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이 단어와 대언자(prophet)는 성경에 500회 이상 나오며 성경 기록 그 자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영어사전에서 이 단어의 주된 의미가 ‘예언하다’이므로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들을 앞날을 예견하는 ‘예언’과 ‘선지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대언’(代言)이며 성경의 용례 역시 전적으로 이것을 가리킨다(출7:1; 겔37:4; 계19:10). 예수님은 아벨을 가리켜 최초의 대언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한 자라고 하심으로써 이 사실을 확증하셨는데(눅11:50-51) 실로 그는 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고 그 결과 박해를 받아 죽게 되었으며 결코 앞날을 예측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이런 차원에서 아브라함도 대언자라 불린다(창20:7).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할 때에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라는 선언과 함께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대언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대언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셨다(신18:22). 이와 같이 대언자의 책무는 엄청났으며 구약시대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의 패망에는 거짓 대언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거짓 대언자 참조. 한편 성경 기록 자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언자들이 받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벧후1:20-21). 기존의 우리말 성경이 이처럼 중요한 단어를 고린도전서 12-14장 등에서 선지자나 예언 등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교회 내에 심각한 영적 선물(은사) 문제가 일어나고 기복신앙이 널리 퍼져 많은 교인들이 입시, 입사, 이사 때마다 예언기도 받으러 기도원의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신약시대 초기에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지만 그것은 대언의 말씀이지 결코 예언의 말씀이 아니다. 구약 대언자들의 말씀 중 여러 부분이 미래를 다루므로 대언에 예언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언이라는 말은 이미 그 의미도 다 포함하고 있다. 사실 구약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어서 처음에는 선견자(seer)라는 호칭이 있었으나 후에는 대언자로 바뀌었다(삼상9:9). 이런 선견자야말로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으로 ‘선지자’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대언자를 선지자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예언, 선견자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