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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성경에 AI가 예언되어 있는가? 계시록 13장 15절조회수 : 55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10월 12일 16시 31분 51초
  • 「AI가 신이 되는 세상, 성경이 이미 예언했다」 영상의 주장과 성경적 문제점


    성경에 AI가 예언되어 있는가? 계시록 13장 15절

     

    최근 한글 킹제임스 성경(말씀보존학회)을 사용하는 성경침례교회의 한 목사가 「AI가 신이 되는 세상, 성경이 이미 예언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표하였다. 이 영상은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을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서에 연결하면서, 성경이 이미 그러한 미래를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이 마지막 때에 관해 말씀하는 것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다. 적그리스도가 올 것과 짐승의 형상이 세워질 것과 짐승의 표가 강요될 것을 믿는다. 또한 적그리스도가 그 시대의 발전된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글은 AI 기술을 옹호하거나 해당 설교자의 인격을 공격하려는 글이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성경이 실제로 말씀하는 것과 현대 기술을 보고 떠올린 개인의 추측을 구별하지 않고, 그 추측을 성경의 예언이라고 제시하는 데 있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성경이 예언했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더 높이는 일이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다. 성경의 최종 권위와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목회자라면 이 구별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 글에서 성경 본문은 킹제임스 성경 마제스티 에디션으로 인용한다.


    1. 영상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영상은 AI를 넘어 범용 인공지능(AGI)과 초지능이 곧 출현할 것이라는 전망을 소개한 뒤, 이것을 휴거 이후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상과 연결한다. 그러고 나서 요한계시록 13장 15절을 낭독하고, 짐승의 형상이 어떻게 실현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다니엘서 2장의 쇠와 진흙처럼 첨단 기계와 생물학적 유기체가 결합한 사이보그 형상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어서 다니엘서 8장 25절의 영어 단어 craft를 손기술로 읽어 적그리스도가 뛰어난 손기술을 지닌 인물로 등장할 것이라고 하고, 피터 럭크만의 말을 인용하여 그 손기술에 전기 전자 기술까지 동원된 정밀한 로봇 제작 기술이 합쳐져 움직이고 말하는 형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공상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해석한 설명이라고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3장 5절의 유혹과 뉴럴링크, 인공 장기, 수명 연장 기술을 연결하여 AI 개발의 동기가 신이 되려는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먼저 지적할 것은 영상 자체의 모순이다. 설교자는 처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쩌면”이라고 말을 꺼낸다. 이것은 추측이다. 그러나 몇 분 뒤에는 같은 내용을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해석한 설명”이라고 부른다. 추측이 어느새 성경의 정확한 해석으로 바뀌었다. 추측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추측이 성경의 말씀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2. 요한계시록 13장 15절: 짐승의 형상은 생명을 받는다


    이 영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본문에 있다. 마제스티 에디션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이 말씀의 핵심은 ‘생명을 줄 권능’이다. 본문은 둘째 짐승이 형상에 말하는 장치를 달았다고 하지 않는다.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능을 소유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형상이 말‘도’ 하게 된다. 말하는 것은 생명을 받은 데서 따라 나온 일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생명이 주어지고, 그래서 말을 하고, 그래서 경배를 요구하며 거부하는 자들을 죽인다.


    설교자도 이 구절을 두 번이나 직접 낭독하였다. 자기가 사용하는 성경에도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생명’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형상을 철과 진흙의 사이보그, 정밀한 로봇 제작 기술로 설명하였다. 자기가 읽은 본문의 핵심 단어를 자기 해석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AI는 아무리 발전해도 생명이 없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며 로봇의 몸을 움직이게 하더라도 그것은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창 2:7). 요한계시록 13장 15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생명’으로 옮긴 그리스어 ‘프뉴마’는 영 또는 숨을 뜻한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흙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살게 하신 일을 흉내 내어, 사람이 만든 형상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한다.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짐승이 부활을 흉내 낸 것처럼(계 13:14), 생명을 받은 형상은 창조를 흉내 낸 것이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탄의 권능으로 일어나는 가짜 창조이다.


    문맥도 이것을 확인해 준다. 바로 앞 구절들은 둘째 짐승의 이적을 말한다.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여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계 13:13-14).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둘째 짐승이 행하는 것은 초자연적 이적이며,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은 그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그 기적들로 속이던’ 거짓 대언자라고 부른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오는 것이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함께 온다고 말한다(살후 2:9).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일도 이 이적들의 하나이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을 첨단 기술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만은 로봇 기술로 설명하는가?


    성경은 이 장면의 모형도 보여 준다. 느부갓네살은 두라 평야에 금 형상을 세우고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코넷과 피리와 하프와 트럼본과 비파와 줄 달린 타악기와 온갖 종류의 음악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형상에게 경배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즉시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 한가운데 던져지리라”(단 3:5-6).


    형상이 세워지고, 온 세상에 경배가 강요되고, 거부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5절과 구조가 같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장의 형상을 이해하려면 다니엘서 3장의 형상을 보아야지 실리콘밸리의 로봇을 볼 것이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성경은 짐승의 형상이 생명을 받아 말하게 된다고 말씀한다. 영상은 그것을 기계가 말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본문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본문의 단어를 바꾼 것이다. 말하는 기계는 지금도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을 받은 형상이다.


    3. 다니엘서 2장의 쇠와 진흙은 기계와 생명체가 아니다


    영상은 다니엘서 2장의 쇠를 첨단 기계로, 진흙을 생물학적 유기체로 읽고 두 요소가 결합한 사이보그를 그린다. 그러나 다니엘서 2장은 쇠와 진흙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한다.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할 터인데 쇠는 모든 물건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므로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들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 왕국이 나뉠 것이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단 2:40-43).


    본문이 직접 말한다. 쇠는 넷째 왕국이다. 쇠와 진흙이 섞인 발과 발가락들은 그 왕국이 나뉘고,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지는 것을 뜻한다. 성경이 이미 뜻을 밝힌 상징을 가져다가 쇠는 기계이고 진흙은 생물이라고 다시 정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창작이다.


    43절은 특별히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성경은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씀도 기록된 그대로 믿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씨와 섞이는 존재들이므로 사람이 아니다. 노아의 날들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간 일이 있었고(창 6:4),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노아의 날들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24:37). 그러므로 마지막 왕국의 때에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의 씨와 섞이는 일이 있을 것을 우리는 성경대로 믿는다. 이것은 피터 럭크만의 주장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영상의 해석을 무너뜨린다. 43절이 말하는 것은 ‘그들’ 곧 존재들이 사람들의 씨와 섞이는 것이지, 기계가 사람과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혼합은 씨의 혼합이다. 영상이 말하는 혼합은 쇠붙이와 살의 결합이다. 성경이 분명히 말씀한 것을 두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또 한 가지 혼동이 있다.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것으로, 왕국들의 흥망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형상은 둘째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실제로 만들게 하는 우상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형상이다. 꿈속 신상의 재료를 가져다가 실제 우상의 재료로 삼는 것은 두 본문을 모두 잘못 읽는 것이다.


    4. 다니엘서 8장 25절의 craft는 손기술이 아니라 속임수이다


    영상은 다니엘서 8장 25절을 “그의 지혜를 통하여 그가 자기 손에 기술을 들려서”라고 읽고, 적그리스도가 손기술이 뛰어난 인물로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럭크만의 말을 빌려 그 손기술이 로봇 제작 기술로 발전하여 움직이고 말하는 형상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이 구절을 “And through his policy also he shall cause craft to prosper in his hand”라고 기록한다. 마제스티 에디션은 이렇게 번역한다.


    “그가 또한 자기 정책을 통해 자기 손안에서 속임수가 성공하게 하고 자기 마음속에서 자기를 크게 높이며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요, 또한 통치자들의 통치자를 대적하여 일어설 것이나 그가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무너지리라”(단 8:25).


    여기서 craft는 공예나 제작 기술이 아니라 교활한 속임수이다. 히브리어 미르마도 속임수와 기만을 뜻한다. 문맥도 그렇다. 바로 앞 23절은 이 왕이 ‘숨겨진 글의 뜻을 이해하는’ 자라고 하였고, 25절은 그가 정책을 통해 속임수를 성공시키고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한다고 한다. 정치적 기만을 말하는 구절이다. 손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뜻은 어디에도 없다.


    영어 단어 craft가 다른 문맥에서 공예를 뜻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뜻을 이 구절에 가져올 수는 없다. 영상은 성경 본문에서 적그리스도가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을 끌어내고, 거기에 로봇 기술을 덧붙이고, 다시 그것을 요한계시록 13장의 형상에 연결하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럭크만이든 누구든 사람의 설명은 성경 본문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유명한 교사의 말이라는 이유로 추측이 성경의 권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5. 신이 되려는 욕망은 성경이 말한다. 그러나 AI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다


    영상은 뱀의 유혹을 인용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창 3:5).


    신들과 같이 되려는 욕망이 타락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은 성경이 분명히 말한다. 루시퍼가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이 되려 했고(사 14: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셨다(창 3:22).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살려는 시도, 사람이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는 성경적으로 마땅히 비판해야 한다. 기술로 영생을 얻겠다는 오늘날의 풍조가 뱀의 옛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원리를 오늘의 현상에 적용한 것이지 성경이 AI를 예언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3장 5절은 AI를 말하지 않는다. 이사야서 14장도 뉴럴링크를 말하지 않는다. 설교자는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교만과 자신이 신문에서 읽은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의 발언을 이어 붙인 뒤, 그 전체를 성경이 예언한 것처럼 제시한다. 사람의 죄성에 관한 성경의 진단과 특정 기술에 관한 설교자의 분석은 구별되어야 한다.


    6. 예언된 사실과 성취 수단에 관한 추측을 구별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6-17절은 모든 사람이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되고, 그 표나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한다. 오늘날의 전자 결제와 신원 확인 기술이 그런 통제에 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통제가 어떤 장치로 이루어질지 말씀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바코드가 짐승의 표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마이크로칩이 짐승의 표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AI가 짐승의 형상이라고 한다. 시대마다 눈에 띄는 기술을 성경에 끼워 맞추면 성경의 뜻이 그때그때 바뀐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형상이 세워지고 표가 강요될 것을 예언하였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경은 그 형상이 로봇이라고 하지 않았고 그 표가 칩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언된 사실은 믿고 선포하되, 성취 수단에 관한 추측은 추측이라고 말해야 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13장 15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문제가 있다. 수단을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생명’을 기계의 작동으로 낮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측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본문을 바꾼 것이다.


    결론: 성경기록이 무어라고 말하느냐?


    바울은 아브라함의 의에 관해 논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성경기록이 무어라고 말하느냐?”(롬 4:3) 예언을 해석할 때도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이것이다.


    성경기록은 짐승의 형상이 생명을 받아 말하게 된다고 말한다. 로봇이 말한다고 하지 않는다. 성경기록은 쇠가 넷째 왕국이며 그들이 사람들의 씨와 섞일 것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사람과 결합한다고 하지 않는다. 성경기록은 적그리스도가 속임수를 성공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손기술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는다. 이 본문들을 AI 로봇, 사이보그, 정밀한 기계 제작 기술의 예언이라고 설명할 근거는 성경 안에 없다.


    그렇다면 이 영상은 왜 이런 해석에 이르렀는가? 영상의 제목이 그 답을 보여 준다. 「AI가 신이 되는 세상, 성경이 이미 예언했다」. 이것은 성경 본문에서 나온 제목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만든 제목이다. 지금 세상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AI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성경 예언을 한데 묶으면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제목을 내걸고 나면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보다 제목이 약속한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그래서 형상에게 주어지는 ‘생명’이 로봇 기술로 바뀌고, 넷째 왕국을 가리키는 쇠가 기계로 바뀌고, 속임수를 뜻하는 craft가 손기술로 바뀐 것이다. 성경이 결론을 정한 것이 아니라 제목이 결론을 정하고 성경은 거기에 끌려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 왜곡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들만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높인다고 하면서 자극적인 주제를 먼저 정하고 성경 구절을 거기에 꿰어 맞추는 것도 똑같은 왜곡이다. 오히려 이런 왜곡이 더 위험하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교회의 목사가 성경을 펴 놓고 말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 뒤 AI에 관한 전망이 빗나가거나 세상의 관심이 다른 기술로 옮겨 가면, 성경의 예언이 틀린 것처럼 보이게 된다. 바코드와 마이크로칩이 짐승의 표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남긴 것이 바로 그런 상처였다.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마지막 때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재림의 소망과 복음 전파의 권면도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바람직한 결론이 거기에 이르는 잘못된 성경 해석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제목과 놀라운 미래 전망이 성경의 권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성경의 최종 권위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한 것은 그대로 믿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것은 성경의 이름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성경이 예언했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는 것이다. 성경으로 세상을 해석해야지, 세상에서 유행하는 기술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제목으로 성경의 뜻을 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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