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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우리는 진정 복음을 알고 있는가?조회수 : 976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3시 31분 24초
  • 우리는 진정 복음을 알고 있는가?

    (Do We Really Know the Gospel?)

    by

    Manfred Kober, Th.D.

    구원론을 가르치면서 매년 나는 학생들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지금 죽음의 문턱에 놓여 있는 불신자를 방문하기 위해서 병원에 있다.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스물 다섯 단어를 말할 시간 밖에 없다.  스물 다섯 번째 단어가 끝나면 그 환자는 죽게 된다. 여러분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을 설명할 것인가?"

    과연 학생들은 복음을 그토록 간결하게 표현함으로써 숨이 끊어져가는 그 사람이 올바로 반응만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학생들은 복음을 온전히 이해해서 그렇게 짧은 몇 마디 안에 구원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까?  이제 우리도 학생들이 풀어야 했던 그 퀴즈로 돌아가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  그렇다면 이제 다음의 세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첫째,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 둘째,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인가?  셋째, 우리가 어떻게 그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

    Ⅰ 복음이 아닌 것들

    1. 세계교회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나이로비(Nairobi)에서의 제5차 회의에서 선언하기를. 복음은 "언제나…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책임을 포함하며, 인간의 전체성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고발할 의무를 포함한다."고 했다. - 「Christianity Today」 1972년 1월 2일, p.12.  과연 이것이 복음인가?

    수년 전 복음전도자인 레이톤 포드(Leighton Ford)가 데모인(Des Moines)에서 전도집회를 가졌다.  그는 청중들에게 "두 발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라고 소개되었다.  포드가 전하는 복음은 WCC의 입장과 흡사한 것으로, 복음은 개인의 구원 뿐 아니라 사회의 구원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복음인가?

    2.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의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는 역설하기를, "그리스도의 복음은 수치에서 영광으로, 자기 회의와 자기 정죄로부터 자기 확신과 자기 긍정으로의 구원으로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슐러는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기존중의 신학으로 선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자기존중: 새로운 종교개혁」(Self-Esteem: The New Reformation) p.161,47.  과연 이것이 복음인가?

    3.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자신의 논쟁적인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Jesus)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갈보리로의 초청은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대로 인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 하에서의 제자도(discipleship)로의 초청이다…"(p.21.)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은 제자도로의 부르심이었다…"(p.21.)  "구원얻는 믿음의 본질은… 자아의 철저한 포기와 절대적인 복종이다…"(p.153.)   과연 이것이 복음인가?

    Ⅱ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Gospel)으로 번역된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은 '좋은 소식'(good news)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뒤따른다. "무엇에 관한 좋은 소식인가?"  신약성경은 복음이라는 용어를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1. 복음은 사람들에 관한 좋은 소식일 수 있다.  살전 3:6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의 흔들림 없는 믿음에 대한 좋은 소식, 글자 그대로 가스펠(gospel)을 가져왔다고 적고 있다.  

    2. 신약성경은 더 나아가서 왕국의 복음(the Gospel of the kingdom)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왕국의 복음'으로 사용되었다.(마3:1-2, 4:17, 10:5-7)  이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다.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이스라엘 민족은 그 왕국에 대한 그분의 참된 제안을 공적으로 거절해 버렸다.  하지만 왕국의 복음은 천년왕국, 곧 다윗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대환란 기간 동안에 다시 한 번 선포될 것이다.(마24:14)

    3. '유앙겔리온'이라는 용어의 세 번째 용례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이다.(행20:24)  이 복음은 서신서들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고전15:3-4에서 바울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 역시 전해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시고"  바울이 선포했고 모든 신자들이 선포해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어느 저자가 간결하게 표현했듯이 "좋은 소식이란 그리스도께서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이다. - 「코코리스의 복음전도: 성경적 접근」( Cocoris, "Evangelism: A Biblical Approach") p.60.

    라이리(Ryrie)는 고전15:3-4의 복음의 요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유익한 분석을 했다.  "복음(the Gospel)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그분께서 죽으셨고 그분께서 살아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 매장되신 사실은 그분의 죽음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그분께서는 실제로 죽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들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증인들의 목록은 그분의 부활의 사실성을 입증한다." - 「그토록 큰 구원」(So Great Salvation) p.39.

    그렇다면 복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분께서 다시 일어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Gospel of the grace of God)이며 그 복음에서 그분께서는 죄인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제안하시는 것이다. 죄인은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행16:31) 그러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과 그에 속한 모든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엡1:3)

    Ⅲ 어떻게 복음을 소개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핵심은 복음이다.  죄인의 구원에 있어서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WCC나 레잉톤 포드(Leighton Ford)가 그렇게 하듯이 복음을 '죄인을 대속하는 구원의 복음'과 '사회를 개혁하는 사회복음'으로 나눠서는 안된다.  우리는 슐러(Schuller)가 그렇게 하듯이 복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하는 인간의 죄에 대한 개념을 제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맥아더(MacArthur)가 그렇게 하듯이 구원(salvation)과 성화(sanctification)를 혼돈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 of Christ)에 복종하는 것을 구원을 위한 전제조건(sine quanon of saving faith, p.135)으로 만들어서도 안된다.

    이제 내가 학생들에게 제시했던 신학적 물음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 보자.(이 질문은 라이리 박사(Dr. Ryrie)의 신학과목에서 시작된 것이다.)  똑똑한 몇몇 학생들은 보통 제한된 스물 다섯 단어에 들어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자신의 말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답을 제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당신의 구세주로 모셔들이면 그분께서 당신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은 좋은 대답이긴 하지만 썩 훌륭한 대답은 아니다. 이 대답에서 부족한 것은 명확한 복음제시에서 필요한 요소들 중 첫 번째 요소이다.  

    완전하면서도 간결한 복음제시의 세 가지 요소들은 첫째, 인간의 문제(the human problem), 둘째, 하나님의 예비(the divine provision), 셋째, 개인적인 취득(the personal procurement)이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자각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예비하신 것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 나쁜 소식(the bad news)은 사람은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고 자신의 공로로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the good news)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로 인한 형벌을 짊어진 죄인들의 대속물이시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지 못한 개개인은 구원에 있어서의 개인의 취득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음을 아는 것은 좋은 것이다.(히2:9)  하지만 구세주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구원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죄인은 개인적으로 이 구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각 사람은 믿거나 신뢰해야 한다.  그는 모두에게 값없이 제시된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음 제시에 있어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에 비추어서 학생들의 답안지를 분석한 후에 나는 어떻게 '인간의 문제'와 '하나님의 예비'와 '개인적인 취득'을 모두 포함해서 스물 다섯 단어 이하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친구여, 당신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오직 그분만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을 영원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지금 그분을 신뢰하기 바랍니다."(Friend: You have sinned. But Christ died for sinners and rose again.  Trust Him alone and He will save you eternally. Do it now!"

    간략하지만 이것은 정확하고 효과적인 복음제시이다. 이것은 어떤 복음제시도 마땅히 포함해야 할 내용(information)과 초청(invitation)을 포함하고 있다.  죄인은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누가 그를 구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진정 복음을 알고 있는가?  명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서 신학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로버트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은 복음 증거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자격요건에 대해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믿고 복음 사역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바는 그들이 세련되고 잘 교육받은 신사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천박하거나 무식한 촌뜨기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들이 신학 교리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리에 무지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재기 넘치는 사람이거나 웅변에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예 소질이 없거나 지루하고 따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분께서 찾는 사람은 단지 그리스도의 권능을 담을 수 있는 적당한 도구, 곧 그분께서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자신의 보화를 채워 넣을 수 있는 빈 질그릇이다." - 「복음과 복음사역」(The Gosple and Its Ministry), p.6-7.

    우리의 책임은 모든 피조물에게 구세주를 선포하고 죄용서와 평화를 외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이 일을 할 수 있고, 또 이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일을 날마다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한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신실할 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부어주실 것과 전능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번영케 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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