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간의 침묵기
구약성경이 끝난 뒤 곧 바로 신약성경이 시작되지 않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그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 기간에 대해 살펴보아야만 할 필요를 느낀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로부터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까지의 기간은 400년으로, 보통 이 기간은 '침묵기'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으며 세속 역사가들이 이런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의 역사에 대한 가장 유명한 기록은 주후 37-100년 사이에 살았던 요세프스(Flavius Josephus)의 기록이다. 요세프스는 유다인 역사가로 주후 66-67년 사이에 로마제국에 대항하며 저항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타이투스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그는 로마로 끌려가 베스파시안, 타이투스, 도미티안 황제의 보호를 받았다. 그의 유명한 저술로는 마카비 시대부터 주후 73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일곱 권으로 기록된 「유다 전쟁사」(The Jewish War)와 유다인들의 기원으로부터 주후 66년의 전쟁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스무 권으로 기록된 「유다인들의 고대 역사」(Jewish Antiquities)가 있다.
I. 세계의 권력
A. 페르시아 왕국(주전 333년까지 지속됨)
1. 몇몇 외경이 기록됨.
2. 유다인들이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옴.
3. 성전이 예배의 중심이 됨.
4. 신정 정치, 제사장, 율법 체제.
B. 그리스 왕국(주전 333-167년)
1.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이김.
2. 알렉산더가 유다인들에게 자비를 베풂.
3. 유다인들이 흩어져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임.
4. 주전 323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의 왕국은 네 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됨.
5. 네 왕국과 그 통치자들은 다음과 같음.
a. 이집트 - 프톨레미
b. 시리아 - 셀루시드
c. 마케도니아 - 리시마쿠스
d. 소아시아 - 카산데르
* 이집트와 시리아 왕국은 서로를 대적하며 전쟁을 함.
6. 이집트와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전쟁을 벌였으며, 유다인들은 이집트로 내려가 피난처를 찾기 시작함.
7. 소위 「70인역」이라 불리는 구약성경 역본의 전통에 따르면, 이집트의 프톨레미 2세 필라데프스가 명령을 내려 70명의 유다인들에게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했다고 한다.
주의 사항: 사실 이 같은 전통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신비의 「70인역」을 사용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현존하는 「70인역」 사본들은 한결같이 외경을 포함하고 있다.
8. 그 당시 가장 많이 쓰인 언어는 다음과 같다.
a. 그리스어
b. 아람어(히브리 방언)
C. 마카비 시대(주전 167-63년)
1.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주전 175-164년 사이에 시리아의 왕으로 통치함.
2. 그의 정책은 자신의 왕국 전체를 그리스화 시키는 것이었으며, 그의 정책에 반대한 유일한 그룹은 유다인들이었음.
3. 신실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의 형제인 야손은 안티오쿠스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유다인들을 그리스화 시키는 조건으로 자기를 대제사장에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함.
4. 안티오쿠스가 칙령을 내리자 야손이 이를 유다인들에게 가져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음.
a. 그의 왕국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같은 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함.
b. 유다인들의 축제, 안식일, 희생, 할례 등을 지키거나 행하는 것을 금함.
5. 이 같은 칙령의 위협으로 인해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리아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유다인들을 대적함.
6. 등록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중에는 요아립의 계통에서 나온 마타디아라는 이름의 나이 많은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와 및 그의 다섯 아들은 예루살렘 북쪽 산에 있는 자기 선조들의 영토로 들어갔음.
7. 안티오쿠스의 밀사들은 그를 찾아내어 이교도들의 제단에서 희생물을 바치라고 명령함.
a. 마타디아는 희생물을 바치려 한 배도한 제사장들을 즉각적으로 죽임.
b. 또 그는 왕의 사자들을 죽이고 가증한 제단을 무너뜨림.
8. 백성들은 마타디아의 지도를 받으며 대항하기 시작했고 반역의 세력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나이가 많은 마타디아는 이 일이 있은 뒤 일년이 지나 죽었고, 그의 아들들이 그의 일을 계속해서 수행함.
9. 그의 아들들은 마카비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장남의 이름이 유다 마카비였기 때문이었음.
10. 10,000여 명의 유다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두 번씩이나 안티오쿠스의 군대를 패주시킴; 한번은 50,000명, 또 한 번은 65,000명.
11. 유다 마카비는 주전 165년에 다시 성전에서의 예배를 시작함.
12. 마카비들은 78년 동안 권력을 행사함.
D. 로마제국(주전63∼?)
1. 폼페이 대제가 주전 63년에 팔레스타인을 정복함.
2. 주전 40년에 로마인들은 헤롯 대왕을 왕으로 세웠는데, 그는 주전 37년에 유대 지방의 유일한 왕이 됨.
a. 헤롯은 에돔 사람임.
주의 사항: 에돔 족속은 페트라에서 내쫓김을 당해 남부 유대 지방에 정착했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이두매아(에돔)라고 불렀다. 이 에돔 족속은 그 뒤 50년이 지나 히르카누스에 의해 정복을 당해 할례를 강요받았고, 유다인들의 집회의식을 지킬 것을 강요받았다(신 23:7).
b. 창세기 27장 40절의 에언이 헤롯 대왕을 통해 이루어짐.
3. 헤롯 대왕은 주전 4∼5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며, 그의 통치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
Ⅱ. 변화된 것과 새로 나온 것
신약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서 곧바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집단 등을 접하게 되는데, 이들은 이 400년의 '침묵기'에 생긴 것이다.
A. 제사장
1. 복음서에는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12번 나옴.
2. 대제사장 혹은 수제사장이라는 단어가 84번 나옴.
3. 모세 당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장 직무의 기능은 종교적인 것이었음.
4.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뒤에 유다인들의 시민권리는 제사장들의 손으로 넘어감.
B. 레위인
1. 사복음서에서 단 2번만 나옴 - 눅 10:32, 요 1:19.
C. 서기관
1. 구약성경을 공부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
2. 준비된 서기관은 모세 오경을 외움.
3. 아주 전통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
4. 율법사라고도 일컬음을 받음.
D. 다스리는 자(치리자, 관원)
1. 여러 종류의 관리를 지칭함.
2. 용례 :
a. 연회장 - 요2:8,9
b. 산헤드린 공회 회원 - 요3:1
c. 주치리자 - 요12:42
d. 행정관 - 눅12:58
E. 바리새인
1. 이 명칭은 "분리된 자"라는 뜻임.
2. 기록된 율법을 옹호하며 지키는 사람들.
3. 보수적임.
4. 정통이었으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음.
F. 사두개인
1. 유다인들의 귀족으로 정치 집단임.
2. 종교적 측면에서 현대주의/자유주의자들임.
a. 영의 존재를 부인함.
b. 부활을 부인함.
c. 혼의 불멸을 부인함.
주의사항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마카비 시대에 생긴 그룹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음.
G. 헤롯당원
1. 정치집단
2. 이 이름은 로마정부의 권세를 위임받은 헤롯에게서 유래됨.
3. 정치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반대함.
H. 갈리리 사람들
1. 이 집단은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일어나 모든 외국 세력에 대항했음.
2. 정치적으로 광적인 사람들임.
I. 사마리아 사람들
1. 주전 722년에 아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다시 사람이 거하게 하도록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민족사이에 생긴 혼혈민족.
2. 아시리아의 에살하돈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제사장을 보내었으며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으나, 그들은 주 하나님도 두려워 하고 동시에 자기들의 신에게도 경배를 드림.
3. 주전 535년, 두 번째 성전을 지을 때에 이들은 자기들도 이 일을 돕겠다고 했으나 유다인들이 이 같은 제안을 거부함.
4.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 간에는 늘 적대심이 존재함.
J.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1.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3번 나옴 - 요7:35 ; 약1:1 ; 벧전1:1.
2. 이 단어는 밖으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포로 시절에는 그 규모가 매우 컸으며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남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그 규모가 작음.
K. 개종자
1. 원래는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을 뜻함.
L. 회당
1. 유다인들이 모이는 장소.
2. 이 기관의 유래는 바빌론 포로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감.
3. 성전 밖에서나 성전이 없는 경우에 유다인들은 작은 그룹으로 모였으며, 이런 방식을 통해 자기들의 종교적 삶을 온전하게 유지함.
M. 「70인역」
먼저 「70인역」에 대한 기존의 추측부터 정의해 보도록 하자.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공식적인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고자 한 계획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The Letter of Aristeas)라 불리는 한 고문서에 드러나 있는데, 이 편지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유다인들의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추측컨대 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인의 유다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이루어진 가상의 장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며, 번역의 추측 연대는 대략 주전 250년 경인데, 이 시기는 주전 397년 구약 성경의 마감 시기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인 주전 4-5년 경 사이에 있었던 약 400년간의 침묵기 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번역본은 「셉튜아진트」(Septuagint), 혹은 「70 장로들의 번역본」으로 알려져 왔으며, L=50, X=10, X=10, 합하면 70이라는 값을 지닌 로마(?) 숫자로 표시된다. 그런데 72명이 번역했다는 이 번역본을 왜 '칠십이인역'이라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소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이 서신이 이 불가사의한 번역본 즉 「70인역」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물인데, 그 이유는 주전 250년 혹은 그 전후로 구약 성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확실하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유다 역사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일을 고려했다거나 진행시켰다는 기록은 전무한다.
이런 전설적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조하라는 압력이 오자 학자들은 급히 주후 200년 경 오리겐의 「육단 성경」(헥사플라, Hexapla)을 그 증거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70인역」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때보다 거의 45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며, 신약 성경이 완성된 후 100년도 훨씬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두 번째 단은 오리겐 자신(결코 72인의 유다 학자의 번역이 아닌)이 그리스어로 구약을 번역한 것이며, 그밖에도 '벨과 용', '유디스서', '토비트서'와 같은 위조된 책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하는 다른 외경들조차 포함시키고 있다.
「70인역」의 허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리겐이 「헥사플라」의 제5단에다 직접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단지 「70인역」을 복사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려 들 것인데, 이런 주장이 정당하지 않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빈틈없는 유다 학자 72인이 외경들을 - 심지어 그것들이 쓰여지기도 전에 - 자기들의 작품 속에 첨가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필사본이 하나도 없습니까? 있긴 합니다. 하나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라일랜드의 파피루스 458번(the Ryland's Papyrus, #458)인데, B.C.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명기 23-28장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제 「70인역」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1.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인정한 적이 없다. 성경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2. 모든 유다인들은 성경기록을 취급하는 공식 책임자가 신명기 17:18; 31:24,25,26과 말라기 2:7에서 입증되듯이 레위 지파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나머지 11 지파의 어느 지파도 감히 그런 금지된 계획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다인들이 그들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유다인들은 할례, 안식일 성수, 깨끗케 하는 세세한 법조항들과 고유의 여러 가지 법들을 고유한 전통으로 삼아 왔다. 이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언어 계승의 열심에서도 이방 민족과 구별되고자 하는 동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녀들에게 히브리어 외에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이디오피아의 팔라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유다인들의 언어를 이어받았다는 증거로서 히브리어를 간직하고자 힘쓰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나라의 여타 부족들과 구별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즉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민족이 자기들의 유산인 히브리어를 버리면서까지 지극히 거룩한 재산인 성경을 이방인의 언어로 기꺼이 번역하려 했다는 학자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모순된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외경을 포함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적이 없다.
5.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자체에서 발견된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 편지가 아리스테아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아리스테아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첫 번째 난제는, 각 지파에서 대표적인 학자 6명씩을 선발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열 두 지파의 위치를 알아내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생활을 통해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 12 지파의 경계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끝으로 신학자들이 이같이 「70인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보고서도 이 거짓된 「70인역」을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슬프지만 아주 단순한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학문연구 수단으로 충분히 정통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은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따라서 만일 그리스어로 된 구약의 공식 번역본이 존재했다면, 성경 비평가들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되며, 단 번에 성경비평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런 얄팍한 근거를 토대로 거짓된 「70인역」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은 단지 교만과 탐욕에 기초를 둔 행위일 뿐이다.
N. 산헤드린
1. 공회라고도 불림.
2. 공회는 모세가 구성한 70명의 상담자들에게서 유래됨.
3. 구성원은 다음과 같음 ;
a. 수제사장이나 24개 제사장 계열의 수장들.
b. 서기관이나 율법사.
c. 일반사람을 대표하는 장로들.
d. 공회에는 70명이나 72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대제사장이 의장을 맡았고, 이들의 임기는 종신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