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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천주교 사제에게 보내는 편지 2 - 두 번째 편지 조회수 : 976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6시 4분 19초
  • 천주교 사제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편지      

    ● H.A.아이언사이드     

    이 글은 1914년에 미국의 Loizeaux Brothers가 발간한 「Letters to a Roman Catholic Priest」를 번역한 것이다. 아이언사이드는 유명한 복음 전도자로 많은 영혼을 구원한 인물이다. 이 소책자는 저자가 A.M.S.라는 약칭의 한 천주교 사제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기차 여행을 하다가 이 사제를 만났으며 교양이 넘치는 사제와의 대화로 인해 큰 기쁨을 느꼈다. 헤어질 때에 저자는 사제에게 성경의 일부분을 다룬 소책자를 주었고 이에 대해 사제는 후에 편지를 보냈다. 이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저자의 병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그로 인해 저자는 오랫동안 사제에게 글을 쓰지 못했다. 처음에 보낸 편지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나중에 쓴 것들은 두 장씩 썼기에 남아 있다. 여기 이 글들은 남아 있는 그 편지들이며 저자는 이 글들이 천주교를 바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소책자로 펴냈다.

    친애하는 사제님께:

    저는 이제 천주교에서 소위 평신도라 불리는 신자들에게 주의 만찬의 잔을 주지 않는 것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사제께서 하신 말씀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킴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으며 또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와 고대 자료들이 사제의 주장과 배치된다는 점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사제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주의 만찬의 요소인 빵과 잔 중에서 신도가 빵에만 참여할 것을 명한 법령은 1415년 6월 15일에 통과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천주교회에 교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령을 통과시킨 공회가 1415년 5월 29일에 교황 요한 23세를 폐위시켰으며 그 뒤 1417년 11월 11일에 가서야 그의 후임자가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전에는 평신도라도 빵과 잔에 다 참여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변증가들은 교황이 주의 만찬의 두 요소 즉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빵과 그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에 참여하라고 한 그리스도의 명령을 바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제들은 원래의 주님의 명령대로 따르게 하고 평신도들은 한 요소에만 즉 빵에만 참여하게 하도록 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콘스탄스 공회의 이 법령은 그 전에 내려온 천주교의 다른 법령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교황 레오’(Pope Leo the Great)는 마니 교도들을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합당하지 못한 입으로 그리스도의 몸 - 물론 그는 지금 주의 만찬의 빵을 말합니다 - 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구속한 피 - 천주교 해석에 따르면 그는 지금 잔을 가리킵니다 - 를 받는 것은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형제들에게 이 같이 신성을 모독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음을 알리며 이들을 사제들의 권위로 성도들의 교제권에서 추방할 것을 알리노라”(그의 41번 설교에서 인용함). 한편 교황 겔라시오 1세는 교황 레오보다 더 강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마조리쿠스와 요한 감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 이것은 후에 천주교 법령집에 수록되었음 -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성스런 몸만을 먹고 거룩한 피의 잔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스스로 어떤 미신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진술했으므로 이런 자들은 성찬을 다 받든지 아니면 성찬에서 완전히 제외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라. 동일한 성찬물 즉 그 신비를 나누는 것은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다”(Corp. Jur. Can. Decre. 3:11,12).

    교황 우르반 2세가 주후 1095년에 주재한 클레몬트 공회의 선언도 이와 동일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나 조심하려는 이유 이 두 가지 이유를 제외하고는 몸과 피를 동시에 받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제단에서 성찬에 참여할 수 없노라.”

    그 다음 세기인 주후 1118년에 교황 파스칼 2세는 클루니의 수도원장인 폰티우스에게 글을 쓰면서 성 키프리안(St. Cyprian)의 가르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키프리안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주의 몸과 피를 받을 때 주님께서 정하신 전통을 지키도록 하라. 사람의 제도를 추종하면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정하고 명하신 데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주님께서 빵을 따로 주시고 포도즙을 따로 주셨으므로 이 전통을 가르치고 성 교회에서 항상 지키도록 명령하라. 빵을 삼킬 수 없는 유아나 병자를 제외하고는 이를 지키도록 하라.’”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 회의를 주재하는 교황도 없었던 종교 회의에서 네 교황의 가르침을 고의적으로 뒤집을 수 있었다면  천주교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기들의 실행과 교리가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Apostolic)이라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까? 사실상 천주교는 이 점에서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완전히 폐기시켰습니다.

    사실 이것은 카톨릭 신자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인들은 이 말씀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자연스레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회가 사제가 아니면 잔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므로 이것은 일반 성도들에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많은 논란을 일으킨 요한복음 6장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이 구절이 주의 만찬을 가리킬까요? 아니면 이것이 단지 커다란 영적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일까요? 저는 후자가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사제께서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도 사제께서 이 구절에 대한 천주교의 가르침을 채택하는 일에 있어서 역시 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물론 사제께서는 아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저는 천주교회의 해석이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이 구절에 대한 천주교회의 해석보다 성경의 가르침이 더 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이익을 구하던 유대인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하셨느니라”(요6:27).

    사실 그들은 그분께 광야에서 자기 조상들에게 만나를 베푼 모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분께서 자기들에게도 문자 그대로 빵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느니라.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로다”(47-48절).

    이 말을 듣고 불신에 찬 유대인들은 서로 다투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52절). 이에 예수께서는 이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53-54절).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몸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구절은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무엇을 행하려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곧 주님의 몸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심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우리 주님은 아직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또 그분의 몸도 죽음으로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구원자로 믿고 그분께 나온 자들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한 새 생명을 이미 소유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영적인 것이며 57절은 이것이 문자적 의미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57절에서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주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십니까? 그것은 곧 믿음으로 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분 즉 아버지를 신뢰하리라.”는 말은 그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 늘 하시던 말씀 아닙니까?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이것이 곧 우리가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63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합니까? 저는 여기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아직 제정하지도 않은 주의 만찬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그분을 믿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던 영적 진리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어떤 공회도 이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폐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던 주님의 제자들은 이미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아직 단 한 번도 주의 만찬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온 세상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 피를 마시는 것이며 이로써 영원한 생명 즉 천주교 미사를 통해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천주교 신자 중에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자기가 영원한 생명 - 결코 위조할 수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생명 - 을 소유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이 미사라는 성례전도 천주교의 다른 모든 성례전과 마찬가지로 그 참여자에게 마지막 결말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 참여해도 결국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느니라.”(47절)는 말씀 즉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과는 달리 확신을 갖게 됩니다.

    친애하는 사제님, 이제 저는 실례가 되지 않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사제께서는 자신을 믿는 모든 자에게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이 큰 선물 즉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사제께서는 스스로 영생을 소유하셨다고 확신하십니까? 사제께서는 천주교를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봉사했으며 천주교의 명령에 복종해 왔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 사제께서는 죄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안식을 누리십니까? 사제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 한 번 드린 희생 제사로 인해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제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오 친애하는 사제님, 만일 사제께서 이런 간단한 질문들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제 잠시 멈추어 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토록 충성을 다한 천주교회는 어찌하여 사도적 기독교를 기뻐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허락하신 확신과 평화를 주지 못하는가?”

    혹시 사제께서는 지금까지 길을 헤맨 것이 아닙니까? 사제께서 책임지실 일은 아니지만 실로 사제께서 속한 천주교회는 어떤 면에서 볼 때 사도 시대의 단순한 복음을 떠나서 심각한 배도 가운데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저는 천주교 성찬식에서 미사의 성격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신실한 벗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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