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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테러와의 전쟁조회수 : 862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5시 39분 18초
  • 세 번째 천년의 첫 해 가을(fall), 승객을 가득 태우고 자폭 테러리스트가 몰고 간 여객기에 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쌍둥이 빌딩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독립한 이후 단 한 번도 본토를 습격 당하지 않았고 또 초강대국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의 리더국가인 '아름다운 나라'는 그 심장이랄 수 있는 뉴욕과 워싱턴이 무방비로 공격을 당함으로써 엄청난 충격과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아울러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치밀한 각본에 의해서 저질러진 이번 테러공격으로 인해 62개국 국민 5천여 명이 사망하여 미국민뿐 아니라 온 세계가 테러의 공포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못되어 그 테러행위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고 또 그를 보호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에 보복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곧 미국 여러 곳에서는 생화학테러로 생각되는 탄저병이 발생하여 온 미국을 공포로 몰아 가고 있는데 미국은 테러와 연관된 모든 국가들을 응징하겠다고 하고 있고 회교권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반미, 반전 시위가 날로 격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테러와의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테러사태 직후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 4위, 5위에 오른 책이 모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라는 사실이 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정서를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글이 인쇄되어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을 때 테러와의 전쟁이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될지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매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테러와의 전쟁을 전해 들으면서 그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왕상19:12)도 함께 들었으면 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5; 13:9,43; 마4:9,23; 눅8:8; 계2:7,11,17,29; 3:6,13,22).

    1. 하나님께서는 왜 테러를 허락하셨는가?

    그 어떠한 할리우드 영화보다도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던 이번 미국 테러는 마치 '블럭버스터 완결판'이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참사를 초래했는데 이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슴 아파하지만 그간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이슬람권이나 또 심지어 우리나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당할 짓을 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정치는 물론 경제, 언론,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태인들의 영향력 때문이겠지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을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해옴으로써 자연히 이슬람 국가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또 이슬람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한편 자신들의 고통과 불만을 테러라는 야만행위로까지 표출하려는 성전주의자(聖戰主義者)들을 양성시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테러를 당한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먼저 우리들이 고백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뉴욕과 워싱턴에 재앙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이다.

    "주께서 행하지 아니하셨는데 어찌 도시에 재앙이 있겠느냐?"(암3:6하, 이하 흠정역)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청교도가 제일 먼저 건설의 삽을 뜨면서 시작된 나라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복을 받아온 소위 '기독교국가'였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 신앙의 타락과 더불어 온갖 쓰레기 문화들을 양산해내어 자국 내는 물론 전세계로 각종 불법들(iniquities)을 전파하면서 하나님의 공의(judgment)를 싫어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즉 내가 너희의 모든 불법으로 인하여 너희를 벌하리라, 하셨느니라."(암3:2하)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미국 테러 참사와 같은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때에 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희생물에 섞은 일을 예수님께 고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눅13:1-5)

    그렇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언제든 세계무역센터와 같이 멸망할 수 있는 것이다.

    2.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행위가 도대체 어디에까지 이를 것인가. 전 세계 최대 초강국(超强國)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일련의 테러행위는 최고의 무기, 최고의 정보를 가진 미국이라 할지라도 극렬한 신념을 가진 소수의 테러에 의해서 초토화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생생한 현장이었다."고 일갈한 작가 최인호씨뿐이겠는가. 끔찍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목숨을 던지며 테러하는 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진대 과연 그 테러리스트들의 가치관이 무엇이길래 그러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보도된 대로 자살 테러조들은 '테러는 곧 성전(聖戰)이다. 성전에서 목숨 바쳐 죽으면 천국으로 직행한다. 가족들의 천국행도 보장된다. 또 천국에서는 70명의 미녀들과 살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어서 그러한 테러를 감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을 지닌 '거룩한 전사'들은 아프리카의 수단과 알제리 그리고 이집트를 지나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 및 필리핀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즉 새로운 가미가제(神風)의 돌풍이 지금 이슬람권으로부터 강하게 불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성경도 이와 같은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개역)

    "세례자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마11:12, 표준 새번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마11:12, 현대인의 성경)

    많은 성도들이 이 구절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독트린처럼 해석하여 천국(heaven)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룩한 폭력'이요 또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거룩한 폭력배'라고 부르곤 한다. 정말 천국은 침노하며, 침략하며, 힘을 사용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시 한 번 더 성경을 정확히 읽어보자.

    "침례자 요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왕국은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강제로 그것을 빼앗나니"(마11:12, 흠정역;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결코 '거룩한' 폭력 곧 성전(聖戰)이란 없다. 즉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자들이 생긴다는 누가복음의 16장 16절("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왕국이 선포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밀고 들어가느니라.")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아울러 '새 하늘과 새 땅'(계21:1,2)이 아니라 메시야가 이 땅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삼하7:4-17; 단2:44,45; 마4:23, 10:7, 24:14; 행1:6; 계20:4-6)을 선포하였던 요한은 헤롯의 폭력에 의해 목베임을 당하였고(마14:3-12), 사도들도 폭력배들에 의해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고후11:23-27),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던 성도들도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맛보아야 했다(요16:2).

    아니 이보다도 하늘의 왕국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폭력(사53:4-9)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거룩한'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어찌 우리가 폭력을 사용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는가. 오히려 예수님의 보혈로 죄씻음 받지 못한 살인자들 곧 하늘의 왕국이 오는 것을 폭력으로 막았던 자들은 천국이 아니라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요일1:7; 계21:8).

    3.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어야 하는가?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국가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기독교국가로서 아프카니스탄에 보복공격을 하는 것이 다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한다. 즉 '눈에는 눈(eye for eye), 이에는 이(tooth for tooth)'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는 상처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니라. 그가 남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그에게 그와 같이 행할 것이며 짐승을 죽이는 자는 그것을 물어 낼 것이요, 사람을 죽이는 자는 죽일지니라."(레24:20)

    "네 눈이 불쌍히 보지 말라. 오직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을지니라."(신19:2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들이 말한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에게 맞서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며 또 누가 너를 법에 고소하여 네 덧옷을 빼앗으려 하거든 겉옷까지 가지게 하고 또 누구든지 너로 하여금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를 가며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마5:38-42)

    얼핏 보면 구약과 신약의 말씀이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맥을 잘 살펴서 읽어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즉 레위기나 신명기의 말씀은 가해자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마태복음의 말씀은 피해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인 테러리스트들에겐 구약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테러의 피해자인 미국에겐 신약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입장이 바뀌면 또 그 형편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십자군 전쟁의 재현인가?

    미국에 테러 대참사가 일어난 닷새 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번 전쟁은 새로운 종류의 악(惡)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테러를 응징하는 십자군(十字軍) 전쟁이다." 그러자 세계 여론은 부시 대통령의 이 말에 대해 엄청난 반발을 일으켜 결국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 하루만에 공식적으로 해명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십자군 전쟁은 악(惡)을 응징하는 선한 싸움(딤전1:18; 6:12; 딤후4:7)이었는가?

    주후 638년 이슬람교도의 수중에 들어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11월 27일 예루살렘 해방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칭하며 십자군을 결성하였다. 이 십자군 전쟁은 1291년 이슬람군에게 시리아 지역인 아콘을 빼앗겨 패배를 당할 때까지 총 6차에 걸쳐 200년 가량 계속되었는데 세상의 역사가들은 소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충돌로 인류역사상 가장 비참한 종교전쟁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십자군 전쟁은 정말로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과의 싸움이었을까? 특히 1099년 7월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여자와 아이들까지 무차별 학살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껍질을 벗겨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던 십자군이 진정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군사들(딤후2:3)이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할 뿐더러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자(마22:37-39)이며 또 선한 증거(딤전6:12)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십자군의 정체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곧 십자군을 주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만행을 저질렀던 이들에 대해 마지막 심판 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7:22,23)

    따라서 우리는 이번 테러와의 전쟁뿐 아니라 앞으로 있을 어떠한 전쟁도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길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을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마6:9,10; 7:21).

    5. 세계 평화를 위하여?

    앞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미국 테러 참사로 62개국 국민들이 희생됐는데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모든 사람들이 이번 사건은 미국과 뉴욕 및 워싱턴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당장의 현실뿐만 아니라 테러리즘의 전반적인 개념을 다루어야 하며 이를 문명에 대한 만행으로 취급하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앞으로 테러리즘과 반(反)테러리즘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세세한 가치관들이 판단되고 또한 삶의 모든 분야에 이 잣대가 적용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쌍둥이 빌딩을 부순 테러리스트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그들은 소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곧 기꺼이 자폭까지 하는 '근본주의자들'로 알려져 있다. 자기 신념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본주의자들일진대 이제 반(反)테러리즘은 목표는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와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한 반(反)테러리즘의 실행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폭테러도 불사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이제는 어떤 신앙과 가치관을 지녔든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간직하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터인데 특히 가장 편협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는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이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곧 도래하게 될 것이다(마24:9). (이는 미국의 코미디 배우 짐 캐리가 기독교도임을 포기하면서 남긴 말을 통해서도 예측이 된다. 즉 미국의 연예주간지 '스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뉴욕과 워싱턴 테러 참사로 100만 달러를 기부하며 테러 복구활동에 열심인 짐 캐리가 '조용한 불교가 좋다'며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무엇을 신앙하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인가?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비롯해 예수님의 처녀 탄생,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 및 부활,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과 성도들의 공중들림 등 성경에 기록된 사실 그대로를 믿는 자들이다. 그리고 폭력은커녕 성경 말씀 그대로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돌려대며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는 자들이다.

    자,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의 신앙고백은 어떠한가?

    이제 세상은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 및 종교혼합주의가 더욱 득세하게 될 것이다. 반(反)테러리즘과 세계평화를 위해 근본주의 신앙을 포기하라는 세계 정부의 압력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하려는가? 정말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이르노니, 몸을 죽이고 그 뒤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너희가 마땅히 두려워할 분을 내가 미리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곧 죽인 뒤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능이 있으신 그분을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을 두려워하라."(눅12:4,5)

    지금 세상 사람들의 화두는 '평화와 안전(peace and safety)'이 되어버렸다. 인터넷 해킹부터 각종 테러에 이르기까지 '평화와 안전'은 우리 삶에서 지고(至高)의 선(善)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날(the day of the Lord)'도 곧 이를 것인데 그 날은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살전5:2,3).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밤의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알기 때문이요, 또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peace and safety)'을 말할 그 때에 아이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1-3)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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