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대형교회들의 비리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옥성호 형제가 지은 "서초 교회 잔혹사"라는 책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왜 교회가 이 모양일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꼭 참조하기 바란다.
서초 교회 잔혹사
"...김건축 목사의 등장과 더불어 날로 번창하는 서초교회. 그러나 김건축 목사의 눈부신 활약은 역풍을 맞기 시작한다. 한 인터넷 언론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가면서부터다. 글로벌 미션을 무력화하려는 사탄의 본격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도원에서 생명을 건 기도의 사투를 벌이고 왔다는 김건축 목사가 수염을 기른 채 나타나 사탄의 무리들과의 전면전을 준비한다."
저자 :옥성호
기독교 내에서는 드물게 교단을 초월하여 널리 존경받는 사랑의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자 ‘부족한 기독교 3부작’으로 알려진 기독교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다. 아버지가 유명한 목사였음에도 정작 본인은 20대 후반 어느 시점,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다 2005년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읽던 중 기독교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탄탄한 논리 위에 영성을 더한 설교로 유명한 아버지의 일면을 빼닮아, 2007년 ‘부족한 기독교 3부작’을 통해 비판과 성찰이 사라진 한국 교회에 일침을 가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로이드 존스가 그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었다면, 문학의 세계로 안내한 건 러시아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주체할 수 없는 전율을 경험한 후, 솔제니친의 모든 저작들을 끌어안고 많은 밤을 지새웠다. 감동은 자연스럽게 창작으로 이어졌다. 밤은 여전히 고독하고 치열했으며, 절망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 고뇌와 열정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생각과 상식이 실종된 채 방황하는 한국 기독교에 작지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자 첫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를 탈고하여 오늘 선보인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주 노터데임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특허 전문 솔루션 벤처기업 위즈도메인 시카고 지사를 설립하고, 10년간 미국 전역의 유수한 회사들을 상대로 특허 분석 소프트웨어 포커스트(FOCUST)를 세일즈했다. 2010년 가을, 아버지의 소천 이후 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의 본부장으로 일했으며, 2014년 현재 본인의 1인 출판사 '은보'에서 출판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옥성호의 한 마디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얘기하면 부모님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고 핀잔을 주셨다. 그 학교에서 매년 서울대를 몇 명이나 보내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느냐고도 하셨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고교 선배 중 한 명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말죽거리 잔혹사>
그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영화니까 당연히 재미를 위해 내용을 꽤나 과장했을 거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그 학교를 다닌 사람은 누구나 영화가 과장은커녕 오히려 실제로 그 학교 내에서 있었던 많은 일을 완곡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에이, 세상에 이런 교회가 어디 있어? 말도 안 돼!” 안됐지만 그거야말로 편견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책 속에 표현된 것과 비교도 되지 않게 황당무계할 뿐 아니라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그게 현실이다. 마치<말죽거리 잔혹사>가 내가 실제로 다닌 고등학교의 일면만, 그것도 부드럽게 보여준 것처럼.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드러낸다. 그건 성역과 금기가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종교를 대상으로 무언가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종교는 여전히 성역이자 금기다. 소설가 황석영은 ‘작가’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작가란 당대의 한계와 금기를 깨뜨려 일상화하는 사람이다.” 내가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황 작가가 말하는 작가의 정의 비스무리하게라도 다가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나는 금기를 혐오하고 성역을 경멸한다. 무엇보다 금기와 성역은 필연적으로 위선과 거짓을 양산한다. 더욱이 그 금기와 성역이 신의 이름으로 포장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선과 거짓이 난무한다. 교회에서는 보통 이런 말을 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신본주의자이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인본주의자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가장한 신본주의야말로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본주의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이름으로 가장된 인본주의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양심’마저 쉽게 마비시킨다. 신의 이름으로 가장된 인본주의는 인간이 인간이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단 한순간이라도 도대체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그럼 이 글을 쓴 내 목표는 달성되는 셈이다. 덧붙여 아직도 한국에 만연해 있는 각종 금기와 성역이 ‘상식의 관’을 통과하며 정화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제 역할을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책의 제목은 ‘서초교회 잔혹사’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연을 쌓은 서초교회는 한 곳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 속의 교회 이름을 ‘서초교회’로 정한 이유는 서울 강남의 ‘서초동’이 지닌 부유함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특정 교회를 지칭한 것이 아님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힌다. 서초교회는 단지 부유한 동네 안에 위치한 대형 교회를 상징할 뿐이다. 이 글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묻는다면, 내가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관찰한 사실들에 대한 풍자이며, 이는 단지 조소가 아닌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힌트를 얻는 빚을 졌다. 주목받는 영화로 좋은 영감을 주신 유하 감독에게, 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감사함을 전한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은 후배 유인호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나는 우리 사회를 잔혹하게 만드는 성역과 금기가 사라지도록 만드는 데 책보다 더 중요한 매체는 없다고 확신한다. 스마트폰 대신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독자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하나님은 십자가 장식을 한 그 거대한 건물에 거주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묻는 촌철살인의 블랙코미디!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 지속적이고 예리하게 문제를 제기해온 옥성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다수의 저서가 기독교 분야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교단에선 이미 진보적 이론가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에게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사랑의교회 설립자이며 원로목사였던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라는 사실이다. 옥한흠 목사가 ‘행동하는 양심’으로 한국 기독교 교단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존경받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0년에 작고했음에도 옥한흠 목사는 최근 사랑의교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과 관련해 거듭 회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저자가 중요한 발언들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3부작’을 포함한 저자의 기독교 관련 저작들은 선친이 평생을 두고 실천해온 종교적 양심의 연장선에서 오늘날의 기독교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서초교회 잔혹사』 또한 방황하는 한국 기독교와 목회자의 일탈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그동안 천착해온 작업의 문학적 버전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서초교회 잔혹사』는 현실에 빗대어 그 의미를 더욱 증폭시키는 알레고리와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 유머러스한 상상력과 재기 발랄한 문체 등이 문학으로서의 독자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는 단지 글재주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고유의 영역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등단이란 절차를 밟은 적 없는 사람의 첫 장편소설이 본격문학의 영역 안에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성과다. 더구나 첫 소설을 통해 확고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기대를 품게 할 만한 대목이다. 실제로 그에게는 또 다른 작품의 초고들이 있거니와, 이 소설을 굳이 첫 장편소설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단지 사용되었을 뿐이다.
믿음과 위선, 신앙과 욕망에 대한 가장 유쾌한 방식의 질문! 소설 속의 김건축 목사는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짓고 사업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는 사람이다. 그의 신앙은 교회의 신도 수와 십일조 액수, 사업의 규모에 비례하여 깊어진다. 이 모든 게 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성스러운 일이므로 방식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속임, 모략과 배신, 협박과 폭력도 하나님의 사업 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한인교회를 운영하던 김건축 목사가 서초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궤도로 진입한다.
김건축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특유의 화법과 카리스마로 단숨에 교역자들과 신도들을 사로잡는다. ‘쌀루리 긴다 꼰다리 말까…’ 그는 아프리카 요루바 족의 언어로 만들었다는 찬양을 가르치고, 교역자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목청껏 따라 부른다.
그리고 글로벌 미션(세계 선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토익시험을 치를 것이며, 교역자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교회 내에 언론홍보팀이 신설되고 교역자들은 담임목사와 전무목사, 부장목사, 과장목사, 목사, 파트타임 목사 등으로 철저히 수직 재편성된다. 그리고 글로벌 미션 팀을 이끌 마이클 서 목사와 알렉스 리 목사가 소개된다. “에이멘~” “핼럴루야~” 마침내 교역자들의 발음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황당무계하고 코믹하기까지 한 상황들이 이후로도 이어진다. 김건축 목사는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하는 신지식인에 선정 되고, 『글로벌 마인드로 정복하는 영어회화』라는 책도 출판된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건축 목사의 등장과 더불어 서초교회는 날로 번창한다. 서초교회를 통해 글로벌 미션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꿈은 그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김건축 목사의 눈부신 활약은 마침내 역풍을 맞기 시작한다. 한 인터넷 언론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가면서부터다. 글로벌 미션을 무력화하려는 사탄의 본격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도원에서 생명을 건 기도의 사투를 벌이고 왔다는 김건축 목사가 수염을 기른 채 나타나 사탄의 무리들과의 전면전을 준비한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도, 팩트에 기반한 르포르타주도 아니다.
신도 수 늘리기에 급급한 일부 대형교회와 욕망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위선적 태도에 대한 비유적 성토이며, 금기와 성역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가하면 참담한 종교적 현실에 대한 포복절도할 풍자(諷刺)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관찰한 사실들에 대한 풍자이며, 조소가 아닌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서의 풍자이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가 금기와 성역을 깨고 상식의 관을 통해 정화되는 데 이 소설이 기여하길 바란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목차
프롤로그
사자 사냥꾼의 등장과 살생부
요루바족 언어가 준 교훈 잇 해즈 섬 굿 포인트 글로벌 미션을 수행하라 마침내 올 것이 오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 보이느냐, 공중의 저 새가 중용된 이유가 밝혀지다 운명을 건 최후의 영적 전쟁 소나무야, 소나무야, 푸른 소나무야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