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아래의 기사는 오늘 날짜에 중앙일보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인간은 죄때문에 죽는데(창2:17)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속적으로 죽으신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방법(칭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님에 유의)뿐인데 믿음의 대상은 그분(우리 예수님)의 피입니다. 피를 볼때에 죽음이 넘어가고(출12:13)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고(레17:11)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히9: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사람이 죄를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롬 3:20~25)
추천도서 1, 미션하우스: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 2, 그리스도 예수안에 : 예수님의 피 바로알기 (알 레이시 저)
[한자로 보는 세상]
한자로 보는 세상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널리 읽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정의(justice)’에 대한 서양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동양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義’는 羊(양)과 무(武)가 결합된 단어다. 양은 고대 중국의 희생(犧牲·동물의 피를 신령에게 바침) 의식에서 제물(祭物)로 쓰인 동물이다. 제단에 오른 양을 칼(武)로 잡으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유명 문화학자인 이중톈(易中天) 교수는 “글자 ‘義’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고대 자전 『설문(說文)』은 ‘엄숙한 용모와 장중 있는 태도(威儀)’라고 의를 설명한다.
‘의’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맹자(BC372~BC289)다. 그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에 ‘의’를 더해 ‘인의(仁義)’를 근간으로 한 유가 사상의 깊이를 더했다.
‘인’은 사랑이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회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맹자는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니, 그게 바로 ‘의’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잘못에도 분개하고, 기꺼이 칼을 뽑아들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맹자는 『孟子』 ‘고자(告子)상편’에서 ‘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생명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의’ 역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할 것이다(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生而取義者也.) 나를 버려서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그게 바로 ‘의’인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 세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공동 선(善)을 고민하고, 시민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걱정하도록 이끄는 게 정치의 목적’이라고 했다(‘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선을 위한 헌신이 곧 그의 정의였다. 맹자가 말한 ‘의’와 서로 통한다. 2300여 년 전 동시대를 산 이들 동·서양 철학자가 본 ‘정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