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508개
조두현 형제님.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 말씀은 그 뜻에 있어서 제 생각과 대동소이 합니다. 자세히 읽어보셨으니 초신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또 믿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작성된 글이라 단어의 함축성과 문체의 장중함을 추구한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풀어쓰기 위해 한 구절의 문체를 바꾸면 문체의 일관성이 흐트러져서 결국은 전체를 다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선언문 형식이 아니라 설명문 형식이 됩니다. 문체로 인해 글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 것이죠. 중간 중간에 더러 익숙치 않은 표현이 있으실줄 압니다만, 이글을 작성한 취지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삶이나,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도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제가 구원받은 이후로 최근까지 개역성경을 보면서도 개역성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그다지 현혹되지 않은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주의깊게 살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가끔 글을 올리겠습니다. 거의 모든 글들이 성도들에게 읽혀지기 전에 그 글을 쓴 목적에 부합되는지 살피며 최소 열 번 이상 수정하고 교정한 것들입니다(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시면 글마다 주제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패턴이 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10-11-02 17:20:52 | 류인선
청년에게 드리는 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지은 잠언과 전도서는 주로 젊은이를 훈계하기 위함이 그 1차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의 첫머리에"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잠언 1 : 4)"라고 했으며 전도서의 말미에도 역시 청년을 염두에 두고 권면하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특히 자기의 아들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서론과 결론이 청년을 향한 것이라면 본론도 청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이렇게 청년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시기가 바로 인생의 황금기이기 때문입니다. 체력과 지력이 가장 왕성하고 혈기 역시 넘치는 때가 청년기입니다. 이 시기의 넘치는 에너지는 방향을 바로잡아 흘러가게 하지 못하면 에너지가 낭비될 뿐더러 때로는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름철 호우기에 제 길을 벗어난 물줄기가 얼마나 심각한 재난을 불러오는지 자주 보아 왔습니다. 올바른 길로만 흐르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라면 마땅히 저장할 곳을 준비해야 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욕구와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떤 때는 흘러넘치고 정작 필요할 때는 고갈되어서 쓰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절제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도약을 위한 웅크림일 뿐입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절제가 따라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야벳을 크게 만드심은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조건하에서 주어진 복입니다. 그들이 찬란한 문명을 이루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멀어지면 영광이 아니라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청년의 힘과 열정도 자제하지 못하고 교만하거나 제 길을 벗어나면 현재 패망을 향해 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처럼 자신의 운명을 패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청년은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 24장30절에서 34절에, 게으른 자의 밭을 구경한 솔로몬의 소감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1차적으로는 물론 가난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매우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했습니다.(32절) 게으르면 가난해 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앞에 두고 달리 깊이 생각할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마음의 밭을 생각함이 아니겠습니까?   땅과 같이 마음도 부지런히 갈고, 닦지 않으면 원수가 뿌리고 간 씨만 무성하게 자라 황폐해질 것을 말합니다. 내 영혼아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다가 어느 날 궁핍한 영혼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자신의 영혼을 돌아봅시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곡식이 자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베어서 불 속에나 던질 가시덤불만 무성합니까?   내 영혼이니까 아무 때나 하려고만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가시가 너무 많아지면 내 밭이라도 원할 때 농사지을 수 없습니다. 그 가시를 걷어 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농사를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밭은 뉘 것입니까? 이름만 내 것이지 씨 뿌린 자(마귀)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원수는 지금 있는 것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얻을 것을 미리 도둑질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무 죄도 짓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귀를 적극적으로 돕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잡초가 무성하게, 가시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부지런히 갈고 심으세요. 아침저녁으로 살피고 물 주어야 합니다.   자다가 깰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는 사이 마귀는 잡초와 가시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신 아브라함의 복 받은 일을 생각해 봅시다.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 18)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청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2 15:37:08 | 류인선
모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다시금 용기를 내봅니다.... 그리고 감동받았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서 뭐라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으면 제안에 확신이 있고 평안함이 있습니다. 말씀과 설교를 더 듣고 무릎 꿇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1-02 14:36:07 | 주경선
지적 감사합니다.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그 뜻인데, 저도 그 부분을 가능한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는데 고심을 많이 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라고 고치면 오해의 소지도 없고 의미도 명확하게 전달이 될 것 같습니다. 한 번 바꿔볼까요? 어떤 느낌인지.^^
2010-11-02 02:59:57 | 류인선
현재의 갈등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드시겠지만,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성경 말씀을 읽고, 정말 깨달음을 주는 좋은 글들을 읽고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갈등도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매님께서 진리를 알고자 하고 바른 것을 따르고자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꾸준히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탐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0-11-02 02:52:16 | 김문수
자매님 반갑습니다. 저도 이 사이트를 통해 진리를 바로 알기 까지, 너무 많은 가짜가 교회안에 있구나를 알고 혼란과 혼동의 시간이 있었지만 바른 성경과 바른 믿음의 길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열심히 이 사이트를 통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확인하며 공부하는 가운데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진리위에 굳게 세워져가고 바른 분별력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세아이 양육하는 일만도 하루 시간이 부족하실테지만, '또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니'(요8:32)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시기까지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성경바로보기(그리스도 예수안에)를 성경과 확인하며 세번 읽었구요, 이곳에 있는 성경강해(창세기, 성막, 요한계시록, 마태복음)를 공부하며 진리의 말씀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렸답니다. 자매님! 저보다 더 풍성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2010-11-01 12:56:23 | 진미희
자매님...반가워요 위의 이 정순자매님의 말씀처럼 아기 셋 데리고 먹이고 재우는 일로도 바쁠텐데 영적인 갈증을 느끼시는 건 분명 영이 가난하기 때문일 것임이며 하늘의 왕국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직한 심경을 나눠주신 이 마음이 지속되다 보면 길이 있고 영혼의 자유를 얻는 복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2010-11-01 10:53:01 | 정혜미
반갑습니다. 남편 되시는 형제님이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진리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큰 변화를 겪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지요. 천천히 깨달으신 만큼 하나님께 설득 당하시고, 주변 분들께도 빛을 나눠주시는 자매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0-11-01 10:09:13 | 김재욱
강건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되는 수가 간혹 있다.' 이 구절이 좀, 약간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성경의 전능한 힘이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는 수가 가끔 있다.' 라기보다는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되는 수가 간혹 있다. 이 정도로 바꾸면 괜찮지 않으련지요? 물론 다른 의도가 없다는 걸 저도 압니다만, 글 자체로만 보면 '하나님이 이용당한다고?' 라고 다른 분들이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표현을 조금 더 다듬어주시면 더 보기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아이고, 정신이 없었나보네요. 저도 써놓고 제대로 잘 못 썼네요. 저는 실수했는데 잘 알아봐주셔서 다행입니다. 댓글 3개인가 이상이면 게시물 수정이 안 되어서 댓글을 수정했습니다. 지금 다시 제 댓글을 보니까 제가 메모장에 적어놓고 복사할 때 잘못 복사했네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한번 보고, 이렇게 바꾸시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전부터 어떤 믿지않는 사람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하여 사욕을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더럽히려고 해도, 사람을 진리로 이끄는 성경의 능력은 영원하다. 이런 식으로 바꾸면 류인선 형제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도 전달하고, 문장도 더 매끄러워지지 않을까요? 실수했는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11-01 09:56:54 | 조두현
갈등이 일어나는것이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곳에 오신 많은 분들이 거의 자매님과 같은 현상들(?) 을 경험하셨다면 조금 위안이 되실려는지요 바른길 좁은길로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시33:4 주의 말씀은 옳으며 그분의 모든 일은 진리안에서 이루어지는도다.)
2010-11-01 08:49:10 | 송재근
자매님!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 없는 가운데도 생수를 찾는 영적인 갈등이 주님의 은혜네요. 좋은 책을 통하여 기왕에 습관적인 종교인의 생활을 알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잘못된 것을 알았고 참된 것을 알았으면 이전것은 다 배설물로 버리고 오직 참된 것을 따르는 것만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길이에요.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지 자매님 자신이 아실거에요. 그것을 어린아이같이 주님께 다 말씀드리고 주님의 평안의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흠정역 성경을 선입견 없이 초심으로 읽어나가세요. 혹 바쁘시겠지만 시간이 허락되시면 사랑침례교회에 방문하시면 매주 목요일 11시에 자매모임도 있어요. 작은 소모임이지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2010-11-01 01:04:44 | 이정순
저는 아들만 셋둔 32살의 주부랍니다. 신앙생활은 모태신앙(못된신앙??)이고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했지요~ 작년까지요~(셋째 임신상태)   헌데 울 신랑(당시 신학생)이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그동안의 모든 신비주의며 은사주의 잘못된 신앙관들을 다시금 집어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곳 사이트를 통해 여러 설교와 글들을 통해 잘못된 것들은 단호히 버렸답니다.   많은 우여곡절속에 울 신랑이 흠정역 성경을 읽어보라고 사주었는데.......갈등이 시작되었네요.......   제 마음속에........갈등..........신앙생활 전부.....작은것부터 제가 옳다고 여겼던것까지....뭐가 정답이고 진리인지... 가슴에 뭔가 답답함이 있고...바로 알아야 할것만 같고...헌데 지금까지 해왔던것들이 그냥 버려지지도 않네요 교회의 전통들을 일일이 토를 달아 비판할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될것 같고..(죄 짖는것 같아서...) 그렇다고 잘못된 것들을 알고난후 무작정 받아들여지지도 따르고 싶지도 않구요. 주위에 전도할 아줌마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교회로 그냥 다 데려 가면 되는건지...........도대체 신앙생활이 뭔지........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네요.....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치고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노라 했던 옛 나의 모습을 보면 신비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고.....그냥 말씀없이 진짜 진리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로 끝나버릴것만 같고 다른 신앙의 동역자분들(목사님, 사모님)도 옛 제 모습과 똑같거나 오히려 비이성적인 조언으로 믿음생활할 의지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신랑은 지금 흠정역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차근차근 뭔가를 쌓아가고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 전 그것에 함께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에 머무를수도 없는 붕~ 떠있는 상태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으로 바르게 가르치기 원했던 저였건만 지금 제 상태가 이렇기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제 불안감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만 가니...........어찌해야할지..... 그냥 답답해서요...........아이들 키우면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거보다 더 힘든건 영적으로 목말라 방황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더 힘드네요.......   아....예수님의 목마르지 않는 그 생수.........마시고 싶은데.......그냥 기도하면서 말씀 읽으면 해결 되는걸까요? 매일 하루하루가 갈등이 아닌 진리와 구원의 기쁨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p.s 속 터놓고 얘기 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남겼는데.....괜찮나 모르겠네요....도움 받고 싶어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1 00:24:48 | 주경선
이 글은 제가 구원을 받은지 20년 쯤 되었을 때에, 믿음을 정리하고 날로 혼탁해져가는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서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싶은 마음에 약 1년 동안 작성했던 산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   우리가 성경을 믿는 이유   세상에는 성경 말씀만큼 단호하고도 부드럽고 마음을 찢으면서 치유하는 말씀은 없다.   보편적 진리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위로가 되는 진리 : 그분은 환란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압도하는 책임 :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시간의 지도地圖 : 창조에서 구원의 길까지. 이정표 : 새 하늘과 새 땅.(영원한 안식) 그리고 그토록 황송한 선물 :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선물을 받은 결과 : 회개와 죄 사함과 거듭남. 그토록 장엄한 사실 :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그토록 담대한 기준 : 네가 거룩하게 되리라. 그토록 과감한 명령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은 인류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다른 어떤 책도 그토록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며 존중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비참함과 희망에 대하여 그보다 고결하게 부르는 노래가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필요를 성경보다 예리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범죄한 영혼을 자극하는 말씀과 멸망할 자들을 끌어올리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기도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적절한 언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역사 속에서 나타났지만 역사의 상황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은밀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그것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환경, 모든 시대에 살고 있는 만인의 이야기다. 그것은 세계다. 그것은 모든 개인과 나라들에도 길을 보여준다. 성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되울리며 인간의 오만 방자함이라는 갑옷을 찢어버린다. 위대한 시인이 등장할 때, 그는 자기가 시인임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스스로 말한다.  천재는 스스로 입증된다. 성경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독자성을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거나 '교리'라는 깔때기로 인간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빛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성경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보다 뛰어난가? 어째서 성경과 비교할 만한 인간의 생산품은 없는가? 어째서 성경과 바꿔치기 할만한 것이 어디에도 없으며 성경이 빚어낸 역사에 상대할 것이 없는가? 어째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는 성경을 열어야 하는가? 인간의 천재들이 지어낸 위대한 책들을 성경 옆에 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는지 보라. 성경은 형식, 미사여구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갈피마다 장엄함이 배어있다. 성경의 구절들은 저마다 너무나 늠름하고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평가를 내려야 될 지를 가늠 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학문의 다림줄로 그 깊이를 잴 수 없으며 비판적 분석으로 그 핵심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격찬할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의 통찰은 우리의 기준을 넘어선다.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과거는 물론 미래도 무의미하고 어두우며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될 그런 책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책들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성경을 평가 하려다가는 우스꽝스럽게 되기가 십상이다. 어떤 정신력도 성경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성경의 가치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인간의 지성은 어디 있는가?   성경은 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정신의 한계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과 연결된 유일한 것이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책! 이 세상에서, 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 성경은 영靈을 담고 있는 영구적인 그릇이다. 이 납득될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언제나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되는 수가 간혹 있다. 그러나 아주 못된 공격을 물리치는 성경의 능력은 무한하다. 2천년이 넘도록 계속된 논쟁과 교리의 동록(銅綠)에 묻혀서도 성경의 생명력과 진실성은 여전하다. 신학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용과 남용으로 붕괴되지도 않는다.   성경은 끝없는 영(靈)의 운동이요, 그 파도가 인간의 단점의 가파른 벼랑을 때리는 대해(大海)며, 절망과 싸우는 인간의 막다른 골목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메아리이다. 성경에 대한 무감각보다 더 큰 인간의 우둔함은 있을 수 없다. 그 무엇에 설득 당하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고 세월과 함께 낡아지지도 않으면서 성경은 이 땅의 모든 언어로, 모든 시대에 말한다.   3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경은 하루도 나이 먹지 않았다. 그것은 죽지 못하는 책이다. 망각은 성경을 피해 도망간다. 2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읽고 조사했지만 인류는 그 완전한 의미를 밝히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도 여전히 성경은 우리에게 낯설고 여전히 다 파악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읽기를 시작조차 못한 듯이....   성경은 어느 한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 언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가운데 몇 줄을 읽어 그 구절의 뜻에 우리의 영이 맞아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소리가 이르되, 외치라, 하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 : 6-8 )     이런 표현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누가 이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의 지혜, 가르침, 권고 등은 인류가 도달한 학식과 결코 상치(相値)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훨씬 앞지른다. 예컨대 인간의 평등이라는 관념은 우리의 입술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과연 그것은 거역할 수 없고 근절할 수 없는 확신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성경은 시대에 뒤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을 오히려 앞지른다.   성경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었고 인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은 인간이 이룬 가장 훌륭한 도덕의 원천이다. 고귀하고 정의로운 것의 대부분이 성경에서 나왔다.   성경의 목적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다. 성경이 주는 지혜,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며 그것을 얻게 하는 그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구역질나는 것임을 선포한다. 또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이며,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문제임을 선포한다.   성경은 말로 나타난 성스러움이다. 이 시대의 사람에게 언어만큼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것은 없다. 그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값싸고 가장 잘 남용되며 가장 덜 존중된다. 언어는 끊임없이 저속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언어 속에서 살며 언어로 느끼며 생각하지만 언어의 독립된 존엄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며 그 힘과 무게를 존중할 줄 모른다. 언어는 이제 입안에 가득한 먼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빛이 언어라는 틀로서 인간에게 주어졌는가? 도대체 자음과 모음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그릇에 신성이 담겨져 있음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지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언어만은 소멸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뜻을 전달하는데 인간의 언어 말고 누구의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 언어에 당신의 힘을 불어넣으시어 그 언어가 그분의 영으로 충전되어 있는 전깃줄과 같다.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줄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다.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데 어떤 다른 것을 이용할 수가 있었겠는가? 달의 표면에 있는 얼룩? 거대한 바위들?   인간의 언어가 성경을 이루는 데는 아무 잘못된 점이 없다. 이 세상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듯이, 성경 없이는 그분의 관심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성경은 그분의 음성이다. 다른 그 어느 것도 그분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김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 글자수 제한으로 전문을 다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전문을 다 보시고자 하는 분은 첨부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2010-10-29 13:13:35 | 류인선
다음 간증도 기대할게요. 주님을 만나시기까지 형제님께서 거쳐온 과정들이 특별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UFO, 한때는 저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들을 신봉하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서였지요. '천사와 UFO 바로 알기' 라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의 책을 읽게 된 지금에서야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요.^^ 생명의 길로 형제님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0-10-29 01:26:55 | 이은희
샬롬!! 저는 형제님의 이름만 보고 학술연구부장에, 역사에도 관심이 많으신 참 똑똑한 여자분이 다 있구나 했는데 [군대를 먼저 갔다오려고] 부분에서 풋~ㅎㅎㅎ. 성함이 낯설지 않네요. 결혼하기전까지 어려서부터 저는 청주에서 살았습니다. 청북교회 다니고 언니를 따라 상당교회를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구원을 받았는데 그때 그렇게 교회를 잘 다니던 언니가 UFO를 신봉한다고 전해왔습니다. 언니는 청주에 살고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성도님처럼 진리를 아는분이 계시다니 그냥...그냥 저에게 큰힘이 되어 이렇게 덧글 남깁니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
2010-10-28 22:44:13 | 이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