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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성경의 영감과 번역조회수 : 1045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9일 14시 0분 20초
  • 성경의 영감과 번역

    래키(Bruce Lackey) 저 / 임재영 역

    전제 : 어떤 성경 역본이 만일 부패하지 않은 사본으로부터 '바르게 번역된 역본'이라면 그 역본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1. 디모데후서 3:15-17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소유한 성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성경이 '영감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2. 디모데는 자필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필사본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역본을 가졌을 가능성도 꽤 크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고 그는 더베 및/또는 루스드라에 살았기 때문인데, 그 지역은 분명히 그리스어가 통용되던 곳이었다. 신약 성경에 인용된 인용 구절들은 모두 히브리어 자필원본의 사본이나 또는 그리스어 역본을 가리킨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자필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3. 디모데가 소유했던 성경은 "거룩한 것"이라 불렸다. '거룩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구별된' 등을 뜻한다. 그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편 12:6-7, 시편 100:5 및 기타 다른 여러 곳에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영감 받고 보존되었다'는 의미에서 '구별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다른 고대 문서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문서도 "거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4. 히브리서 1:8과 10:5는 매우 권위 있게 그리스어 역본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다.

    5. 히브리서 3:7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 구절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였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말씀을 '70인역'(Septuagint)에서 인용하였든지 혹은 자신이 번역하였든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구절을 그리스어로 기록하면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담대하게 단언했다는 사실이다. 왜 거기에 히브리어를 삽입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번역본도 정확하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즉 성경)으로 일컬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히브리서 9:8, 10:15도 이와 동일하다.

    6. 단지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아무도 영감 받은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마태복음 4:4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순종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자필원본을 가진 자만이 이 구절에 순종할 수 있게 하셨던가? 혹은 히브리말이나 그리스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구절에 순종하게 하셨을까?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에 대한 답변이 명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만드셨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을 때 과연 그분께서 성경이 여러 번 필사되고 번역될 것을 모르셨겠는가? 만일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우리가 디모데후서 4:2의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며, 계시록 22:18-19 말씀 즉 성경에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에 관한 경고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 또한 가르침을 받아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는" 유익을 얻을 수 없다(딤후 3:16-17).

    7. 부패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전서 1:23-25는 "우리가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가르치며 또 "복음으로 너희에게 전한 말씀이 이것이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들었던 바 "말씀이 이것이니라"(THIS IS THE WORD.)라는 구절에 유의하기 바란다. 그들은 아마도 자필원본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복사본이거나 번역본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말했다.

    8. 부패하지 않은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라면,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면 어떠한 성경도, 어떠한 번역본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바티칸 사본에 있는 많은 구절들도 TR에 있는 구절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런 경우에 그것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부분은 다름이 아니고 성경이 변개된 곳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1은 KJV와 NASV가 정확하게 같다. 우리는 단순히 어떤 구절이 발견된 책이나 또는 사본에 기초해서 그 구절을 정죄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구절이 정확한가 아닌가이다.

    반대 의견에 대한 답변

    반대 1 : 이탤릭체 단어도 영감을 받았는가?

    답변 1 : KJV 만이 이탤릭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번역본은 아니다. 몇몇 다른 역본도 KJV과 같이 이탤릭체를 사용한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단어 대 단어의 번역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탤릭체로 된) 단어를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어는 자주 동사를 생략하지만 그리스어 문법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완전하고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이렇게 하면 어색한 문장이 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해하는데 매우 방해가 될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 3:16의 "is"는 이탤릭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이탤릭체 단어를 일치하게 만든 역본은 없다.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에서 KJV은 "is"를 이탤릭체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is"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given by"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도 없다. NASV는 베드로전서 2:8에서 "doom"을 이탤릭체 단어로 사용하지만 "because"는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삽입하는 단어가 정확하다면 단어의 삽입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하다.

    마태복음 4:4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구약의 신명기 8:3의 그리스어 역본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KJV는 "word"를 이탤릭체로 보여주는데 이는 번역자가 첨가하였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같이 첨가하는 일에서도 완전하고 정확했다. 왜냐하면 이 단어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영어에서 명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자도 "word"를 추가했다(그리스어로 로고스).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심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그들도 역시 정확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의심할 바 없이 바른 역본과 그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하셨다!. 따라서 이탤릭체에 대한 반대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반대 2 : 번역자들은 일관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그리스어 단어를 여러 개의 영어 단어로 번역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답변 2 : 우리는 반드시 번역자의 선택과 번역자의 오류를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로마서 7:7-8에서 그리스어 명사 '에피튜미아'와 이에 해당하는 동사 에피튜메오는 '탐욕'(lust), '탐내다'(covet), '욕정'(concupiscence) 등 세 가지 영어 단어로 번역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구절들에서 번역자들이 오류를 범했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 시대에 이 세 단어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정관사를 번역하는데 있어서도 동일하다. 모든 번역자들이 정관사를 번역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KJV도 NASV도 관사를 항상 번역하지 않았다.

    우리가 번역자들의 단어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반드시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어 단어 story, fast, tie, post, watch 등은 다 적어도 2개나 3개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어떠한 언어에도 존재한다. 동의어의 경우를 보면 어떤 때에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나, 다른 때에는 미미한 의미의 차이를 갖는다. 예를 들면, 'car'와 'automobile'은 동일한 것을 가리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열차(railroad car)와 자동차(automobile) 사이를 구별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문맥에 의해 옳고 그름을 결정해야한다.

    반대 3 : 번역이 영감을 받았다면 난외(欄外) 주(註)가 있거나 다른 대체 단어를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답변 3 : 단어나 구절에서 다른 번역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번역자가 성경기록을 교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은 과거 300년 이상의 기간에 영어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널리 퍼져 있으나 1611 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거짓 교리가 많은 사람들의 이해하는 바를 혼동시켜왔다. 따라서 그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하며,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간혹 구약 성경기록을 알기 쉽게 부연하여 설명했다.

    예 : 마 12:17-21 (이사야 42:1-3에서), 롬 3:10-18 (시 14:1-3; 시 5:9; 시 140:3; 시 10:7; 시 59:7-8; 시 36:1)

    따라서 같은 진리를 가르치는데 다른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패하지 않은 원문에서 번역된 영어 번역은 동일한 원문에서 번역된 스페인어 번역과 똑같이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비록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을지라도, 동일한 사실을 말하는 두 개의 영어 번역도 일치하는 성경 부분에서는 똑같이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반드시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부분은 다른 가르침이나 또는 삭제된 부분이다.

    KJV의 최초 원본 서문을 보면 난외(欄外) 주(註)에 관한 지혜의 글이 나온다.

    "논쟁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불확실한 것이 나타나 성경에 대한 권위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을 염려하여, 어떤 이들은 난외 주에 여러 가지 해석을 다는 것을 원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단 한번만 나오는 단어들이 많이 있으며 따라서 이런 경우에 비슷한 구절들을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새와 동물과 보석 등에 관한 희귀한 이름이 많으며 그 이름들에 대해서는 히브리인들조차도 서로 견해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딘 가에서 성(聖) 제롬이 70인역에 관하여 말했던 것 같이, 자기들이 말하는 바를 확신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으로 정의를 내렸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우 난외 주가 있어서 읽는 이가 좀더 찾아보도록 권고하는 것이 더 좋으며, 조사도 하지 않고 이것저것을 결론 내리거나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결론

    1. KJV 역본의 근간이 된 TR은 시12:6-7, 시100:5, 벧전1:23-25에 있는 약속에 따른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말씀'이다. 만약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 P46, P66, P75 등이 부패하지 않은 성경이라면 그것들이 분실되었을 때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을 갖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2. 사본과 역본에 관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에 의한 방법이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에 의해 TR이 TR이며, 네슬레의 각주 자체는 정확하며, 오늘날의 KJV이 최초 인쇄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모든 사람에게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한다(롬10:17). 따라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학자나 또는 학자 단체의 신뢰성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 보존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일치하게 믿어야 한다.

    4. 나는 KJV이 부패하지 않은 히브리어 사본과 그리스어 사본에서 번역된 정확한 번역본이며,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음을 믿는다.

    사람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바, 하나님의 말씀 사본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본문 비평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섭리적 보존에 관한 분명한 교리를 믿는 나의 믿음이 그런 것을 무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창조론과 창조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자들의 발견 사이에 존재한다.

    명백한 약속에 근거한 믿음은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제기되는 반대보다 강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대 동안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또한 KJV에 의해 표현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이 모든 세대가 소유했던 성경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KJV 성경에서 선포된 진리를 그처럼 두드러지게 사용하셨기 때문에, 나는 필히 이 성경(KJV)을 따르고 다른 성경을 배척하는 바이다. (99.2.4)

    (*) 이 글의 저자인 래키 박사님은 예수님 당시에 "70인역"이라는 그리스어 역본이 존재한 것으로 믿으나, 본 사이트의 webmaster는 그렇게 믿지 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다만 이 분이 주장하는 대로, 바티칸 사본에서도 '부패되지 않은 부분'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성경기록'이라는데 100% 동의한다. 한글개역성경의 경우도 마차가지다. 비록 알렉산드리아 본문에서 번역되었지만, 올바른 본문과 일치하는 부분 - 적어도 85% 이상 - 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기록'임에 확실하며 그 말씀은, 어떤 KJV 과격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사탄의 저주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따라서 한국어로 번역된 '올바른 KJV 성경'이 없는 한 개역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하며, 영어를 하는 경우에는 비교해 가며 읽는 것이 좋다. 부디 일반 독자들에게 '개역성경'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안에서 '변개되지 않은 부분'과 '올바로 번역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부디 KJV의 정확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성과 지각이 없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일에 앞장서서는 안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일을 좋아하겠는가? 마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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