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평가 및 반론: (1) 성경 내장 사전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온 곳의 의미가 그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인데, 나중의 창 9:1에서 뜻을 정의 내지 확신하고 그것을 창1:28에 거꾸로 가져와서 그 곳의 뜻을 풀이하는 것은 역적용하는 원칙 위반이지 않은가요? 그 논거는 제척됩니다. (2) 흠정역에서는 ‘replenish’의 사전적 의미 중에서 ‘채우다’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채택했는데, 위의 논거에서는 다른 의미 ‘다시 채우다’를 적절한 번역이라고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가 다수의 의미를 가지는 ‘다의성’은 어떤 언어에서나 다 있지만, 이 경우처럼 동일한 의미 ‘채우다’에 ‘다시’라는 반복 개념만을 추가해서 다른 의미의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를 사용할 때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다의성이란 서로 다른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다수 있는 것이고, 의미가 같은 경우에도 사용처가 다른 경우에라야 혼란이 초래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같은 사용처에 동일한 단어를 반복성만 추가해서 쓰는 다의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 예화를 보기 바랍니다. [식당에서] (손님): 야, 웨이터. 물 한 잔 블라블라. (웨이터): 네. (종이컵에 물 한 잔 채워서 가져다 줍니다.) (손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종이컵을 테이블에 놓았는데, 물 컵에 그만 파리가 한 마리 빠져버렸습니다. 에잇! 하며 테이블 아래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야, 웨이터 물 한 잔 블라블라. (웨이터): 갔다 드렸잖아요. (손님): 물 한 잔 다시 블라블라란 뜻이야 임마. (웨이터): 그럼 애초에 물 한 잔 다시 블라블라라고 하셨어야죠. 사람 헷갈리게. (손님): 이 자식이 뭐? 블라블라는 다시 블라블라란 뜻도 있잖아. (웨이터): 그건 그렇지만, 그냥 블라블라라는 뜻도 있잖아요. 같은 단어를 쓸 거면 다시 블라블라라고 하셨으면 오해가 없죠. (손님): 뭐야 임마? 꼬박꼬박 말 대답이야? 네가 오해할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알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야지! (네, 결국 자기가 개떡같이 말했다고 스스로 자인하고 말았습니다.) 위의 예화에서는 블라블라란 단어가 가져와입니다. 가져와란 단어가 그냥 가져와란 뜻도 있고 다시 가져와란 뜻도 있어서 같은 상황에서 그 단어를 쓴다면 저런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replenish’의 사전적 의미에는 ‘채우다’도 있고 ‘다시 채우다’도 있는데 전자는 ‘사람이나 동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fill’은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수정안으로 제시하는 후자의 의미는 전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장소에 사람이나 동물이 가득 차는 것은 단시일 내에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일회성이죠. 특히 창세기 1장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에, ‘다시 채우다’가 하나의 단어로 쓰이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반복이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fill again’처럼 두 단어로 길게 말하지 않으려고 단어 하나에 반복 개념을 포함시켜 간편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replenish’가 ‘다시 채우다’로 사용되는 경우란, 컵에 물을 다시 채운다든지, 바구니에 사과를 다시 채운다든지처럼 손쉽게 단시간 내에 반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의미라야 합니다. 창 1:28에서처럼 온 땅을 사람이 다산하고 번성하여 채우는 것과 같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상황에는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혹시라도 재창조를 전제로 하고 사람이 온 땅을 다시 채우라고 표현하려면 ‘replenish again’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3) 위의 ‘1. 주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에서 ‘replenish’의 ‘다시 채우다’란 의미를 땅을 채우는 것에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설사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다른 불합리가 드러납니다. 다음 예화를 보십시오.
[다시 식당] (손님): 야, 웨이터. 물 한 잔 가져와. (웨이터): 네 (손님): (조금 있다가 다른 웨이터에게) 야, 웨이터 물 한 잔 다시 가져와. (웨이터): 네? 제가 언제 갖다 드렸던가요? (손님): 아까 다른 웨이터가 가져와서 한 잔 마셨단 말이야, 임마. (웨이터): 에이 그럼 다시란 말을 하지 마셔야죠. 사람 헷갈리게. (손님): 뭐야 임마? 내가 다시 먹는 거니까 그렇게 말했지. 그런 것도 짐작 못해? 군소리 말고 물이나 가져와! (웨이터): (혼잣말로) 에이, 자기가 잘못 말해 놓고 괜히 나한테 뭐라고 그래. ** 아마도 웨이터는 기분 좋게 물을 갖다 주지는 않을 겁니다. 재창조를 전제로 하고 ‘다시 채우다’라는 뜻으로 읽어 보면, 비록 하나님께서는 다시 채우게 하시는 것일지라도, 아담과 이브는 처음 채우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채우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바른 화법이 아닙니다. 결론: ‘replenish’는 ‘다시 채우다’란 의미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란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