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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주께 거룩한 것조회수 : 1367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년 8월 1일 13시 34분 54초
  • 주께 거룩한 것

    성경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섬기러 갈 때 여러 가지 의복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관의 앞에는 금으로 된 패를 붙였습니다.
     
    그 패에는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새기고(출28:36)
     
    그들이 순금으로 거룩한 관의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글을 쓰고(출39:30)
     
    하나님께서는 시청각 교육을 하시려고 자신 앞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을 적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구분된 거룩한 존재이어야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자기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는 거룩히 구분하는 숫양의 피를 발라야 했습니다. 피가 없이는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22 또 그가 다른 숫양 곧 거룩히 구별하는 숫양을 가져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그가 그것을 잡으니라. 모세가 그것의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그 피를 바르고(레8:22-23)
     
    이것은 대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며(귓불) 그것대로 행하며(손), 그분이 지정한 곳에만 가야 함을(발) 뜻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거룩히 구분된 자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은 렘2;3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주}에게 거룩한 자요(Holiness unto the LORD), 그의 소출의 첫 열매였으니 그를 삼키는 모든 자는 실족하고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주님께로만 거룩히 구별된 자들입니다.
     
    천년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에는 심지어 말들의 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 기록되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모든 그릇도 “주께 거룩한 것”이 됩니다. 말방울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보면 거기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식을 삶는 그릇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때가 천년왕국입니다.
     
    그 날에는 말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HOLINESS UNTO THE LORD) 기록될 것이요, {주}의 집에 있는 솥들은 제단 앞의 대접들과 같으리라. 21 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한 것이 되리니(holiness unto the LORD) 희생물을 드리는 모든 자들이 와서 그 솥들 중에서 취하여 그 안에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이제 이런 예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이 없으면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히12:14). 천년왕국에서 주의 집에는 가나안 사람이 없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함(Holy, Holiness)은 현시대 사람들에게 크게 결여되어 있는 성품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습니까?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3:16-17).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아나니야와 삽비라 같이 구원받은 성도라도 심지어 죽이십니다.
    이 거룩함이 없을 때 모세와 아론은 구원은 받았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은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서 나를 거룩히 구별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사도 바울의 권고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시니라(히12:28-29).
     
    성도는 거룩히 구분된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거룩히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한번 구원받으면 구원은 유지되지만 보상을 일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에는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에스라 사전)에 있는 거룩함 기사를 옮깁니다.
     
    주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스터디 바이블(에스라 사전)의 ‘거룩함’ 기사
     
    거룩함은 종종 밖으로 나타난 깨끗함을 표현하고 어떤 때는 내적인 순수함과 성결함을 나타낸다. 참된 거룩함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 특징을 부여한다. 거룩함은 내적인 원리이므로 단순히 정직함이나 자비 등과 같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뜻하지 않고 모든 선한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무한대로 완전한 방법으로 거룩한 존재이시다(사1:4; 6:3). 메시아 역시 거룩한 분이었고(시16:10; 눅4:34; 행3:14) 물론 성령님 역시 거룩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무죄함과 성결함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타락 때에 이 모든 거룩함을 상실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거룩함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성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일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생각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선도 참조(60).
     
    성경은 거룩하다는 말을 2차적인 의미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천국과 그분의 성전과 그 안의 기구들과 그 안에서 행하는 일과 그분의 날과 그분의 사역자들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거룩하다. 성경은 또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거룩히 구분된 사람들이며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거룩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이 내적인 순수함과 긍휼과 깨끗함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현대 교회는 거룩함을 잃고 있고 그것을 사랑과 혼동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성경에 611회 나오며 사랑은 488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사랑보다 거룩함에 대해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은 거룩함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사랑이 아니라 거룩함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거룩하게 경배하여야 한다(출15:11; 대하20:21; 사6:2-3; 계4:8).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29:2).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있다. 실로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으며 그 결과 그분의 거룩함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사랑이 사람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참으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성품을 조절하는 근본 속성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는 사랑에서 왔으나 그 사랑을 요구한 것은 그분의 손상된 거룩함이었다. 모든 사랑은 기준이 있어야 바른 사랑이 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거룩함이다. 사랑이라는 엔진이 아무 데나 굴러가면 무절제의 도구가 되는데 그분의 거룩함이 사랑의 엔진을 조절하여 바른 곳으로 인도하므로 그것은 사랑보다 높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만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분과 같이 거룩해야 하며 성경은 분명하게 그것을 요구한다(레20:26; 벧전1:15-16).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아드님, 거룩한 영, 거룩한 성경을 믿으며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현대자유주의자들은 거룩함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하며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을 찾기 어렵고 각 사람이 자기 보기에 선한 대로 하나님께 나오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거룩함이라는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교회 안에 각종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랑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교회가 수용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며 그런 식의 거룩하지 못한 경배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신다(잠28:9). 그러므로 기준과 표준을 요구하지 않는 기독교는 바른 기독교가 아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세상의 것을 버리고 야곱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야 거기에 부흥이 있다(창35:1-5). 따라서 교회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갈등을 일으킬 때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살 수 있는 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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