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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왜 안 하는가? (통성기도) 05 조회수 : 1657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년 5월 8일 10시 35분 36초
  • 왜 안 하는가? (통성기도) 05 
     
    통성기도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대예배 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기도나 금요기도회 그리고 기도원에서 ‘주여 삼창’과 함께 목청이 떠나가라고 앞 다투어 큰소리로 통성기도를 합니다. 사실 새벽기도와 마찬가지로 통성기도도 전 세계 교회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믿음의 어떤 위인들도 이런 식으로 기도했다는 사례가 없습니다. 저희 교회 같은 자유교회를 방문하는 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왜 이 교회는 이런 식으로 열심을 내서 기도하지 않는가?”라고 의아해 하므로 이에 대해 잠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통성기도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성도들이 통성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기에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성도들의 통성기도 인식
    질문 1: 통성기도 꼭 해야 되나요?
     
    저는 통성기도를 못 하겠어요. 저희 교회에서는 자꾸 통성기도를 하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제가 병적으로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의식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말하는 게 많이 어색하므로 제 기도를 누가 옆에서 들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또 저는 “~옵소서. ~주시고, ~합니다.” 등등 이런 말들을 잘 못해요. 그래서 그냥 대화하듯이 기도하는데 혹시 어떤 사람이 듣고 “아 유치해. 무슨 기도가 그래.”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아직 믿음도 없고, 교회에 간 목적이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찔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기도해도 되나?”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 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고백해야 된다고 나와 있다던데 그렇게 하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 하면 죄가 되나요? 저는 마음속으로 혼자 조용히 하나님께 대화하는 식으로 기도하는 게 많이 편하거든요.
    수련회 때도 날마다 기도회를 하잖아요? 처음 갔는데 사실 엄청 신경이 쓰였어요. 한 30분 하다가 그냥 나와서 숙소에 가고 그랬거든요. 옆 사람들은 다 소리 내서 고백하고 눈물 흘리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저는 뻘쭘하게 그냥 앉아서 눈 감고 마음속으로 몇 마디 한 것밖에 없어요.
     
    내일 새벽기도를 처음으로 가는데 두 시간 동안 사실 할 말이 없어요. 미칠 듯이 힘든 일도 없고, 한두 마디 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거든요.
     
    기도회 하다가 먼저 나와도 되나요?
    기도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아는 언니 오빠들은 기도할 때 술술술 말을 하는데 저는 한 마디 하고 생각하고 한 마디 하고 생각하고 그러거든요.
     
    대답 1: 통성기도 꼭 해야 되나요?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에게 통성기도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훈련으로서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훈련하지 않으면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창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을 고정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엔 단 5분이라도 좋습니다. 매일 꾸준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차츰 기도 시간을 늘려 가시면 됩니다.
    통성기도는 그러한 장애물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면 얼마든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성기도 할 때 남을 의식하면 절대로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기도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집중해서 기도하면 어느 순간 기도의 줄이 잡히면서 유창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통성기도는 울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간절히 바라면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우리가 너무 힘들어 어떤 말로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아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기도를 유창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어투로 경건해 보이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므로 욕을 쓰거나 속어나 비어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기도는 처음에 남들 앞에서 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막막했답니다. 혹시 다른 사람 앞에서 기도를 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연습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서투르게 한다고 웃긴 건 아니에요.
     
    질문 2: 통성기도에 관해서
    저희 집에서는 엄마만 교회에 다니시고요. 저도 엄마 따라 몇 번 교회 가다가 대학 들어오면서 한번 제대로 하나님 믿어 보고 싶어서 큰맘 먹고 CCC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채플도 열심히 하고 수련회도 열심히 가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수련회랑 그런 데 분위기가 참 저랑 안 맞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간사님이나 선배님들한테 그렇다고 말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라는 인상을 줄 것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티를 내지 않고 2년 정도 다녔습니다.
     
    일단 수련회 같은 데 가면 기도 제목 말하면서 “자, 큰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옆 사람들은 눈물 흘리고 땅 치고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데 저는 눈 감고 기도하려고 해도 딴 사람들 기도 소리 때문에 집중도 안 되고 한두 마디 하면 기도도 안 나오고 똑같은 말만 계속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멍하게 눈감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통성기도에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자꾸 수련회도 가고 싶지 않고요.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추신: 아, 그리고 수련회 가면 ‘은혜 받는다’고 하는데 ‘은혜 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세요.
     
    대답 2: 통성기도에 관해서
    제가 예전에 느꼈던 것과 같은 증상입니다. 교회 사람들 착하잖아요? 친절하고. 그래서 친해지기 쉽고.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하다 보면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도 맡게 되고. 그런데 왜 이렇게 기도가 안 나오는지.
    교회 다닌 지도 어느 정도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믿음이 깊은 줄 알고 있고. 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믿음은 있는데 기도를 못하니 이것 참~ 허허~~ ^^.
     
    기도하는 뜨거운 분위기를 타고 “주여 삼창!”하고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싶은데 “주여 삼창!” 끝나는 동시에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 같은 말만 계속하고.
     
    이거는요. 쉽게 말해 기도를 안 해봐서 그래요. 또 자기 자신을 안 드러내서 그렇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소리 지르며 울부짖으며 꼭 그렇게 기도해야 믿음이 충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통성으로 기도하시는 분들이야 말로 믿음이 강하신 분들이죠.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기도가 중요한 것이지 통성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남들 의식하지 말고 하고 싶은 방식대로 기도하세요. 꾸밈 없이요. 저도 그 통성기도를 잘하고 싶어서 철야 예배 때 교회 본당 맨 꼭대기 아무도 안 보이는 가장자리에서 기도한 적도 있었는데요. 1년 만에 되더라고요.
     
    ‘은혜 받는다’는 것은 솔직히 글로는 설명 못 하겠어요. ‘성령을 영접한다’라고도 하는데 이건 때가 없어요. 찬양하다 기도하다 말씀 듣는 중에 제각각 다르니까요. 뭔가 확~~~ 소름이 돋는 기분인데 흠. 뭐라 설명해야 할지. 귀하도 나중에 느껴 보실 거예요. 성령만 영접한다면야~~!!
    통성기도에 대한 오해
    평범한 성도들이 겪고 있는 이런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한국 교회에서 기도 및 통성기도가 얼마나 잘못 인식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질문자들은 사실 순수한 분들이고 이들이 하는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옆의 사람들이 통성기도를 크게 하자 이들은 크게 위축되고 무언가 자기가 잘못을 범하고 있는 줄 알고는 질문해서 답을 얻으려고 하는데 답변자들의 글을 보면 어느 부분은 맞고 어느 부분은 틀려서 오히려 질문자를 더 혼동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답변자들의 글에서 잘못된 것들을 찾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초신자에게 통성기도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지만 기도의 훈련으로서 좋은 방법이다.
    2. 통성기도를 통해 기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3. 통성기도 할 때 남을 의식하면 절대로 기도가 되지 않으므로 큰소리를 내서 자기의 기도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4. 이렇게 집중해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을 주실 수도 있다.
    5. 통성기도는 울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6.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들은 믿음이 강한 분들이다.
    7. 통성기도는 열심히 한 1년 연습하면 된다.
    8. ‘은혜 받는다’는 것은 찬양하거나 기도하다가 혹은 말씀을 듣다가 소름이 돋으면서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통성기도도 새벽기도와 마찬가지로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통성기도의 유래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통성기도의 유래
     
    한국에서 길선주 목사의 새벽기도와 함께 초기 부흥 운동에 나타난 특징 중 다른 한 가지는 회중이 동시에 소리 내어 기도를 드리는 통성기도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뜨겁게 부르짖는 통성기도를 신비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맥큔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보고서에 통성기도와 회개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예배당 안은 “기도합시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예배당 안에 있는 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큰소리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떤 이는 울고 있었고, 어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목을 나열해 가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모두가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있었다. 많은 소리가 있었음에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일사불란했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통성기도의 음성은 신비로운 조화와 여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통회의 울음은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는 영혼의 넘치는 찬양의 물결 같았다.
    이처럼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길선주 목사와 장대현 교회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합니다. 비록 선교사들이 이에 대하여 좋게 평가를 하였지만 이런 현상은 이교도들의 모임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에서도 통성기도를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마7:16, 20; 눅6:44). 길선주 목사 등이 주축이 된 평양 부흥 성회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을 살펴보면 새벽기도와 통성기도 등의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무지와 암흑으로 몰았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열매는 1906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오순절/은사운동의 열매와 동일합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귀의 거짓 영은 ‘아주사 부흥’을 기점으로 해서 전 세계 교회에 무지와 흑암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무질서와 혼동과 무지와 부정함의 근원인 신사도 운동 등을 포함하는 이런 은사 운동은 현재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연합의 매개체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 영의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시작된 통성기도입니다. 오순절/은사주의의 거짓 영은 예배 음악 및 질서의 파괴와 기복 신앙을 조장하면서 전 세계 모든 교회를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데 쓰이는 마귀의 도구 중 하나가 통성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어떤 일에 대해서 사람이 무슨 견해를 피력하고 어떤 결과를 개인적으로 경험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 고장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고 또 그것들이 기독교 식 샤머니즘 내지 자기 열심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땅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 행위는 큰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위선으로 크게 기도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명확히 요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5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6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마6:5-6).
    마태복음 6장에는 예수님 당시 종교인들의 기도와 금식 문제가 자세히 분석되어 있습니다. 또 7장 21절부터는 그 당시 마귀들을 내쫓고 “주여, 주여, 주여” 하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자들의 문제와 예수님의 정죄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기도의 요점은 골방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도 사람들이 보는 데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한 몇 가지 사례를 들면서 통성기도를 합리화 하려고 합니다. 다음은 사도행전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한 사례들입니다.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1:14).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행2:42).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그들이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행4:31).
     
    그러므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그 일을 깊이 생각한 뒤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행12:5, 12).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한 뒤 그들을 보내니라(행13:3).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제자들과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성령 강림 후에 그들은 교리를 배우며 기도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이 있자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또 후에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혀 순교하게 되자 함께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위해 모여서 기도하고 선교 여행을 하도록 보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모여서 기도한 사례들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들은 결코 그들이 통성으로 기도했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마음으로 기도한 것은 통성기도가 아닙니다. 왁자지껄 대며 기도하는 것은 사실 이교도들의 풍습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엘리야가 바알의 대언자들과 대결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6그들이 자기들에게 넘겨진 수소를 취하여 예비하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오 바알이여, 우리 말을 들으소서, 하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만들어 놓은 제단 위에서 껑충 껑충 뛰더라.…28그들이 큰소리로 부르고 자기들의 관례에 따라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찢었더라(왕상18:26, 28).
    이교도들은 소리를 지르고 말을 많이 해야만 자기들의 신이 듣는 줄 알고 북  치고 장구 치며 큰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하였지만 그들의 신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고린도 교회는 이교도들의 산물이 많아서 교회가 혼잡하였습니다. 특히 이교도들의 방언이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기도하는 질서를 무너뜨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 32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나니 33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 34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고전14:23, 32-34).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지금 통성기도 하는 집회에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들이 모두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통성기도 하는 그 모임 자체가 혼동의 도가니가 아닙니까? 더욱이 교회에서 자매들이 소리를 내어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이 그 자체를 아예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여자들은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남자들 위에 서서 남자들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딤전2:11-15). 그래서 성경은 목사와 집사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으로 남자만 될 수 있다고 명시하였습니다(딤전3:2, 12).
    성경의 기도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 혼의 소원과 감정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님의 도움을 힘입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알리고 대화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가 혼의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욥21:15; 시10:4).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경건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고(시55:17; 단6:10) 성경의 모든 성도들은 공적으로 사적으로 가족별로 기도하였으며 일반 업무를 하면서도 짧게 기도하였습니다(느2:4).
    기도의 자세는 특별하게 규정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왕상8:22) 머리를 숙이거나(창24:26) 무릎을 꿇거나(눅22:41) 땅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였습니다(마26:39).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열렬히,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에는 죄의 고백과 감사와 다른 사람을 위한 간구가 포함됩니다. 우리는 바른 이성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습관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마음으로 무신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경배하기를 원하시므로(겔36:37; 마7:7-11; 빌4:6; 딤전2:1-3; 약1:5) 이런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죄입니다.
    어떤 이들은 통성기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네가 부르짖는 소리에 그분께서 네게 크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소리를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사30:19).
     
    이 가엾은 자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셨도다(시34:6).
     
    사실 이런 구절들은 다 개인이 하나님과 홀로 기도하는 것을 묘사하지 교회가 통성으로 소리 질러 기도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개역성경의 렘33:3을 인용하며 통성기도를 합리화 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성경)
     
    그러나 이것은 개역성경의 명백한 오역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물론 NIV, NASB, NKJV, RSV 등도 하나같이 이 부
    분을 “Call unto me.” 즉 “나를 부르라.”로 번역하였습니다.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흠정역).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이 구절도 실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기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열심을 다해 기도한다 해도 기도의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지식은 오직 성경에서 오므로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심지어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십니다(잠28:9).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습관을 ‘백독일도’(百讀一禱) 즉 “백 번 말씀을 읽고 한 번 기도한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통성기도에 대한 결론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경의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통성기도같이 성도들이 예배 때에 어디서나 동일하게 ‘주여 삼창’을 하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이교도들의 관례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진정으로 전체 회중이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기도 시간에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무방하지만 이것도 스스로 잘 통제하면서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혼동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부터는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권면이 우리나라 교회들에서도 지켜지면 좋겠습니다.
     
    32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40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할지니라(고전14:32, 40).

    이 책자 전체를 PDF 파일로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s://keepbible.com/Pds1-8/View/3oU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보려면 다음의 링크를 누르기 바랍니다.
     
    두 종류의 교회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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