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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반지의 제왕조회수 : 1000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5시 45분 25초
  • 1. 프롤로그(Prologue)

    구랍 17일 개봉된 ‘반지의 제왕’ 3편 ‘왕의 귀환’은 2004년 새해에 들어서도 그 위력이 꺾일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아마 이런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국내외 영화사의 각종 신기록을 갈아 치울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리고 원작 소설 또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더욱 판매부수가 늘어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하겠다.

    잘 알려진 대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은 이미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억 부 이상 팔렸고 현재 영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3부작 시리즈 영화는 원작 소설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훼손시키지 않고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또한 ‘탁월한 테크놀로지는 그 자체로 뛰어난 예술’임을 증명한 걸작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일간 선(The Sun)지는 ‘반지의 제왕’을 세계영화사에 남을 10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고, 통상 예술 및 독립 영화에 상을 주던 뉴욕 영화비평가협회(FCC)에서조차 2003년을 결산하면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할 정도였으니 이 ‘반지의 제왕’의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평판에 부응하여 우리 기독교계에서도 ‘반지의 제왕’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커트 부루너와 짐 웨어가 함께 집필한 ‘이 반지가 왜 내게 왔을까(Finding God in the Lord of the Rings)’를 필두로 하여 수많은 기독교 매체들이 앞다투어 이 ‘반지의 제왕’을 훌륭한 기독교적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허구인 판타지를 통해서도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라든가 심지어 판타지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훌륭한 선물이자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등의 극찬도 여과되지 않고 쏟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신, 불신을 떠나 세계인 모두가 이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며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일진대 이 글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표방하는 몇 가지 주요한 점들에 대해 성경적 조명을 해 봄으로써 함께 이 시대를 진단해 보고자 한다(마16:2,3).

    2. 시놉시스(Synopsis)

    요즈음 세상 사람들을 새롭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즉 ‘반지의 제왕’을 이미 소설이나 영화로 감상한 자들과 앞으로 감상하게 될 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는데 후자에 속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반지의 제왕’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 후 성경적 관점에서 이를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사우론의 암흑군대에 맞서 싸우던 인간과 엘프 연합군은 패전 직전 사우론의 힘의 원천인 절대반지를 빼앗아 세상(중간계)을 구한다. 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이실두르에 의해 반지는 파괴되지 않고 남겨진다. 이실두르가 살해당한 뒤 세월은 흘러 반지는 골룸과 호빗인 빌보의 손을 거쳐 빌보의 조카 프로도의 손에 전수된다. 사우론은 암흑탑에 은거하면서 반지를 찾기 위해 암흑기사들을 호빗의 땅으로 보내고, 프로도는 이를 피해 친구인 샘과 함께 리벤델로 간다.

    그러나 엘프의 땅 리벤델 역시 반지를 지킬 힘이 없다. 사우론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반지가 만들어진 운명의 산 불구덩이에 반지를 던져버리는 것. 프로도와 샘을 비롯한 피핀, 메리, 마법사 간달프, 기사 아라곤, 곤도르의 전사 보르미르, 요정(Elf) 레골라스, 난장이(Dwarf) 김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반지원정대를 결성하고, 사우론의 군대는 반지를 빼앗기 위해 위협을 가해온다.

    그리하여 반지원정대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는데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과 반전이 거듭되면서 마침내 절대반지는 파괴되고 중간계에는 평화가 도래하게 된다.

    3.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

    예술적인 노력이 다 그렇듯이 톨킨이 믿는 바가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마12:34,35).

    그런데 앞서 언급하였던 ‘이 반지가 왜 내게 왔을까’의 공저자이며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의 부총재인 커트 부루너는 톨킨이 C. S. 루이스가 신앙을 갖도록 도와줄 정도로 신실한 기독교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훌륭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공상소설 작가인 스티븐 로헤드도 그 두꺼운 ‘반지의 제왕’ 속에서 그리스도를 인유(引喩)하는 문장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며 톨킨의 신앙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톨킨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인지, 또는 올바른 성경적 교리를 믿고 거듭 난 리얼 크리스천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해야 진정한 성령의 열매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이러한 단초(端初)에 의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반지의 제왕’에 대한 영적 판단의 방향이 올바로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화이트가 쓴 ‘톨킨-판타지의 제왕(Tolkien: a biography)'이나 조세프 피어스가 쓴 ‘톨킨-인간과 신화(Tolkien-Man and Myth)’를 보면 톨킨은 자신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임을 고백한다. 톨킨의 장남으로서 사제 서품을 받은 존 톨킨도 카톨릭 신앙이 아버지의 사고와 모든 요소에 스며들어 있었으며 아버지가 철저한 천주교인임을 강조한다.

    톨킨은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증오하였다. 그래서 영국국교회에 다니고 있었던 사랑하는 연인인 에디스 브랫이 기독교의 신앙을 버리고 카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강요하였는데 결국 그녀가 완전히 천주교로 개종한 이후에야 약혼을 발표할 정도였다.

    또 1931년 가을 톨킨은 자기와 긴 신앙적 토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C. S. 루이스가  단순한 유신론자에서 회심하여 자기가 바라던 천주교인이 아니라 아일랜드 기독교도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자 루이스를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이후 둘 사이의 우정도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4. 카톨릭(Catholic)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장로교인이 침례교인이 되었다거나 감리교인이 성결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개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천주교인이 되거나 또는 이와 반대의 경우 우리는 정확히 ‘개종’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왜냐하면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세 가지의 오직(Three Solas)’ 곧 ‘성경’과 ‘은혜’와 ‘믿음’만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구원론은 이미 16세기 개혁자들이 주장하기 전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성경신자들에 의해 일관되게 고백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바빌론의 신비주의에 뿌리를 둔 카톨릭의 교리는 성경의 최종권위를 부정하면서 그들의 전통을 따를 것을 가르치며 행위에 의한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표현대로 ‘저주받을 더하기’로써 무려 삼백 가지도 넘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금까지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인 것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다(합2:4, 롬1:17, 갈3:11, 히10:38). 그리고 이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요14:6, 행4:12). 그런데 믿음(faith)은 그 정의상 ‘행위와 상관이 없어야(without work)’ 믿음인 것이며(롬3:28) 또한 그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님(Jesus)을 개인의 인격적인 구주로 모셔 들여 ‘영원히 단번에(once for all)’ 구원 받는다고 믿어야만 참된 믿음인 것이다(히10:10-14; 12:2).

    그러나 톨킨은 이러한 성경적인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다. 머레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톨킨은 반지에 유혹되지도 않으며 드러나지 않게 프로도를 도와주는 로스로리엔의 여왕 갈라드리엘을 묘사할 때 마리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포함하였다고 인정하였듯이 그는 마리아를 중보자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해성사를 계속함으로써 죄사함을 받는다고 믿었고 또 그의 자전적 성격이 가장 분명한 작품인 ‘니글 옆의 이파리’를 통해 자신이 연옥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1973년 작고한 그의 영혼(soul)은 현재 어디에 가 있는지 진정 거듭난 독자들께서는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원래 고대 점성술 용어인 ‘카톨릭’의 의미가 ‘하늘 제신(諸神)들의 집합체’인 사실을 보더라도 독실한 근본주의 카톨릭 신자인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표현하게 될 세계에 이교적인 사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은 쉽게 예측될 수 있을 것이다.

    5. 판타지(Fantasy)

    오늘날 가장 판매량이 많고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문학 장르는 판타지이다. 대부분의 판타지 작가들은 판타지 장르가 이처럼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톨킨의 역할이 아주 컸다는 점을 인정한다. 특히 ‘반지의 제왕’을 ‘판타지 소설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판타지란 원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작품’을 일컫는 말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상상(imagination)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사실주의(realism) 예술에서도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판타지는 초현실적인 내용 곧 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는 점에서 사실주의와 구별이 되는 동시에 그럼으로써 더욱 상상이 강조되는 장르라 할 수 있겠다.

    또 츠베탕 토도로프를 위시해 수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판타지에 대한 정의를 다양하게 내리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판타지의 기본 메커니즘은 ‘상상’이며 그 구성은 마법사와 요정 등이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내용이 될 수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러한 판타지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imagination)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이하 흠정역)

    그렇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며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상상이란 항상 악할 뿐이다. 비록 사랑이나 평화나 각종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여도 인본주의의 결국은 의로운 것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롬3:10-18).

    톨킨은 ‘판타지란 가장 높고 순수한 형태며 예술과 신학과 인간의 기본 욕망이 만나고 교차하는 장’이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인간의 기본 욕망이 분출되는 판타지는 결코 생명의 길로 향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약1:15).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헛된 상상을 버리라고 말씀한다(렘23:16-18, 고후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imaginations)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슬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고후10:5)

    6. 마법(Magic)

    ‘반지의 제왕’을 여러 각도에서 음미할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이 소설(영화)의 가장 중요한 플롯 중 하나가 바로 간달프와 사루만이라고 하는 두 마법사의 대결 구도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정의한 대로 판타지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법은 실제로 우리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마법을 신봉하며 또 그 마법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엔진을 사용해 조사해 보면 마법과 연관된 수십만 개의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고 아마존에서도 수천 종의 마법에 대한 책이 팔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1999년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미국 군대 내에서 마법은 하나의 합법적인 종교로서 인정되어 그들만의 종교활동이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법의 종교성은 받아들이지만 마법에는 실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마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법에 연루된 자들의 주장과 하나님의 말씀 두 가지를 다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마법에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면 마법사들이 얘기하듯 마법은 악한 것이 아니라고 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사탄으로부터 오는 악한 능력이 모든 마법(white magic & black magic)에 있다고 동의하여야 할 것이다(신18:9하-11, 사8:19, 47:12-14상, 갈5:19-21, 계9:21; 21:8).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의 마법도 엄격하게 금하시며 마법사들은 둘째 사망의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신다(계21:8).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슬쩍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구하라, 할 때에 백성이 마땅히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8:19)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 우상숭배와 마법과 …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5:19-21)

    7. 신화(Myth)

    톨킨이 신화가 없는 영국인들을 달래려고 창작했다는 이 ‘반지의 제왕’은 21세기 들어 3부작 영화의 성공적 개봉으로 말미암아 이미 ‘21세기 위대한 신화’로 전세계인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10여개 언어의 구조와 문법 그리고 이와 관련된 고대 북유럽 신화에 정통했던 톨킨은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밝힌 ‘동화에 관하여’라는 글의 결론에서 ‘진실의 신화’인 그리스도 신앙이 모든 하위신화를 진실에 일치하게끔 이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성경에 씌어진 복음서는 한 편의 동화이며 모든 동화의 총화가 한꺼번에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톨킨은 물론 하위신화가 성경의 신화처럼 완벽할 수 없지만 하위신화는 본래의 신화로부터 흘러나온 위대한 진실을 언뜻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톨킨의 신화에 대한 견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즉 신화(神話)의 일반적 정의상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구조를 지닌 꾸며낸 이야기의 한 가지’란 면에서 그가 기독교 신앙을 하나의 신화로 표현한 것은 틀린 말이다(딤전1:4; 4:7, 딛1:14, 벧후1:16).

    그러나 각 민족의 여러 신화들이 위대한 진실을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다고 한 점은 옳은 표현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지역 신화와 서양 3대 신화(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 켈트 신화) 및 우리 민족의 근원 신화들 간에는 분명 유사성이 있으며 이들의 원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들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 차용한 북유럽 신화는 ‘해리 포터’나 각종 판타지 문학과 게임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여기서 이를 잠깐 소개한 후에 다음 장에서 신화의 원형에 대한 성경적 접근을 해보고자 한다.

    북유럽 신화는 정교하게 짜인 아홉 세상에서 지내는 신들과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거인족의 대립과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신들은 ‘악의 축’인 거인족에 맞서 세상을 지켜낸다. 특히 신들의 지혜와 용기, 모험, 희망, 열정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모든 신과 인간을 다스리는 지혜의 신 오딘과 그의 여전사 발퀴리, 사랑과 미의 여신 프레이야, 벼락망치를 휘두르는 천둥신 토르, 신과 인간들을 괴롭히는 데 앞장서는 사고뭉치 로키 등 수많은 신과 거인, 요정이 등장해 아찔아찔한 모험을 벌인다. 급기야 신들과 거인은 서로의 죽음을 예고하며 최후의 전쟁을 치르게 되고, 세상은 완전히 파멸한다. 마지막 살아남은 남녀 한 쌍. 이들이 인류의 후손을 남기며 지금의 세상을 이룬다.

    8. 거인(Giants)

    톨킨이 ‘전설과 신화는 대개 진실로 만들어졌다’고 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각 신화들에는 중요한 성경적 진실이 숨어 있다.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천재지변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뒤엎었던 대홍수였다는 사실이 각 민족의 고대 문헌들 속에서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아의 홍수를 유발시켰던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민족의 신화나 기록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미 소개된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박혁거세 신화 및 대부분의 고대국가들의 신화 속에서 인간을 아내로 취해서 반신반수의 괴물이나 혹은 거인들을 낳은 신들에 대해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대수롭지 않은 전설 정도로 여기지만 성경은 그것에 대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무엘상 17장에는 골리앗의 키가 정확히 여섯 큐빗 한 뼘(six cubits and one span)으로 적혀 있다. 1큐빗이 대략 45-50 cm이고 한 뼘이 반 큐빗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골리앗은 그 키가 3 미터가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명기 3장에는 바산왕 옥이 길이가 아홉 큐빗 넓이가 네 큐빗이나 되는 침대 위에서 잠을 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바산왕의 키와 그의 침대를 비례적으로 생각해서 그의 키를 계산해 보면 적어도 4 미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키가 3-4 미터씩이나 되는 거인들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그 실마리를 풀어 나가기 위해 성경에 처음으로 거인(giant)이 기록된 창세기 6장부터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들이 지면에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이 사람의 딸들(the daughters of men)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giants)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사람들의 딸들이 그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이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mighty men)이요, 명성 있는 자들(men of renown)이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1-5)

    9. 반신반인(Demigods)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성적 관계를 맺음으로 거인들이 태어났고 또 그들은 골리앗과 같이 힘세며 사악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정상적인 인간, 예를 들어 경건한 셋의 후손일 수가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실 신실한 크리스천도 많을 줄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를 좀더 자세히 이해하길 원하신다면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 중 ‘성경에 나타난 성장이상’을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타락한 천사들이다(벧후2:4-6, 유5-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법적인 결혼에 의해 출산된 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노아의 대홍수를 내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창6:11-14).

    그리고 거인들은 그들의 힘과 명성으로 인해 인간들에게는 신적인 존재(gods)로 여겨지게 되었을 터인데 이들의 정체에 대해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창6:4, 시82:1,5-7).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 서시며 신들(gods) 가운데서 심판하시는도다. …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며 어둠 속에 다니니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났도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gods)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시82:1,5-7)

    만일 이 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처럼 죽게 된다면 그들은 분명히 사람들이 아니다. 또 이들은 창세기 6장의 ‘타락한 천사들’도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성경이 분명하게 천사들은 죽을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눅20:34-36). 따라서 이 신들은 타락한 천사들의 자손이며 비록 창세기 6장에서 사람들이라 불리고 있지만 단지 반쪽만이 사람이고 다른 반쪽은 신들(타락한 천사들)인 존재 곧 반신반인(半神半人, demigods)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신들이 땅의 모든 기초가 흔들렸을 때 즉 노아의 대홍수시에 사람들처럼 죽었다고 시편 기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홍수 이전 세상을 주름잡던 이 반신반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골리앗과 바산왕 옥의 경우에서 보듯 홍수 이후에도 거인은 잠시 존재하였지만) 홍수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부터 야벳, 셈, 함 등 노아의 후손들이 각 민족들을 이루어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함께 신화의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10. 창조물(Creatures)

    이러한 반신반인인 거인에 대한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에서도 차용이 되고 있다. 즉 반은 인간이고 반은 나무인 거인족 ‘엔트’들이 악의 지도자 사우론에 의해 숲이 황폐화되는 데 분노해 악의 소굴 아이센가드로 몰려가 공격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곧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강력한 ‘자연의 경고’를 담은 메시지일 수밖에 없는데 톨킨은 원래 기술문명을 싫어하여 텔레비전도 집에 들여놓지 않았고 라디오도 가끔 들을 정도로 생태학적 신념이 철저하였기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등장시켰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또 하나 ‘반지의 제왕’에서 차용한 거인의 예로서 (키가 1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호빗족인 주인공 프로도의 관점에서 본 타종족들(우르크하이 등)을 들 수 있겠다. 근육질도 미남형도 아니며 가장 약한 종족인 호빗족의 프로도가 반지원정대와 함께 하면서 자기보다 키가 두 배나 큰 인간, 엘프, 마법사 등 다양한 종족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우리는 영화촬영기법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거인이란 신화적 요소를 전달받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반지의 제왕’ 속에서 엔트나 호빗, 엘프, 드워프, 오르크, 마법사 등과 함께 대화하고 인격적인 교제와 삶을 나누는 인간은, 곧 여러 종족 중 욕심 많은 평범한 한 종족에 불과한 인간은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은 존재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 외에 다른 어떤 변형된 종족도 이 세상에 두지 않으셨다. 모든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는 영혼(soul)을 소유하였으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께 위임받아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창2:7, 롬14:12, 창1:26-28).

    오히려 이처럼 인류가 아닌 다른 생명체와의 인격적 만남이 있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적 존재들과의 교제가 있다고 하는 설정은 가이아(Gaia) 가설이나 힌두이즘 또는 UFO과학 등을 포함하는 뉴에이지 사상에 다름이 아니다.

    11. 선과 악(Good and Evil)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주인공 프로도도 최종적으로 실패한 인물이며, 절대반지가 파괴되는 것은 악한 골룸 때문이라는 것을 독자들께서도 잘 아실 것이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은 이자벨 스마쟈(‘반지의 제왕, 혹은 악의 유혹’의 저자)가 잘 지적했듯이 선과 악이 교차하는 단순한 이분법을 구사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처음에는 선의를 따랐지만 반지의 힘을 탐낸 ‘반지원정대’ 보르미르의 행동이나 악한 마법사로 변신한 사루만의 배신 등에서도 엿볼 수 있듯 선과 악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G 포노(‘판타지 문학에 나타난 광기’의 저자)가 ‘판타지 문학의 작가들은 연관된 두 가지 애매한 의미들을 능수능란하고 교활하게 다루고 있다’고 말한 대로 일반적인 판타지 문학에 내재하는 완전한 ‘모호함의 전략’이 ‘반지의 제왕’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게 처리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선과 악은 상황에 따라 또 자기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뉴에이지의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던져주고 있는 것이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화 있을진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고 어둠으로 빛을 삼으며 빛으로 어둠을 삼고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이여! 화 있을진저,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들과 자기가 보기에 분별 있는 자들이여!”(사5:20,21)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라며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고 에덴동산에서 이브에게 유혹하였던 사탄은 오늘날도 계속해서 빛의 천사로 우리에게 나타나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있다고 ‘반지의 제왕’을 통해서도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창3:5; 고후11:14).

    12. 죽음(Death)

    성경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은 결과 이 세상에는 죽음이 초래되었다(창2:17; 3:6,19).

    그러나 ‘반지의 제왕’에서는 인간의 죽음은 타락에 의한 형벌이 아니라 ‘에루’라는 존재의 선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헬름 협곡의 혈전이나 펠렌노르 전투에서의 수많은 죽음을 비롯한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영적인 해석이 없고 오히려 복음으로 말미암지 않은 영생이 소개되고 있다. 게다가 아르곤의 요청에 의해 연합군에게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다주는 ‘육신이 없는 강력한 사자(死者)들’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즉 앞서 언급하였던 완전한 ‘모호함의 전략’이 ‘죽음’에 대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 곧 죽음이후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보내게 될 것이냐에 대한 성경적 접근이 완전히 차단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며 죄로 인한 형벌은 영원한 죽음 곧 지옥불못임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롬3:10-12,23; 6:23; 계20-22장).

    또한 죽음 이후에는 바로 심판이 있고 그 이후에는 구원의 기회가 없음을 명확히 선포하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영생을 (은혜로) 받을 수 있다고 약속을 하셨다(롬6:23, 벧후3:9, 롬5:8, 요3:16, 롬10:9-10).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러므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니라.”(롬10:9-10)

    13. 절대반지(The One Ring)

    프로도의 집에 찾아온 마법사 간달프가 반지를 불 속에 내던졌는데도 반지는 뜨거워지지도 않고 녹지도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이 새겨진 불의 글자가 드러난다.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반지를 불러 모아 암흑에 가두는 것은 절대 반지.’

    그렇다. 이 시구(詩句)대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반지’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반지의 힘을 거부하지 못하는 존재들은 반지의 사슬에 묶이고 만다. 이는 모든 사건의 발단인 반지가 절대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비교: 창41:42, 에3:10,12; 8:2,8,10).

    그런데 이러한 절대 반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배를 받아야 할 자들에 의해 결국 파괴가 되고 만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양면성의 중심에 있다’는 철학자 바슐라르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절대반지가 죽음과 불멸, 권력과 복종, 선과 악의 이항대립 위에 놓여 있는 진정한 ‘양면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영국하면 왠지 음습한 느낌이 들지만 온도와 시간과 위치의 절대 기준이 있는 곳이 바로 영국이다. 즉 온도는 켈빈 경(William Thomson Kelvin)에 의한 절대온도 K(-273.16℃), 시간은 영국의 그리니치 세계 표준시, 경도 기준인 본초자오선도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의 기준들이 있는 나라 영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여 신화가 없는 영국인을 위해 ‘반지의 제왕’을 창작한 톨킨은 영국인을 위한 이 신화에서 결국 ‘절대’를 없애 버리고 말았다. 즉 절대자 하나님은 톨킨에게는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도다.”(시14:1상)

    “참으로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참으로 모든 사람은 헛된 모습 속에서 걷나니 참으로 그들은 헛되이 소동하나이다.”(시39:5하,6상)

    14. 제왕(The Lord)

    ‘반지의 제왕’에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들은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가 다리에서 발록과 싸우다 죽었지만 다시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마법을 금하신 장본인이시며 간달프와 달리 우리의 구원주(빌3:20)일 뿐 아니라 창조주(요1:3)와 심판주(롬14:12)로서 우리가 경배를 드려야 할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그들은 호빗인 프로도가 반지의 유혹과 싸우며 선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싸운 것과 같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프로도는 샘의 진실된 충언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반지를 불구덩이에 던지기 직전 욕망의 포로가 되었던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능히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고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셨다(마4:1-11, 히4:15).

    셋째로, 그들은 기사 아라곤이 절대반지가 파괴되어 세상의 평화가 도래한 뒤 왕의 신분으로 돌아와 아르웬과 결혼하며 곤도르를 다스리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지 않는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무질서도가 날로 증가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시작(창3:16-19)되면서 이 세상은 사탄의 다스림(satanocracy) 하에 놓이게 되었다(요12:31; 14:30; 16:11, 고후4:4, 엡2:2). 그래서 세상은 날로 악이 창궐하게 되지만 성도들은 대환난이 있기 전 공중들림을 받아 주님의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살전4:16,17, 계19:7-9). 그리고 나서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사탄을 내어 쫓으시고 이 땅을 회복시키시며 친히 성도들과 함께 다스리시는 신정(theocracy) 왕국을 이루시게 된다(롬8:17, 딤후2:12, 계5:10; 20:4,6).

    15. 에필로그(Epilogue)

    영국인들의 창의력(?)은 세계를 흔든다. 비틀스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TV 유아프로그램 ‘텔레토비’와 ‘트위니스’도 영국이 만들어냈다. 또 최근 출판계의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해리 포터’도 영국의 여류 작가 조앤 롤링의 상상력이 빚어냈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 앞서 영국에는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이 있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신앙 여행에서 자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작품’이라고 고백했듯이 이제 ‘반지의 제왕’은 영국인을 위한 신화의 차원을 넘어서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전세계인들에게 하나의 ‘종교(Religion)’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인간의 관점에서 더 멋있게 보이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지만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다(창4:3,5). 왜냐하면 가인의 예배는 아벨처럼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드리는 ‘믿음의 제사’가 아니라 죽은 ‘종교적 제사’였기 때문이다(히11:4; 히9:22; 요1:29).

    사탄은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불못에 자기와 함께 들어가길 원하고 있다(마24:24, 25:41). 따라서 ‘믿음’을 변질시키기 위해 사탄은 ‘종교’라고 하는 인내천(人乃天)의 길들(many ways)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완성자(Finisher)이시며 또한 길(Way)과 진리(Truth)와 생명(Life)되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전세계인들이 ‘반지의 제왕’이란 ‘꾸며낸 이야기(fables)’에 열광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이제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딤전4:1)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어라. 너의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이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들(fables)을 따를 것임이라.”(딤후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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