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은사주의 질문(11): 성령침례의 증거는 무엇인가? ● 데이빗 가우어 이 글은‘비은사주의 크리스천이 은사주의에 대해 묻는 12가지 질문’에 대해 가우어(David M. Gower)가 답변한 것으로 미국 ‘Regular Baptist Press’에서 나온 소책자를 저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질문 11: 신약 시대에 방언이 성령 침례를 보여 주는 표적이 아니라면 성령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은사주의자들이 흔히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면 보통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릅니다. “그럼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겠네요?” 두 번째 질문은 방언의 은사가 성령 침례를 보여 주는 확실한 표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 침례를 받았다면 그는 방언을 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고린도전서만 보아도 반박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살펴볼 때 고린도 교회는 방언의 전문가들만 모인 곳 같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의 은사가 그 어떤 다른 교제보다 더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이 그렇게 널린 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방언의 근본 목적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새로운 메시지가 참된 것임을 증명하는 데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유대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목격했고 이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가 참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고넬료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도 임하여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신다는 인상을 유대인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자신들과 같이 대하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같은 방언의 목적을 고린도전서 14장 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니” 바로 전 구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유대인)에게 말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불신), 주가 말하노라.”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방언이 널리 행해진 것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독특하게 그리고 널리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아마도 성경 시대에 고린도 교회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목이 대상이 된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고린도에서, 그것도 유대인들 사이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행18:1-3). 바울은 관례대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먼저 말씀을 선포했습니다(행18:4). 실라와 디모데가 곧 바울과 합류했고 고린도의 유대인들에 대한 특별한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행18:5). 그런데 마침내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복음 선포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났고, 사도들과 믿는 무리들은 회당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행18:6). 이제 그들은 복음 전도의 초점을 이방인들에게 맞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때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들의 회당 바로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모였습니다(행18:7). 따라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분명히 고린도 교회를 눈여겨보았을 것입니다. 교회 모임이 바로 자기네 옆집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당장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었습니다(행18:8). 이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네들의 지도자가 변절하여 교회로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보의 뒤를 이은 차기 회당장이 어떻게 하든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교회로 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 자체를 금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소스데네가 그리스보의 자리를 이을 자로 뽑혔습니다(행18:17). 물론 성경은 소스데네가 복음의 확산을 막으려는 본연의 책임을 어떻게 수행했는지에 대해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최종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서신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은 또 한 명의 유대인 회당장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들의 회당 바로 옆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특별한 부담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교회 모임은 바로 회당 옆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의 지체들 중에는 전직 유대인 회당장이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고린도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 교회를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조치로서 이 교회에 방언의 은사, 즉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표적으로 작용할 은사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린도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9-30절에서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 중 하나가 “모두 타언어(방언)들로 말하겠느냐?”입니다. 어쨌든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한 공통된 답은 “아니다”입니다. 모든 고린도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방언이 하나의 은사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은사들을 나누어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12:11). 모든 은사를 다 갖춘 성도는 없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다 방언의 은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받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 침례입니다. 우리는 다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에 들어왔습니다(고전12:13). 앞에 나온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동일한 장에서 가르쳐지고 있음에 유의하십시오. 성경은 이 신약 시대에 방언의 은사가 성령 침례를 보여 주는 확실한 표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성령 침례는 모든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이 받았으나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