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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주일과 안식일조회수 : 1559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3시 48분 3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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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과 안식일

    (Sunday or Sabbath)

    신실한 안식교인들(제 칠일 안식일 재림파)에게 권하는 성경적 답변

    by  John R. Rice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매우 혼돈하고 있다. 다른 교리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어려움은 문제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인간의 지도력과 교회의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안식교는 안식일이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이며 모든 크리스천들은 휴식과 예배의 날로 제 칠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의하여 결정되며 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의 표'는 휴식과 예배의 날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와는 다른 견해를 가진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안식일은 제 칠일에서 첫 번째 날로 바뀌었으며 이제 모든 크리스천들은 휴식과 예배의 날로 일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논박한다. 그들은 주일을 '기독교 안식일'로, 주일학교를 '안식일학교'로 부르며, 안식일, 즉 주간의 제 칠일인 토요일에 대해 구약에 있는 모든 명령을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에 적용시켜야만 한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곧 이러한 양쪽의 견해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때 성경은 이러한 안식일 문제에 관하여 우리에게 아주 명확한 가르침을 줄 것이다. 아울러서 이러한 문제와 함께 다른 중요한 성경의 교리들과 크리스천의 실행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은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성경은 일요일을 '기독교 안식일' 이라든가 다른 어떤 종류의 안식일로 부르지 않는다.

    1. 구약의 안식일은 제 칠일이다.

    출애굽기 20:10은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에 관하여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언어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단어가 일곱 번째를 의미한다. 휴식의 안식일은 노동을 위한 육 일 뒤에 왔으며, 주간의 마지막 날로 간주되었다. 즉,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인 것이다.

    2. 안식일은 구약의 계명이지 신약의 계명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성경연구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 왔다. 안식일은 모세율법의 한 부분이며,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이외의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크리스천 성도들에게 할례에 관한 계명을 지키도록 권고하거나 혹은 돼지고기나 메기 등을 금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많은 설교자들이 진지하게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그러한 설교가 의미하는 것은 "주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며, 주일을 안식일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돼지고기나 메기를 삼가고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성경적 증거들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신약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십계명은 안식일에 관한 조항만을 제외하고는 신약에서 반복적으로(어떤 것은 매우 자주) 되풀이된다. 신약에 언급된 많은 죄들 중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코 한 번도 죄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시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한 번도 대중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요한복음 5:18에서 엄격한 안식일 신봉자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이로 인하여 더욱더 그분을 죽이고자 하니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하심이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신이 유대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증오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낱알을 먹기 위하여 이삭을 모았을 때(마 12:1∼8) 유대인들의 비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꾸짖으며 그들에게 성경을 주목하도록 하였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을 원치 아니하노니…"(호 6:6).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 성경을 이해했었다면 무죄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제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던 의식적 율법의 한 부분임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도들 역시 신약시대 교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예루살렘 교회 회의에서 이방 개종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쓴 편지에서 안식일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도 역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들에 보내는 서신들에서 안식일을 크리스천들이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단 한 번도 암시하지 않았다! 안식일은 구약의 것이지 신약의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다음의 사실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3. 안식일은 모세율법이며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을 뿐 아니라 구약에도 시내 산 이전에는 그러한 명령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를 끝마치시고 제 칠일에 쉬셨으며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나 그 이후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그 날에 관한 명령은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이나 에녹, 노아나 아브라함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누구도 시내 산 이전에 안식일을 지켰다든지 그것에 대하여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창세기 2:1∼3은 모세가 시내 산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이들 다섯 권의 성경을 쓸 때까지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성경에서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 사용된 시기는 출애굽기 16:23에서였고. 그 때 이후에 비로소 사람들은 그 단어를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이미 시간의 단위로 한 주간을 가졌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더 확실해진다.(창8:10∼12: 29:27)  출애굽기 16:23∼36에 나타난 사건을 보면 안식일의 개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상하고도 새로운 가르침이었다는 것과, 그들이 이전에는 안식일을 결코 지키지 않았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느헤미야 9:13∼14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바른 법도와 참된 율법과 선한 법규와 명령들을 그들에게 주시고 또 주의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며 주의 종 모세의 손으로 훈계와 법규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애굽에서의 핍박과 흥해를 건넜던 사건을 다시 언급한 후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그의 거룩한 안식을 백성에게 "알려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은 모세율법의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결혼, 십일조 그리고 할례처럼 모세 율법에 속한 명령이었다. 그것은 시내 산에서 '알려진' 것이었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 이전에는 안식일의 개념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안식일이 시내 산에서 처음으로 주어졌고 알려졌다는 이와 같은 가르침은 에스겔 20:10∼12에 다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여 광야로 데리고 가서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될 내 법규를 그들에게 주며 내 법도를 보여주었고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었노라."  주님께서 친히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을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출애굽기 16:23∼36에서 안식일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도 안식일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4. 안식일은 특별한 표적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했다. 시내 산에서 주님께서는 이 명령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맺어진 하나의 특별한 언약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임을 모세에게 계시하셨다.  출애굽기 31:12∼13, 16∼17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킬지니 대대로 안식일을 지켜 영속하는 언약으로 삼을 것이니라.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음이니라, 하라."

    에스겔 20:12은 안식일의 의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었다는 설명을 되풀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분명하고 반복적인 가르침을 볼 때 안식일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특별한 표적, 즉 언약으로서 모세의 율법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으며, 어떤 율법시대에서도 이방인들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식일을 이야기할 때에 그것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구약의 의식적 율법으로 제 칠일 즉 토요일을 말하는 것이다.

    5.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경고했다.

    이제 다시 신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 대신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골로새서 2:14을 보면 손으로 쓴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규례들이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17절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존재하는 그림자였으며, 이제 그가 오셨고 그림자는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제 칠일 안식일 재림주의자나 유대인이나 누구도 안식일로 인하여 어떠한 크리스천에 대해 판결을 내릴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부정한 고기들에 대한 명령 및 다른 의식적 율법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이 유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 4:8∼11에서 바울은 명확하게 그와 같은 사실을 언급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주의에 빠져 있었다. 바울이 이 편지에서 그들에게 유대주의의 옛 속박인 '약하고 천한 초등원리' 즉 구약의 의식율법에 '종노릇하는 것'을 깨뜨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4:10∼11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하노라."  여기에서 언급된 '날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구약의 의식율법의 한 부분인 안식일이었다. 바울은 신약의 크리스천들이 구약의 안식일이나 의식적 율법의 또 다른 날과 달과 절기와 해에 구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6. 주일은 '기독교 안식일'이 아니다.

    당신은 이제 "주일이 기독교 안식일이며, 안식일이 주간의 첫 번째 날로 바뀌어졌다"고 말하는 설교자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주마다 특정한 하나의 날로서 규칙적인 안식일을 말하는 'Sabbath'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항상 주간의 제 칠일인 토요일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토요일을 지키지 않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사용하는 설교자들은 성경에 의하여 그 주장을 증명하지 못할 때 매우 큰 혼란에 빠진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은 제 칠일 안식일 재림주의자의 모세율법에 대한 가르침에 의해 자주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7. 카톨릭은 첫째 날 예배를 시작하지 않았다.

    안식교는 카톨릭이 안식일을 제 칠일에서 주간의 첫날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우스운 점은 어떤 카톨릭 저술가들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는 점이다! 그러나 안식교 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카톨릭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베드로가 첫 교황이었고 신약시대 사도들에 의해 안식일이 바뀌었으므로 카톨릭 교회에 의해 안식일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가 주일을 휴식의 날로 시행하는 시민법을 지지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카톨릭 교황들과 주권자들은 주일의 의식을 마치 구약의 안식일처럼 형식적이고 의식적으로 만듦으로써 시민법에 의해서 그것을 시행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예배의 날로 첫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사도행전 20:7은 신약시대에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 주(週)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  신약의 제자들이 그 주의 첫날에 만났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이들은 아마도 주의 만찬을 위해서 이 날에 정기적으로 모였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보면 주간의 첫 날이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으며 주일이 종교적인 날로서 로마 카톨릭의 창안품이나 안식교의 주장처럼 '짐승의 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간의 첫 날이 성경에서 '안식일'이라고 불린 적이 결코 없다는 점과, 따라서 우리 역시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8. 신약의 예배일로서의 주(週)의 첫 날

    신약에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만났으며 또한 그들에게 설교를 했다는 많은 기록들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이 군중들을 모을 수 있는 시간에,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똑같은 예이다. 설교자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제자들이 예배를 위해 모였을 때 안식일을 그 날로 사용했다는 기사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에 사도행전 20:7에 보면 제자들이 주간의 첫 날에 만났다는 것과, 문맥상 이 모임이 주의 만찬을 위해 규칙적인 시간에 행해졌던 규칙적인 예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주(週)의 첫날'이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종교적 중요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고린도 교인들은 주님의 일을 위하여 그들의 선물을 그 주의 첫 날에 모으도록 명령받았다.  어느 곳에서도 성경은 '주님의 날'을 안식일 즉 제 칠일이라고 가르치는 곳은 없다. 심지어 성경은 첫 날 이외의 다른 날을 예배의 날로 사용하였다는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휴식을 위한 특별한 한 날을 명령받은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은 안식일이 아닌 주(週)의 첫날을 예배의 날로 사용했다.

    9. 유대의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 아니다.

    구약의 안식일 즉 토요일은 오로지 신체적 휴식을 위한 날일 뿐 예배의 날은 아니었다. 우리가 다시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명령들을 읽어보면 안식일이 결코 예배의 날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  히브리어에서 'Sabbath'라는 단어는 '중지' 즉'휴식' 을 의미한다. 우리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기간 동안에 안식일에 회당에서 종교적 모임의 관습이 생겨났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회당이나 회당 예배 관한 명령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모세율법의 안식일은 전적으로 휴식의 날이었지 예배를 위한 날이나 혹은 교회 가는 날이 아니었다.

    우리는 인간과 짐승을 위해서 칠일 중에 하루를 쉬게 하는 원리는 좋은 원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로 크리스천들은 일주일의 하루를 휴식의 날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법을 여러 번에 걸쳐서 주창했었다.  그럴 때 선택된 날은 주로 일요일이었고, 크리스천들은 그 날을 예배를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어느 특정한 날에 노동을 삼가라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적이 없으며, 주간의 어떤 정해진 날에 예배를 위해서 모이라는 명령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크리스천을 위한 은혜의 문제이며 자발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10. 그러면 크리스천들은 주일(일요일)을 지켜야만 하는가?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되어있는 구약의 계명에 의해 속박되지 않으므로 토요일 대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우리는 주일(일요일)을 형식적 안식일, 즉 의식적 율법의 한 부분으로 지켜서는 안 된다.  다만 예배의 날로 자발적으로 그 날에 모일 수 있다.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 10:25).  우리는 예배를 위해 모일 것을 명령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만약 여러분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당신은 태양에게 바쳐진 날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요일은 태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요일이 로마신화에서 농업의 신인 Satur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날들이며 그 날들이 어떻게 이름지어졌든지 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한 날을 일요일이라 부르든 주(週)의 첫날이라 부르든, 또는 다른 한 날을 토요일이라 부르든 주(週)의 제 칠일이라 부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주(週)의 첫 날이 일요일이라고 불리기 전에 그 날 만났었고 유대인들은 토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전에 휴식의 날로서 토요일을 지켰었다.

    크리스천들은 가능한 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주일(일요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주일에 회사를 쉬게 하는 고용주들은 직공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대주의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우리의 동료들을 대접하는 크리스천들로서, 은혜를 근거로 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갈 5:13)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날에 관한 그들의 자유를 그릇된 것을 행할 수 있는 허가증으로 오용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크리스천들은 이날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날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신하는 날로 사용해야만 한다.

    11. 주(週) 첫날의 영적 의미

    성경에서 6은 인간의 숫자이며 7은 신적이며 완전의 숫자이다. 휴식의 안식일 다음에 이어지는 노동의 6일간은 율법 아래서 완전한 삶을 영위하려고 애쓰면서 제 칠일이 상징하는 휴식과 완전함과 구원을 획득하려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율법 아래서 실패했고 누구도 지금까지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행 15:10: 롬 3:20; 길3:11) 그러나 주(週)의 첫 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약의 크리스천은 이미 그가 어떠한 수고도 하기 전에 값없는 선물로서 구원을 소유하게 된 것이며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그의 남은 생애를 그가 사랑하는 구세주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히브리서 4:9∼10을 읽어 보라!

    마가복음 16:2, 9로부터 예수님께서 주(週)의 첫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명백히 나타난다. 요한복음 20장에서는 마리아와 다른 몇몇 사람들이 주(週)의 첫날 아직도 어두웠던 매우 이른 시간에 예수님의 무덤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그것은 주(週)의 첫 날에 해당하는 그 날 밤 어느 시각에 구세주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위대한 은혜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롬 4:25) 우리의 어떠한 수고와 율법의 행위도 없이 우리가 의롭게 여김을 받았으며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4: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같이 이미 자기 일들을 그쳤음이라."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안에서 십자가를 의지하는 크리스천은 은혜를 입은 것이다!  

    히브리서 4:9∼11을 보면 두 종류의 휴식 즉 '안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히브리서 4:9에 있는 휴식이란 단어는 헬라어에서의 안식(Sabbath)이란 단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유대인에게 잘 알려진 가르침이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가장 큰 축제일 중 하나인 유월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휴식의 개념을 나타내는데, 하나는 구원 당시에 이루어지는 휴식이며, 다른 하나는 부활 이후에 이루어지는 휴식이다. 유월절 만찬에 이어지는 무교절은 출애굽기 12:15∼16에서 주어진 대로 7일 동안 계속된다. 이 일주일은 구원받은 이후의 크리스천의 삶의 완벽한 순환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 회심은 그 축제 초기의 유월절 양에 의해 묘사된다. 고런도전서 5:6∼8을 보라.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를 나누는 것을 나타낸다.  그 친교 즉 평화는 이스라엘이 유월절 양과 함께 누룩 없는 빵을 먹을 때 하나님께 회심하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의 삶의 평화와 기쁨은 그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즉각적으로 시작된다. 무교절 첫 날은 일을 해서는 안 되는 휴식의 날이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의 일로부터 쉬게 되는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주말에 또 하나의 휴식의 날이 있었다. 인생 여정의 끝에 크리스천들은 완전한 휴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나니"(히4:9)라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서 유월절 만찬과 무교절을 지켰던 것처럼 안식일을 지켜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유월절 만찬이나 무교절이나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그림자들과 예표와 의식율법의 완성인 바로 그 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대 안식일(토요일)은 행위에 따라 얻어지는 휴식의 상이다. 율법 아래서 만약 누군가가 그의 모든 삶이 완벽하고 율법의 모든 명령들을 이행했다면 그는 천국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율법에 의해 구원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선한 일에 의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묘사하는 유대 안식일이 은혜의 시대에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율법의 행위 없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 없이 얻은 평화와 휴식을 상징하는 주(週)의 첫날에 예배를 드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대 안식일, 즉 토요일은 의식에 따른 율법이며 은혜의 시대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주(週)의 첫날이 모든 크리스천에게 적합한 것이다.

    12. 안식일과 주일(일요일)의 중대한 차이점들

    (1) 안식일은 오직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고, 주일은 은혜 아래 있는 신약의 크리스천들을 위한 것이다.

    (2) 안식일은 죽음의 형벌로 인해 강제로 시행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율법'이었지만,(민 15:32∼36) 주(週)의 첫날인 주일은 명령이나 형벌 없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켜지는 '은혜'에 속한 것이다.

    (3) 안식일은 신체적 휴식의 날이었으나,(출 20:10) 주일은 예배의 날이다.(행 20:7; 계 1:10)

    (4) 안식일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구원을 예표하나,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예표한다.

    13. 크리스천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우리의 안식교 형제들은 우리를 모세의 율법의 속박으로 끌어가려고 애써왔다. 안식교인들의 대부분은 구원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에 달려있다고 가르치고 또한 그렇게 믿는다. 그들은 구약의 안식일을 가르치는데서 그치지 않고, 종종 어떤 종류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들은 또한 십일조를 구원받는 방법으로, 또는 구원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가르친다.  사실 그들은 유대의 의식에 관한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그 의식율법은 분명히 완성되었고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골로새서2:14∼17과 디모데전서 4:3∼5을 통하여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고기를 먹지 말라는 어떤 명령은 크리스천들에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것이 거룩히 구별됨이니라." (딤전 4:4)

    할례에 관해서도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분명하게 명령받았다.  "무할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으냐? 할례를 받지 말라."(고전 7:18)  또한 안식일에 대해서도 그에 따른 명령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다른 의식 율법과 함께 말살되었다. 골로새서 2:16∼17에서 주님은 특별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만약 크리스천이 안식일에 관한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민수기 15:32∼36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처럼 토요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출애굽기 35:3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토요일에 집에서 불을 피우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의식율법의 무거운 짐이 우리에게 놓여 있지 않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거짓말과 도둑질과 간음과 살인 등의 도덕율법은 신약에 와서도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율법은 본래 나쁜 것이며 모세의 율법이 생기기 이전이나 이후, 혹은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었다. 크리스천들은 도덕율법을 지켜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식율법이나 도덕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오로지 그것을 근거로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읽고 여러분이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을 당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하기 바란다.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 2:8∼9).  디도서 3:5은 또한 인간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거나 그 구원을 유지할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새로 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그밖에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갈 3:13)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골 2: 16∼17)

    14. 안식일이 오직 유대인을 위한 의식율법이었으며 결코 신약의 크리스천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보다 확실한 증거들

    (1) 성경이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다시 한번 골로새서 2:13∼17을 읽어보자.

    "또 너희의 죄들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시고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위의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었을 때 완성되었고 폐지되었던 유대의 의식율법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은 '무할례' 상태에 있었고 유대인들의 '손으로 슨 규례들'은 그들을 대적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할례 받지 못한 사람들을 대적했던 이 '손으로 쓴 규례들'을 하나님께서 지워버리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분명히 그것은 모세의 의식율법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도덕율법도 폐지되었는가?  인간은 이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와 같은 명령에 대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운가? 여러분은 우리가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올바르게 행해야 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도덕율법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삭제되거나 폐지되지 않았다.  도덕율법은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지워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능력을 상실한 것은 의식율법이었고, 그것이 그 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을 이러한 의식율법에 대하여 누구도 판단 받을 수 없다고 16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레위기 11장은 의식율법에 관해서 말하면서 돼지고기나 혹은 양쪽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같이 유대인들이 먹을 수 없는 많은 동물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의식율법에 의하면 만일 부정한 도마뱀, 달팽이, 두더지 또는 다른 동물들이 토기에 떨어졌을 때는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물은 마찬가지로 부정한 것이 되고 그 토기를 깨뜨려야만 한다. 그리고 레위기 11:3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먹는 모든 음식 중에서 그런 물이 스며든 것은 부정할 것이요, 그런 그릇으로 마시는 모든 음료도 부정할 것이며"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그 의식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따라서 우리는 먹고 마시는 음식의 규례로 인하여 판단 받지 않는다고  골로새서 2:16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들은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판단 받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제거되어졌다!  크리스천은 이들 의식율법에 의해 자신을 판단하도륵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그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17절에서 이러한 모든 의식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들의 그림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의식율법들이 하나의 그림자나 상징이나 모양이나 본보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그것들의 실체가 왔던 것이며 이전 것들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의식율법 모두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완성시키셨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의 의식인 안식일에 의해서 판단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그렇게 명령하고 있다.

    (2) 유대의 안식일인 토요일이 의식율법의 한 부분이며 결코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명령했던 것이 아니라는 두 번째 증거는 성경이 안식일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맺은 특별한 표적이었다고 분명히 말한다는 사실이다.

    출애굽기 31:12∼13에서 이것은 명백한 진술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거룩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구별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 이방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표적 이 안식일이다.  이제 16절과 17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킬지니 ‥‥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에스겔 20: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었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특별한 표적이라는 것과, 안식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들로부터 구별된다는 표적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의식율법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것이 아닌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명령이었다. 할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한 표적이었다. 그래서 유대의 음식물에 대한 규정과 제사와 레위족의 제사장직이 있었다. 의식율법은 오로지 유대인들을 위한 율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율법은 도덕율법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전 세계에 대한 명령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 역시 전 세계에 대한 것이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 또한 모든 인류에 대한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과 도적질과 살인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백성이다. 그것은 우리 국가와 하나님 사이에 맺은 특별한 표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결코 없다. 아무도 도덕율법이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범위에 있어서 세계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의식율법에 대하여는 유대인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임을 나타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한 표적인 할례를 준수한다.  또한 우리는 제사와 절기와 유대의 음식물 금기법을 지키며 이러한 것들은 선택받은 백성인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표적들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똑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받았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표적이다. 그 표적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이며 상징인 의식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민족으로 구별하셨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 안식일인 토요일은 분명히 의식율법의 일부였다.

    (3) 유대 안식일인 토요일 엄수는 명백히 의식율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새겨진 도덕율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율법은 세계 보편적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마음에 새겨 놓으셨다. 로마서 2:14∼1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증거하며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렇게 심판 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당신은 이방인들이 비록 율법이나 성경이나 복음전파를 전혀 듣지 못했을지라도 그들 안에서 증거하는 양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아프리카의 흑인도 살인, 거짓말, 도둑질 그리고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 잘못임을 안다.  그는 선과 악에 대한 선천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어느 곳에 있는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죄인임을 알게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도덕율법을 새겨 놓으셨고, 그들이 이 율법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심판의 날에 그들을 불리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던 어떤 야만인이 살인이나 도둑질이 나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러한 이방의 야만인이 보편적으로 인류의 마음에 새겨진 어떤 것에 의해 자기 부족의 남자아이들이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에 관한 문제도 들어보지 못한 그 사람의 양심이 쇠고기나 양고기를 먹는 것은 옳은 것이며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의식율법은 오로지 유대인에 대한 것이지 도덕율법의 경우처럼 사람들 마음에 보편적으로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안식일이 의식율법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의 양심은 7일 가운데 한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만 하고 이 휴식의 날은 토요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 이방인에게 안식일에 관하여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그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죄를 지었다거나 하는 인식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양심은 분명히 그에게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대 안식일인 토요일은 인류의 마음에 새겨진 도덕율법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율법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의도된 의식율법이다.

    (4) 유대 안식일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적합했지만 특히 추운 겨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출애굽기 35:3에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명한 명령이 있다.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우지 말지니라."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집에 불을 전혀 피울 수 없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에게는 불을 피우지 않는 것이 곤란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북부지역이나 캐나다 그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다른 지역에서 그것은 엄청난 시련이 될 것이다.  안식교인들 뿐 아니라 유대의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매주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민수기 15:32∼36은 안식일에 나무를 했던 한 남자가 의식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떻게 돌에 맞아 죽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구약과 똑같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받았다면 토요일날 삽으로 화덕에 석탄을 퍼 넣는 안식교인들은 틀림없이 유죄이다.  사실상 토요일에 어떤 종류의 불이든 켜는 사람은 이 의식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과 모닥불에 점화하는 것에는 어떤 도덕적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흑은 손잡이를 돌려서 가스 레인지에 불을 점화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불을 점화하는 것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은 안식일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우지 말지니라."  분명히 그것은 의식율법이며 구세주께서 죽으시기 전에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유대인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팔레스타인이 아닌 어떤 나라에도 결코 명령하지 않으셨다.

    (5)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의식율법이며 크리스천들에 대한 명령이 아니었다는 다섯 번째 증거는 안식일이 자전하는 세계에 동시적으로 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날짜는 지구의 자전에 의해 결정된다. 지구 표면 위의 어떤 지점이 자전하여 똑같은 태양 빛을 받는 매 순간은 또 다른 날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를 자정에 시작하든 일몰 때에 시작하든 그 하루는 지구의 원주 위에 있는 모든 점에서 각각 다른 시각에 시작된다.  예를 들면 뉴욕에서는 자정일 때 시카고에서는 오후 11시, 덴버에서는 오후 10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오후 9시가 된다.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은 12시간이 늦거나 빠르게 된다.

    어떤 사람이 서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일주하면, 일주하는 날들 동안의 그 사람의 하루는 보통의 하루보다 길어지지만, 일주가 끝났을 때 그는 완전한 하루를 잃어버린다. 즉 그는 집에 머물러 있던 사람보다 하루를 적게 갖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동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일주하면, 일주하는 날들 동안의 그 사람이 경험하는 하루의 길이는 보통의 하루보다 더 짧아지지만, 일주가 끝났을 때 그는 한 번 더 태양을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집에 머물렀던 사람보다는 하루를, 서쪽으로 세계일주를 한 사람보다는 이틀을 더 갖게 된다. 집에 머물렀던 사람은 일정한 횟수만큼 태양을 지나쳤고, 서쪽을 향해 태양과 함께 일주했던 사람은 태양을 지나쳐 가는 한 번의 기회를 놓쳤으며, 태양을 향하여 동쪽으로 갔던 사람은 태양을 한 번 더 지나쳤다.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만약 세 사람이 모두 안식일로서 제 칠일을 지키려고 애쓴다면 집에 머물렀던 사람이 토요일을 지키게 될 때 서쪽으로 간 사람은 일요일을, 동쪽으로 간 사람은 금요일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제 칠일을 엄수하기 위해 동일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의상, 국제 날짜변경선은 태평양 지도상에 고정되어 있다. 어떤 배가 서쪽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을 때 금요일 저녁 자정 무렵에 그들이 국제 날짜변경선에 접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는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아니 여러분이 만일 원한다면 유대인들이 그들의 안식일을 일몰 때에 시작했던 것처럼 금요일 일몰 시로 그 시기를 정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배가 국제 날짜변경선에 다가와서 그 선을 건넜을 때 시간은 갑자기 금요일에서 일요일로 변해버린다.  토요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에 당신은 어떻게 안식일을 지킬 것인가?
    그 동일한 배가 다음 주에 금요일이 막 끝나갈 무렵에 국제 날짜변경선 쪽으로 유대의 안식일을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 반대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이 동쪽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날짜변경선을 건너는 순간 시간은 갑자기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변하게 된다. 토요일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금요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 날짜 변경선을 동쪽 방향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동일한 날을 두 번 가지며, 서쪽 방향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완전히 하루를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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