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모든 자유인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내적 기능(롬2:13-15).
이것을 통하여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옳은 것은 택하고 그른 것은 버린다. 양심은 자연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 자체와 사람의 도덕적인 행위를 규제한다. 양심이 있기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회계 보고할 책임을 지니고 있고 양심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소리를 감지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양심이 순수하고 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의무가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때에는 어떤 것도 양심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다.
비록 양심이 바른 것을 해야 한다고 외치며 확신을 주지만 양심의 가치는 사람의 혼의 타락으로 인해 크게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의 혼은 모든 문제에서 사람의 판단을 굽게 만들고 뒤틀리게 만든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양심에 의거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박해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행26:9). 그의 죄는 자기의 모든 힘을 다해 자기의 양심에 빛이 비치도록 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양심이 깨끗해지도록 하지 않은 데 있다. 시대를 통해 교회를 박해한 사건들과 의도적인 오류들은 모든 사람이 완전한 빛과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 준다. 선하고 순수한 양심(딤전1:5; 3:9)은 그리스도의 피로 뿌려졌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복음의 동기로 그 뜻에 복종하게 만든다. 사람이 이렇게 양심에 순종할 때 범법하지 않는다(행24:16). 선한 양심의 허락을 받는 것은 사람의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약하고 결의가 없고 어두워진 양심(고전8:7)은 더러워진 양심으로서 부패한 마음의 노예 노릇을 할 뿐이다(딛1:15; 히10:22). 이것은 또한 인두로 지진 양심으로(딤전4:2) 은혜에 의해 변하지 않는 한 율법과 복음을 대적하는 일을 하며 궁극적으로 복수하는 양심이 되고 영원한 후회를 가져오는 도구가 된다. 몸의 상처는 결코 양심의 고통과 비교될 수 없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양심이 활동을 멈추고 자는 것 같아도 그것은 결코 죽지 않는 벌레처럼 결코 꺼지지 않는 불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혼을 영원토록 괴롭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