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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하이브리드형 학교 생활조회수 : 10326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1년 3월 8일 23시 44분 4초
  • 지난 3월 2일, 저는 드디어 대학원에서의 둘째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저의 소속인 언어정보학 수업 둘과 더불어, 국문과 및 컴퓨터과학과의 수업을 하나씩 듣습니다. 듣는 수업 중에는 국립 국어원에 근무하는 연구원이 강사로 나오는 수업도 있습니다.
     
    맨 첫 수업은 국문과의 국어 음운론 연구였는데요.
    15명~20명 남짓한 수강생이 전부 여학생이고 남자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나, 주변은 완전 꽃ㅋ밭ㅋ
     
    인문계 대학원의 수업은 정말 점잖습니다.
    학부 때처럼 출석 체크에, 각종 과제에 시험 등으로 학생들을 들볶는 게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강의는 기초 지식 설명보다는 topic 위주입니다. 그리고 학생의 발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체로 높습니다.
     
    수업이 널널한 편인 대신에 학원생은 수업 때 들은 여러 topic들 중에서 어떤 주제를 심화 있게 연구하여 기말 보고서(term paper)를 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든 보고서가 발전을 거듭하면 학술지 논문이 되거나 심지어 학위 논문으로 이어집니다. 공부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학부와 대학원은 서로 다른 셈입니다.
     
    제가 쓸 음운론 기말 보고서에는 계획대로라면 아마 C언어 코드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의 음운 법칙과 관련된 알고리즘을 만들 생각이어서...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국문과가 아니라 언어정보학 '협동과정' 학생이니까. ㅋㅋㅋ
     
    그에 비해 이공계 대학원은 분위기가 인문계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더군요.
    건물 복도에는 각종 그래프가 그려진 교수님들 연구실 소개 벽보와, 실험 장비들이 즐비합니다.
    이제야 학부 시절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아, 나도 공대 나왔었지. ㅜㅜㅜ”
     
    이공계 대학원은, 일부 자발적인 프로젝트 비중이 굉장히 높은 과목을 제외하면, 학부 수업의 연장선이라 할 정도로 대학원의 수업도 뭔가 엄격합니다.
    출석 체크도 하고 여전히 중간· 기말이 있고 과제, 퀴즈, 소규모 프로젝트 등 할 거 다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 강의입니다.
    학생 성비는? 아까 음운론 수업의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ㅋㅋㅋㅋㅋ
     
    이공계 대학원이 인문계 대학원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역시 철저하게 랩 위주라는 점일 겁니다. 랩 생활은 직장 생활에 가까우며, 산학 협동 구도가 잘 돼 있죠.
    당장 뭔가를 만들고 연구 성과를 내고, 해외 학술지에다 논문을 내는 걸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영어 글쓰기 훈련부터 시키고 굉장히 몰아붙인다고나 할까, 시계가 돌아가는 속도부터가 인문계하고는 다른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원이라고는 이공계 대학원만 봐 왔기 때문에, 인문계 대학원에도 랩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랩에서 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군대에 장교는 무조건 육사 출신밖에 없는 줄 알았던 것만큼이나 세상 물정을 몰랐어요. (더구나 제가 나온 대학은 ROTC 같은 것도 없고, 학생들이 대부분 사병으로 군대를 일찍 갔다 오거나 아예 병특으로 빠지니까..;)
     
    아무튼, 이런 저런 차이로 인해,
    인문계 대학원은 이공계 대학원보다 널널한 대신에 코스가 “굉장히 깁니다”. 이공계에는 20대 박사, 30대 초반의 교수가 즐비하지만 인문계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박사 따는 데만 심하면 7, 8년씩 걸리기도 하고..;;
    질보다 양이기 때문에, 교수가 “너는 아직 책 좀 더 봐야겠다”고 판단하는 학생에게는 종합 시험 통과를 안 시켜 주거든요.
     
    저는 그럼 둘 중 어디에 속하는 걸까요..?
    저는 지금 철도 덕후인 것만큼이나 더 오래 전부터 한글 글꼴, 세벌식 글자판, 국어 운동(?) 같은 쪽의 덕후였습니다.
     
    제가 이공계 대학원, 심지어 그나마 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자연어 처리 연구실 같은 데에도 가지 않은 이유는, 랩에서 하는 연구가 아니라 이런 저의 개인플레이 오덕질을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것 말고 딱히 더 빠르고 성능 좋은 컴퓨터를 만든다거나 더 뛰어난 수학 알고리즘을 만든다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대박 낸다거나 하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말입니다.
     
    코스웍은 주로 인문계 스타일로 이수한 후, 연구는 그런 공부 내용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다 결부시켜서 참고문헌 적을 게 별로 없는 엽기적인 발명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한글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니!”로 교수님들을 즐겁게 하고 놀라게 하면 빨리 졸업할 수 있겠죠? =_=;;; ... 가 제 의도인데, (뭐 어설픈 글쇠배열이나 외래어 표기법 같은 거나 만드는 게 절대 아님)
     
    그게 제 상상일 뿐일 수도 있고... 선행 연구 사례가 전혀에 가깝게 없는 분야이다 보니, 제가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불안하죠. 지도교수 못 구하면 어쩌지..
    연구의 기술적 기반과 디테일은 전산학 쪽 교수가 평가하고, 연구의 의의에 대해서는 국어학 쪽 교수가 평가해야 할 텐데, 어느 한 분야에 딱 맞게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염려 때문에 제가 한동안 대학원 진학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학술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미우나 고우나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요즘 공대를 졸업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진로를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꿔서 공부를 다시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치)의대나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ㅜ.ㅜ
    그러나 저는 머리에 딴 게 너무 꽉 차 있어서 그런 것도 절대로 못 합니다.
     
    저는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가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단과대에서 종합대로, 기숙사에 있던 게 통학으로... 정말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학부와는 완전히 다른 학교와 과로 저렇게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회사까지 여전히 파트타임으로 같이 다니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 이 상태가, 학제간 연구와 개인플레이를 지향하는 저의 특이한 상황과 아주, 매우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가 그나마 너무 잘 맞아서 이 학교를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어는 오늘날의 국제어인 영어하고는 구조적인 이질감이 무척 심하며, 러시아어와 더불어 국제적으로도 굉장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 축에 듭니다. 그래도 이와 대조적으로 문자에 관한 한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복받았지요. 저는 이곳에서 문과와 이과 감각을 두루 갖춘 언어 정보 처리 쪽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불안-_-한 미래를 잘 헤쳐 나가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혹 그 도중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더라도 신실한 모습으로 발견될 수 있게, 생각날 때 기도로 도움 부탁드립니다.
     
    잡설.
    캠퍼스를 거니는데 음높이 B의 은은한 엔진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는 뒤통수에 눈이 달린 건 아니지만, 소리만 들어도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딱 그려집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아 2:8). 뒤를 돌아보니 역시 새마을호 열차가 회송 중이더군요. 학교 정문 근처에 철길이 있는 것도 참 좋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00: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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