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성경교리

  • 성경공부
  • 성경교리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성경적 관점에서 본 인간복제조회수 : 1159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5시 47분 35초
  • 1. 들머리

    2004년 2월 서울대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 팀이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인간배아 줄기세포’(Pluripotent Human Embryonic Stem Cell Line)를 만들어내었다는 발표가 있은 이래 ‘인간 복제’에 대한 우려와 논쟁이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특히 황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 성공으로 말미암아 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퇴행성 질환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손상된 세포를 정상세포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증폭되던 가운데 몇 달 전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말을 타다 떨어져 전신마비가 됐던 크리스토퍼 리브가 사망하자 줄기세포 연구 문제는 본격적인 정치적 이슈로도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은 TV 토론회에서 리브의 이름을 거론하며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제한하기로 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이 파킨슨병이나 연소성 당뇨병 및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신랄히 비난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미국인들이 일단은 케리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한 가장 보수적이 되어버린 미국에서는 향후 4년간 표면적으로 인간배아 복제가 금지될 전망이지만 성인세포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연구나 새로운 배아줄기세포주를 이용하는 민간 지원 연구는 이 같은 제한 정책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인간 복제’를 향한 카운트 다운이 잠시라도 멈추어졌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불원한 장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인간 복제’에 대해 성경적 조명을 해봄으로써 함께 이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인 유익을 구해보고자 한다.

    2. 생명(Life)

    인간 복제를 포함한 생명 복제를 논하려면 먼저 생명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바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움직이는 피조물’(the moving creature) 곧 동물(動物)에서 생명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신다(창1:20,3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말씀으로 동물을 창조하셨던 것과 달리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breath of life)을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이 되게 하셨다(창1:26; 2:7). 그래서 아담 이후 역사상 존재하였던 모든 인간들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다(눅3:38).

    그러나 아담과 달리 그 후손들은 아담의 타락에 의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흔적은 갖고 있지만 타락한 아담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유한한 생명(life under death)을 소유하게 되었다(창9:6; 약3:9; 창5: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을 위해 사랑과 은혜에 근거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곧 영적으로 죽은 인간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기쁜 뜻을 뱀(that old serpent)에게 내리신 형벌의 말을 통해 나타내보이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이 구원의 기쁜 소식(gospel)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계12:9;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대감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이하 흠정역)

    이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씨(seed)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모셔들이는 자는 누구든지 ‘부활 생명’(resurrection life) 곧 ‘영원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마1:21; 요1:12; 3:16).

    3. 인본주의(Humanism)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영생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곧 복음(gospel, 天乃人)이 아니라 종교(religion, 人乃天)를 통해 ‘결코 죽지 않으려는’ 시도를 행해온 것이다(창3:4; 갈1:11-14).

    오늘날 기독교와 유대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기원이 되고 있는 바빌론(Babylon)에서 바벨탑을 세우게 된 과정을 보면 확실히 이 인내천(人乃天)의 인본주의(humanism)는 하나님의 방법과는 정반대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아의 홍수 후 사람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에 거하게 되자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려고 바벨이라는 도시와 탑을 세우게 되었다(창1:28; 9:1; 11:2,4,9). 아울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돌 대신 그들의 진보된 기술로 만든 벽돌로써 도시와 탑을 세워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였다(창11:3,4; 고전10:31).

    그런데 이러한 바빌론의 방법론은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지면서 함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창11:8,9; 행11:26).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격’(Godhead)이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art and man's device)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식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에게 팽배해지게 되었다(행17:29).

    그리고 21세기 생명공학의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러한 인본주의의 종교적 방법론은 질병 치료용(therapeutic cloning)이라는 미명을 지닌 ‘인간(배아) 복제’로 대치되어 ‘결코 죽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창3:4).

    이는 황우석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나의 연구의 철학적 배경이 아닌가 싶다”고 하면서 “여성의 난자를 이용해 복제 배아를 만들고, 이것으로 다른 환자의 난치병을 완치시킨다는 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윤회의 완성일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4. 복제(Duplication)

    즉 인간 복제란 영(靈), 혼(魂), 육(肉)으로 구성된 인간에서 단순히 육(肉)만을 복제한다고 하는 개념이 아니다(살전5:23; 히4:12). 이것은 이미 살펴본 대로 너무나도 ‘종교적’이며 ‘영적’인 문제이다.

    특히 같은 생명 복제이면서도 동물의 복제와 인간의 복제가 같을 수 없음은, 즉 인간 복제가 영(靈)적인 문제임은 주님께서 욥(Job)의 나중을 처음보다 더 복되게 하신 구체적 내용들에서 잘 알 수가 있다. 욥기 42장을 보면 주님께서 욥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시고 욥이 이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셨다’(duplicate)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은 칠천에서 만 사천 마리로, 낙타는 삼천에서 육천 마리로, 소는 오백에서 천 겨리로, 암나귀는 오백에서 천 마리로 정확히 두 배가 되었지만 아들은 일곱, 딸은 셋으로 이전과 똑같은 수였다(욥1:2,3; 42:10,12,13).

    즉 동물은 영혼(soul)이 없기 때문에 육(肉)이 죽으면 끝이지만 인간은 영혼(soul)을 소유한 존재이므로 욥의 고난 중 육(肉)이 죽었던 자녀들은 그 혼(魂, soul)이 살아서 낙원(paradise)에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고난 후에 이전과 같은 수의 자녀를 주심으로써 자녀 수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두 배’(duplicate)의 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그렇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완전한 인간일 수 있는) 인간 복제는 복제양 돌리의 경우처럼 결코 단순히 육(肉)만의 복제로 그칠 수 없다. 왜냐 하면 영혼(soul)과 육체를 나눌 수 없는 ‘전인적 존재’(holistic person) 곧 ‘영혼과 몸이 같이 있는 단일체’(psychosomatic unity)로서 인간이 복제되는 것이므로 복제의 대상이 된 세포를 공여(供與)한 사람의 혼(魂, soul)과는 또 다른 혼(魂, soul)이 복제된 육(肉)에 함께 내재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생명 나무(the Tree of Life)

    그렇다면 인간 복제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저 ‘인간의 기술과 고안’(art and man's device)에 이끌려 복제된 인간의 육(肉)에다 영혼(soul)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상호 반응(interaction)을 살펴봄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에덴에 동산을 세우시고 자신이 지은 사람을 거기 두셨으며 또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내어 자라게 하시니 그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9)

    왜 하나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에 이처럼 특별히 두 나무를 두셨다고 언급을 하시는 것일까? 아마도 아담과 이브가 동산 어디에 있어도 이 두 나무는 동산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인데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차이를 이 두 나무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리라. 즉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선과 악의 판단도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간에게 제시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조경(造景)을 그렇게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는 인간에게 ‘자유의지’(freewill, 레22:18,21,23; 22:23; 23:38; 민15:3; 29:39; 신12:6;17; 16:10; 23:23; 대하31:14; 스1:4; 3:5; 7:13,16; 8:28; 시119:108)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을 것’임을 선포하셨다(창2:17). 그래서 만약 아담과 이브가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생명 나무’에로 초청을 하셨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생명 나무’에로 접근을 금(禁)하시게 되었던 것이다(창3:22-24, 참조: the Discovery of Genesis by C. H. Kang & Ethel R. Nelson)

    6. 심판(Judgment)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아담과 이브에겐 ‘고통’(sorrow)의 삶이 시작되었으며 이 세상에는 ‘열역학 제이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태동하게 되었다(창3:16-19).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창3:19하). 그리하여 먼저 영(靈)적으로 죽은 아담은 930세를 고통 가운데 살면서 많은 자손을 낳은 후 그 육(肉)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즉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시고 또한 구원의 방법론을 곧바로 행해보이셨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심판’하셔서 930년(추정)의 간격을 두고 영(靈)과 육(肉)이 죽게 하셨으며 그 사이에는 고통의 순간들을 허락하셨던 것이다(창3:15,21; 고전15:45; 창5:5).

    그렇다면 이제 수정란(受精卵, fertilized ovum)부터 영(靈), 혼(魂), 육(肉)을 지닌 하나의 인간이라고 간주하는 보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미 황우석 교수에 의해 인간 복제는 시작이 된 것이고 따라서 ‘생명 나무’에로의 접근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황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는 착상(着床, implantation) 전의 상태로서 마치 ‘생명 나무’에서 나는 것을 따서 막 입에 넣고 있는 순간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아직은 먹어서 소화흡수를 시켰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준비된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까진 유보가 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난 이후 초래된 하나님의 심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기술과 고안’(art and man's device)에 의해 복제된 인간의 육(肉)에다 영혼(soul)이 허락되어서 그 복제된 인간이 선(善)과 악(惡)을 분별할 수 있게까지 될 경우 하나님께서는 방관치 아니하시고 곧바로 가시적인 심판을 행하실 것임은 자명한 이치이다(신1:39; 사7:15,16).

    7. 대환난(the Great Tribulation)

    그런데 앞으로 곧 다가올 단일세계정부(One World Government) 하에서 ‘인간 복제’와 같은 바이오산업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는 게놈프로젝트 등을 통해 밝혀진 인간의 ‘유전 정보’(image)를 조작한 후 여기에 ‘생명’(life)을 부여하는 인간 복제 기술을 적용시켜 마치 전능자로서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고자 할 것이다(계13:15).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image)에게 생명(life)을 줄 권능이 있어 그 짐승의 형상으로 하여금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도 하더라.”(계13:15)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심판이 곧바로 이 세상에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great tribulation)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주께서 그 날들을 짧게 하지 아니하시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로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하시리라.”(마24:21,22)

    주 예수님께서 ‘인간 복제’와 같은 악(惡)을 행하는 자들을 자신의 임재 가운데서 영존하는 파멸로 징벌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터인데 우리는 바로 그 때가 임박했음을 성경에 제시된 여러 표적들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세태들을 보면서도 깨닫게 된다(살후1:7-9; 마13:39-43; 단12:4; 나2:3,4; 마24:7,12; 딤전4:1-4; 딤후3:1-5; 약5:3; 벧후3:3,4).

    그런데 대환난 기간 중 심지어는 5개월 동안 메뚜기에 의해 고통을 받더라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계9:3-6). 아마도 역설적으로 인간 복제 기술과 같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결과로 인해서겠지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 속에서 차라리 죽음을 갈망한다 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죽음이 멈춰진 때보다 최악의 고통의 시대가 또 있을까? 이것은 마치 죄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일 것이다.

    8. 마무리

    서울대 황우석 교수 팀의 인간배아 복제 연구가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의 ‘올해 10대 연구’ 중 3위로 선정됐다. 사이언스 2004년 12월 17일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화성탐사 로봇의 생명탐사 업적’을 올해 최고의 연구 성과로 소개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발견한 소형 인류 화석’에 이어 세 번째로 황 교수팀의 업적을 선정했는데 이 주목받는 세 가지 연구 모두의 기저에는 성경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진화론과 인본주의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렇다. 비단 사이언스의 평가뿐이랴. 구원받지 못한 인간들에 의한 모든 인본주의의 행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해진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심판에 처해지게 됨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눅6:26; 창3:6,19; 11:4-9).

    이미 생명 나무에서 나는 것을 따기 시작하여 대환난의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자. 아울러 대환난 기간 중 영존하는 복음을 지닌 천사가 외치는 소리에 미리 아멘으로 화답토록 하자.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하더라.”(계14:7)

    * 저자의 단행본 ‘성경으로 세상보기’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