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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우리말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조회수 : 10164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0년 5월 20일 0시 40분 51초
  • 1. 어지간하면 이제 좀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자
     
    ‘짜장면’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가 뭔지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자장’은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이고 우리말 맞춤법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 극히 일부 듣보잡 언어를 제외하면 된소리를 쓰지 않고 있는데, 된소리로 발음된다고 다 된소리를 써 버리면 버스도 뻐스로, 게임도 께임으로 바꿔야 되기 때문이다.(i)
    그런데 짜장이 과연 버스나 게임 같은 급의 생소한 외래어일까? 짜장이 외래이어이면 빵, 가방, 담배, 구두 같은 단어도 몽땅 외래어이다.

    물론 순우리말 ‘짜장’이라는 단어는 부사로, ‘참, 과연’.. 즉 영어로 치면 yea나 indeed 같은 뜻이 별도로 있긴 하다. 쉽게 말해서 창 3:1의 Yea, hath God said를 “하나님께서 짜장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처럼 옮겨도 된다!
    하지만 이제 그 짜장과 저 짜장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오히려 후자의 뜻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게다가 짬짜면 같은 응용(?)까지 있다.
     
    이제 와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단어로 전락한 ‘자장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자장면에다가 외래어 표기법을 갖다 붙이는 건,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에 어긋난다거나 셈씨(數詞) 뒤에다가 님 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렸고 ‘하느님’이 맞다는 식의 비약인 것 같다. 고유명사를 만드는 건데 부르기 쉽고 최소한의 어원적 근거만 있으면 됐지, 그런 것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ii)
     
    주)
    i. 거의 같은 형태의 외래어인 ‘버그’라든가 ‘게이’는 음절 첫소리가 절대로 된소리로 바뀌지 않는다! 께이라고 안 부른다. 그냥 의미상 동음이의어를 비껴 가려고 본능적으로 경화 여부가 결정된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
     
    ii. 사실, 고유명사 중에 쌍용도 틀린 말이다. 청룡, 황룡 할 때처럼 쌍룡이 맞다. ^^ 하지만 고유명사인데 뭔들 어떠하겠는가. 오뚝이인들 어떻고 오뚜기인들 어떠하리?

    2. ‘석/서/세’, ‘넉/너/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세’, ‘네’로 통일하자
     
    ‘종이 세 장’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아는가? ‘석 장’이라고 해야 맞다.
    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구분이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한국어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너’(3 or 4) 같은 예외만 인정하고, 뒤에 단위(말, 개, 장 등등)에 따라 숫자의 표현이 바뀌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낫겠다.
     
    3. ‘째’와 ‘번째’ 좀 구분해서 쓰자
     
    ‘째’는 영어로 치면 정확하게 n-th(순위, 서열, 차수)에 대응하며 (첫째, 둘째, ..., 열한째, 열두째),
    ‘번째’는 n-th time(반복되는 일의 횟수)에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 선수가 둘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
    - 이 선수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바퀴째)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쓰임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둘 다 무조건 ‘번째’가 쓰이며, 순위인지 횟수인지는 그냥 문맥으로 대충 구분되는 중이다. ^^;;;; '째'는 명사형으로 "첫째(아이)를 낳았다" 정도에서나 쓰는 것 같다.
     
    4. ‘기존’을 제발 오· 남용하지 말자
     
    이 단어의 쓰임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본인이 보기에 IT 업계이다. 하도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꾸 옛날 것과 비교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존’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이란 뜻이다. ‘현존’이나 ‘실존’처럼 ‘하다’를 붙여 용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이 ‘이전’, ‘예전’ 같은 뜻으로 막 남발되고 있고, 오히려 ‘기존하다’라고 용언으로는 거의 안 쓴다. 기존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기존에 있던 것은 버리세요” 같은 문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5. ‘커녕’은 조사(토씨)이다
     
    커녕은 ‘도’, ‘조차’와 동일한 조사이다.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해도 원래 맞다. 커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이 ‘는(은)커녕’이다.
    그런데 요즘 쓰이는 양상은?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커녕을 거의 부사처럼 습관적으로 띄어서 써 주고 있다. ^^;;
     
    6.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발 구분해서 쓰자
     
    “ ‘다르다’는 ‘틀리다’와는 의미와 쓰임이 다른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라고 쓰면 틀립니다(틀렸습니다).”
     
    말 그대로 different와 wrong의 차이이다.
    ‘틀리다’는 보통 ‘틀렸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현재형에다가 ‘다르다’라는 의미가 자꾸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7.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은 ‘더 이상’도 ‘덜 이하’가 잘못된 것만큼이나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김 모 화백의 만화 대사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이 표현은 ‘더는’이나 ‘더’라고 군더더기를 빼거나, 혹은 하다못해 ‘그 이상 (더)’라고 써야 맞다.
     
    8.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빱’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김밥을 ‘김밥’이라고 그대로 발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곰국, 비빔밥은 다 국과 밥이 된소리로 변하는 반면 짜장밥, 보리밥, 볶음밥은 예사소리 그대로이다. 곰국이 곰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니듯이, 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단어는 된소리이고 단순 재료 합성일 때는 예사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비빔밥과 볶음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볶음밥은 단순히 둘째 음절이 '끔' 된소리여서 셋째 음절이 예사소리로 유지된 것일 뿐이다.
     
    즉, 된소리로 바뀌는 건 거의 랜덤인 듯하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왜 굳이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발음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나 덧붙이자면 햇님도 잘못된 말이고 해님이 맞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정말 울트라 캡숑 어려운 개념이며, 단어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쩜’과 ‘짜’
     
    이미 국어에서 별도의 변별 요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짜’(특정 글자를 강조하는 접미사)와 ‘쩜’(소수점의 명칭)이 별도의 표기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자’는 단어의 끝에 등장하면 字보다는 者의 의미로 훨씬 더 강하게 쓰이며, ‘점’은 point보다는 score의 의미로 더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님짜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라기보다는 완전한 단어의 일부입니다.”
    “저희 어머니의 성함은 김 순짜 애짜입니다.”
    “저 선수의 점수는 이십오쩜 오점입니다.”
     
    10. ‘여덟’
     
    8을 뜻하는 ‘여덟’은 먼 미래엔 아예 ‘여덜’로 철자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열에 여덟은” 할 때 ‘여덜븐’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슷한 예로 ‘돐’이라는 단어가 맞춤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돌’로 퇴화가 확정된 적이 과거에 있었다.
    북한에서 인명의 ‘희’를 아예 ‘히’로 바꿔 버렸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의’를 제외하면 ㅢ를 ㅡ+ㅣ로 발음하는 경우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 * * * *
    본인의 그렇게 문학 소년이라든가 토박이말 순수주의자가 아니며, 일본식 한자어라든가 일본어· 영어 번역 말투를 무조건 배격하자 주의도 아니다.
    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용법이라 하더라도, 학문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피동형이나 수동태식 표현도 필요하고 이중 과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번역투 표현 안 쓰고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같은 표어를 짤막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말 순화 운동가들이 저런 현실적인 면모를 대체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
     
    단지, 번역투를 전혀 쓸 필요가 없는 문장이 번역투 때문에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우리말 어법이나 정서에 안 맞게 되는 걸 보면 못 참는 스타일이다. 부모도 가지고(have), 행사도 가진다고(have) 번역하는 건 잘못됐다. ‘-하기’, ‘-함’ 등 용언을 명사로 만드는 다른 방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법 책에 나오는 ‘-하는 것’(동명사^^)만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어색한 번역투이다.
     
    어휘로 화제를 옮겨 보면,
    오랫동안 정착해 버린 외래어들을 무리하게 순화하는 것에 대해서 본인은 좀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미 있는 토박이말부터 좀 잘 활용해 쓰고, 그걸 ‘영한사전’이 제발 잘 반영해 줬으면 좋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요즘은 영어로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가 하도 많다 보니, 우리말에도 국어사전보다 영한사전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reliable을 너무 길게 ‘신뢰할 수 있는’ 대신에 ‘미더운’이라고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faithful에 대응하는 말로는 ‘미쁘다’가 있다. 이건 개역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우리 흠정역에서는 사라졌다.
    hurl을 ‘세게 내던지다’에 앞서 ‘내박치다’라고 풀이하면 훨씬 더 좋다.
    본인이 보기에는 셈틀, 무른모, 누리꾼 같은 것보다 당장 사전에 올라 있는 저런 실용적이고 검증된 말들부터 살려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며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의 사회성에 너무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성경도 그런 걸 감안해 준다면?
     
    본인은 작년쯤에 교회에서 내는 소책자를 하나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간의 의의 한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에서 ‘깜냥’(i)이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집어넣었었는데, 책이 출간된 후 깜냥이 뭐냐는 문의가 꽤 들어왔다.. ^^;;
    ‘깜냥’은 비속어가 전혀 아니며 정상적인 순우리말이다. 본인 역시 10년쯤 전, 중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정도이다.
     
    영어 원문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깜냥이라는 단어는 지금 생각해도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처럼 말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못 알아들으면 뭐...;;;
     
      성경은 인간이 자기 깜냥으로 스스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 방법은 바이없다(ii)고 말한다.
     
    끝으로,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틀렸지만, “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는 말이 되는 표현이다. ^^;;;
     
    주)
    i. 스스로 일을 헤아려 해내는 얼마간의 힘.
    ii. 어찌할 도리나 방법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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