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주님의 재림의 전조는 이스라엘의 부활입니다.
독자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믿으십니까?
독자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열렬히 바라고 있습니까?
세상이 너무 좋아 머리로는 믿지만 여기서 더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에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 스가랴서 12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이스라엘을 위한 주의 말씀의 엄중한 부담이라. 주 곧 하늘들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사람 속에 사람의 영을 짓는 이가 말하노라.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사방 모든 백성에게 사람을 떨게 만드는 잔이 되게 할 터인데 그때는 곧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려고 에워쌀 때니라. 3 ¶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비록 땅의 모든 백성이 그것을 치려고 함께 모일지라도 그 돌로 짐을 진 자는 다 산산조각 끊어지리라. 스가랴서 12-14장을 잘 읽어 보기 바랍니다. 재림의 소망을 굳게 가집시다. 여기에 우리의 안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다 없어지고 맙니다.
다음은 연합뉴스의 보도입니다. 위의 성경 말씀들과 같이 읽어 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건국 60년, 빛과 그림자
수많은 절멸 위기 딛고 중동 최강국으로 발돋움 약자 팔레스타인 탄압 비난..아랍권과 평화공존 등 과제 이스라엘이 5월 8일(이스라엘 달력으로 5월 14일) 건국 60주년을 맞는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11월29일 총회에서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들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일부 영역을 잃게 된 아랍권이 이를 거부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로부터 5개월 보름만인 1948년 5월14일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일을 유대력에 따라 기념하고 있는데 올해는 이 날이 서양력으로 5월8일이다.
서기 7세기 이래 아랍 무슬림들이 지배력을 행사해 온 중동의 한 복판에 전혀 이질적인 국가로 태동한 이스라엘은 당연히 역내 갈등을 일으키는 씨앗이 됐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로 구성된 아랍연합군은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을 침공해 제1차 중동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의 서막을 올렸다.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권과 크고 작은 규모의 전쟁을 수없이 치렀지만 그때마다 더 강한 국가로 거듭났다.
특히 이스라엘은 1967년 선제공격으로 시작한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을 장악함으로써 성서를 통해 약속받았다고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영역이 명실상부한 국토가 됐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근 2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이산)와 20세기의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를 겪으며 절멸의 위기로 내몰렸던 유대인들에게는 성공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스라엘은 오늘날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로비단체들을 앞세워 국제 정치 무대를 주도하는 미국의 정책 형성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료, 제약, 전자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 분야에서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한 이스라엘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연간 5천억 달러에 육박해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넘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도 덩치가 큰 아랍 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불패의 역사를 써올 만큼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이처럼 높아진 이스라엘의 국가적 위상은 이스라엘의 건국에 반발하며 여러 차례 전쟁을 불사했던 이집트와 요르단이 현실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1979년과 1994년 각각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유대인 국가의 동반자가 됐다.
이스라엘이 건국 후 60년 간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는 보통 국가가 되기 까지는 갈 길이 멀고 주변의 현실이 우울하고 답답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60년 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국가의 틀을 확고히 다지는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는 꿈이 점점 더 멀어지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으로 전 팔레스타인 영역이 이스라엘 점령 체제에 놓이자 독립을 향한 처절한 투쟁을 본격화했다.
이 투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의 시각에선 테러리즘으로 규정됐다.
1987년과 2000년 각각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1, 2차 이스라엘 점령 반대 투쟁(인티파다)은 약 6천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천 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을 희생시켰다.
이스라엘은 저항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지난 93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체결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통해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에 맞춰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요르단강 서안을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꿈을 외면하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 땅을 영원히 차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반발하는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내의 강경 정파들은 저항공격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무력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하마스 등 강경 정파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정책을 펴면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는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인 마을을 갈라놓는 약 700㎞에 이르는 보안장벽(분리장벽)을 세우고 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비판론자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제2의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있다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며 땅을 절취하고 있다고 서슬이 퍼런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선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의 생존을 위한 것이며,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며 그런 비난을 일축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타결에 무게를 두고 아랍권과의 공존을 중요시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을 제외하면, 주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경우 대내 정치에선 서구 여느 나라 못지 않게 민주주의 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서 확산하는 극우주의 성향은 공존을 통한 평화구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요인이다.
마탄 빌나이 이스라엘 국방부 부장관이 최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엄청난 홀로코스트를 안겨줄 수 있다고 발언한 뒤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유대교 율법학자(랍비)인 이스라엘 로센은 "팔레스타인인은 남자, 여자, 아이를 불문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 그들의 가축도 예외가 돼선 안된다"는 취지의 극단적인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사무엘 엘리야후라는 이름의 랍비는 지난 3월 예루살렘에 소재한 유대인 종교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 8명을 숨지게 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식들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60년 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중동 지역의 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이에 대해 찬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아랍권에서 조차 이론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변에 수많은 적을 둔 태생적 환경 탓에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 대처하면서 자국의 안보 이기주의에 너무 몰입해 보편적 정의를 등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신문인 알-아흐람 위클리는 "이스라엘은 60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60년 전 탄생 때처럼 여전히 피와 학살, 절취와 거짓의 기반 위에 세워진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