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어느 자매님의 간증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기독교와 회심은 가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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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없는 구원의 위험
이 글을 꼭 쓰고 싶었는데,, 거처하는 곳에 PC가 없어 핸드폰으로만 보다가 남의 집에 와서 몇 자 적습니다. 저는 현재 주거지가 외국입니다.
박옥수 목사의 기쁜소식선교회(기소선)의 비리나 썩어빠진 교리 등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나의 연약함만 탓하다가
'기쁜소식선교회를 나온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카페와 쉼터의 자료실을 통해 상당한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그 후 정말 믿기지 않는 이런 비리들의 원인이 뭘까 많이 생각했고
올라오는 말씀을 보며 킹제임스 성경이란 생소한 성경을 알게 되었고, 그 성경을 10여 년에 걸쳐 번역하고 흠정역으로 펴내신 목사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성경 지식과 교사로서의 간결함 그리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우리에게 오로지 성경만을 가르쳐주는 그 말씀들을 들으며 내 마음에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는 믿음으로 바뀌며 기소선에서 연약함으로 치부되었던 나의 믿음이 이제 말씀 안에서 회개와 믿음 그리고 진정한 구원의 의미 그리고 그 구원이 주는 성화의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이 카페에서 기소선의 비리를 보며 내 구원을 의심했습니다..
뿌리가 저러 할진대 그 열매인 나는 어떠한가 하고요. 수리공식적인 구원의 방법,
즉 "예수님 죽음 +죄 없다 = 의인" 이것은 깨달았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 그 회개에서 나오는 믿음, 그 믿음의 결과는 구원
그 구원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 가며,, 구원을 일로(행위로) 드러내는 성화의 과정이 나에게는 없었고 그냥 “죄 없다” “의인이다”라는 주문 같은 구원만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자 기소선의 비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구원 바로 알기" 시리즈 말씀을 일주일을 넘게 반복해서 들으며
내 상태를 점검했고 그 목사님 말씀처럼 178도, 179도가 아니라 세상에서 180도 돌이키는 회개 내 마음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 회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끄집어내려도
내 마음에 세상 것에 대한 아까움이 없고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셔서 나를 인도하고, 지키고, 나를 변화시키시며 절제를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기소선은 박옥수 목사가 어느 날 새벽에 스스로 깨달아 얻은 "깨달음의 구원" "죄 없다 구원"만 존재할 뿐 하나님 앞에 근본적인 회개가 빠진 구원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회개와 믿음" 책을 발간할 때 한동안 유행처럼 "회개"를 외쳤지만
전후로도 이미 "죄 없다 구원"은 "회개와 믿음"을 이겨 버리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어설픈 구원을 지키기 위해
내 죄가 없어졌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 온갖 명세표를 가진 "복음을 위하여"의 세금을 걷어 들이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구원은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
깨달아 알게 된 구원은, 처음엔 기쁠지 몰라도 부작용이 많습니다. 혼의 자유가 없이 구원이란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 구원을 깨닫게 해 준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단체의 노예가 되고 자유의지가 사라지고 그리고 좀비가 됩니다. 그들은 살짝 변질된 말씀을 가지고 구원을 설계했고(안수복음)
한번 잘못된 설계도는 아직도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구원은 성령을 상실했고 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사치스럽고 육신적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할 수 없으니 생각을 버리고, 생각을 꺾자”로 성령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갈라디아서를 통해 "육신의 행위들은(5장 18~21)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였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 온유, 절제인데 이 열매를 대적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5장 22~23절). 구원받은 자에게 한번 들어온 성령님은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
항상 나를 지키고 내 양심을 선하게 하고 그래서 나를 세상을 향해 절제시키고 통제하셔서 온유한 맘을 품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자기감정, 형편을 간증하는 그 찌질한 간증하고는 차원이 다른 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러한 것이 성화의 과정이고 (성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골1:6, 10)
그런데 기소선의 현실은 절대로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모두 "박옥수 열매"가 주렁주렁 합니다. 그들의 삶에 "성령의 절제"는 없습니다. “박옥수의 통제"만 있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절제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삶은 육신의 절제와 함께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고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게 하고 오로지 교회와 함께 행사를 하며 몸으로 처참하게 체험하는 미련한 신앙은 곧 바알을 섬기는 것과 흡사하며 그들이 말하는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흐르는 종(목사)의 말은
위에서 아래로까지 역병과 같이 죄와 사악함과 욕설과, 난폭함과 매정함을 통해 성령을 훼방하고 영혼을 죽게 합니다. 차라리 비리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구원도 아닌 구원을 움켜쥐고 고생 끝에 지옥가면 어쩌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현실입니다. 그 선자자 같은 종의 흐름의 결과가 또별(기소선에서 암, 에이즈 치료제로 선전하는)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잠깐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기소선 교회 자매가 간암 초기였는데 4개월 전 또별 먹고 다 나았다고 간증했습니다.
근데 4개월 후인 지금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이제는 듣는 것도 희미해져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간암 초기에 수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어보니 또별 먹으면 나을 거란 믿음으로,,
믿음으로 낫겠다는 욕망, 또별을 믿는 마음, 이미 이 마음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 같습니다.
어느 말씀인가
분별없이 악을 같이 따라가는 자에게도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자와 똑같이 벌하신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 교회에 또별로 인해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죽어 감을 보여 줘도
그들의 악함은 도를 넘어 오히려 죽는 자의 믿음을 탓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이런 악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우리들
그리고 이제 탈출하여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우리들,, 그곳에서 아직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 못하며 오로지 "종"을 위하는 마음이 믿음이라고 믿고 있는 불쌍한 성도들 우리는 그들을 위해 바른 말씀을 올리고 사실들을 부지런히 전하여 그들의 눈을 뜨게 할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기소선 나오신 분들도 킹제임스 성경을 보시면서 말씀을 듣고
고요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성화의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외국에 거하는 한 자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