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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 그 후..조회수 : 10968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0년 4월 6일 18시 24분 1초
  • 저는 어린 시절 미지의 시기에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구원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신앙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주변으로부터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무척 긴 시간을 내 한 몸 구원 받은 것 하나로 만족하는 신자로 그냥 버로우-_-나 타고 지내 왔습니다. 불신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답할 지식도 없었고, 나 같은 사람은 괜히 나대다가 기독교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위하는 일이고 다행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죠) 그리고 '신학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그냥 목사 같은 사람이나 신경쓰면 되지' 주의였습니다.
     
    내가 가진 신앙을 그냥 혼자 꿍쳐 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defensive), 남에게까지 내 신앙에 의한 영향을 끼치고 설득을 하려면(aggressive/offensive),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 논리'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내지 성경에 대해서 정말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증명 불가능한 몇몇 기본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일단 '먼저 믿는다'를 깔고 들어가더라도, 그로부터 유도된 각종 교리들은 수학 공식처럼 분명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고 건전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저의 가설이었습니다.
     
    그들의 삐딱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낱낱이 다 상대해 주고 끌려갈 필요는 없지만, 일부는 그래도 나라도 궁금해서 할 만한 질문이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신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해답이 존재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 악인이 잘 사는 것까지는 봐 줄 만하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의인이 저 정도까지 핍박 받고 저렇게 불쌍한 애들이 비참하게 죽는 걸 저렇게까지 방관 묵인할 수 있나?
    -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착하게 살던 우리 조상들 그럼 다 싸그리 지옥 갔나? 뭐 그런 거지발싸개 같은 신이 다 있나?
    - 진짜 예수 성실하게 잘 믿는 사람은 극성스럽게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티 하나도 안 내고 선행으로 실천한다 (이거 압권. -_-)
    - 개나 소나 어중이떠중이 다 성경대로 믿고 행한다고 하는데 내가 니 말을 굳이 왜 들어야 하나?
     
    솔직히 저런 말은 왕년엔 저도 답변하거나 반박할 수가 없어서 안달 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성경은 봐도 모르는 책이고 이단이 나올 수밖에 없게 책을 쓰신 건지, 원문 이후로 내용이 소실되고 변개될 수밖에 없게 자신의 말씀을 방관하신 건지... 답답했으며 제가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은 찝찝한 채로 있으면서 그저 NIV 성경 읽고, 내가 좋아하는 주찬양 선교단 CCM을 비롯해 기독교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종교란에다가는 '기독교'라고 쓰는, 교양 있는 종교인... 이것이 20세기까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네, 예수님, 저를 구원해 주신 것에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써 주신 책을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그 정도로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써먹어야 할지... 남까지 이걸 믿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거기까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네요." 정도.
     
    다만, 옛날부터 저는 '기독교 안티'에 대해서도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를 일종의 '안티' 의식이 있었습니다. 글을 읽어 보면 웬지 싸가지가 없고 표독스럽고.. 저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혼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참된 행복과 평안을 선사하기 위해서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죄를 정당화하고 덮으려고 횡설수설하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죠. 그 반감으로 인해, 아무리 성경이 허술해도 저런 녀석들 말을 듣느니 수천 년을 공격 받고도 굳건히 살아 있는 성경만이 살 길이라는 희미한 감각은 있었습니다.
     
    그 후 21세기가 돼서야 저는 잘 알다시피 뭔가 색다른 진영을 접했습니다. 개역성경에 오류가 많다는 말은 전부터도 엄청 많이 들었으며, KJV라는 성경은 thou, thee가 나오는 개역성경의 영문판뻘처럼 보이는 성경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KJV가 변개되지 않은 100% 절대무오한 말씀이라는 주장은 처음 봤습니다.
     
    뭐,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독문· 성탄절· 부활절· 십일조 등등등이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은 이미 기독교 바닥 내부에서 상식으로 접해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주의 만찬과 침례가 맞다는 것... 당연히 OK였습니다. 그런데 세대적 진리, 환란 전 휴거, 천사의 아들들(창세기 6), 전천년주의, 그리스도의 심판석 같은 것들은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 자체가 정립돼 있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이 진영을 판단하는 데, "기성 교단에서 이단으로 판정하진 않았나?" 나부랭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기독교의 체계를 세우고 신앙 논리에 도움을 주느냐였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부터 딱 세우는 것이 뭔가 논리와 체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형제에게 화내는 자마다"가 아니고 "까닭 없이 화내는 자"였구나!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구절이 성경에 원래 있었구나!
    루시퍼, 갈보리가 원래 다 바른 성경에는 존재하던 용어였구나!
    이스터라고 안 하고 유월절이라고 하면 성경에 모순이 생겨 버리는데 이스터를 오역이라고 하는 녀석들은.. 그들이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런 지식을 하나 알 때마다.. 조금만 과장 보태면 기쁨 두 배, 행복 가득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진영이 "어린애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
    사형 제도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
    성경에 모순이 있는지에 대해 답변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종말론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
    교리와 교리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지니까 딱 맞아 떨어지고 모순이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풀이하면 뭔가 그림이 나오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종 사회 이슈를 성경적으로 판단하는 안목이 좀 생기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나니까 이제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고, 기독교는 단순히 교리나 사상을 믿는 게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인격체를 믿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 기록자의 관점에서 시국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니까 신앙 논리가 생기고 남들한테 내 신앙을 떳떳하게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원 받기는 한참 오래 전에 받았으나,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이 이렇다는 걸 느끼게 된 지는 좀 최근이라는 뜻입니다.
    KJV를 갓 알게 된 직후 인터넷 상으로 온갖 진영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여기만치 건전한 곳은 더 찾지 못했습니다.
     
    2003~04년 사이가 제가 그야말로 성경 '덕후'이던 때였습니다. 내 신앙은 목사나 신학자가 지켜 주는 게 전혀 아님을 인지하고, 내가 자주국방을 이뤄야겠다고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이 좋은 성경을 남들한테 알리려면 나부터 일단 책을 다 읽어보고 변개된 성경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다 파악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영어 KJV, 흠정역, 표준새번역을 펼쳐 놓고 1년간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노트에 적고 코멘트가 떠오르는 구절을 다 정리했습니다.
     
    왕년에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 안티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애들이 하도 한심해서 열폭도 하고 키보드 배틀-_-도 몇 차례 떴습니다.
    심지어는 제 홈페이지로 기독안티 사이트 운영자가 몇 번 와서 논쟁을 제안한다고 방명록에다 초청장을 남긴 적도 있었고, 일부 천주교 사이트에서 제가 요주의 인물로 욕 얻어먹고 까이기도 했습니다. ^^;;;;
     
    그때는 제 정신 연령에 비해 너무 엄청난 사실을 많이 알게 돼서 감당을 못 했지요. "날 속이고 있었다니 이 나쁜놈들! 박살을 내 주겠어" 이런 심정이었더랬습니다.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짓이죠. 지금은 진리를 사랑으로 전해야 하는 이유조차도 신앙 논리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 이단들이 왜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왜 성경대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 내지 그리스도인 구원 목적에 어떤 모순이 생기는가? 구체적인 증명 과정은 생략)
     
    지금 저는 그 시절만치 성경 덕후-_-는 아닙니다.
    옛날에는 귀가 좀 얇아서 누가 성경에 모순이 있다고 그러면 "어 정말?" 그러면서 막 찾아보고 따지고 했는데, 지금은 성경에서 좀 모르는 게 있더라도 정 모르면 책 찾아보면 되고, 어차피 답이 어떻게 나오든 저의 본질적인 신앙 논리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쪽으론 덜 민감해졌죠. 일종의 안정화 단계!
     
    예전에 비해 머리 성장보다는 영적 성장, 실천 위주로 지향 우선순위가 바뀌었으며,
    성경이란 어차피 사람이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책이라는 면모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또 미묘한 영어 뉘앙스 같은 것은 어차피 한국인이 잘 모르고 답이 없으며, 원어의 표현 자체가 원래 모호하기 때문에 영어 KJV도 그에 맞춰 모호하게 번역된 거라는 경우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성경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동명이인이 난무하는 복잡한 인명과 지명이 나오면 여전히 헷갈립니다. 이 둘은 동일한 사건인가 아닌가 하는 것 중에도 헷갈리는 것 많고.. 성전이나 성막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여전히 감이 잘 안 옵니다. KJV 영어에도 단순히 thou, thee 같은 쉬운 거 말고, 현대 영문법으로 설명이 안 되고 잘 모르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서 아주 평이하게 진술하는 이 문장을 실제로 그대로 집행해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엄청난 짓이었을지 예측하는 깊이가 부족합니다. 이런 안목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 같거든요.
     
    저는 사고방식이 단순합니다. 두루두루 둥글둥글 살지를 못하고 극단적입니다. 잘 하고 못 하는 거 담을 쌓고 선 긋길 좋아합니다. 하나 동기부여를 받은 분야에 죽도록 심취해서 끝을 내는 걸 좋아하는 덕후 스타일입니다. 저는 라오디케아 스타일이 절대 아닌 것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제 성깔에 정말 다른 이상한 이단에 빠져서 설치고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제가 이 정도 평정심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3~04년은 공교롭게도 성경에만 '덕후'가 된 게 아니라 또다른 분야에도 지독한 덕후 매니아가 된지라..
    요즘은 최근 코레일(구 철도청)에서 제정한 사가 Oh! Glory KORAIL! 을 들으면서 진심어린 행복을 느끼는 중입니다.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ㅎㅎ
     
     
    1. 레일 위에 피어나는 맑은 세상, 달릴수록 푸른 강산 녹색 철도
    2. 고객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행복이 함께하는 국민의 철도
    3. 대륙 넘어 세계로 달려간다, 내일의 꿈을 여는 희망의 철도
    후렴: 코레일 국민 위해, 미래를 위해, 코레일 영원히 함께 할 우리의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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