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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천주교의 본질 - 마귀의 간계조회수 : 8176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6시 11분 32초
  • 천주교의 본질 - 마귀의 간계

    ● 마틴 로이드 존스  

    ‘마귀의 간계’를 주제로 한 시리즈 설교 중 하나인 본 설교에서 20세기의 영적 거장 로이드 존스 박사는 로마 카톨릭 시스템의 간교함을 조목조목 잘 보여 준다. 특별히 그는 구원에 대한 천주교 가르침이 성경 말씀 외에 다른 것을 첨가시킨 것으로서 사람의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에 파고 들어와 파멸을 가져옴을 보여 준다. 로이드 존스 박사의 성경적 천주교 분석은 과연 우리가 새로운 태도로 로마 카톨릭 주의를 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 행한 대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Evangelical Press, 136 Rosendale Road, London, SE21 8LG, England)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엡6:11-12).

    현재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이제 크리스천 지성인들은 불가피하게 로마 카톨릭 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 사이에 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 운동이 일어나고 많은 회의가 개최됩니다. 또 이 같은 일을 기뻐하는 자들은 이제 우리 즉 로마 카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들이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어떤 측면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자체가 크리스천 정신을 놀랍게 구현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바로 이 같은 움직임 때문에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앞날을 내다볼 때 이 문제가 긴급한 문제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하게 될 모종의 개연성 때문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현재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될 국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상당수에 달할 것이며 그럴 경우 우리가 계속해서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을 적용하게 되면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 다수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발생될 일들을 예상해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비 카톨릭 국가인 우리나라 - 영국 - 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을 다 감안해 볼 때 우리가 이 같은 입장을 점검해 보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엄청난 사실을 주시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입니다.

    이 일은 싫고 좋고를 떠나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에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하는 어떤 프로테스탄트 단체에 소속된 적도 없고 그 같은 주제로 강연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로마 카톨릭 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기독교의 진리와 위대한 개혁 교리를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항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로마 카톨릭 주의에 항거하는 일이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러 나라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실질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프로테스트들의 부정적인 항거 노력은 별 효과가 없음이 기정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로마 카톨릭 주의가 확산된 원인은 자기가 믿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의 무지함과 무기력함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시간을 들여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으로 인해 저는 이 문제 곧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의 활동들인 ‘마귀의 간계’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찾아내었습니까? 먼저 저는 오늘 개개인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카톨릭 신자이면서 참으로 거듭난 크리스천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카톨릭 신자이면서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보여 드리고자 하는 바는 카톨릭 교도로서 크리스천인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체제 때문에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체제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구원받아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개개인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고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측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치적 측면이 매우 중요할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를 제시해 왔습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체제의 역사적 증거 기록을 알고 있고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고 있으며 그 체제가 스스로를 정치 세력이라 주장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정치적 측면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일반 성도들과 기독교 정치인들이 관여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직 영적인 측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우리 앞에 제시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I. 로마 카톨릭 체제

    자,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살펴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의 체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로마 카톨릭 주의로 알려진 이 체제야말로 ‘마귀의 가장 뛰어난 걸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체제는 기독교의 믿음과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심하게 이탈된 체제이므로 저는 주저하지 않고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과 더불어 이 체제를 ‘배교 체제’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보통 배교를 가리켜 ‘기독교 진리로부터 전적으로 이탈한 것’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어떤 이들은 “글쎄요, 지금 당신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지칭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무척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배교 체제요, 배교 집단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를 분명히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독교의 진리를 부인해서 배교 체제가 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에 무언가를 첨가하고 거기서 이탈하여 배교 체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마귀의 온갖 간교함이 들어오며 마귀의 간계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게 되면 로마 카톨릭 교회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통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통성에는 전혀 문제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나사렛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라고 믿으며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믿으며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으며 예수님의 기적들을 믿으며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분의 대속(代贖) 사역과 그분의 육체적 부활을 믿습니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늘에 앉아 계심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에 관한 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절대적으로 정통입니다. 심지어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보다 훨씬 더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이런 점에서 정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로마 카톨릭 주의의 입장에 대해 두려움을 갖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사역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보더라도 그들의 정통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은혜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중심 교리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신적 영감과 권위를 주장하고 있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이런 면에서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위와 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정통적인 교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교활함이 들어오고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 모든 것에다 ‘저주받아 마땅한 첨가물’ 즉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것들과 사실상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을 첨가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우리가 그들이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결국에는 그 체제의 거짓말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 체제의 교리는 그럴듯한 위조품이며 성경이 기록한 대로 로마 카톨릭 체제는 다름 아닌 계시록의 음녀입니다.

    참으로 이 문제는 지극히 교활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간교함’ 즉 마귀의 간계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간교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반드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문서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체제는 무척 방대하고 그 체제의 간교함은 너무나도 커서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런 사례를 여러 번 접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며 카톨릭 교도가 이혼한 경우 그는 교회로부터 파문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은 신문에서 일부 고매한 카톨릭 교도들의 이혼 소식을 접하고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 반문하곤 합니다.

    글쎄요.  사실 그들은 이런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결코 참된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그들은 무엇이든지 해명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궤변 체계가 이러하며 고도의 논법이 이러하므로 그들은 동시에 모든 방향에서 오는 문제들을 다 대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실제로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이 나라 - 영국 - 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또 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미국의 카톨릭 교회를 살펴보고 남미의 몇몇 라틴 국가들의 카톨릭 교회를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즉시 그것들이 동일한 체제라고 믿기가 매우 어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및 기타 비슷한 조건의 국가들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살펴보고 독일이나 기타 그와 비슷한 국가의 로마 카톨릭 교회와 대조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곧장 그 체제가 국가마다 서로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것이 동일한 로마 카톨릭 체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이지만 사실상 그것은 모두 같은 로마 카톨릭 체제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얼마든지 자기의 색깔과 모습과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 체제는 어디서든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로 변장시키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으며 여러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로마 카톨릭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자기를 변장하는 데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이 나라 - 영국 - 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주 지성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로마 카톨릭 교도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권장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며 또 비지성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고의적으로 미신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나라에서는 천주교가 관용을 베풀고 기꺼이 의견을 들어 주며 토론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며 친근한 모습을 취하지만 다른 후진국에서는 아주 인내하지 못하며 사악하고도 비열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핍박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동일한 로마 카톨릭 교회요, 동일한 체제이며 동일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증거들로 인해 저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마귀의 걸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로마 카톨릭 시스템이라는 저 거대한 교회와 체제는 온갖 간교함과 속임수 가운데서,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온갖 불의의 속임수 가운데서 마귀의 간계를 온 천하에 드러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와 같은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미 성경에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즉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이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예언의 말씀이 이것만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이것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은 이 체제가 부상하여 권력을 장악하게 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기관은 이미 세상의 권력을 장악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계시록 13장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두 번째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또 계시록 17장에서는 일곱 언덕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음녀’로 제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체제는 늘 이러했으며 지금도 이러하고 앞으로도 이러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실제로 이 체제는 이런 방식으로 모든 일을 성취해 왔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기독교회 내로 몰래 기어 들어와 한 때 기독교회 전체를 실질적으로 독점했던 체제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라는 이 체제가 천천히 간교하게 기독교회 속으로 기어 들어와 자기 방식대로 일하면서 기독교 세계를 장악했고 그 결과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제 거의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세상 권력을 장악해 버렸습니다.

    II.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대 오류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과연 어떤 일을 행했을까요? 이 문제를 적절히 다루자면 최소한 몇 달이 걸릴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저의 주장이 진실임을 보여 주는 몇몇 중요한 증거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본 내용을 세 가지 주요 제목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저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어떻게 우상숭배와 미신행위를 도입했는가를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만큼 크게 정죄를 받는 행위는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새긴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형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도들에게 형상들에게 경배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동상과 조형물과 초상화를 숭배합니다. 여러분이 큰 천주교 성당에 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사도 베드로의 동상이 있는데 여러분이 그 동상의 발가락을 자세히 보면 그 발가락 중 하나가 달아서 매끈매끈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 희생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발가락에 입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절하면서 형상과 동상과 유물에게 경배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떤 성인의 유물과 뼛조각과 그가 사용하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특별한 장소에 두고 그것에게 경배하며 그 앞에 절을 합니다. 사실 이것은 전적으로 우상숭배입니다.

    2. 두 번째 커다란 오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체 체제와 가르침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오류들 가운데 가장 끔찍한 오류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로마 카톨릭 교회 자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 교회 자체가 구원을 얻는 데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분명하게 “카톨릭 교회 밖에서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구원을 얻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영혼 사이에 로마 카톨릭 교회를 끼워 넣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스스로에게 그와 같은 위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그 같은 주장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것은 단지 로마 카톨릭 주의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기만이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하며 자기만이 진리를 묘사하고 진리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으며 진리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들은 당연히 그와 정 반대로 모든 신자의 보편적 제사장 체제를 가르치며 각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성령님의 조명 하에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사실을 절대적으로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들은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바르게 말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지속적인 계시’를 받아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가 신약 성경의 종결과 함께 끝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계시가 지속적으로 주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에다 그런 계시들을 첨가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덧붙인 전통(전승 혹은 유전)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지니고 동일한 구속력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취해온 기만의 방식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들을 자기들의 전통에 첨가시켜 왔으며 바로 여기에 이 체제의 간교함이 놓여 있습니다.

    결국 로마 카톨릭 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전체주의가 요구하는 그런 충성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이 체제는 우리가 믿는 것과 행하는 것까지 지배하려 듭니다. 그리고 또한 로마 교회는 자기가 우리의 영혼과 구원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일러 준 대로 그리고 가르쳐 준 대로 절대적으로 철저히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 주의는 획일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시스템은 공산주의가 자기 백성의 혼과 자유를 유린하는 것처럼, 군국주의의 히틀러가 자신의 잔혹한 체제 안에서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인도했던 것처럼 자기에게 속한 신도들의 혼을 절대적으로 얽어매고 있습니다. 실로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전체주의 체제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절대권위를 가진 존재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보여 주는 두 번째 증거 혹은 이 문제로 인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은 로마 교황과 교황에 대한 온갖 가르침입니다. 교황은 보통 ‘그리스도의 대리자’라 일컬어집니다. 그들은 사도적 계승을 주장하면서 교황이 사도 베드로의 영적 직계 후손이며 사도 베드로의 모든 권위를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결코 그들이 주장하는 베드로의 수위권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곁길로 빠지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 즉 성부(Holy Father)라 부르며 극도의 신성 모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아버지는 단 한 분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뿐이 없으므로 땅 위에 있는 어떤 사람도 아버지(Father)라 부르지 말라.” 이들은 이 같은 명백한 말씀을 어기면서 교황을 ‘성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추기경 회의에서 “권위 있게 선언한다.”고 하면서 “교황이 절대무오하다.”고 말합니다. 비록 그들이 1870년에 교황 무오설을 교리로 규정하기 했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그것을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법적으로 그렇게 규정되었기에 그가 선언하는 것들은 절대무오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처럼 되었습니다. 또한 교황의 선언은 그리스도 그분처럼 절대무오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여러분이 보다시피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력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이 말씀하듯 하나님처럼 말하는 이 한 사람 밑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고 있고 그들은 그 앞에서 절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바칠 수 없는 경의와 흠모를 그에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드러난 증거는 사제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제사장 체계’ 즉 ‘만인 제사장 체계’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의 제사장 즉 사제들(priest)은 오직 카톨릭 교회에서 훈련받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성직 수임을 받은 자들로서 ‘사도적 계승’에서 나오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다시 말해 이 구절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다 제사장 왕국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단지 평신도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제사장(사제)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교회에서 성직 수임을 받은 이 사람들만이 사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제들이 기적을 행하는 것과 같은 독특한 권능을 지닌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세례 받는 물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 사제가 세례 때 사용되는 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사제가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즙과 연관된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종종 화체설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제가 주는 빵이 더 이상 그냥 빵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실제 몸으로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빵의 겉모습과 색깔은 그대로지만 그 본질은 변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 화체의 기적이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권능을 소유한 사제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주장은 곧바로 성사(혹은 성례전)에 관한 교리로 이어집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지만 저는 이 중에서 특별히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두 성사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서슴없이 가르칩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러합니다. 사제가 물과 빵과 포도즙에 기적을 일으키면 그로 인해 이것들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되며 이런 기적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같은 것을 가리켜 “ex opere operato”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세례 성사에 적용하자면 물은 더 이상 그냥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된 물이므로 그 물을 어린아이 위에 뿌리면 어린아이 안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혹은 천주교 성찬식의 경우 신도가 빵을 취하여 먹으면 - 주의 만찬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포도즙은 일반 성도들이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 그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이것은 마귀의 간교한 속임수이며 간계입니다. 이 모든 것은 천주교회가 첨가한 것으로서 신약 성경은 이런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제에 대한 언급을 마치기 전에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곧 신도들은 로마 카톨릭 체제의 사제 앞에 나아가 자기의 죄들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카톨릭 교회의 사제가 면죄를 선언하고 죄들의 용서를 베풀 수 있는 권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할당받은 자들 곧 카톨릭 교회의 사제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도들은 성경에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교육을 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거듭난 크리스천들의 교회 안에서는 서로에게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결코 사제들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드러난 증거가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로마 카톨릭 체제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교묘히 기어 들어왔는지 보여 주려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크리스천으로서 그분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지만 카톨릭 교도들은 사제들에게 가서 고백합니다.

    이제 네 번째의 드러난 증거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터무니없는 궤변 중의 하나입니다. 로마 카톨릭 주의의 마리아 숭배는 이제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가리켜 ‘하늘의 여왕’으로 일컬으며 우리 모두가 일차적으로 그녀에게 찾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성당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성모 마리아 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 의해 가려져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사람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훨씬 더 사랑스럽고 부드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위대하고 강력하며 권위가 있으시므로 너무 엄격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며 마리아 숭배를 설명하는 내용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도 무서운 분이시므로 우리가 그분에게 직접 다가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리아가 거기 있는데 그녀는 사랑이 넘치며 더욱이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中保)해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성모 마리아가 우리 영혼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점진적으로 마리아의 권능에 무엇인가를 첨가해 왔습니다. 그들은 주후 1854년에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정식 교리로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무염시태‘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태어나신 것처럼 성모 마리아도 또한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 그들은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리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곧 마리아가 일반 사람처럼 죽어 묻힌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들 예수님처럼 문자 그대로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가르침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세워 주고 그녀를 부각시키며 결국 그리스도를 시야에서 가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에 이어 ‘성인’ 숭배가 추가됩니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성인들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가르침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자, 그들의 가르침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완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으며 일부의 성인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완전한 삶을 산 결과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공덕’을 획득하여 쌓아올리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넘치도록 공덕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나 내가 공덕이 모자라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성인들에게 가서 기도하고 간청해서 그들이 보유한 여분의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여분의 공덕을 나누는 일’이라 하는데 이것은 곧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중보할 수 있고 우리에게 공덕이 부족하면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자기들의 공덕의 여분을 우리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기도하며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더 많은 공덕이 성인들에 의해 추가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이단 교리를 접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반적 체계 및 제도가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교묘히 기어 들어오는지에 대해 간단히 다섯 가지 요점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한 신성을 부여하고 그분의 성육신, 처녀 탄생 및 기타 다른 정통 교리들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첨가를 통해 마귀의 간계가 들어옵니다. 언뜻 보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항상 옳은 것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다 너무나도 잘못된 것들을 첨가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옳은 것 중에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간계입니다.

    3. 이제 저는 세 번째 오류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강탈할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저 위대한 구원의 영광과 완전함과 충분함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첫 번째 예로 그들이 칭의(Justification)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살펴보겠습니다. 루터가 말했듯이 칭의는 교회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며 프로테스탄트를 존재하게 만든 원인으로서 프로테스탄트들의 영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칭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따금씩 우리 프로테스탄트들이 과연 우리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칭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로마 카톨릭 주의가 성장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못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단지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로마 카톨릭 주의는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주의가 전 세계 많은 국가를 휩쓸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칭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죄성을 지닌 인간이라도 선행이나 공적을 쌓을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이 자신의 칭의를 위해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반면에 우리 프로테스탄트들은 “의인은 없는데 하나도 없으며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아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 기록하였듯이 배설물 즉 똥과 같고 그래서 가치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반면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며 사람의 의에도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유익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궁극적으로 사람이 세례를 통해 의롭게 된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는 다른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통해 여러분의 죄가 용서되고 여러분 안에 의가 주입되어 여러분이 의롭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들도 세례로 의롭게 되고 원죄가 말소되며 동시에 이 같은 긍정적인 하나님의 의를 받는다고 로마 교회는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지 않고 세례 받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가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고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 교리를 위험한 이단 교리라고 비난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도들이 모든 것을 교회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과연 이런 체제 하에서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분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사제가 베푸는 세례를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체제 안에서는 모든 일에서 교회와 사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들 없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여러분은 그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으며 반드시 중간에 낀 중보자들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오직 한 중재자가 있으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리아, 교황, 사제 및 모든 고위 성직자와 하위 성직자 이들 모두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가르칩니다. 이처럼 그들은 중대한 칭의 교리에서 거짓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크리스천의 생활 문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강조하기보다 의식과 의례를 준수하는 것을 더 강조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거룩을 추구하고 성화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미사에 참석하고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체제 속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야 할 책임을 강조하거나 신자들로 하여금 성경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그대로 실행하도록 권면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의 규율에 순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각종 의식을 지키고 그들이 하라고 일러 준 대로 행해야 합니다. 특정한 절기에는 금식해야 하며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사제를 찾아가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미사에 참석한 다음에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해도 됩니다. 미사를 통해 죄가 덮어졌고 여러분은 다시 올바르게 교정되었으므로 이제 계속해서 여러분의 길을 가도 됩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룩한 삶 즉 아주 간단한 삶 대신에 여러분은 의식과 의례와 절기를 준수해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또 다른 심각한 오류는 이들이 구원의 확신 교리를 전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의 확신 교리만큼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당신은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십니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합니다.

    이 세상 삶에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느냐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반박하는 내용이며 이것은 어느 면에서 매우 논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로마 카톨릭 체제는 마귀의 것을 확연히 드러납니다. 사실 마귀 외에는 비범한 천재성을 발휘하여 이 모든 일을 성사시킬 만한 존재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여러분의 원죄가 말소되고 여러분은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그렇다면 세례 받은 이후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의 세례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세례 받은 이후에 지은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사역이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덮어 준다고 가르칩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 단 한 번 이루신 사역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결코 그렇지 않으며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세례 받은 이후의 죄 문제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죄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반드시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해야 하며 오직 그만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제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의 종말을 맞게 되면 세례 이후에 지은 죄 문제로 인해 지옥 정죄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때 과연 그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아무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고해성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만이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베풀 수 있으며 그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고해성사를 하면서 사제에게 특이한 고백을 하게 되고 그러면 궁극적으로 면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여러분의 문제를 거의 다 풀어 주었지만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연옥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죄 즉 세례 받은 이후에 지은 죄를 씻어 버리기 위해 우리는 그곳으로 갑니다. 그러면 거기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자, 여전히 땅에 남아 있는 우리의 친척들이 우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면죄부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촛불과 그들이 지불한 돈을 소유하게 됩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내면 낼수록 연옥에서 이러한 죄들이 더 빨리 처리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속히 옮겨갈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 같은 주장을 성경에서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전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금까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추가 계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한 마디로 첨가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 모든 것들에 의해 그분의 공덕이 보충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같은 로마 카톨릭 체제를 배교 집단이라 부른다 해도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

    III. 결론

    이 모든 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무지 속에 갇혀 있으며 미신에 빠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것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가 종종 ‘대륙의 일요일’이라는 생활 방식에 젖어들게 되는데 이 말의 뜻은 여러분이 일요일 아침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만 하면 그 날의 나머지 시간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즉 미사 시간만 끝나면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와 쾌락을 추구하면서 그 날을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체제를 따르면 자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고 또 이렇게 되다 해도 그리 놀랄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중요하지 않으며 교회로부터 그리하지 말라는 호소를 받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교회가 일러 준 대로 순종하고 자기 자신을 교회에게 내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며 궁극적으로 교회가 그들의 영혼을 돌봅니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마침내 그들은 진리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잔인한 핍박을 가해 왔으며 사실 이런 핍박은 로마 카톨릭 체제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를 흘렸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기회만 주어지면 어느 곳에서나 그런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묻고자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설교를 들으면서 시간만 낭비했을까요? 과연 우리가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까요? 다른 방향에서 로마 카톨릭 주의를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가 기뻐해야만 할까요?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이 다 같이 크리스천으로서 공산주의에 맞설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기뻐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까? 여러분이 직면해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 자신은 이에 대해 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로마 카톨릭 체제는 전적으로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한 체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체제는 위조 지폐와 같이 기독교를 위조한 체제이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이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체제는 바로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자주색 옷을 입은 여자’이며 가장 끔찍한 속임수의 극치를 이룬 체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체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체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 체제가 공공연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무신론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은 결코 편견을 지닌 열성분자들이 아니었으며 결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님을 통해 그 눈이 활짝 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루터의 눈이 열렸고 칼빈의 눈이 열렸으며 낙스의 눈이 열렸고 모든 개혁자들의 눈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눈이 열리면서 성경 속에서 이 끔찍한 괴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이 체제를 저주하며 그것에게 경고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래서 목숨을 내걸고 일어서서 이 체제와 맞서 항거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이 괴물 체제가 진리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으로 얻는 칭의와 성경의 절대적이고도 최종적인 권위와 모든 믿는 자들의 제사장 체계 등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성경의 진리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진리를 위해 용감히 죽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엄숙히 경고하려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로마 카톨릭 교회로 접근하려는 갖가지 시도를 기뻐한다면 여러분은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시도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스미스필드(Smithfield) 근처도 가지 말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성경대로 믿는 프로테스탄트들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브래드포드와 나머지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 카톨릭 주의를 부인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화해의 시도를 수용한다면 여러분은 이 프로테스탄트 선구자들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그들이 잘못했어. 그들은 실수를 범했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런 화해론자들의 그럴듯한 논쟁에 말려들지 말기 바랍니다.

    천주교 문제가 더욱 첨예한 문제가 된 것은 무선 통신과 텔레비전 때문입니다. 대중 매체에 이들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매우 예의가 있고 친절하며 훌륭하고 무척이나 융통성 있게 보입니다. 그들은 종종 우리 프로테스탄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해 보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이렇게 천주교의 외양을 극구 칭찬하면서 금방이라도 로마 카톨릭 주의의 미끼를 따먹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금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목사님은 과거만 보려 하고 마치 16세기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지금 목사님은 20세기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로마 카톨릭 주의가 가장 큰 교만을 부리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거만하게 ”로마 카톨릭 교회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로마 카톨릭 주의가 변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 체제가 변한다면 그것은 곧 자기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우리는 절대무오하며 교황은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결코 실수를 할 수 없다.”고 이미 굳게 선포한 바 있습니다.

    만일 로마 카톨릭 주의가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면 그것은 곧 로마 카톨릭 주의의 핵심 주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체제는 자기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항상 동일합니다. 혹시 변한 것이 있다면 상태가 더 나빠진 것뿐입니다. 실로 이 체제는 16세기에 자기가 가르쳤던 것들에다 교황의 절대무오성 같은 교리들을 추가시켰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만일 앞으로 이 땅에 하나의 거대한 세계 교회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 교회가 나머지 다른 교회들을 흡수하고 무지 속에 있는 그들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가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카톨릭 교회야말로 위조품이요, 가짜 교회이며 가장 저질의 매춘부요, 세상에서 가장 마귀적인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체제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마땅히 이것을 거절하고 정죄하고 적극적으로 맞서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로마 카톨릭 교회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에 입각하여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기독교뿐입니다. 듣기 좋게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혹은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라고 선포하는 기독교는 단 1초도 로마 카톨릭 교회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궁극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도들의 숫자만 불려 줄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집회를 하면서 “아, 당신은 로마 카톨릭 신자시군요. 천주교회로 돌아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들에게 경고해야만 합니다. 이 소름끼치는 위조품 교회에 대항해서 맞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가르침과 단 하나의 권능뿐입니다. 그것은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신약 성경의 진리를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바르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도 동일한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루터는 단지 피상적인 복음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신학자였으며 칼빈도 그러했고 개혁자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진리의 체계를 제시하고 상세히 가르쳐 줄 때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타격을 받고 그 체제 전체가 뒤흔들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현재의 카톨릭/프로테스탄트 교류 및 화해 상황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 중 이것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의 책임은 실로 막중합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알아야 하며 진리를 이해해야 하고 거짓된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은 거짓 체제에 속아넘어가는 순진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여러분과 저의 책임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고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똑바로 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자격이 있으며 성령님의 복을 간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위에 서고 성경의 진리 위에 설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영께서 강력한 부흥과 함께 우리에게 임하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오직 이 같이 강력한 부흥만이 이 가증한 체제 곧 자기를 로마 카톨릭 교회라 부르는 저 큰 음녀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이제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현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게 하시며 너무 늦기 전에 우리를 깨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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