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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하나님을 믿는 이유조회수 : 1361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7시 3분 44초
  • 왜 하나님을 믿는가?

    사람이 세상을 보고서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서 어떻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 에이브라함 링컨

     

    핵심내용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네 가지 타탕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정글 속의 피라미드

    내가 고고학자가 되어 일단의 조수들의 데리고 과테말라의 정글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빽빽한 초목을 칼로 베어 겨우겨우 길을 열어 가면서 마야 유적이 있다고 확신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글의 뜨거운 열기와 뱀과 모기와 온갖 벌레들이 진로를 방해한다. 눈은 따끔거리고 발바닥은 타는 듯이 뜨겁고 온몸의 근육이 쑤신다. 그래도 우리는 백 년도 더 된 덩굴을 헤치고 정글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어느 지점에 이르자 마치 정글 바닥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녹색 다이아몬드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처럼 열대의 덤불에 덮인 거대한 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야 유적이 있을 거라고 내가 확신했던 지점이 분명하다. 우리는 즉시 캠프를 설치하고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탐사와 발굴이 진행된다. 이제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마야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탐사를 시작하기 얼마 전, 나는 비행기를 타고 과테말라 정글상공을 날다가 바닥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진 둔덕을 발견했다. 순간 나는 어떤 지적 존재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은 바닥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둔덕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시 그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기록하여 탐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려 하는 것일까? 중앙아메리카 정글 한가운데 고대 마야 문명의 유적지가 있을 것이라고 내가 믿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목적과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이면에 ‘지적 존재’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우주는 자기 자신이 목적을 갖고 있음과 그 이면에 지적 존재가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네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의 존재를 해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유일한 ‘원인’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말했다.

     

    “집마다 지은 자가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히3:4).

     

    우리는 중앙아메리카 정글 한가운데에 바닥이 정사각형으로 된 둔덕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야 한다. 우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주는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론은 지구의 생명체에 대해 하나님을 배제한 채 설명하지만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두 가지 입장을 선택 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견해를 거부한다. 다른 하나는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므로 ‘믿음을 요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보다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것이 훨씬 더 큰 믿음을 요구하는 것 같다.

     

    둘째 이유: 우주의 질서와 목적은 그 이면에 지적인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롬1:20).

     

    우주는 분명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우주는 분명한 질서와 계획과 목적을 지닌다. 이것은 책상 위에 시계 부속이 난잡하게 어질러진 상태와 그 부속을 짜 맞추어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난잡하게 어질러진 시계 부속들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것과 어떻게 그것이 정교하고도 절묘하게 조립되어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우주는 우리 눈앞에 존재할 뿐 아니라 정밀한 시계처럼 움직인다. 과테말라 정글의 정사각형 둔덕은 마야 문명을 암시한다. 우주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소리친다.

     

    셋째 이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바울은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롬2:15).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기원에 대해 알기를 갈망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기를 갈망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알기를 갈망한다. 인간은 다른 짐승보다 월등하다. 인간은 다른 짐승보다 지적이다. 양심을 갖고 있으며 영적인 세계를 느낀다. 역사의 모든 문명은 종교를 갖고 있다. 짐승의 세계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

     

    넷째 이유: 성경은 자연과 인간을 정확히 보여 준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밣기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진리라면 과학과 모순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결코 과학과 모순되지 않는다. 사실 현대 과학의 토대가 된 것은 성경이다. 우주는 의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이, 우주는 예측 가능한 법칙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이 우주를 연구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성경은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이러한 확신을 제공한다.

     
    시편 19편 1절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정교하게 설계하심으로써 그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20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연과 우리의 내적인 직관적인 인식력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셨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험이 사실을 입증한다. 밤하늘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별들을 보면 직관적인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하나님이 계신 게 분명해!’

    물질적인 것들에 관한 성경의 언급은 정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것들에 관한 성경의 언급도 정확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히11:6).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할’ 문제가 아니라 ‘믿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시험관이나 컴퓨터 자료를 조사하는 실험실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지만 자연과 역사의 법정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역사의 법정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들, 이성적인 의심을 압도할 증거들, 방자한 인간의 마음을 설득하여 이성의 의심을 떨치도록 하는 증거들이 충분히 널려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지 않을 이유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만한 증거는 충분지 않다. 따라서 불신은 곧 또 하나의 믿음이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믿을 만한 근거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만한 논리적, 철학적 근거들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진화론이 우주의 복잡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강력한 물질적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현대의 유능한 과학자 가운데에도 진화론에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에 반해, 진화론이 우주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유일한 대안인 창조론이 자기 입에 맞지 않아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이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불신 과학자의 고백: “나는 불가능한 것을 믿는다!”

     

    하버드 대학 교수로 1967년에 생리학/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조지 왈드(George Wald)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생명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자발적인 발생 곧 진화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발생론은 이미 120년 전에 파스퇴르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불신임을 받았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한 가지 논리적 귀결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로 생명이 발생했다는 결론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결론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George Wald, ‘The Origin of Life’, Scientific American, May 1954)

     

    결론

    당신은 무엇을 믿든지 믿음으로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믿음으로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믿음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내가 믿음을 갖고 있나,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진화론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가 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가?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의 존재에 대한, 그 정교함과 광대함과 목적과 설계에 대한, 인간의 독특함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진리(맥스 앤더스, 지음, 규장 출판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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