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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은사주의 질문(9): 지금도 병고침의 은사가 있는가? 조회수 : 1218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5시 43분 58초
  • 은사주의 질문(9): 지금도 병고침의 은사가 있는가?      

    ● 데이빗 가우어     

    이 글은‘비은사주의 크리스천이 은사주의에 대해 묻는 12가지 질문’에 대해 가우어(David M. Gower)가 답변한 것으로 미국 ‘Regular Baptist Press’에서 나온 소책자를 저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질문 9: 왜 병 고침의 은사가 오늘날에는 맞지 않습니까?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가 건강한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모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탈 없이 잘 지내도록 몇몇 사람에게 치유(병 고침)의 은사를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을 공부해 보면 건강이 나쁜 것이 때로는 어느 특정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고후12:7-10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예).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치유의 은사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시는 일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치유의 은사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신체적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도들, 그리고 사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수만이 이런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들은 온갖 종류의 병자들에게 나아가 병자들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몸 전체를 완전히 고치기도 했습니다(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

    사실 치유의 은사는 하나님에게 온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자가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기적적인 능력의 일부입니다(히2:3-4). 그렇습니다. 치유 받은 자는 고통과 불편함을 면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치유의 은사도 다른 기적들처럼 성경 역사의 어느 특정한 때에 일어난 표적이었습니다. 치유하는 자(healer)가 땅에 걸어 다닌 시간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극히 짧았습니다. 심지어 그때에도 하나님을 믿는 참 신자들이 병이 났을 때 찾아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치유의 은사를 가진 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그 당시에도 치유의 은사를 받은 자가 매우 드물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형제요, 동역자요, 동료 군사인’ 에바브라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빌2:25-27). 바울은 선교 여행 때 자기와 동행한 드로비모를 고치지 못하고 아픈 채로 밀레도에 남겨 두었습니다(딤후4:20). 바울은 자기의 후계자 디모데를 고칠 수 없었고 대신 일반적인 처방을 디모데에게 권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고후12:7-10).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먼저 이런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적절한 약을 사용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원하는 것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치유의 은사가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사람을 신뢰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것이지 결코 그리스도인들의 건강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나 다른 성도들이 처한 상황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본이 됩니다. 즉, 아프면 기도하고 의학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야고보서 5장 14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아픈 그리스도인이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부탁하고 처방으로 기름을 부을 것을 가르칩니다. 이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하나의 의학적인 처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기름을 바른다는 의미로 쓰인 그리스어가 ‘크리오’(chrio) - 즉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 받은 자’에서 나온 단어로 거룩한 기름 부음을 뜻함 - 가 아니라 ‘알레이파오’(aleipho) - 즉 몸을 문지르는 것 - 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가 치유의 은사를 바라야 한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만일 치유의 은사가 교회 시대에도 계속 된다면 야고보서 5장 14절 말씀은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이 확실하게 고침을 받는 것은 실로 내세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롬8:23).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몸을 구속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께서 영화로운 몸을 주셔서 죄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날 치유를 잘한다고 크게 소문이 난 소위 크리스천 치유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치유사들이 고친다는 질환들은 실제 병이기는 하지만 대개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거나 외적인 영양에 의해 악화된 것입니다. 희생자들은 단지 생각을 달리함으로써 - 가령 치유함을 받았으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 상태가 완화되는 체험을 합니다. 몇몇 질환은 순전히 상상에서 나온 것인데 이런 것들은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치료’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치유 사례를 연구해 보면 증상은 완화되었으나 실제 상태는 그대로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치유사가 귀머거리나 복합골절 환자나 선천성 기형아를 고친다거나 죽은 자를 일으킨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치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이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설사 오늘날 능력의 치유사가 나타난다 해도 우리는 그런 치유사를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으로 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심령술에 빠졌다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악한 세력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도 분명히 사탄이 대환난 기간 동안 그러한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살후2:9-10; 계13:11-15). 마귀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나타낼 수 있기에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고후11:14-15).

    치유는 표적의 은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자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자 치유의 은사는 곧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대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예나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보더라도 치유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관행이 아닙니다. 사도행전과 에베소서를 비교해 보더라도 치유의 은사는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시대에는 모든 질병에 대해 기도와 의학적인 처방을 의지해야 하며 이것만이 병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자세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뜨거운 기도에 응답하사 자신의 뜻 안에서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실 수 있으며 지금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런 은사를 받아 손만 대면 병을 낫게 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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