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성경교리

  • 성경공부
  • 성경교리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말아톤조회수 : 1062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3시 28분 29초
  • 1. 프롤로그(Prologue)

    ‘말아톤’의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1월 27일 개봉된 후 52일 만에 전국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말아톤’의 열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방화사상 유래가 없었던 가족영화 ‘집으로…’의 기록을 이미 돌파한 데 이어 아마 이 추세대로라면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버금갈 기록을 남기지 않을까 예상이 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자폐증 청년 배형진(22)군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말아톤’은 편견 많은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 환자 본인과 그 가족들의 고달픈 삶과, 자폐증 아들을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하려는 어머니의 애환, 그리고 자폐증 환자가 어려움을 딛고 마라토너로 성장하는 과정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경기 불황기에는 가족이 유일한 희망이죠. ‘말아톤’에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과 기대가 잘 녹아 있습니다. 또 순수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역경을 이겨내는 장애인을 보면서 갖는 관객들의 자기반성 등이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 듯싶습니다.”라는 제작자의 말 맞다나 이 ‘말아톤’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여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이 영화평론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휴머니즘의 관점이외에 이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몇 가지 주요한 의학적 및 성경적 논제들(theses)을 분석해보면서 함께 영적인 유익을 더해보았으면 한다.   

    2. 시놉시스(Synopsis)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 하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초원(조승우 분). 어느 날 초원은 자폐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김미숙 분)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살 청년이 된 초원. 그러나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동생 중원에겐 마치 선생님 대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이기 일쑤이니 어딜 가든 초원이가 있는 곳은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는 짓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5살 어린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달리기 실력만큼은 여전히 최고인 초원. 경숙은 자신의 목표를 초원이가 마라톤에서 ‘서브쓰리’(subthree,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를 달성하는 것으로 정하고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린다.

    어느 날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한 전력도 있는 전직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의 학교로 오게 된다. 경숙은 애원하다시피 해서 기어이 정욱에게 아들의 코치 역할을 떠맡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정욱. 하지만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초원도 정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정욱은 매번 속도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기는 하지만 지구력이 남다른 초원에게서 마라톤 서브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정욱이 도통 미덥지 않은 경숙은 어느 날 정욱과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는 정욱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경숙. 경숙은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의 경숙. 그녀는 이제 마라톤도, 서브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먹고는 초원의 마라톤 출전을 포기하지만 경기 당일 초원은 혼자 경기장으로 향한다. 뒤늦게 경숙은 초원의 그림일기에서 ‘내일 해야 할 일’에 ‘말아톤’이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는 경기장으로 중원 및 정욱과 함께 달려가 초원을 격려하고 초원은 마침내 완주에 성공한다.

    3. 자폐증세(Symptoms of Autism)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윤초원 역의 조승우가 완벽하게 표현한 ‘자폐증’(自閉症, autism)은 1943년 미국 존스홉킨스아동정신병원 레오 캐너(Leo Kanner) 박사가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 11명의 어린이 환자의 사례를 보고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자폐’(自閉, 스스로 문을 걸어 닫는다) 증세가 있다고 말하려면 세 가지 범주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애’(failure to use eye contact, facial expression or gestures to regulate social interaction)다. “초원아, 거울을 보고 엄마처럼 해봐.”라며 엄마는 아들 초원이 웃는 표정을 짓게 만들려고 거울을 앞에 놓고 열심히 가르치지만 초원이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이처럼 자폐아는 눈을 맞추기를 피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필수적인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둘째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애’(impairment of communication)이다. “초원이 다리는?”(엄마) “백만불짜리∼.”(초원) “몸매는?”(엄마) “끝내줘요∼.”(초원) 라며 달리기를 하기 전에 엄마는 묻고 초원은 답하지만 이를 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폐아는 말을 배우는 것도 느리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매사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며 ‘속임수’ 또는 ‘연극’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셋째는 ‘제한되고 반복적인 관심과 행동’(restricted and repetitive interests and behaviors)이다. 교내 식당에서 여교사와 함께 식사하던 코치는 식판을 들고 오는 초원을 보고 손을 흔들며 옆자리를 가리키지만 초원은 본체만체 건너편 식탁의 자리에 앉는다. 또 얼룩말 무늬만 눈에 들어오는 초원은 얼룩말 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고 다가가 치마를 쓰다듬다가 옆에 있던 여자의 애인에게 두들겨 맞는다. 이처럼 자폐아는 늘 가던 길을 고집하고 특정한 의자에만 앉으려고 하며 특정한 대상에 관심이 쏠려 있는 등 행동패턴이 고정되어 있다.

    간혹 특정한 일에서는 정상인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idiot savants)도 매우 드물게 있지만 자폐증 환자의 3분의 2는 정신지체 수준의 지능을 나타내며, 나머지 3분의 1도 대개 평균 이하의 지능을 나타낸다.

    4. 자폐증의 원인(Etiology of Autism)

    자폐아 초원의 마라톤 완주를 통한 인간승리와 깨어졌던 인간관계의 회복을 젖은 눈으로 지켜보던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화면에 자막으로 소개되는 자폐증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아동 1만 명당 2~12명에게 나타나는 매우 흔한 질병인 자폐증은 이 첨단과학 시대에 아직도 그 원인조차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천적인 유전자 이상, 출생 전후의 뇌손상 또는 감염, 뇌의 구조적 이상 또는 생화학적 이상 등이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어느 것도 자폐증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환자마다 소견이 다르고 치료의 효과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폐증의 실체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자폐증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이다.

    먼저 의사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이나 부모의 학대, 무관심 등에 의해 자폐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폐증이 후천적인 질병이 아님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자폐아의 가계를 조사함으로써 자폐증은 유전적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자폐증에는 여러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기형아 출산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입덧 완화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에 노출되어 기형이 된 사람을 추적한 1994년의 한 연구 결과 이들 가운데 약 5%가 자폐증을 보여 평균값의 30배에 달했는데 이들은 임신 후 20일에서 24일 사이에 약물에 노출돼 자폐증이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Developmental Medicine and Child Neurology 36: 351-356, 1994).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낀 미국 로체스터대 산부인과 패트리시아 로디어(Patricia Rodier) 교수는 자폐증 환자의 뇌간(brain stem)을 자세히 살펴본 후 “모두는 아닐지라도 자폐증의 많은 경우는 임신 초기에 시작되는데 자폐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즉 얼굴 표정이 부족하고 접촉이나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잠을 잘 못자는 증상도 뇌간의 이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뇌간의 이상은 언어능력처럼 고차원적인 기능을 관장하는 다른 뇌 영역이 발달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그 결과 자폐아에서 보이는 여러 행동장애가 유발됐을 것”이라고 하였다(The Early Origins of Autism Scientific American, February 2000 p. 56-63).

    5. 자폐증의 치료(Management of Autism)

    자폐증을 연구하고 있는 의학자들은 현재까지 HOXA1, WTN2, ENGRAILED2 등 10여 개의 유전자가 자폐증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규명하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무튼 임신 초기 신경계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이상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면 탈리도마이드처럼 이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을 피해서 자폐증의 발생을 막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직까지는 자폐증의 원인을 미리 제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미 자폐아로 드러난 경우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모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흉터가 심한 초원의 손등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있다. “마라톤을 하기 전에 초원이는 자기 손등을 물어뜯었어요. 그런데 달리기를 하고 난 뒤론 그런 증상이 없어졌죠.” ‘엄마가 시켜서 뛰는 거지 초원이가 정말 좋아서 마라톤을 하는 거냐’는 코치의 빈정거림에 대한 엄마의 이 대답에서 자폐증 치료에 대한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늘리고 관심을 가질 대상을 만들어 활동을 하게 하는 등 행동치료를 하면 증상이 많이 나아질 수 있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태도도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초원은 코치와 함께 달린 뒤 물을 마실 때도 옆에서 헐떡대는 코치는 아랑곳 않고 혼자 병을 비웠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한강변을 달린 뒤 초원은 자신이 마시던 물병을 코치에게 건네며 남을 배려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자폐증 환자의 뇌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약물치료나 행동치료로 증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이 혼자 세상을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린 시절 적절한 행동치료는 커서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며 또한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통해 증상들이 개선될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6. 장애(Disability)

    자폐증과 같은 장애는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애아의 어머니나 때로는 아버지, 또는 두 부모의 헌신적 노력이 다른 가족의 큰 희생과 고통을 초래하기도 한다. ‘말아톤’에서도 초원의 아빠가 동생 중원에게 ‘아빠와 따로 살면 어떨까’를 물어본다. 어쩔 수 없이 강요된 다른 가족의 희생과 어머니로부터의 상대적 방임이 견디기 힘들어 별거나 이혼을 고려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200시간이 아니라 20년을 벌 받으며 사는 기분을 알아요?”라며 초원의 엄마가 마라톤 코치에게 울분을 터뜨리며 내뱉는 말에서도 장애인은 온 집안의 고통이 되고 자주 가족붕괴의 위기까지도 제공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헤아리게 된다.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요일4:8,16)께서는 왜 이처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장애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일까?

    이것은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박미경(46)씨도 배형진 군이 4살 무렵 자폐증(2급 정신장애) 진단을 받고 난 후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아이를 낳았나?”라고 자문했던 물음이며 또한 이미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께 여쭈었던, 인류의 원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요9:1-3).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이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요9:1,2, 이하 흠정역)

    7. 하나님의 일들(Works of God)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장애인을 만드셨다고 대답하신다(요1:1-3; 출4:11; 시139:13,15,16; 요9:3).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귀먹은 자나 보는 자나 눈먼 자를 만들었느냐? 나 주가 아니냐?”(출4:11)

    “이는 주께서 내 콩팥을 소유하시며 내 모태에서 나를 덮으셨음이니이다. … 내가 은밀한 중에 만들어지고 땅의 가장 낮은 부분에서 묘하게 꾸밈을 받았을 때에 나의 실체가 주께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 나의 실체가 아직 불완전할 때에도 주의 눈이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되는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사오니 곧 그 지체들 중에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니이다.”(시139:13,15,16).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 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요9:3)

    그렇다. 장애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나님의 일들’(욥37:14; 시66:5; 요6:27,28; 행2:11)을 나타내고자 만드신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만드신 장애인을 통한 ‘하나님의 일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8. 구령(救靈, Soul Winning)

    그렇다. 하나님의 일은 첫째로 영혼(soul)을 구원하는 일이다(요6:28,29; 9:4-7,25,35-38; 고전9:1).

    “그분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그러므로 그가 가서 씻고 보게 되어 왔더라. … 그가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그분께 경배하니라.”(요9:6-7,38)

    예수님께서 창조의 방법론(창1:2)을 다시 사용하셔서 눈먼 자의 눈을 고치신 것(요9:4-7)은 궁극적으로 그 육체적 장애인이 창조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그 혼(soul)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둘째로 장애인은 들러리가 아닌 복음의 주빈(主賓, the guest of honor)임을 선포하여 우리들의 영적 장애를 깨닫게 하는 일이다(겔12:2; 눅14:1-24).

    “사람의 아들아, 네가 반역하는 집의 한가운데 거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이 반역하는 집이기 때문이니라.”(겔12:2)

    “네가 잔치를 베풀거든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부르라. … 빨리 도시의 거리와 골목길로 나가서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을 여기로 데려오라, 하니라.”(눅14:13,21)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초청하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 없고 단지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자 잔치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 곧 초청 받고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지 못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주빈으로 부르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성격에 꼭 맞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 우리의 비극은 신체의 장애보다 영혼의 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데 있는 것이다.

    9. 하나님의 도구(Tools of God)

    셋째로 능력이 중시되는 경쟁사회에서 지혜로운 자들과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자들을 쓸모없게 하는 일이다(고전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것은 어떤 육체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상대가치의 세계관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 채 욕망의 노예요 경쟁의 투사가 되어 살아가는 영적 장애인들에게 육신적 장애는 분명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이다.

    넷째로 믿음의 훈련을 시키는 일이다(시119:71; 잠3:11,12; 애3:32,33)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는 그분께서 고의로 사람들의 자녀들을 괴롭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애3:33)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시키신다. 사람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장애와 같은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곧 한계상황을 두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다섯째로 장애인이 나의 이웃임을 알려주는 일이다(눅10:30-37).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묻기보다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즉 우리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구원받은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기 때문이라.”(약2:26)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심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곧 고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약1:27). 장애인도 고아와 과부처럼 도움을 줘야 할 우리의 이웃임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10. 복(福, Blessing)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시기 위해 장애를 사용하신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장애는 오히려 복(福)이 된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배경에는 인간의 힘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라의 장애(disability)가 있었다(창12:1-3, 18:9-15). 이 장애(infertility)는 성경에 언급된 최초의 장애인데 아브라함은 이를 고쳐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ability)로 이삭이 출생(fertility)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이 가능하게 되었다(창21:1-5, 22:1-19; 마1:1; 롬4:16-25; 히11:11).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다 넓적다리의 뼈가 위골이 되어 지체장애인이 되었는데 바로 이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새로 받게 되었으며 또한 얼굴을 마주 대하여 하나님을 보았으나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복을 받게 되었다(창32:13-32).

    이밖에 이방신 다곤을 예배하던 블레셋 사람 삼천 명 이상을 한 번에 죽였던 이스라엘의 사사인 시각장애인 삼손(삿16:21-31), 여로보암 시대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대언자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아히야(왕상14:4), 탈모증(alopecia)의 장애를 극복하고 멋있게 쓰임 받았던 엘리사(왕하2:23) 등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나 또 ‘육체의 가시’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었지만 평생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했던 사도 바울(고후12:7)도 장애가 있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복을 얻을 수 있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소유하였지만 정작 본인의 ‘육체의 가시’는 고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장애가 복인 것을 깨닫고 그의 장애를 크게 기뻐하고 자랑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고후12:7-10)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라.”(고후12:9,10)  

    11. 천국(Heaven)

    ‘말아톤’의 막이 내리고 뭉클한 감동에 젖어 자리를 떠나려던 관객들은 화면에 자막으로 소개되는 ‘말아톤’의 실제 모델의 놀라운 기록들(마라톤에서 풀코스를 2시간57분7초에 뛰어 ‘서브쓰리’ 달성, 철인삼종경기에서 15시간06분32초 만에 최연소기록으로 완주 등)을 보면서 더욱 기쁨을 얻게 되며 또한 그를 더욱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혹시 구령의 열정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게 소원이에요.”라며 잡지사 기자의 질문에 엄마가 대답하였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초원과 같은 5살 지능의 정신지체장애의 경우나 또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해도 이해하지 못할 어린이의 경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의 영혼은 천국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여 안타까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이런 어린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니라.”(막10:14)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즉 어린이는 그 상태로서는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헬라어 상으로 볼 때 성경에서 어린아이인 ‘파이디온’이 자라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때를 ‘파이다리온’(소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파이디온’이 ‘파이다리온’으로 변하는 때는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질 수 있을 때’이다.  

    신명기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음으로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지었을 때,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어른들은 모두 요르단 강 저 편에서 죽어 그 약속의 땅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선과 악을 알지 못하던 아이들은 그것을 소유할 수 있었다(신1:34-39).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책임질 수 있는 나이를 알고 계셨고 또한 어린아이들은 그 죄악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보신 것이다.

    그렇다. 심지어 주님이신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 계셨을 때는 선과 악의 차이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성숙한 상태로 자라나셔야만 했다(사7:14-16). 물론 그분께서 선을 택하시고 악을 거부하실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선 그렇게 될 때까지 자라나셔야만 했다. 예수님께서 전혀 죄를 지은 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만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까지 자라나셨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까지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 것이다.

    12. 에필로그(Epilogue)

    영화 ‘말아톤’의 제작을 후원한 스포츠화 브랜드 뉴발란스가 영화의 흥행성공으로 인해 매출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또한 이 ‘말아톤’을 보고나서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도 무척 많아졌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초원이와 그를 좋아하는 우리 이웃들처럼 자기 몸 관리를 위해 열심히 달리기를 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영적인 마라토너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노라.”(빌3:13,14)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고전9:24)

    * 저자의 단행본 ‘성경으로 세상보기’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