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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다른 복음조회수 : 900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3시 36분 9초
  • 주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아닌 것들

     

    오늘날의 교회는 다른 것에 분주하다!

    "또 말씀하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

    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위의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복음을 선포하라"입니다. 여기서 "선포하다"는 것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말이 딤후4:2에도 나옵니다 - "말씀을 선포하라." 고대에는 중요한 전갈을 포고자(herald)가 전달했습니다. 왕의 직속 전령(메신저)은 왕의 메시지를 소리 높이 외쳤고 마을의 백성들은 함께 모여 최근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포자는 자신의 말이나 견해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받은 그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전갈의 내용을 해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갈의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든 들진 않던 선포자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는 무슨 토론이나 논쟁 없이 왕의 전갈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necessity is laid upon me; yea, woe is unto me, if I preach not the gospel.) 따라서 저 역시도 기쁜 소식을 담고 있는 왕의 전갈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이렇게 주님께서 선포하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에만 열성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신에 우리 자신의 프로그램이 자리잡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우리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이 아닌 것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1 사회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으며 병든 자를 돌보아 주어라."

    물론 우리는 세상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사회 복음이 주님이 주신 명령은 아닌 것입니다. 각 성도들이 테레사 수녀같이 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는 부르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육체의 질병을 고친다해도 불치의 영혼의 병은 어떡합니까?(렘17:9) 잠시동안 가난을 면한다 해도(현 세상) 영원한 가난뱅이(영원)는 어떻게 손쓸 수 있습니까? 우리가 헐벗은 자들을 가장 좋은 옷으로 입힌다 해도 죽을 때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좋은 집에 살아도 하늘에 영원한 집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도움이 이생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도움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구세군은 영혼 구령보다는 사회복음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저(해리 아이언사이드)는 구세군의 초대 대장인 윌리엄 부스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그는 "암울한 영국"을 향한 자신의 계획에서 그 첫째 목적이 단순한 사회 제도상의 개선이 아니라 영혼들이 구원받도록 회개로 이끄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눈은 빛났고 풍채는 당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누더기를 벗겨내고 근사한 옷을 입히십시오. 악취가 코를 찌르는 도시의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골의 깨끗하고 작은 집을 제공하십시오. 스스로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그 뒤에 그가 구원받지 못한 채 죄 가운데 죽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는 결국에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저는 결코 누구를 위해서도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해리 아이언 사이드의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Except ye repent)"이라는 글에서 인용: p. 181-182)  하이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회악이 척결되고 정의가 구현된다고 할지라도 사람에게 여전히 한 가지 필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곧 그리스도이다!"(J. W. Hyde)

    2. 정치 및 경제 복음(복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현재 우리에게 닥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적인 기준을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인 분야에 늘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까?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주로 무엇을 추진했습니까? 그들의 활동은 주로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나와있습니까? 이교도들이 신전에서 매춘행위를 하곤 했으므로 그들이 성전에서의 매춘 금지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까? 보수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로마 원로원으로 선출되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까? 로마의 비인간적인 검투 시합에 반대하여 가두시위를 벌였습니까? 과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이혼이나 노예학대, 낙태, 유아살해(사실 헤롯은 여기서 한 가지 이상의 죄를 진 사람임) 등의 사회악에 대한 반대 운동에 나섰을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초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런 것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명령을 행하기에도 바빴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널리 흩어진 자들이 각 처에서 말씀을 선포하니라."(Therefore they that were scattered abroad went every where preaching the word)(행 8:4).

    그들이 과연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다고 상상하십니까? "현재 부도덕한 이 사회 모든 부조리를 반대하고 척결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소?" 사실 항의하는 사람들은 단지 항의하는 사람에 지날 뿐이며 그 결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저는 만왕의 왕께서 주신 메시지를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급한 현안이 있다 할지라도 현재 제겐 왕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다음은 데이브 헌트의 글입니다.

    "경건치 못한 이 사회에 기독교 행동 양식을 심고자하는 놀라운 목적의 소위 "행동파"(정치, 사회활동)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Operation Rescue" 즉 "구조 협회"가 그 한 예인데, 그 설립자인 랜덜 테리는 자기들의 목적이 사회 여론을 부추겨 정부에게 낙태법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기특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성경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그런 정치적, 사회적 "행동주의"를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게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시민법을 어긴 예는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이집트에 살던 히브리 산파들, 바빌론의 다니엘과 세 친구들 등).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로 하여금 억지로 성경의 원칙을 따르도록 한 예는 없습니다.

    "크리스천 행동주의"의 뜻은 가상하지만 큰 규모의 집회를 구상하고 동성연애자와 낙태주의자, 도색잡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보다 더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사회에 "그리스도의 원리"를 뿌리내리게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억지로 성도처럼 살도록 강요하기보다는, 그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살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죄를 배격하고 회개를 앞세우며 권능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동성애와 아동 학대, 포르노그라피, 낙태 등으로부터 돌이켜 회개하라고 외쳐야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한데서 돌이켜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관심"의 부재로 인한 비난보다 이단을 허용하고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데 대한 비난에 더욱 더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거짓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눈감아 주고 오히려 존경하는 교회가 세상의 죄를 반대하고 배격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우리는 항거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회개로 초대하는 말씀의 선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심판을 경고했던 에녹이나(유14-15), 의를 선포하며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했던 노아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벧후2:5)

    "크리스쳔 행동주의"는 결코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앞에서 걸어야 할 길 즉 바른 길을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쳔 행동주의"는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게 만들며 타협과 불경건한 연합을 부추기며 그로 인해 복음 전파에 드렸으면 더욱 좋았을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데이브 헌트)

    믿는 이가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행하면 놀랍게도 사회 전반에 그 영향이 있게 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불과 몇 세대 동안 그들은 성경의 교리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성전에는 이방인들의 신들이 사라졌으며 우상숭배는 시들해져 마치 좌초된 배처럼 되었다. 그들은 세상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보다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왔다. 여자의 인격과 신분이 바로 섰다. 순결, 예의 범절에 대한 기준도 바뀌었다. 많은 격투 시합 같은 많은 잔인한 관행들이 폐지되었다. 이것이 모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이었다 "(J. C. 라일)

    3. 세상 변화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켜라."

    몇 해전 CCC 설립자인 빌 브라잇은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와서 세상을 변화시키게 우리를 도우라." 그 서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 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CCC(Campus Crusade for Christ)의 역사와 비전의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대에 지상 명령을 성취하는데 헌신한 20세기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거기 있습니다." 동일한 책에서 빌 브라잇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체험하는 500만 명의 제자들이 능히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인 기부, 종신 재산, 유언장, 그리고 여타 재정적인 투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197, 193 페이지).

    500만 명의 제자들이라!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불과 11명에 불과했는데 그들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이룬 일은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후천년 재건주의자로 알려진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회에 구약의 법 체제(모세의 율법과 이 형벌을 다시 제정한다는 것)를 적용시킨다면 세상이 변화되고 왕국이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각 개인도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 사회가 어찌 그같은 기준에 도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100만년이 지난다해도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고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체제는 병들어 치유불능 상태에 있고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각 개인("모든 피조물에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고, 사람이 복음의 메시지에 반응할 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됩니다. 세상은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은 지옥과 멸망으로 들어가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이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생명줄을 던지는 것"이며 복음을 전함으로 "멸망하는 자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사회 변화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말이 많이 있는데 사실 그런 슬로건을 뒷받침 해줄 만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예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데이브 헌트)

    4. 교회 지상주의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 세상을 가져오는 건 결코 교회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는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And He said unto them,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막16:15).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 말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이끌어 복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서... 모든 피조물을 교회로 초청하라" 반대로 우리가 "온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궁전 뜰로 초청하여 왕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곧장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달려가 거기서 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와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복음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온다는 것은 철학적인 발상입니다. 그들은 지역 교회를 하나의 선교 기지로 보고 그곳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버스로 데리고 오건 꾀어서 데리고 오건 어쨌든 복음을 듣게 합니다.

    과연 지역 교회의 첫째 목적이 구령의 기지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혼을 세우는 곳이 되는 것일까요? 세상 가운데서는 우리가 복음전도를 강조해야겠지만, 교회에서는 가르침을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그들에게 찾아가지만 교회에서는 그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바른 교리로 가르침으로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배 시간에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의 길로 초청하는 것이나 그들을 성도의 회중이 되도록 이끄는 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것 이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신자들의 지역 모임에 참석하여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선포되고 성경이 신약 성경의 패턴을 따라 가르쳐진다면 그 안에서 분명히 반복되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 칭의, 하나님의 큰 구원 등일 것입니다. 말씀이 충실히 선포되는데 어찌 거기에 복음(구원의 메시지)이 빠지겠습니까?

    문제는 교회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사역의 우선 순위를 둘 때 늘 발생합니다. 양떼들을 먹이고 성도들을 바르게 양육하는 대신 간단한 구원의 메시지나 요한복음 3:16 말씀만을 제시합니다. 물론 요한복음 3:16은 복음의 메시지를 놀랍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한복음 3:16 이상입니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건 성경 전체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학교에서 입문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이단들은 선교 센터를 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양육이나 교육 센터를 세워 배우는 각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거짓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항상 답할 것을 준비하게 합니다. 마귀는 어떤 체계가 효과적인가를 압니다. 다만 그들의 문제는 가르침의 내용이 진리가 아닌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성도들의 양육 센터로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지역 모임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 대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게 되나니, 그리하여 자기 마음의 비밀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서 참으로 너희 안에 계신다 고하리라"(고전14:24-25) 참으로 우리 모두의 모임이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생명을 드러내는 그런 귀중한 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참으로 어렵고 또 추수할 일꾼이 부족한 이 시대 우리가 충실히 왕께서 맡기신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소서. "Now then we are ambassadors for Christ, as though God did beseech you by us: we pray you in Christ's stead, be ye reconciled to God"(고후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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