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그리스도를 격하시킴 마태복음 4장 10절은 경배의 대상이 오직 한 하나님뿐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흠정역: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10).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는 고넬료가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고 바울 역시 이교도들이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즉각 거절했으며 천사도 요한이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다. 흠정역: 그때에 그(천사)가 내(요한)게 이르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대언자들인 네 형제들과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 가운데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22:9).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든지 사람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셨다.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흠정역: 그런데, 보라,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마8:2) 그런데 개역성경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대신 절하게 한다. 개역: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이곳 외에도 예수님께 경배한다는 구절이 나오면 개역성경은 대개 다 절하는 것으로 바꾸었다(마9:18; 14:33; 15:25; 18:26; 20:20 등). 그런데 흥미 있게 계시록 13장 4절에서 개역성경은 동일한 그리스어를 ‘경배하다’로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개역: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13:4) 예수님께는 절하게 하고 짐승에게는 경배하게 하는 번역이 과연 논리적으로 옳은가? 이것이 바로 성경 부패 뒤에 숨겨진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