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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를 아시나요?조회수 : 13034
    • 작성자 : 김정훈
    • 작성일 : 2012년 2월 15일 2시 48분 57초
  • 다윈 시대에 진화론 전파에 누구 보다 앞장서며 활약했던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1.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해는 1859년이고 그때 다윈의 나이는 이미 50세에 다다렀지만, 다윈은 이미 오래전 약관 29살의 나이에 진화의 개념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다만 그 증거를 모으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하기까지 무려 20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과 친분을 맺고 있던 Charles Lyell, Joseph Hooker 등의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곤 하였었는데, 헉슬리도 다윈보다 16살이나 어린 나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비범함을 인정받아 그 모임에 초청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였을 때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설명 방법에 대하여, 헉슬리가 "이것을 (진작에) 생각해내지 못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How extremely stupid not to have thought of that!)"라고 외치며 감탄해 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평소 비판적인 태도로 곧잘 다윈의 입장을 난처하게도 하곤 하던 그였지만, <종의 기원> 이후 비로소 그는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그는 진화론의 열렬한 전파자가 됩니다.

     

    2. 하지만 헉슬리가 비록 진화론 자체는 사실로 받아들였더라도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여전히 "자연선택"을  통한 점진적 진화의 방법에 대하여 100% 확신하는 대신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헉슬리는 비교해부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매우 경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고,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윈이 주장하는 점진적 이론에 대하여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이를테면 가축의 교배를 통하여 후대에 새로운 종이 나오게 되는지 같은 것) 자신의 확고한 결론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화론과 윤리학> 같은 그의 저서를 통하여 사람의 정신적 특징들마저도 생물의 육체적 속성들과 마찬 가지로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인간의 도덕 및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결국 토마스 헉슬리야 말로 어쩌면 단지 생물학에만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진화론을 소위 “다윈주의”로 끌어 올려 후대에 까지 널리 퍼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3. 참고로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할 당시의 생물학 수준은 아직 제대로 "돌연변이"에 대한 개념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었고, 잘 아는 것처럼 멘델의 유전법칙이 나온 것이 1865년인데 그나마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 들어서서야 재발견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진화론에 제대로 된 돌연변이 이론이 반영된 것은 1940년을 전후로 등장한 “현대종합이론”이 나오면서 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오늘날 소위 "신-다윈주의 (Neo-Darwinism)"는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라는 두 바퀴의 축 위에서 굴러 가는 모습을 갖게 되고, 그 중에서도 "돌연변이'이야말로 진화의 기전을 논하는데 있어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0: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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