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성경교리

  • 성경공부
  • 성경교리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방언의 목적조회수 : 1185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년 5월 21일 11시 5분 29초
  • 방언(타언어)의 목적을 이해하기 앞서 먼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점을 이해하면 방언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알다시피 방언과 관련한 성경구절은 고전 14:2-5에서 나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 3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5 나는 너희가 다 타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되 차라리 대언하기를 원하노니 타언어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가 세움을 받게 하지 아니하면 대언하는 자가 그보다 더 나으니라."(고전 14:2-5)
     
    이 중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가 바로 개역성경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부분입니다. 영어로는 unkown tongue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 사람들이 현대의 "방언"을 붙드는 이유는 "하나님께 말하나니"와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함이라" 이 부분일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며 나는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부분이 바로 "신비"의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비란, 우리가 신비스럽다고 말할 때의 그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비는 항상 "계시되지 아니한 감추어진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런 점으로 인해 성경에서 "신비"와 함께 사용되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이 "알다"와 "계시"입니다. 감추어진 진리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계시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눅 8:10, 킹흠정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1:25, 킹흠정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롬 16:26, 킹흠정 이제는 밝히 드러났으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자들의 성경 기록들을 통해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고전 13:2, 킹흠정 내가 대언하는 선물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5:51, 킹흠정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엡 1:9, 킹흠정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엡 3:3, 킹흠정 곧 계시로 그분께서 내게 그 신비를 알리셨나니 (그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엡 3:4, 킹흠정 그것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읽을 때에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깨닫게 되리라.)
    엡 3:5, 킹흠정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 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는데
    엡 3:9, 킹흠정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골 1:26, 킹흠정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골 1:27, 킹흠정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 4:4, 킹흠정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할 말을 하여 이 신비를 드러내고자 함이라.
     
    그렇다면 성경에서 방언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십시오.
    방언이 가장 먼저 주어진 때는 오순절 날로 그 때 방언을 받은 제자들이 무엇을 선포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행 2:11)
     
    그 다음 방언이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0장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하여 이방인들의 구원을 믿지 못했던 유대인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방언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크게 높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더라."(행 10:46)
     
    그 다음 방언이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9장입니다. 오직 요한의 침례만을 알고 성령님의 침례에 대해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위해 바울은 그들을 위해 재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받고 한 일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고 대언하니라."(행 19:6)
     
    이들은 방언을 가지고 대언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이 완전히 주어져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언"의 역할입니다. 성경이 완전히 주어지기 전 "대언자"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습니다. 문제는 대언자는 자기의 말들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해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전파됨에 따라 그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방언"의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계시되지 않은 감추어진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못했고 자기들이 가진 은사들을 남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은 혼란스러워졌고 바울은 그들의 남용되는 은사들의 사용을 바로 잡고자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하였습니다.
     
    대언과 마찬가지로 방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알립니다. 그러나 방언은 "통역"하는 자가 없다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방언의 은사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세움을 얻게 하려면, 그에게 방언의 은사가 주어진 목적에 따라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전해 주던가 아니면, 교회 내에서 "통역자"를 통하여 그에게 계시된 것을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사람안에서 그의 영을 통하여 역사하심으로써 그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전 14:21에서 인용한 말을 보십시오.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으니"(고전 14:21)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대언과 방언을 같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방언과 대언은 같은 목적으로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3:10의 완전한 것이 오면에 대해서는 저 역시 그것이 완전한 성경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견해는 문맥의 의미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같이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대언과 방언은 완전히 그쳤는가? 저는 그 대답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부분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구절을 드리고자 합니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입니다. 그 어떤 대언이나 방언이라도 성경보다 더 확실한 대언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