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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천주교 사제에게 보내는 편지 6 - 여섯 번째 편지 조회수 : 1181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3일 16시 18분 40초
  • 천주교 사제에게 보내는 편지-여섯 번째 편지      

    ● H.A.아이언사이드     

    이 글은 1914년에 미국의 Loizeaux Brothers가 발간한 「Letters to a Roman Catholic Priest」를 번역한 것이다. 아이언사이드는 유명한 복음 전도자로 많은 영혼을 구원한 인물이다. 이 소책자는 저자가 A.M.S.라는 약칭의 한 천주교 사제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기차 여행을 하다가 이 사제를 만났으며 교양이 넘치는 사제와의 대화로 인해 큰 기쁨을 느꼈다. 헤어질 때에 저자는 사제에게 성경의 일부분을 다룬 소책자를 주었고 이에 대해 사제는 후에 편지를 보냈다. 이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저자의 병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그로 인해 저자는 오랫동안 사제에게 글을 쓰지 못했다. 처음에 보낸 편지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나중에 쓴 것들은 두 장씩 썼기에 남아 있다. 여기 이 글들은 남아 있는 그 편지들이며 저자는 이 글들이 천주교를 바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소책자로 펴냈다.

    친애하는 사제님께:

    사제께서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일랜드로 가신다는 소식과 함께 제 서신을 받았음을 알리는 다정한 편지를 받고 감사를 드립니다. 편지를 읽고 저는 사제께서 제가 보낸 편지의 많은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또 동시에 천주교의 가르침과 정반대가 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한 것에 대해 그리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가 성경과 전통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보여 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전에 제게 보낸 편지 중 하나에서 사제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셨으며 저는 그때에 우리가 너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공통분모가 없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제께서는 성경과 전통이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전통이란 물론 천주교가 인정한 전통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만이 믿음과 윤리에 관한 유일한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계시요, 그 자체가 진리이므로 신자들이 진심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성경에 복종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서 그들을 지도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전통을 다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전통이 확실한 근거 위에 세워졌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한 다양한 의견들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하지 못했던 성경의 표현들(결코 성경의 교리들이 아님)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 누구도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주의 날’이 한 주의 첫째 날 즉 일요일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후 1-2세기경의 교부들이 만장일치로 그렇게 가르쳤고 그 이후로 어느 곳에서나(일부 파당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지금 저는 더 이상 거기 나오는 주의 날이 일요일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도들의 뒤를 이었던 사람들이, 과거에 성경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혼자 힘으로만 성경을 읽으려고 하는 몇몇 현대의 논쟁자들보다 ‘주의 날’이라는 용어가 쓰인 용례를 더 잘 이해했을 것이라는 점을 시인합니다. 기독교는 세기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계시의 종교가 아니며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 즉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고 초기의 말씀 선포자들과 교사들에 의해 입증된 유산으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대 기독교의 화려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시와 직접 마찰을 빚을 때에 저는 그것을 배격하며 오직 성경만을 믿습니다. 전통은 어려운 단어나 구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의 교리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전통은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속박할 수 있는 그런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전통을 가지고 사람의 양심을 속박하려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치며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성경과 전통을 동등한 수준에 놓은 사람들이 끝에는 성경보다 전통을 더 위에 올려놓는 것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천주교가 일반 백성이 성경을 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주시해 볼 때 바로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천주교가 펼쳐온 정책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군가가 성경을 가리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번역해야 할 책’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천주교는 이런 중요한 책이 보통 천주교에서 평신도라 불리는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읽힐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을 보고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이것 또한 성경보다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 관한 한 천주교는 아직도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천주교 사제가 필리핀에서 성경을 소각한 사건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야만스런 행동이며 20세기 문명 시대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신앙의 행위입니까!

    사실 우리는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잘못된 번역을 반대합니다. 이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인해 자극을 받은 천주교가 오류투성이 역본, 수세기 동안 한 번도 오류들을 수정하지 않은 역본을 널리 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테스탄트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런 성경을 불태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리 잘못된 역본이라 하더라도 어두움 속에 갇힌 영혼에게 빛을 비추어 줄 만한 하나님의 진리를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제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에게 「두에랭스성경」(Douay and Rheims Bible)을 건네준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천주교 사제들이 제게 화를 냈습니다. 이 성경에는 분명히 로마 교황의 출판 승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들은 그 성경을 읽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몇몇 이유 때문에 천주교는 참으로 성경을 두려워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사제께서는 “성서 공회들이 그토록 많은 성경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도대체 무슨 유익을 얻습니까?”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답변하겠습니다. “영적인 일에서나 이 세상일에서나 그 유익은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입으로 말할 수도 없으며 펜으로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그 유익은 대단합니다.”

    환한 태양이 빛을 발해 박쥐나 해충을 물리치듯이 성경은 어디에서나 야만과 독재를 몰아내고 문명과 자유를 가져다주었으며 선구자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읽도록 허용하고 장려하는 곳에서는 성경이 미신과 무지를 몰아내었습니다. 영적인 유익에 관한 한 성경이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에게 안겨 준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복을 감히 어떻게 말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위에 떠다니던 성경책이 한 일본 귀족에게 구원과 거룩함을 가져다주었고 그로 인해 일본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출입을 통제 당하던 천주교 선교사들이 오늘날 그 나라에서 평화롭게 선교 활동을 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성경 덕택입니다.

    저는 주석이나 해석이 없는 단순한 성경만을 읽고서도 아주 추한 죄인들이 구원자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구원받은 사례를 많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 번도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국내나 국외의 선교 보고서에는 단지 성경만을 읽고 개종까지 하게 사례들 즉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례들이 가득합니다.

    한국에 나간 장로교 선교부의 언더우드 박사는 동방의 고요한 나라의 한 마을에서 두세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한두 서신서만을 읽고서도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온 사례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거기에는 아직 성경 전체가 발간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안의 이 적은 분량의 책들이 산골 마을까지 들어가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사실 많은 선교사들이 어떤 나라에 들어가기도 전에 모든 기반이 닦여 있고 영혼들이 깨어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천주교가 미워하는 성경 보급자들이 이미 거기 먼저 들어가서 성경을 팔고 복음서 같은 성경의 일부 책자를 원하는 자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의 길을 바르게 보여 줍니다. 이 복된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전통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유서 깊다할지라도 신뢰할 수 없으며 사람의 혼을 속입니다. 성경과 전통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등불과 태양 빛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의 교리 중에서 사람의 전통이 제거하려고 하거나 애매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은 교리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것보다 사람의 전통이 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교리가 어디 있습니까? 아마도 사제께서는 제가 위에서 언급한 ‘주의 날’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단지 신빙성 있는 전통이 성경의 가르침을 단지 확증해 줄 뿐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위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크리스천의 교리가 아니라 ‘주의 날’이라는 용어의 용례와 의미였습니다.

    원어에 대한 지식은 성경의 여러 구절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데 도움을 주지만 성경의 교리에는 아무 것도 기여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신자들이 사용했던 성경 용어의 용례를 잘 아는 것이 때로는 새로 유행하는 잘못된 개념들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저의 취지는 결코 밝은 태양 빛을 보여 주기 위해 등불을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며 단지 사람의 이성에 의해 어둡게 된 캄캄한 구석의 일부를 밝히는 데에는 심지어 그 미약한 등불도 유익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인정하면서 전통들을 하나씩 하나씩 성경에 비추어 판단하고 만일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교회 쓰레기통에 폐기 처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이 결코 늘어날 수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천주교 사제가 1년 동안 오직 성경만을 읽되 매일 같이 기도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만을 읽으면서 자기가 배운 것 중에서 성경과 일치한지 않는 것은 다 거부하기로 결심한다면 12달이 지난 후에 그는 수많은 전통적 우화들을 폐기 처분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큰 복과 깨달음을 경험하였으므로 그 이후에도 오직 성경만을 주 연구 대상으로 삼을 것이며 또 완전한 날이 이를 때까지 점점 더 밝게 빛나는 의인들의 길 속에서 화평과 경건함 가운데서 걷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1년 동안의 성경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자기가 폐기 처분한 사람의 전통과 교회의 교리들을 결코 동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때 자기가 경시했던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호흡이 있으며 빛과 진리의 말씀이 가득 들어 있는 거대한 하늘의 양식 창고 속에서 자기의 모든 영적인 필요가 충족될 수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 친애하는 사제님, 부디 확신을 갖고 제가 무책임한 열성분자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로서 말하는 것인지 스스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과 성경에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교리들에 관한 지침서들을 읽는 것은 결코 성경 그 자체를 읽는 것과 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귀를 틀어막은 사람을 어찌 건방진 사람이라 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사제께서는 사도 바울이 교회의 타락에 대해 경고하면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행한 엄중한 권면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아노니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행20:29-30).

    이 같이 경고한 후 사도 바울은 그들을 어디에다 위탁하였습니까? 전통의 권위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공회의 결정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의견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친애하는 사제님, 다음의 성경 말씀을 주의 깊게 읽으시고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32절).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도는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였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성경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오류투성이며 수도 없이 번복된 전통과 교회와 공회를 따라갔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만 굳게 붙드는 제가 잘못하고 있습니까? 이제부터 사제께서도 이렇게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친애하는 사제님, 저는 사제님을 위해 진심으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신실한 벗  

    해리 아이언사이드 드림

    추신 - 저는 사제께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며 그래서 사제께서 더 이상 서신 교환을 원치 않으시면 다시 편지를 보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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