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질문: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나 모순처럼 보이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60> 대답: 믿음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함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 해 전 부엌에서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니 근처에 있는 신학교에서 내가 가르치던 학급의 학생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교회 목사님이 킹제임스 성경에도 모순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고 말했습니다(굉장한 ‘믿음의 사람’이겠군요.). 그는 내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그 모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할 때 그 논쟁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나는 이야기 도중에 말을 끊었습니다. “아, 선생님께서는 거기에 대해 알고 계시군요?” 그가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그 답이 무엇입니까?” 그는 기대에 차서 재촉해 물었습니다. “나도 모릅니다.” 나는 그가 나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나를 많이 신뢰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 청년에게 들려주었던 나의 답변을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리려 합니다.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만약 저나 흠정역 성경을 믿는 다른 신자가 성경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다면 스스로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유한한 창조물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라도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로, 만약 우리가 성경 문제에 관한 질문의 답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인해 행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히11:6; 고후5:7). 저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질문들이 항상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성경의 절대무오성에 관한 최종 판결은 우리가 좋아하는 ‘믿음의 방어자들’의 지적 능력이나 학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편 12편 6, 7절과 마태복음 24장 35절 등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결론이 내려지리라 믿습니다. 물론 흠정역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러한 결론이 약간 불리한 것으로 느낄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은 그것을 알고 우리가 입은 갑옷의 구멍난 부분으로 생각되는 부분을 재빨리 이용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후 방어 수단으로 ‘믿음’을 의지하는 것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처럼 그렇게 모순되거나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구절들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의 능력을 믿기보다는 신구약 시대의 많은 성도들이 보여 주었던 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 안에 믿음을 두기를 원하실 것이기에 이렇게 하는 데는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일은 결코 우리 자신을 우리의 고집스러운 적들의 처분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므로 분명히 불안정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성경의 완전성을 믿는 것이 이미 소실된 원본들의 완전성을 믿는 것처럼 나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비평 학자들이 원본의 절대무오성에 대해 그렇게 충성을 보이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절대로 원본을 출판할 수 없다는 것과 따라서 자기들의 믿음이 시험을 받거나 나쁘게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스스로 우쭐대는 우리의 형제들’로부터 모욕을 당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원본보다는 우리 만질 수 있는 성경에 대한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답변에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