣는 이유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몸이 썩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했다. 비록 주님께서 사흘 밤낮 동안 죽은 상태로 있었지만 그분의 몸은 썩지 않았다. 주님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분을 영원히 죽도록 할 수가 없었고 그분께서는 다시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버리셨다. 사망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권세를 휘둘렀지만 주님께 대해서는 그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 부활하셨다. 모든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셨을 때 - 사망은 자기의 먹이를 붙들 수 없었네 예수님, 나의 구원자여 주님께서 지옥의 장벽을 부수셨네 예수님, 나의 주여; 무덤에서 솟아올라 부활하사 권능으로 원수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셨도다. 죄인이여, 당신은 이처럼 능력 있는 구원자를 영접하여 그분의 고귀하신 피로써 씻겨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도 죽음이라는 저주와 무서운 선고 아래 있다. 오늘 그분을 영접하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8-9). 피의 거룩함(The Sanctity of Blood)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것의 생명과 함께 곧 그거의 피와 함께 먹지 말지니라”(창9:4). 이 말씀은 노아의 대홍수라는 무서운 심판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의 일부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사람들의 악이 점점 증가되어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완전히 부패되어 멸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큰 홍수를 보내어 단 한 가정만 남겨 두고 모든 사람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때 유일하게 남게 된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당시의 세대들 가운데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홍수 이후 깨끗하고 청결하게 된 이 땅 위에서 주님께서는 이 새로운 가정을 통해 인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심판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들이 취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지시를 내리셨다. 그 명령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아가 새로운 땅 위에 맨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말씀이 바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명령은 대 홍수가 일어나게 된 부분적인 요인이 인간들이 ‘피의 신성함’을 무시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홍수 전에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범해진 최초의 죄는 가인이 아벨의 무죄한 피를 흘린 것이다. 그 피는 땅에서 복수를 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 무죄한 피의 호소에 대한 부르짖음이 노아의 홍수를 초래케 했다면 하물며 말세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의인들의 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는가? 오늘날 팽배하고 있는 악과 폭력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사실이 조금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눅17:26). 그렇다. 이렇게 악이 만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지상에서 횡행하고 있는 무서운 통치에 끝을 내고 말 것이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 예표로 보여진 대환난의 심판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다시 새롭게 되고 정결하게 된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 즉 천년 왕국을 문자 그대로 이룩하실 것이다. 피는 신성하다(Blood Is Sacred) 하나님의 피조물의 생명이 육체에 있지 않고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먹되 오직 피 없이 먹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음식과 규정과 규례들을 줄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 4절의 금지 사항을 다시 반복해서 명령하고 계신다. “또한 너희는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날짐승의 피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지니라. 어떤 혼이든지 무슨 피라도 먹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레7:26-27). 그와 동일한 명령이 레위기 17장에서 보다 더 많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은 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죄는 너무도 심각해서 그 죄를 범한 자는 자기의 백성들에게서 끊어짐을 당할 것(즉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피를 철저하게 빼지 않은 고기는 음식으로 적당하지 않으며 목매어 죽인 것도 무엇이든지 먹기에 적당치 않다. 오늘날 적어도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금지 사항을 기억하고 오직 코셔(kosher) 고기만 먹는다. 그것은 율법에 있는 대로 죽여서 피를 완전히 빼낸 고기를 뜻한다. 따라서 모든 코셔 고기나 다른 코셔 음식들은 피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We Are Under Grace) 이제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며 그 명령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대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있지 않았던 노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노아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사실은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은혜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법칙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도 “피를 먹지 말라” 하는 명령은 유효하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첫 번째 공회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안디옥 교회 내에서는 상당히 골치를 앓게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보다 심각한 쟁점으로 일어나게 되자, 급기야는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소집되었고 거기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내려 왔다. 그리고 많은 논쟁과 토의를 벌인 끝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달문을 가지고 이들은 다시 안디옥의 이방인 교회로 돌아갔다. “우리가 들은즉 우리에게서 나간 어떤 자들이 말로 너희를 혼란에 빠뜨리고 너희 혼을 뒤엎으며 이르되, 너희가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명령을 준 적이 없으므로”(행15:24). 여기서 사도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사도들은 교회가 율법 아래 있다거나 이방인 신자들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 이후 19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아직도 우리들을 유대인들로 만들려는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율법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 사도들이 한 말을 더 읽어 보자. “성령님과 우리는 이 필요한 것들 외에 다른 큰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을 좋게 여겼나니 곧 우상들에게 바친 음식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너희가 멀리할지니라. 너희가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하리로다. 평안할지어다, 하였더라.”(행15:28-29). 비록 우리 크리스천들이 율법 아래 있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제를 받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율법 아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육체의 생명인 피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있기 1000년 전에 즉 은혜 시대에 벌써 노아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 원리는 율법 시대에도 효과를 발생했고 율법의 시대가 지난 지금의 은혜 시대에도 계속해서 준행되고 있다. 지금은 왜 피를 금하는가?(Why No Blood Now?)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로 임의적인 것이 아니며 언제나 시대를 초월해서 정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이다.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우리는 건강과 위생상의 이유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외에도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명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며 그분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모세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이제부터 성경이 주장하는 논리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없으면 모든 육체는 생명이 없다. 처음에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이 존재했다. 그 아담은 한낱 흙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코에다 숨결을 불어 넣으시자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이 되었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 몸에다 부여해 주신 것은 다름 아닌 피이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피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피와 함께 그 육체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고귀한 피(The Precious Blood)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제시해 보겠다. 피는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대가였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무엇인가 좋지 않은 것이 피 안에 생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피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고 죽음이 없는 피로 존재하지 못했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게 되었으며 결국 아담은 죽음에 의해 굴복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죽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이 다시 그 속에 심겨져야만 했다. 즉 사망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이 바로 피 안에 있다. 그래서 반드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 없고 절대로 부패하지 않은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열의 인종 가운데서는 아무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첫 아담 안에서 그의 모든 후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도 그 피를 공급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순전히 영적 존재들이어서 육체도 없고 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를 공급해 주실 유일한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바로 처녀에게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 오셨으나 전혀 죄가 없는 초자연적인 피를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그분은 바로 성령님으로 잉태된 분이신 것이다. 윗부분에서 우리는 태아의 몸속의 피는 어머니의 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스스로 그 안에서 형성되며 어머니의 난자로부터 그 작은 태아의 몸이 시작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몸은 마리아에게서 왔고 그분의 피는 성령님으로부터 왔다. 이처럼 죄 없고 초자연적인 피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속을 위해 용인하실 수 있는 대가가 될 수 있었다. 죽음은 오직 생명에 의해서만 사라질 수 있으며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혈이 필요하다. 수혈(Blood Transfusions) 오늘날 우리는 수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수혈에 의해 목숨을 구해 왔다. 수혈이란 출혈이나 갖가지 피와 관련된 질환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피를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에게 넣어 줌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모든 수혈 중에 가장 위대한 수혈은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 그분의 피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질 때 행해진다. 여기에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바로 대속의 피를 그 사람이 믿는 것이다. 혈액 은행(Blood Bank) 요즈음 우리는 혈액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혈액 은행은 부상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미래에 사용될 목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취해진 피를 저장하는 창고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채취한 피에는 어떤 보존제들이 첨가되어지고 그렇게 처리된 피는 무균 용기 안에서 미래에 사용되기 위해 보존될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보존제는 피의 모든 기능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므로 그 피는 어느 때든지 사용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피를 기증하기 위하여 병원이나 보건소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거기에서 피가 채취되고 처리된 뒤 저장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응급 환자의 경우에도 수혈에 필요한 피가 항상 충분히 있게 된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발견들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오늘 당신은 한 달 후에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낯선 이의 생명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당신의 피를 기증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혈액 은행(God's Blood Bank)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20세기 전에 행하신 그 일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못한다. 그때에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는 자신의 죄 없는 피 전부를 남김없이 쏟아 주신 분이 계셨다. 바로 그곳에서 혈액 은행이 개설되었고, 주 예수님의 피가 그 은행을 채웠다. 그 피는 A형이든 B형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유효하며 성령님에 의한 그 피의 수혈을 받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거저 주어진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그것을 얻기 위한 신청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피를 보존하기 위해 혈액 은행에 있는 피에다 반드시 보존제들을 첨가하여야만 하고 그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피는 결국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질된다. 그러나 그분의 피에는 어떤 보존제도 첨가되어질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 피가 썩을 수 없으며 죄 없는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 중 단 한 방울도 손실되었거나 소모된 적이 없다. 그 피는 썩을 수 없는 피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 피로 인해 우리 주님께 찬양을 드리자!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이 피가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신선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피는 결코 소멸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가사의 찬송가가 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피가 쏟아졌고 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는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것은 어떤 사고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사고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 놓으셨고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자신의 귀중한 피를 흘려 주셨다. 오 죄인이여, 당신은 바로 지금 그 귀중한 피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죄의 능력과 정죄됨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늘 그 피를 받아 곧 구원을 받으라. 자기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성도들이여, 다음을 기억하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바로 지금 그분을 신뢰하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피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