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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김학준 형제님의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을 읽고 과거사례와 사견을 올립니다.조회수 : 8813
    • 작성자 : 노영기
    • 작성일 : 2010년 4월 22일 14시 28분 23초
  • 김학준 형제님의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이란 글을 읽고 댓글을 달려다가 내용일 길어질것 같아서 위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전체를 다 말하 수는 없으나 몇가지를 언급하겠습니다.
     
    전에 몸담고 있던 교회는 장로교회 였습니다.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부서에서 약 10년정도 봉사했습니다. 주로 기독교문화를 만들고 눈에 띄느 아이들은 리더로 키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힘들었던 것은 목사님의 목회마인드와 교회 장로님들의 인식이 청년소들의 열정과 인식과는 상당한 갭이 있어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있었다는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것이 문학의 밤, 혹은 찬양의 밤이었지요
    연습이나, 리어설, 행사 조사도 본당 사용을 꺼려 하셨죠!
     
    그렇다고 각 교육부서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 학생들을 초대하는 행사로 본당 사용은 꼭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본당 사용을 꺼려하는 이유로는 본당이 더러워지는 것과 강대상부터 교회 물품들이 훼손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부분적으로 나마 성전의 개념을 갖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이런한 측면에서 납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본당은 성전 개념이 아니라 예배당이다. 둘째는청소년들이 마음껏 주안에서 즐거워하며 찬양하며 교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그런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것이 교사의 바람이지 않겠습니까?
     
    청소년들에게 찬양의 비중은 가장 큰 것이었으며 그 다음이 다양한 기독교적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쥐어 짜면서 만들며 교사들이 씨름하던 기억들도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만 맘에 안들때는 마음의 문을 쉽게 닫아버리는 특성들을 보이기 때문이었죠!
     
    최근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성가대, 찬양단, 열린예배라고 가스페 찬양형식의 예배도 다 익숙해 있고 보편화된 패턴들입니다
     
    그러면, 정말 헤아릴수 없이 많은 교회들이 이런 예배와 찬양의 패턴과 기독교적 프로그램(문화)를 역사가 흘러가듯 만들어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나요? 있다면 형제,자매님들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참 심각하죠?
     
    저는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가징 뿌리깊은 큰 문제들로 얽히고 설킨 중대한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랑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통해서도 많은 인식과 가치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고 배우고 있는것 중 지금 현대교회들과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첫번째로는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르치는 자와 전하는 자 입에서 살이 있는 말씀이 나와야 문제들을 해결해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 4장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 안으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둘째는 바른 찬양에 대한 이해와 찬양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이 부족(?)하거나 없는(?) 가운데 찬양만 활성화 되다보니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마음 중심의 찬양이 아닌 사람의 감성이 중심이 되는 신전의 신께 제사하는 찬양과 기독교 문화속 찬양이라는 자아만족형 찬양으로 많이 변질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기독교 문화는 이 세상의 인본주의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에 어쩔수 없이 엮여 가는 그런 생존을 위한 기독교의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당화 될 수는 없겠죠!
     
    셋째는 위 문제들을 고치고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의 원인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고 근본적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 또다른 이유와 원인을 만들어 내는 상위의 이유와 원인들에 접근하게 되고 결국은 성경에 대한 옳바른 이해가 부족해서 인간들이 파생시킨 수 많은 것들과 사탄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개역성경 및 개정개역판 성경과 비교해 보면서 확실히 발견한 것은 대한민국에 거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성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와 많은 그릇된 견해들을 만들게 하고 변질된 것들을 유발케 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는 거시적 근본적 치료와 회복은 옳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가급적이면 빠르게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보급되어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으로 보입니다. 막힌 담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네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통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며 성경의 번역의 차이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을 가르치는 것도 분별력을 키우는 좋은 교육이라 생각이 됩니다. 장성한 자의 노력으로는 청소년들이 현재의 세계문화와 사회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것들을 교육하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계속적으로 연구하는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딸아이에게는 놀이터가 중요합니다. 청소년들도 말씀가운데 그들의 영역을 갖고 싶어 할 것이라는것이죠! 뭐라고 할까요 그들만의 정체성이라고 할까요?
     
    말에 요점이 사실 왔다갔다 했네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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