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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은사주의 질문(5): 왜 방언을 하지 않는가? 조회수 : 1078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5시 26분 55초
  • 은사주의 질문(5): 왜 방언을 하지 않는가?      

    ● 데이빗 가우어     

    이 글은‘비은사주의 크리스천이 은사주의에 대해 묻는 12가지 질문’에 대해 가우어(David M. Gower)가 답변한 것으로 미국 ‘Regular Baptist Press’에서 나온 소책자를 저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질문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데(히 13:8) 왜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방언을 하지 않습니까?

    은사주의자들은 보통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일을 항상 같은 방식으로 하신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즉, 어제(사도 시대) 하신 방식을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유지하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도 시대에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은사를 주실 것이고 이 일은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과연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코 변경하지 않으실 이 위대한 진리를 간과한 것일까요?

    은사주의자들이 히브리서 13장 8절을 해석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명백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방언의 은사가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것처럼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방언이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13:8). 그 정확한 시기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불일치가 있을 수 있지만 방언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바입니다. 성경이 분명 방언을 일시적인 것으로 말하기에 방언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은사주의자들이 ‘어제’를 사도 시대로만 국한한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 모세, 왕과 대언자(선지자)들이 살았던 시대도 될 수 있습니다. ‘어제’가 오순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거나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이 구절을 방언의 은사와 연관 지으려는 사람은 자연히 ‘어제’에서 구약을 제외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 혹은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도 방언의 은사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역사를 보더라도 방언의 은사는 오순절 이전에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대답을 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제’가 그렇게 최근에 시작되었다면 ‘영원’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겠네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어제의 시작을 사도행전으로 보고 그 이전의 인류 역사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은사주의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봅시다. 우선 히브리서 13장 8절의 바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코 변치 않으신다는 것을 말할 뿐이며 그분과 관련된 어떤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를 정확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은사주의자들은 그분의 활동이나 역사하시는 방식조차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기초하여 그들은 방언의 은사도 오늘날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운행 방식이 변한다는 것은 성경을 보면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변화 정도가 심해 다른 직무(administration)를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심각하게 차이가 나는 직무를 일컬어 우리는 보통 ‘세대’(dispensation) 혹은 ‘경륜’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오순절 이전에는 방언의 은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하나님은 방언의 은사를 주셨고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이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식이나 인간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늘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항상 동일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히브리서 13장 8절을 그 문맥에 비추어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시대의 레위의 제사장 체계보다 월등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의 제사장 체계를 바꾸셨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히브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유대교의 ‘레위 제사장 체계’로 되돌아갈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변화와 일관성을 모두 발견합니다. 좋은 변화는 하나님께서 옛 언약(구약) 대신에 새롭고 좋은 언약(신약)을 가져오셨다는 것이고 나쁜 변화는 유대인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일관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도라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3장 7-9절 말씀은 히브리서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깊이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에 끌려 다니지 말라.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선한 일이요,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 음식에 전념하는 자들에게 음식이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히 13:7-9)

    7절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살아생전에 그리스도께 신실했던 그들의 이전 지도자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비록 이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다음 세대가 따라야 할 본을 남기고 갔습니다. 8절은 히브리인들이 항상 신실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변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선배들은 갔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계십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들도 계속 신실해야 하는 동일한 근거와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9절은 적용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결코 그리스도에게서 떠나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율법과 복음을 합하려는 시도가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거짓된 교리들을 피하고 참된 은혜의 교리에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은혜가 그들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견고하게 해 줄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특정 음식(희생으로 성별된 음식물)을 먹는 의식이 히브리인들의 마음을 세워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경영 방식을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즉, 성전, 레위인들의 의식, 레위의 제사장 체계는 더 이상 하나님의 활동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끝내신 것을 지속하는 것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바뀌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의 인격, 본질, 위치는 동일합니다. 또한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불변합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변치 않으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변치 않는다는 것이 그분의 인격과 본질에 관련된 것이지 그분의 역사와 경영 방식까지 똑같다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히브리서 13장 8절이 방언의 은사가 지속됨을 보증하는 구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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