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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은사주의 질문(6): 방언은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조회수 : 1207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5시 31분 48초
  • 은사주의 질문(6): 방언은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 데이빗 가우어     

    이 글은‘비은사주의 크리스천이 은사주의에 대해 묻는 12가지 질문’에 대해 가우어(David M. Gower)가 답변한 것으로 미국 ‘Regular Baptist Press’에서 나온 소책자를 저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질문 6: 당신은 방언이 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까?

    저명한 언어학자들이 조심스럽게 연구한 결과 현재 은사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방언은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논리적인 구조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즉, 거의 항상 영문 모를 말뿐이라는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방언의 은사가 화자가 모르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거나 흔히 하늘의 언어, 천사의 언어라고 말하는 황홀경의 소리들을 말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방언(타언어)으로 말한 예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나와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흔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의 은사는 외국어였고 고린도전서의 경우는 하늘의 언어였다고 주장합니다. 또 비은사주의자들은 방언의 은사가 늘 사람의 언어였고 따라서 은사주의자들이 행하는 대부분의 언사(utterance)는 하나님의 은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 그럼 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검증해 보도록 하지요.

    성경에서 ‘방언’(타언어:tongues)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그리스 원어는 ‘글로싸’(glossa)이며 이것은 말 그대로 ‘사람의 입 안에 있는 혀; 사람이 구사한 언어; 특별한 지역의 사투리, 즉 방언; 이해할 수 없는 말’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정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신 ‘글로싸’(glossa)가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 각각에 해당되는 바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으로 말한 예가 사도행전에서는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2장 4-11절의 오순절 사건인데 여기서 4절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령님을 기다린 사람들이 성령님이 임하시매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 것을 보여 줍니다. 6, 8절을 보면 이 다른 언어가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명절날 여러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을 포함한 군중들이 놀란 것은 ‘각 사람마다 자기 나라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은 물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는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바로 이 구절 다음에 그들 각 사람이 태어난 곳의 명단이 등장하며 그 각 지역은 곧 그 지역의 언어를 보여 줍니다. 바로 이 사건은 사도행전의 나머지가 어떻게 전개될지 보여 줍니다.

    두 번째는 10장 44-48절에 나오는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때 일어난 기적도 사도행전 2장과 동일하게 “타언어로 말하다.”로 표현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이 단어가 사도행전 2장의 경우처럼 사람의 언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성령님의 선물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셨다는 언급이 있습니다(45절).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며 그 일을 자신이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오순절 사건과 비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같이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행11:15, 17). 베드로가 우선적으로 언급한 것도 성령님이라는 인격이지 방언의 나타남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라는 분은 그분이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는 한 인간의 지각으로는 감지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나타났던 동일한 것(방언)을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동일한 선물을 주셨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도행전 19장 1-7절입니다. 여기서 일어난 기적도 “그들이 타언어로 말하더라.”로 표현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그 말이 사도행전 2장이나 10장의 경우처럼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도 방언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적인 논쟁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도행전에서 나온 방언이 사람의 언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리라고 봅니다. 반면에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하늘의 언어나 혹은 천사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본문은 사도행전처럼 ‘분명히 이것이다’라고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방언을 인간의 언어라고 생각하고 그 본문을 읽어 보아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의 관계를 고려해 본다면 아무래도 인간의 언어라는 결론에 더 가깝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고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바울과 누가는 가까운 동역자요, 친구 사이였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전도 여행 때 그와 두루 동행했습니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글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순서에 따르면 사도행전이 고린도전서보다 먼저 앞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도행전은 고린도전서보다 약 5년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며 거기에 바울이 이미 사용했던 방언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때는 틀림없이 동일한 선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기에 누가는 그 선물이 인간의 언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바울은 굳이 방언의 본질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독자들이 이미 그 선물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과 누가가 동역자였다는 것과 바울의 기록이 우선한다는 것, 누가가 ‘알지 못하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묘사할 때 바울이 쓴 것과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 등과 같은 사실들은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해 줍니다. ‘분명한 소리’(distinct sounds, 고전14:7-11)라는 말의 개념도 14장 21절의 인용과 14장 22절의 설명을 볼 때 인간의 언어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말한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tongues of men and of angels, 고전13:1)도 문장이 보여 주는 대로 하나의 가정 하에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자기가 ‘사람들의 언어들’(tongues of men)을 한다고 했고(14:18) 실제로 모든 지식과 믿음을 가지며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었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천사의 언어들을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언어를 학습 과정이 없이도 구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은 고린도전서의 방언을 ‘알지 못하는 언어’(unknown tongue)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의 방언은 어떤 종류의 인간의 언어도 아니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방언의 은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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