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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은사주의 질문(4): 방언은 성경적인가? 조회수 : 1060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5시 24분 20초
  • 은사주의 질문(4): 방언은 성경적인가?      

    ● 데이빗 가우어     

    이 글은‘비은사주의 크리스천이 은사주의에 대해 묻는 12가지 질문’에 대해 가우어(David M. Gower)가 답변한 것으로 미국 ‘Regular Baptist Press’에서 나온 소책자를 저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질문 4: 고린도전서 14장 39절은 분명히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 당신은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본인 스스로 방언을 하지 않고 심지어 오늘날 방언이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런 은사주의의 관행을 교회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단호한 입장 때문에 우리는 옹졸하다거나 사랑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좀 더 심각하게는 이것이 고린도전서 14장 39절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타언어(방언)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고전13:8). 단지 방언이 언제 그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방언이 언제 그칠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먼저 고전13:8-12를 잘 살펴보십시오. 여기에는 세 가지 임시적인 복이 나옵니다: 대언, 방언, 지식. 분명히 대언(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대신 말하는 것)도 없어지고 지식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두 동사의 성격상 - 즉 ‘없어지다’(done away)와 ‘사라지다’(vanish away) - 대언과 지식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끝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부의 힘이란 바로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오면 대언과 지식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완전한 것’을 신약 성경의 완성으로 보기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봅니다. 만일 그 ‘완전한 것’이 신약 성경이라면 대언과 지식은 오래 전에 끝났습니다. 9절은 부분적으로 알고 대언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10절은 완전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것이란 틀림없이 부분적인 것의 완성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것은 지식과 대언의 완성 혹은 완성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또 다른 임시 복인 방언(타언어)에 대해 살펴봅시다. 방언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동사인 ‘그치다’의 성격상 우리는 방언이 앞에 나온 대언이나 지식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끝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방언(타언어)이란 단어는 고린도전서 13장 9절과 그 이후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 볼 때 방언은 스스로 그치게 될 것이며 심지어 완전한 것이 임하므로 대언과 지식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것을 신약 성경의 완성으로 이해한다면 방언은 그 이전에 그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완전한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여전히 방언이 그분의 재림 때가 아니라 재림 이전에 그칠 것이라는 사실에 봉착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1-22절은 방언이 종결된 시기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인용구인 고전14:21을 보면 외국어 방언의 표적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심판의 개념이 고린도서에도 적용된다면 방언의 은사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표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말해 주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주후 70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진노를 부으셨으며 이때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방언은 주후 70년에 지식과 대언은 주후 90년에 각각의 목적을 다 이루고 그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방언이 2세기나 그 이후의 정통 교회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압니다. 그러나 몇몇 이단들은 계속해서 방언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나 집사의 자격에도 방언은 없습니다(딤전3장; 딛1장). 만일 방언이 교회 시대 전체에 필요한 은사였다면 분명 본을 보이며 양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마땅히 이 은사를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방언을 주장하며 이에 대해 설교하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자신은 그리하지 않거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타언어(방언)들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말라.”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방언이 당시 고린도 사람들에게 유효했고 실제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방언 전부가 금지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런 경고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방언은 그친 상태에 있습니다. 오늘날 방언은 과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를 금하신 명령(마10:5-6) 만큼이나 교회와 무관한 사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방언의 은사가 그쳤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 목적 즉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표적이라는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는 성경적인 이유에서 우리는 은사주의 관행을 우리 교회 안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방언을 하는 사람과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 같은 교회에 있게 되면 늘 불화가 일어납니다. 게다가 오늘날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실행의 규정을 거의 지키지 않은 채 행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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