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사도행전 9장 5-6절 5 And he said, Who art thou, Lord? And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thou persecutest: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6 And he trembling and astonished said, Lord, what wilt thou have me to do? And the Lord said unto him, Arise, and go into the city, and it shall be told thee what thou must do(영어 킹제임스 성경). 5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6 그가 떨며 심히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킹제임스 흠정역). [역자 주: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들이 들어 있으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삭제되어 있음.]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는 5절의 내용은 구 라틴 사본들과 약간의 벌게이트 사본들에 들어 있다. 이 구절은 또한 페시타와 그리스어 코덱스 사본 E, 그리스어 사본 431에 있지만 지금처럼 5절에 있지 않고 4절에 있다. 6절 말씀 즉 “그가 떨고 심히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는 구 라틴 성경, 라틴 벌게이트 그리고 몇몇 고대 시리아 역본과 콥트 역본에 있다. 그렇지만 이 구절들은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으며 또한 비평 본문이나 다수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이 구절들은 공인 본문에 포함된다. 표면적으로 볼 때 본문상의 증거는 약하게 보인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대다수의 그리스어 증거들을 물리치고 공인 본문을 수용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이 구절들이 다른 언어들에서 보존되어 있고 내적 증거 역시 사실상 바울의 개종 당시에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신 것이 확실함을 보여 주므로 이 구절들은 확실한 것이다.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회심이 이루어진 것을 보여 주는 유일한 성경 기록이 아니다. 사도행전 22장 10절과 26장 14절에서 우리는 사도 자신의 증언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는 모든 그리스어 본문에서 문제의 그 구절들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22장 10절 (킹제임스 흠정역) 내가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하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다마스커스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하도록 정해 놓은 모든 일을 거기서 듣게 되리라, 하시니 사도행전 26장 14절 (킹제임스 흠정역) 우리가 다 땅에 쓰러지니 내게 말씀하시는 한 음성이 있어 내가 들으매 히브리말로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니 사도 바울은 자신의 회심을 이야기하면서 문제의 그 말씀들을 분명히 인용했다. 성령님께서 사도행전 9장 5-6절에 이 말씀들이 포함되도록 영감을 주셨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그 사건이 원래 발생했을 때 바울에게 주어졌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 말씀들이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의 사도행전 9장 6절에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들은 다른 역본들(그루지아, 슬라브, 이디오피아 역본 등)뿐만 아니라 라틴 사본들(ar, c, h, l, p, ph, t)에도 보존되어져 있다. 모든 본문 비평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본문 비평가는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그 말씀을 사도행전 22장 10절과 26장 14절에 포함시킴으로써 그것들의 확실성에 대한 증거를 낳으셨다. 이와 유사한 예가 마태복음 19장 17절에서도 좀 더 강한 본문의 증거와 함께 언급된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 그런데 현대 역본들의 본문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를 “네가 어찌하여 선한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답변인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를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니라”라고 표현한다. [역자 주: 대부분의 한글 성경들도 이와 같다.]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이 구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훌륭하게 확립한다. 만약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며 그리스도가 선한 이로 불린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어야만 한다. 전통 본문에 제시된 것처럼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한 그리스어 사본들의 지지는 상당하다. 엉셜 사본들 중에 이 구절은 C와 W(5세기), K와 Δ(9세기) 그리고 몇몇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이 구절은 대다수의 그리스어 소문자 사본과 성구집의 본문이다. 또한 초기 구 라틴 성경, 구 시리아 역본 그리고 콥트 역본 및 다른 초기 역본들의 본문이다. 이 본문의 증거는 사도행전 9장 5-6절의 증거보다 훨씬 더 강하다. 또 사도행전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는 원래 본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부가적인 참조 자료가 있다. 다시 성령님께서는 이 사건이 인용된 두 개의 다른 곳을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이 본문 문제를 정리하신다. 이 두 경우 모두 논쟁이 되는 마태복음 구절을 지지하는 구절에 본문의 이문이 없다. 마가복음 10장 18절 (킹제임스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18장 19절 (킹제임스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위의 두 구절 중 어떤 구절에서도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선한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또 두 구절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명사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9장 17절의 본문이 옳은지 그른지 사람들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옳은 독본인 부가적인 구절들에서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리가 사도행전 9장 5-6절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들에 대해 친히 증언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