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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마지막 나팔 소리(레날드 샤우어스)조회수 : 1872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1년 4월 16일 14시 13분 34초
  • 마지막 나팔 소리
    (*) 편집이 된 PDF 파일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7년 환난기를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계시록 3장 10절은 분명하게 이를 약속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5:9).
     
    7년 환난기에 구원받는 성도들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구원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런 무서운 환난을 통과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으며 통과할 사람도 단 하나도 없다. 초대 교회시대부터 지금까지 성경대로 믿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환난전 휴거(Pretribulation Rapture)를 믿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는 환난전 휴거와 상치되는 듯한 말씀이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15:51-52)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미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남은 성도들의 몸이 변하는 때에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서 이미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남은 성도들이 함께 땅에서 들려서 - 휴거되어 -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사도 바울이 동일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이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며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 역시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므로 우리는 이 두 부분에 나오는 나팔 소리가 동일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결론지을 수 있으며 아마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휴거와 관련한 살전4:16-17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당연히 고전15:52에 기록된 ‘마지막 나팔 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의 휴거 때에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린다는 사실은 ‘환난전 휴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환난전 휴거관은 교회의 휴거가 7년 환난기 전에 일어날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마지막 나팔 소리’는 반드시 환난기 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시록 8-11장은 7년 환난기에 일곱 나팔이 울린다고 말하며(사실임) 또 예수님께서도 7년 환난기가 끝나는 시점에  - 즉 일곱 나팔이 다 울린 이후에 - 친히 땅에 강림하실 때에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있다고 마태복음 24장 29-31절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마24:29-31).
     
    그렇다면 어떻게 사도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 소리’가 7년 환난기 전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도 입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가 의도한 것과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검토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단순히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말한 점이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분명히 그 ‘마지막 나팔 소리’는 그들이 이미 소유한 성경 기록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거나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다른 부분에서 가르친 어떤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혹은 그것이 그 당시의 그리스 문화권 사람들에게 익숙한 어떤 것이거나 로마 제국에서 흔히 행하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들 주변의 유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유대교의 믿음이나 실행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이 의도하지 않은 것 
     
    만일 누군가가 ‘마지막 나팔 소리’의 ‘마지막’이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면 - 다시 말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다른 나팔 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도하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이나 혹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전체가 ‘마지막 나팔’임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천사들과 함께 친히 강림하실 때에 분명히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29-31). 그런데 계시록의 순서를 보면 분명히 일곱 나팔이 다 울린 뒤에 그분께서 강림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 울릴 나팔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의 나팔이다.
     
    둘째로, 스가랴서 14장 16-19절은 천년왕국 내내 장막절이 매해 지켜질 것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남은 모든 자가 심지어 해마다 올라와 그 왕 곧 만군의 주께 경배하며 장막절을 지키리라(슥14:16).
     
    그런데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알 수 있듯이 장막절을 지킬 때는 항상 나팔 소리가 울린다. 천년왕국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에 시작되며 따라서 장막절의 나팔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에 있을 것이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마지막 나팔’을 언급한 뒤 30-40년이 지나서야 요한의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받았을 때에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 혹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그들이 그가 말한 ‘마지막 나팔소리’가 자기들이 아직 들어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계시록의 일곱 나팔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고린도전서를 받고 거기서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나팔’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알았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고전15:52에 있는 ‘마지막 나팔 소리’에 대해 기록하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알지 못한 계시록의 일곱 나팔 혹은 일곱째 마지막 나팔을 의미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 칼드웰(J. R. Caldwell)은 이렇게 말한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아직 계시도 되지 않은 예언에 대해 언급한다거나 혹은 기록되지도 않은 책 즉 계시록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넷째로, 사도 바울은 결코 그 ‘마지막 나팔’이 계시록의 일곱 나팔 모두(즉 복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전15:51과 살전4:16에서 그는 단 하나의 나팔만을(즉 단수)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나팔 소리’가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나팔 소리 - 즉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있을 수 없는 - 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너무나 명백하며 그래서 알포드(H. Alford)는 ‘마지막 나팔 소리’의 ‘마지막’이 결코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나팔 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다른 의미의 나팔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사회에서 나팔 소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 고린도전서 15장의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회중을 모을 때 나팔을 사용하셨다. 출19:10-20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뵐 때 나팔 소리가 울렸음을 알 수 있다.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더라. 그곳의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 나팔 소리가 오랫동안 나며 점점 더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으로 응답하시더라. 주께서 시내 산에 곧 그 산의 꼭대기에 내려오시고 주께서 그 산의 꼭대기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출19:18-20)
     
    한편 로마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용도로 나팔을 사용했다. 그들은 황제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모을 때 나팔 소리를 사용했다. 이것은 보통 ‘클래시컴’(Classicum)이라 하는데 그 기능으로 인해 이것은 ‘황제의 나팔 소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고대에는 적들을 놀라게 하거나 다가오는 심판 혹은 위험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사용했다. 성경에도 이런 용례들이 여러 번 나온다(렘4:19-21; 6:1; 겔33:3-6; 암3:6 등).
     
    이제 고린도전서 15장의 문맥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는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이다.
     
    둘째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 ‘마지막’ 것에 대해 언급한다: 패하여 없어지게 될 마지막 원수(사망 26절), 마지막 아담(그리스도 45절), 마지막 나팔 소리(52절). 
     
    셋째로,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여러 가지가 대비되어 있다. 바울은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 불명예와 명예, 약한 것과 강한 권능, 본성에 속한 몸과 영에 속한 몸,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 죽는 것과 죽지 않는 것,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등을 대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대비시키면서 첫 아담을 통해 육체의 죽음이 왔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몸의 부활로 사망을 이기는 승리가 있을 것을 보여 준다(20-22절, 45, 54, 57절).
     
    넷째로 사도 바울은 고전15:56에서 죄로 인해 사망이 생겼으며(롬5:12-19) 사망을 일으키는 죄의 힘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임을 보여 주고 있다(롬4:15; 5:13, 20; 7:7-13).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휴거가 있을 때 울리는 살전4:16의 나팔 소리가 고전15:52의 ‘마지막 나팔 소리’임을 살펴보았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나팔 소리’라고 했는데(살전4:16) 이것은 곧 그 ‘마지막 나팔 소리’가 그 당시 황제들이 백성을 모을 때 사용하던 나팔 소리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표현은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다. 황제의 나팔 소리가 나면 백성들이 황제가 있는 곳으로 모이듯이 ‘하나님의 나팔 소리’ 즉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성도들이 휴거되어 그리스도가 계시는 공중으로 함께 모일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왜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했을까?
     
    고린도전서 15장에 여러 가지가 대비되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 예를 들어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등 - 그는 그 ‘마지막 나팔 소리’와 성경에 처음 나오는 ‘첫째 나팔 소리’를 대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의 대비는 대부분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에 대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 역시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 그리고 사망의 패배를 대비시키고자 함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가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이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와 상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를 대비해 볼 때 우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의 용도와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첫째 나팔 소리의 용도와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나팔 혹은 나팔 소리가 가장 처음 언급되는 곳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출애굽기 19장 10-20절이다.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 친히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려 하시며 바로 이 시점에서 첫째 나팔 소리가 울린 것이다. 이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자신과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 모세의 율법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출19:3-8; 20:1-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모세 율법과 관련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나팔 소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만났으며 율법 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고린도전서 15장의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위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죄가 사망을 불러왔고 사망을 불러일으킨 죄의 힘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임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계신 산에 다가와 그 산에 닿기만 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출19:12-13, 21-25). 바울은 율법이 진노를 이루며(롬4:15) 또 율법을 통한 죄의 정욕들이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사람들에게 이루고(롬7:5, 13) 또 율법이 사람을 죽인다고(고후3:6) 분명히 말하였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이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참으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무도 영광이 될진대 의의 직무는 영광이 더욱 뛰어나니라(고후3:7-9).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고 그들을 율법 아래 놓이게 하였으며 또 그 율법이 죽음을 일으키는 죄의 힘이 되면서 사망의 직무를 감당하였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의 목적이 시내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로써 사망의 직무를 시작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너희는 만질 수 있는 산과 불이 붙은 산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깜깜함과 어둠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씀하시는 음성에 이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 음성을 들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하지 마시기를 간청하였으니 (그들은 주께서  명령하신 것 즉, 짐승 하나라도 그 산에 닿기만 하면 돌로 맞거나 화살로 꿰뚫림을 당하리라, 하신 것을 견디지 못하였느니라. 그 광경이 이같이 무서웠으므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히12:18-21).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린도전서 15장과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의 목적이 백성을 공중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불러 모으고 이로써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의 부활과 몸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는 전혀 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불러내기 위해 울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사망)이 끝나고 그 직무가 폐지된다. 또한 이 마지막 나팔 소리는 고대의 나팔 소리의 또 다른 목적 즉 적을 두렵게 하거나 혹은 다가오는 위험이나 심판에 대해 경고를 주는 것 같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내어 사망의 직무의 시작을 알렸으므로 사도 바울은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을 불러내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삶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이다. 그가 이것을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은 그 나팔 소리 이후에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첫째 것과 마지막 것을 비교하면서 ‘마지막’이 ‘첫째’의 반대가 되므로 그 나팔 소리를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라 한 것이다. 이 나팔 소리는 교회의 휴거 때에 울릴 것이며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가 울렸을 때의 목적과 정반대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공중으로 그리스도께로 모으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에 대해 칼드웰은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준다.
     
    우리는 고전15장에서 ‘첫 사람’과 ‘마지막 사람’에 대해 읽는다. 그러므로 여기의 ‘마지막 나팔 소리’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을 때에 즉 정죄와 사망의 직무가 시작되었을 때에 울렸던 나팔 소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그것은 한 마디로 정죄와 사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반면에 ‘마지막 나팔 소리’는 부활과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나팔 소리는 저주를 선포했고 그 무섭고 큰 소리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서 떨게 되었다. 반면에 마지막 나팔 소리는 복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그 소리가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부활시키고 살아남은 자들을 죽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 주는 일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레날드 샤우어스(Renald Showers)의 「마라나타」(Maranatha: Our Lord Com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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