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견진성사 교리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카톨릭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유익을 준다고 말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양자로서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제2편 p.485-486 #1316].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카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께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여러분이 일단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면 여러분을 그 위치에서 제거시킬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임이니라(롬8:38-3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보다 견고히 연합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견고히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영적인 표시라고요? 견진성사의 이른바 또 다른 유익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제2편 p.486 # 1317].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뒤져 봐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시를 새기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구절은 없을 터인데 그 이유를 교리 문답서가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카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당연히 인정하였으며[제2편 p.476 #1288]. 견진성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전통 곧 카톨릭 신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동안 행해야 할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아무 사제라도 견진을 주어야 한다(교회법 제883조 3항). 왜냐하면 교회는 그 자녀들 중의 누구라도 아주 어린아이까지라도,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선물로 완전해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제2편 p.485 #1314]. 견진성사의 숨은 의도 이러한 종교 예식의 실제적인 결과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로 보다 깊숙이 끌어들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리 문답서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은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제2편 p.475 #1285].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음이 분명한데 어째서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종교 예식에 구속되고 싶어하거나 또는 그럴 필요를 느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요8:3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결 론 사람이 만든 카톨릭 교회의 전통인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씀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무시하고 “예!”라고 주장합니다.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명령입니까?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