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Looking for You
나를 철도에 완전히 미쳐 버리게 만든 일등공신인 곡으로, 2002년 무렵부터 2007년까지 새마을호 객실 내부에서 시발역 출발 전과 종착역 도착 직전에 흘러나왔다. (시발역 출발 전에는 2004년 중반까지만) 장르는 색소폰 퓨전 재즈.
"형제님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철도에 열광하게 됐나요?" 답은 전적으로 이 음악에 있다. 직접 들어 보라.
지난 6년간 본인은 이 곡을 최하 수천 번 이상 듣고 듣고 또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그래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도대체 이 음악의 속에 무슨 마약이 있는지 따지려고 악보 채보를 하고, 화음과 음정과 박자 분석하고, 피치(음높이)를 달리해서 들어 보고.. 본인은 우리나라에서 Looking for You를 제일 심도있게 연구했다. 당시 본인의 관심사는 당김음과 불협화음이 인간 정서에 끼치는 영향이었다. 지금도 이 곡만 들으면 본인은 어깨춤이 절로 나고 '오오!' 무아지경에 빠진다. 2003년 그 당시의 서울역 플랫폼과 함께, 새마을호 객실에서 이 하늘나라 곡조를 처음으로 듣던 시절이 생생하게 오버랩 된다. 그리고 통일호, 비둘기호, 옛날의 4개 국어 안내 방송, 코모넷(과거에 새마을호 영상 서비스를 담당하던 하청 업체), 홍익회, 수인선 협궤 열차, 경부선에서 경전선, 중앙선 등등.. 우리나라 철도 역사가 분야별로 머릿속에서 그냥 필름처럼 한데 쫘르륵~ 지나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다못해 비행기도 타면 출발 전에 뭔가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기는 한 것 같은데, 새마을호처럼 이렇게 대놓고 방방 뛰고 ♩=132에 달하는 빠른 템포에다(직접 측정해 봤다), 마치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분위기의 음악이 나오는 대중 교통수단은 우리나라 역사상, 아니 인류 역사상 없었지 싶다.
장난이 아니고 진짜로... 난 죽어서 하늘나라 가면, 거기서 새마을호 종착역 도착 로고송과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맨날 이 곡을 혼자서만 마르고 닳도록 듣다가 어느 날은 철도 동호회 송년 모임이 있어서 거기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Looking for You를 틀어 주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거기는 저 곡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내가 튼 게 아니라 남이 틀어 놓은 Looking for You를 들으니까 어찌나 행복한지 몰랐다. 정말로..
이 곡을 작곡한 MALTA라는 음악가는 일본인으로, 버클리 음대(Berklee. UC 버클리 말고 텍사스 주에 소재한 음악 단과 대학) 출신이다. 저 학교가 실용 음악 내지 재즈 쪽으로 세계적인 명문이라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1990년대 어지간한 CCM 음반에서 피아노/키보드 연주로 이름을 떨친 송영주 씨도 저 학교를 거친 후, 지금은 우리나라 1인자 급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세속 음악계에서 활동 중이다.
※ 새마을호 특실에서 들은 <어머니의 마음>
과거 새마을호의 특실에는 비행기를 따라한 부가 서비스 중 하나인 음악 서비스가 있었다. 일반실은 이어폰을 꽂아서 차내 TV 방송만 청취할 수 있었지만 특실은 채널을 바꿔서 1. 이지 리스닝, 2. 한국 가요, 3. 가곡, 4. 재즈, 5. 클래식 이렇게 다섯 개의 장르 중 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2007년 봄 어느 날. 한번은 이 음악 채널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녹음을 해 가려고 양방향 잭을 갖고서 새마을호 특실에 탔다. 그리고 각 채널별로 15분씩 음악을 노트북 컴퓨터로 녹음했다.
본인은 유행가 가요를 평생 전혀에 가깝게 듣지 않고 지냈지만, 그때 들은 가요 몇 곡은 출처를 찾아내서 외워서 가끔 세상 친구들하고 노래방이라도 갈 일 있을 때 써먹는다. 거기서 흘러나온 곡은 대략 2001~2005년대에 발표된 것들이었다. 그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새마을호에서 틀어 준 곡이기 때문에 익혀 놓은 것이다. 마치 우리가 잘 나서 선행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듯이 말이다!
그런데 가곡 채널에서 잠시 후 뭔가 낯익은 곡이 흘러나왔으니,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자칭 인간 국보라는 양주동 박사가 가사를 쓴 그 곡 말이다.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곡이 너무 애절했다! 3절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대목에 가니...
그래, 어머니께서 나를 낳고 키우신 덕분에 내가 이 시간에 새마을호 같은 지상 낙원 열차를 타고서 세상에 둘도 없는 황홀한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이 철도 덕분에 <상록수>도 다시 공부하고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 공부도 다시 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완전히 달라진 영적(?) 복을 받았구나!
그게 가슴에 확 와 닿으면서 행복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자리에 승객이 보건 말건 고개를 돌리고서 엉엉 흐느껴 울었다. 행복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본인은 군대 유격 가서 PT 체조 8번을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스승의 은혜>로 바뀌는 체험은 비록 안 해 봤지만, 나름 비슷한 체험을 이렇게 했다. 아아, 새마을호여, 내가 너를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 서울 지하철 VVVF(i) 구동음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일깨워 준 최초의 지하철이다. 출발할 때 하도 독특하고 웅장하면서도 우아하고 인상적인 구동음이 나기 때문에(ii), 본인은 전동차 안에서 정말 깊은 사색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기름으로 움직이는 내연기관은 그냥 털털거리는 소음만 날 뿐이고, 비행기도 그냥 온통 공기 뿜어내는 소리밖에 안 나지만, 이 전자음은 차원이 다른 고차원적인 음향이다. 지하철이 없는 지방 사람들은 듣고 싶어도 못 듣는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의 귀가 즐거울 것이요”이다. 지하철 기관사 하니까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인상이 느껴졌다.
주:
i) VVVF: 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 제어. 지하철 전동차가 동력비 조절용으로 사용하는 반도체 장치 ii) 참고로 서울 지하철 5호선은 개통 초기부터 다른 지하철들보다 유난히도 시끄럽다고 욕 얻어먹었다. VVVF 도입 초창기여서 요즘보다 시끄럽고 우렁찬 구동음 + 소음 흡수가 잘 안 되는 좁은 터널 + 급커브 곡선 구간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5호선 전동차의 구동음을 들어 보니 첫음은 D(레)였다. 그냥 머릿속에 오선지가 그려졌다!
이 우우웅 소리는 현악기 소리에 가까울까, 관악기 소리에 가까울까? 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한 분이 있으면 물어 보고 싶다. 음악가 중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유모레스크>를 작곡한 안톤 드보르작이 유명한 철도 덕후였다. 그 느려 터진 증기 기관차에도 그렇게 매력을 느꼈는데 오늘날 전동차의 VVVF 구동음이라도 들으면 <지하철 교향곡/소나타?> 하나 정도는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
. 이렇듯 철도를 알지 않고는 나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멀미 없고 편하니까 철도나 철도 여행을 좀 좋아하는 수준이라면, 그건 예수님을 사대성인 도덕 선생 정도로나 알고 있는 수준과 다를 바 없다. 본인은 사랑 침례 교회에 가서 성경을 알고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50분 한 것만큼이나, 철도를 만나서 삶이 바뀐 간증도 그만치 할 수 있다! 주변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철도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음악 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소서, 하니라. 음악 하는 자가 연주할 때에 주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하니 (왕하 3:15)
==> 그러나 이제 Looking for you를 내게 틀어 주소서, 하니라. mp3가 흘러나올 때에 철도의 영이 김용묵에게 임하니 ㅋㅋㅋ ※ 주찬양 선교단
온통 철도 얘기만 할 작정이었다면 이런 글을 킵바이블 같은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가 아닌 20세기 말에 본인의 귀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주찬양 선교단이었다. 정말 잊을 수가 없는 게... 주찬양 선교단은 본인이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던 시절에, 마치 어머니께서 들려 주시는 자장가처럼 본인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던 음악이어서 그렇다. 여러 CCM 중에서도 유난히 최덕신의 음악만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최덕신의 음악은 내게 기독교 음악, 소위 찬양이라는 게 사람의 심금을 건드릴 수 있다는 체험을 최초로 선사해 주었다.
락, 헤비메탈이나 온라인 게임 따위에 심취한 나머지 누구 죽이고 자기도 자살한 애들이 있는 반면, 본인은 고등학교 시절, 주찬양 선교단에 뼛속까지 완전히 심취한 덕분에 지금의 신앙이 유지되었고, 그게 나중에 킹 제임스 성경으로 이어졌다. 진짜다...;;; 어느 정도로 심취했냐 하면, 지난번 그 퀴즈 문제를 직접 출제할 정도로. 1986년에 발매된 1집 특유의 허접한 창법 내지 은은한 키보드 소리를 기억한다.
<나>와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의 감동과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이름>은 그 정도로 강렬한 절정부는 없지만, 도입부의 불협화음 음정이 애절함을 더한다. 다들 편곡되어 있는 4/4박자보다는 원래의 12/8박자 리듬이 더 정겹다. 6집은 1집에 이어 두 번째 송명희 작사 앨범인데, 송명희 시인을 표방한 듯 6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허스키한 여성 솔로의 목소리를 몇몇 곡들에서 들을 수 있다. 또한 이 즈음부터 코러스의 음색이 후대 앨범들과 비슷해지고 악기 구성도 얼추 현대화했다.
마지막 트랙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는 당김음 하나 없는 6/8박자짜리 곡인데, 애절한 가사와 적당히 중독성 있는 멜로디... 그야말로 본인의 아리랑 같은 민요가 되었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처음 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정말.. 7집은 당시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에서 사역하던 마이클 하크로우가 찬조 출연하여 연주한 프렌치 호른이, 곡들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감동을 고조시켰다. <예수 이름 높이세>에 심취했고, <보혈 찬송 메들리>에 매료되었다. 이사야서 6장을 모토로 하는 불멸의 명곡 <나를 받으옵소서>는 어찌나 애절한가!
8집 <천지창조/주찬양>은 한창 창조 과학회에 심취해 있던 시절에 같이 들어서 더욱 시너지 효과가 컸다. 요 1:1, 창세기 1장, 게다가 시편 148편까지 두루 섭렵한 가사에다 이런 곡은 정말 최덕신이 아니면 못 만든다. 뒤이어 이어지는 <시편 8편>의 화려한 아르페지오 반주는 사람 넋을 빼놓을 정도였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에>도 따라 부르기 쉽고 아주 명랑하고 좋은 곡이다. 9집에도 이곳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명곡이 많지만, 제일 백미는 <오직 우리 죄악이>이다. 적당히 기교가 들어간 리듬에다가 1절은 이사야서 59장을 배경으로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2절은 이사야서 53장과 요 3:16을 집어넣어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가사이다. 1990년대 CCM 중에서 이 정도로 교리적으로 명확하고 탁월한 복음송가는... 정말 찾기 힘들다! 사극으로 치면 고증이 아주 탄탄하게 잘 된 드라마. 거기에다 음악성까지 손색이 없으니 가히 천재적인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주찬양 선교단 앨범엔 이사야서 인용이 하도 많아서 성경 읽으면서 그 책을 다른 책들보다 눈여겨봤을 정도였다.) 나머지 앨범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
사정이 이러하니, 훗날 작곡자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이 퍼진 뒤에도, 본인은 남들처럼 그 사람을 그저 욕만 할 수는 없었다. ‘남에게는 그렇게도 믿음을 세워주고 유익을 끼치고 훌륭한 일을 했으면서 어쩌다 그렇게 간증을 상실하고 말았나’ 안타까울 뿐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본인은 음악의 위력을 안다. 음악은 평생 은사주의의 은짜도 모르고 방언(?) 한 마디 터진 적 없고, 좋아하는 유행가 가수 하나 없던 본인 같은 사람을 철도에 완전 헷가닥 미치게 만든 존재이다. 왜 하필 카인의 후손이 성경에서 최초로 악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좀 알 것 같다.
육신만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음악과, 영의 건강에 진짜 좋은 음악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조용하고 은은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소위 뉴에이지 음악이란 것도 있는데 이건 사람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아무쪼록, 크리스천 청년들을 대상으로 음악에 대한 특강이 있으면 무척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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