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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철도의 날 기념 -- 경인선의 어제와 오늘조회수 : 14774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0년 9월 20일 0시 9분 22초
  • 지난 9월 18일은 철도의 날이다. 이 날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설된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1899년 9월 18일을 기려서 제정되었다.
    (참고로 1899년 5월에는 서울 시내 노면 전차도 개통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경인선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철도와 고속도로는 둘 다 서울과 인천 사이의 길이 가장 먼저 생겼다. 그 다음이 서울-부산이다. (경인선과 경인 고속도로, 경부선과 경부 고속도로)
    본인이 사랑 침례교회를 방문할 때 늘 잘 이용하는 경인선 철도는 사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노선 길이는 27km 정도.
     
    개통 당시 제물포역에서 노량진역까지 다니던 증기 기관차의 소요 시간은 1시간 40분 남짓이었다. 표정속도는 시속 20km가 채 안 됐다. 하지만 이것도 원래 서울에서 인천까지 도보로 10시간 가까이 걸리던 게 혁신적으로 단축된 것이었다.
    하긴 경부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 꼬불꼬불 ‘비포장’ 국도만 이용할 때는(지금의 국도 1호선), 서울-대전도 자동차로 8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그나마 가장 빠른 방법은 경부선 열차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시간 40분이면 비행기로는 서울에서 도쿄까지, KTX로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자동차나 새마을호로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간다. 심지어 제일 느린 전철로도 그 시간 동안 천안까지는 갈 수 있다.
    시간은 그렇다 치고 그 당시 경인선 열차의 운임은 상등석 1원 50전, 중등석 80전, 하등석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까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1~4만 원대의 운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출처: 엔젤하이로 위키)
     
    이것도 지금은 경인선 급행 전철만 타면 단돈 1500원으로 동일 구간을 40분 만에 주파할 수 있으니, 교통수단이 눈부시게 발달한 셈이다. 또한, 오늘날의 전철은 1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보다 훨씬 더 많은 역에 정차하고도 표정속도가 최하 시속 30km는 넘는다. 전기로밖에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감속력 덕분이다.
     
    그러나 자동차도 없고 교통수단이라고는 도보나 마소 아니면 인력거밖에 없던 시절에는, 시커먼 증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육중한 쇳덩어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육당 최남선 같은 문학가는 <경인철도가>를 지어서 그 놀라움을 시로 남겼다.
     
    처음에 경인선은 노량진역에서 끊어졌다. 그러다가 한강 철교가 1900년에 완공되면서 철도는 사대문 안 서울 도심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한강을 건너는 방법은 나룻배밖에 없었는데, 역사상 최초로 한강을 횡단하는 다리가 건설된 것이다. 한강 철교는 그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대공사였다.
     
    그 다리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쓰이고 있다. 비록 일부 구간이 6· 25때 파괴되어 재건이 필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강 철교 중 급행 전동차가 사용하는 교각만이 단선 병렬로 건설되어 있는데, 이게 제일 오래 된 것이다. 그 반면 일반열차(새마을· 무궁화호· KTX)가 사용하는 교각은 1944년에 건설되었고, 1호선 완행 전동차가 사용하는 교각은 가장 최근인 1995년에 건설되었다.
     
    20세기 초에 한반도에 건설된 철도들이 다 그랬듯이, 경인선도 처음에는 단선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벌써부터 복선으로 확장된 철도는 경부선이 유일하다. 1905년에 건설된 경부선이야 훗날 경의선과 직결하여 북한 지역과 중국으로까지 연계가 되었으니,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이미 1930년대에 복선화가 되었다.
     
    그 반면 경인선은 1965년이 돼서야 복선화했다. 한강 철교와 선로의 배치 관계로 추정하건대 지금의 상행(서울 방면) 선로가 먼저 건설되었으며 하행이 나중에 놓인 선로인 것 같다.
     
    * 지금 경인선은 구간을 불문하고 선로 주변에 온통 방음벽과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런데 주변이 저렇게 허허벌판이던 시절도 있었다는 게 믿어지는지?
    * 하늘을 보면 알겠지만, 전차선이 없다. 즉, 지금처럼 전동차가 다니기 전이라는 뜻이다.

    증기 기관차가 퇴역한 뒤에 경인선을 누빈 것은 디젤 동차였다. 그러다가 1974년 광복절, 서울 지하철 1호선(일명 종로선)이 개통하면서 경부선 수원-서울 구간과 경인선 전구간도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 구간으로 바뀌었으며, 전기로 달리는 전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경인선이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을 함으로써, 경인선은 장거리 간선이 아니라 단거리 통근형 노선으로, 일종의 도시철도처럼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철도 역세권은 어마어마한 개발과 팽창을 거듭하게 되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있는 부천이 대표적인 예인데,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들 중에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 부천과 과천이 뽑혔다는 통계를 본 기억이 있다.
    과천은 경마장 덕분에, 그리고 부천은 미칠 듯이 많은 인구 덕분에, 세금이 많이 걷혀서라고 한다.
     
    당시 서울 지하철은 6량 1편성으로 운행하였으며, 일본 히타치 사로부터 수입한 저항 제어 방식 전동차를 사용했다. 그러나 철도청(현 코레일)이 운행하는 차량은 파란 도색,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가 운행하는 차량은 빨간 도색이었다.
     
    * 철도청(현 코레일) 소속 전동차
     
    *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 전동차

    체계를 좀더 살펴보면, 지금은 없어진 마분지 승차권 개집표기는 프랑스 파리 지하철이 사용하는 것을 수입한 것이며, 노선마다 번호를 붙이는 것도 파리 지하철의 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1974년 당시 지하철 운임은 30원. 그리고 배차간격은 지하철 구간인 서울-청량리가 10분 간격으로 가장 짧았으며, 인천 방면인 경인선은 20분, 수원 방면인 경부선은 40분에 한 대꼴이었다.
    그때 지하철 안에서는 ‘열차 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출입문은 30초 동안 열려 있습니다(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므로)’라고 난생 처음으로 지하철을 구경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인내 방송도 일일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지하철 이용 승객은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고, 경인선의 선로 용량은 이내 포화 상태가 되었다. 특히 1985년, 서울 지하철 2호선과 함께 신도림역이 개통하면서 이곳은 인천 방면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살인적인 인파 때문에 가히 지옥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세상에 그 대형 전동차를 10량씩이나 편성해서 운행하는 대도시는 세계적으로도 정말 찾기 어렵다. 지방의 전동차가 작은 게 아니라 서울 지하철 차량이 엄청 큰 것이다. 일본 지하철은 표준궤도 아니고 아예 협궤이니 말 다 했다.
     
    결국 경인선을 2복선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이 1990년대부터 추진되었다. 그 공사가 진행되면서 급행열차, 그 당시에는 직통열차라고 다소 부정확한 명칭을 사용하던 전동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부평까지만 가던 것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2002년부터는 주안까지, 그리고 2005년이 돼서야 무려 동인천까지 경인선의 2복선화 공사가 모두 끝났다. 그에 발맞추어, 경부선의 일반열차까지 합류하는 구로 이북 구간은 아예 3복선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경인선에는 역이 굉장히 많이 생겼는데, 이 때문에 늘어난 소요시간을 급행열차가 어느 정도 만회를 해 줬다. 하지만 지금 급행도 정차역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2005년은 경인선뿐만 아니라 경부선도 수원에서 천안까지 수도권 전철화 및 2복선화가 끝난 역사 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 이북인 수원-서울은 1981년에 이미 2복선화가 끝났다. 거기는 새마을· 무궁화 같은 일반열차도 다니고 있는데 2복선이 아니면 전동차 운행을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1974년에 경부선 전동차의 배차간격이 괜히 40분이 아니었다. 지금은 경부선 급행(천안 급행)이 일반열차들 때문에 선로 용량이 부족해서 1시간대의 매우 긴 배차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인선은 그 지형적 특이성으로 인해, 일반열차가 없이 전동차만이 무려 2복선 선로를 차지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전국에서 급행 전동차가 상시 운행되는 유일한 노선이다. 하지만 경인선에서 서울 말고 경부선 하행 방면으로도 선로가 연결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고, 또 일반열차가 다니지 않는 것도 아쉽다. 부천이나 인천에서 대전· 대구로 가는 열차를 바로 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경인선은 이미 서울로 가는 전철 수요만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신경쓸 필요가 없다. 코레일이 크게 흑자를 보고 있는 양대 산맥이 바로 경부선 KTX와 경인선 전철이라고 한다. 오늘날은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가 편리한 접근성과 빠른 속도로 과거의 철도의 지위를 크게 깎아내린 게 사실이다. 그러니 철도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눈과 손으로 조향을 하는 교통수단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를 내세우든가, 아니면 전철 같은 정시성과 대량 수송 능력을 특화하는 쪽으로 어떻게든 변모해야 할 것이다.
     
    경인선은 서쪽 끝이 바다이니 더 확장할 여지가 없고, 또 이미 선로 용량이 포화이고 워낙 각 역마다 이용객도 많다 보니 지금 급행을 더 증차하거나 정차역을 더 줄이기도 곤란하다. 노선이 더 확장된다거나 큰 변화를 겪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지역을 분단시킨다고 이제 와서 경인선을 지하화하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앞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이 경인선 북쪽으로 부천과 인천까지 연장될 예정이고, 먼 훗날(지금으로부터 최소한 5년 정도 뒤) 수인선이 복선 전철로 부활하여 인천역에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쯤이면 아직까지 1960년대에 건설된 역사를 그대로 쓰고 있는 종점 인천역도 크게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인천역에서 선로를 딱 끊지 말고, 마치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응암 순환 회차 구간처럼 경인선도 기존 철도 부지를 활용하여 인천 남부 인하대 일대를 빙 돈 후에 다시 상행으로 돌아오도록 선로를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이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나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경인선인 한편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한반도에 건설하던 최후의 철도는 일명 '동해중부선'이었다. 포항 이북으로 올라가서 강원도에 있는 영동선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던 중이었으나, 도중에 일제가 패망하면서 그 계획은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1940년대엔 전쟁 때문에 물자가 부족해서 중앙선도 굉장히 날림으로 만들었는데 이 철도도 과연 오죽했을까? 그러나 이 철도 노선은 21세기가 된 지금에야 다시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시속 200km는 낼 수 있는 좋은 선형으로 말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0:5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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