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성경공부

요한계시록

  • 성경공부
  • 성경Q/A
  • 요한계시록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천년왕국과 영원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떤 몸으로 살아갈까?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나무 조회수 : 74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10월 8일 16시 36분 32초
  • 천년왕국과 영원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떤 몸으로 살아갈까?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나무와 새 예루살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뒤 이 땅에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그 천 년이 끝난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휴거받아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과, 환난기를 통과하여 자연적인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부류는 천년왕국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 그리고 천년왕국이 끝난 뒤,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은 영원한 세상에 어떤 몸으로 들어가는가?

     

    미리 말해 두자면, 성경은 이 두 질문에 대해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분명히 말씀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서로 연결해 보면, 거기서 하나의 일관된 그림이 떠오른다. 이 글은 성경이 직접 말씀하는 것과 그 말씀들을 종합해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을 구분하면서, 그 그림을 차례대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1. 천년왕국에는 두 종류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다

     

    먼저 천년왕국에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확인해야 한다. 첫째 부류는 휴거와 부활을 통해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셔서 자신의 성도들을 데려가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먼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순식간에 변화된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은 이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때 성도들이 입는 몸은 지금 우리가 가진 자연적인 육체와는 전혀 다른 몸이다. 사도 바울은 그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으켜지며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는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라.”(고전 15:52-53) 빌립보서 3장 21절은 그 몸이 어떤 몸인지를 더 분명히 보여 준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써서 그 능력대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곧 성도들이 입을 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은 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문들을 닫고 모여 있던 곳에 그대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셨다(요 20:19, 26). 이것을 보면 부활한 몸은 지금 우리 육체가 받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몸이며, 더 이상 썩거나 죽지 않는 몸임을 알 수 있다. 한 번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 성도는 영원히 그 몸으로 살아간다.

     

    둘째 부류는 7년 환난기를 통과하여 자연적인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남아 그분의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로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국의 백성이 된다. 이들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며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등 지금과 같은 육체적인 생활을 계속한다. 이사야 65장은 왕국 시대의 삶을 이렇게 그린다. “그들이 집들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들을 세워 그것들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들이 지은 곳에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날수가 나무의 날수와 같고 내가 선택한 자들이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기 때문이라.”(사 65:21-22) 같은 본문은 그 시대 사람들이 매우 장수하며 자녀를 낳아 후손을 이어 간다고도 말한다(사 65:20, 23). 이것은 영화로운 몸이 아니라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존재한다. 영화로운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국을 통치하는 성도들과,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여전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땅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앞의 부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할 몫을 가진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런 자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계 20:6)

     

    2. 두 부류는 천년왕국에서 어떻게 교류하는가

     

    그렇다면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과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백성들은 천년왕국에서 서로 어떻게 만나고 대화하며 살아갈까? 성경은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한다. 따라서 이들과 왕국의 백성들 사이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는지,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백성들 앞에 나타나는지,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활동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말씀하시고 또 사라지시기도 하셨던 모습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천년왕국의 일상에 그대로 옮겨 놓을 근거까지는 성경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두 종류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교류하며 살아가는지는 하나님께서 그때 친히 보여 주실 일로 남겨 두는 것이 옳다.

     

    3. 천년왕국이 끝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사탄이 잠시 풀려나 민족들을 미혹하여 곡과 마곡의 반역을 일으키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신다(계 20:7-10). 그러나 이때 땅의 모든 사람이 사탄의 반역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도 모두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는가, 아니면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는가?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성경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 이들이 모두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과 천 년이 끝난 뒤 심판받기 위해 일으켜지는 나머지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천 년의 끝에 살아 있던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순간 변화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연적인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 살아갈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성경의 사실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4.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이 땅에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주신 명령은 땅과 관련된 것이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땅을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처음부터 죽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죽음이 없었고, 에덴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다(창 2:9).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으면서 죽음이 들어왔고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땅을 가득 채우고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첫 명령은 결국 실패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처음 주신 목적이 사람의 죄로 좌절된 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새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맞다.

     

    5. 생명나무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과 직접 관계가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가 창세기 3장 22절이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남자가 우리 중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다. 그뿐 아니라 그 길 자체를 막으셨다. “이렇게 그분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사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하셨는가? 죄를 지은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그 죄 가운데서 영원히 사는 일을 막으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생명나무가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나무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그룹들과 불타는 칼까지 두어 그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6.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 생명나무가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 책에 이르면 창세기에서 길이 막혔던 그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한다.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그것이 열두 종류의 열매들을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해 있더라.”(계 22:2) 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생명나무는 영원한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 그 나무는 열매를 맺는데, 한 번만 맺는 것이 아니라 달마다 계속해서 맺는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민족들과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왜 영원한 세상에 생명나무가 있어야 하는가? 왜 그 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는가? 창세기에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사는 길이 막혔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나무에 나아갈 권리가 다시 주어진다.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계 22:14) 창세기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다면, 요한계시록에 다시 등장하는 생명나무도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같은 나무를 성경의 처음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지막에서는 장식이나 상징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그 나무의 잎사귀들이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은 이 나무가 영원한 세상에서 실제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영원한 세상에는 사망도 아픔도 없다(계 21:4). 그런데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을 반드시 병이 생긴 뒤에 고친다는 뜻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생명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온전한 건강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공급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 나무는 구원받은 민족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나무이며,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7. 새 예루살렘과 새 땅,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민족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이어 새 예루살렘을 보여 준다. “나 요한이 보니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같이 예비하고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계 21:2) 10절에서도 요한은 크고 높은 산으로 이끌려 가서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이 도시를 다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 예루살렘이 영적인 상태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 도시의 규모까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 도시는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고 길이가 너비만큼 크니라. 그가 그 갈대로 도시를 측량하였더니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으며 그것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으니라.”(계 21:16)

     

    그렇다면 이 거대한 도시는 새 땅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가? 성경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할 뿐, 그 도시가 새 땅의 표면에 내려앉는지, 땅 위의 공간에 머무는지,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성경 연구자들은 새 예루살렘이 땅에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땅 위의 공간에 머물면서, 고정되어 있든 땅 주위를 돌든, 새 땅과 구별되면서도 서로 연결된 하늘의 도시로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견해는 공상이 아니라 본문의 몇 가지 사실에서 나온다.

     

    첫째는 크기이다. 만 이천 스타디온은 약 2,200킬로미터에 이른다. 지구의 반지름이 약 6,400킬로미터이고 달의 지름이 약 3,500킬로미터이니, 높이가 2,200킬로미터에 이르는 구조물이 땅의 표면에 놓여 있는 그림은 그 자체로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둘째는 본문의 표현이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과 10절은 둘 다 그 도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말하고 거기서 멈추며, 땅에 내려앉았다고 끝맺지 않는다.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빛이다. “그 도시는 안에서 빛을 비출 해와 달이 필요 없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었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라.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시의 빛 가운데서 다니겠고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곳으로 들어가리라.”(계 21:23-24) 민족들이 그 도시의 빛 가운데서 다닌다는 말은, 그 도시가 새 땅 위에 떠 있어 그 빛이 땅을 비추는 그림일 때 가장 문자 그대로 읽힌다. 이사야도 장차 주께서 친히 영존하는 광체가 되시고 다시는 해가 낮의 빛이 되지 않을 날을 예언했다(사 60:19-20).

     

    이어지는 말씀은 새 예루살렘과 그 밖의 새 땅 사이에 실제적인 왕래가 있음을 보여 준다. “거기에는 밤이 없을 것이므로 낮에 그 도시의 문들이 결코 닫히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 민족들의 영광(榮光)과 존귀를 가지고 그곳으로 들어가리라.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5-27) 

     

    문들이 결코 닫히지 않고, 민족들이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안으로 들어오며,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는 것은 도시 안과 도시 밖에 사람들이 있고 그 사이를 오간다는 뜻이다. 그 왕래가 있으려면 새 예루살렘은 새 땅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도시가 떠 있든 땅에 놓여 있든 그 방법을 성경이 설명하지는 않지만, 새 땅의 민족들이 드나들 수 있는 하늘의 도시라는 큰 그림 자체는 본문이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조가 보인다.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천년왕국을 통과하여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구원받은 민족들은 새 땅에서 살아가면서 새 예루살렘을 드나드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이 구별되어 묘사되는 이유, 민족들이 그 도시의 빛 가운데서 다니는 이유,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가 그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이유가 하나의 일관된 구조로 설명된다. 그리고 그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가 달마다 열매를 맺고, 구원받은 민족들이 그 열매를 먹으며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도 이 구조 안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8. 영원한 세상에도 두 종류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들을 종합하면 영원한 세상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첫째는 부활과 휴거를 통해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으로 영원히 살며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새 예루살렘의 종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기에는 밤이 없어서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계 22:5) 둘째는 천년왕국을 통과하여 새 땅에 들어간 구원받은 민족들이다. 이들은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새 땅에서 살아가며, 생명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통해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면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새 예루살렘과 새 땅, 영화로운 성도들과 구원받은 민족들, 생명나무와 그 열매가 각각 분명한 자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명령, 곧 땅을 가득 채우고 정복하라는 명령도 영원한 세상에서 계속 이루어진다. 새 땅의 민족들이 자녀를 낳고 번성하며 땅을 가득 채우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광대한 우주를 탐구하고 다스리는 일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는 실로 광대하다.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신다면, 그곳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토록 이루어 갈 일들도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놀라울 것이다.

     

    9. 천년왕국의 사람들과 동물들은 새 땅으로 어떻게 들어가는가


    천년왕국이 끝나면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하늘과 땅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신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불태워질 것이라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느니라.”(벧후 3:13) 요한도 같은 것을 보았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계 21:1)

     

    그런데 천년왕국이 끝날 때 이 땅에는 살아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동물들과 여러 창조물도 있을 것이다. 땅에서 악한 것들과 죄의 흔적이 모두 제거되고 땅이 새롭게 되는 그 과정에서 이들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성경은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실지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그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는 몇 가지는 있다. 로마서 8장은 창조물 자체가 썩음에서 해방될 것을 말한다. “이는 창조물 그 자체도 썩음의 속박에서 구출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해방의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롬 8:21)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사람의 혼이나 영화로운 몸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전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앞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씨와 이름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남아 있을 것같이 너희 씨와 너희 이름도 남아 있으리라. 주가 말하노라.”(사 66:22)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들을 놓으사 영원히 이동되지 않게 하셨다고 노래하고(시 104:5), 전도서도 “한 세대는 가고 다른 세대가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4)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에서 땅은 잠시 쓰다가 버리는 장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창조 목적에 따라 땅을 새롭게 하시고 그 위에 영원한 세상을 이루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동물들을 어떻게 다루실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 구원받은 민족들이 존재하고 생명나무가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10. 생명나무를 통한 영생은 성경 전체의 흐름과 맞는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영원한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그렇다면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창세기의 생명나무가 그 답을 준다. 아담이 죄를 지은 뒤에도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막으셨다. 그런데 영원한 세상에서는 죄와 저주가 제거되고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다시 열린다. 새 땅의 구원받은 민족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며 영원히 살아간다고 이해하면, 다시는 사망이 없다는 말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영화로운 몸을 입어야만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담은 처음부터 영화로운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흙으로 지어진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죽음의 지배 아래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생명나무를 마련해 두셨다. 그렇다면 영원한 세상에서도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며 영원히 살아가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그 잎사귀들이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은 그 나무가 민족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실제로 쓰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연적인 육체에는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공급이 필요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생명나무를 마련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이 놀랍게 맞물린다. 창세기에서는 죄로 인해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혔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죄와 저주가 제거되고 그 길이 다시 열린다. 창세기에서는 사람이 땅을 가득 채우고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땅과 그 위의 구원받은 민족들이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우신 창조의 목적이 마지막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맺음말: 성경이 말한 것과 거기서 끌어낸 것

     

    천년왕국과 영원한 세상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분명히 계시해 주셨다. 휴거받은 성도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 환난기를 통과한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간다. 천년왕국이 끝난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며, 그곳에는 구원받은 민족들이 있고 새 예루살렘이 있으며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 이것들은 성경이 직접 말씀하는 것이다.

     

    이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서로 연결하면, 천년왕국을 통과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연적인 육체를 가지고 새 땅에 들어가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며 영원히 살아가고, 그래서 영원한 세상에는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과 자연적인 육체를 가진 구원받은 민족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성경이 한 구절로 선언한 교리가 아니라 성경의 여러 말씀을 종합해서 끌어낸 결론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벗어난 결론은 아니다. 오히려 이 결론을 피하려면 생명나무든 달마다 맺는 열매든 민족들을 치유하는 잎사귀든 새 땅의 민족들이든,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를 상징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물론 성경은 천년왕국을 통과한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 반드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되지 않는다고 못 박아 말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땅을 새롭게 하시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동물들을 어떻게 다루실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른다고 해서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생명나무와 구원받은 민족들의 존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성경의 처음에 등장한 생명나무가 성경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고,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 영원한 새 땅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세상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끝없이 시간만 보내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가 있고, 구원받은 민족들이 있으며, 생명나무가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우신 창조의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 영원한 세상은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풍성하며 놀라운 세계일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