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갈 당시의 암몬 족속의 왕.
그는 그 당시 유다 총독인 그달리야를 암살하려 하였다(렘40:14; 41:1-10).
2009-04-26 00:56:55 | 관리자
갓의 고을(수19:44).
이곳은 벳호론에서 멀지 않았다. 이곳이 솔로몬이 다시 지은 바알랏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왕상9:18; 대하8:6).
2009-04-26 00:56:12 | 관리자
시므온의 고을(수15:29; 19:3). 이곳은 또한 빌하로 불리기도 했다(대상4:29).
2009-04-26 00:55:41 | 관리자
헤르몬 산 기슭의 레바논 골짜기의 도시.
이곳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벌인 최북단 도시이다(수11:17; 12:7; 13:5).
2009-04-26 00:55:15 | 관리자
I. 구약성경에서 이것은 페니키아 사람들 특히 두로 사람들의 우상을 가리킨다.
바알 숭배는 아스다롯 숭배와 함께 히브리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마리아에서 엄숙한 의식과 함께 도입되었다(삿6:25-32; 왕하10:18, 28). 아스다롯 참조. 바알의 복수인 바알들(Baalim)은 바알의 형상들을 의미했다(삿2:11; 10:10). 엣바알, 여룹바알, 한니발 같은 이름들을 통해 바알 숭배가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지역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빌론 사람들은 이것을 벨이라 불렀다(사46:1; 렘50:2; 51:44). 바빌론의 바알 숭배는 유명한 바벨탑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탑의 꼭대기 방은 별을 관측하고 그 기록들을 담아 둔 곳이었다.
동방의 점성술에서 바알 숭배는 곧 천체 숭배를 뜻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알이 태양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행운의 신 주피터라 불렀다. 그래서 주피터는 비너스와 함께 사람의 행운을 주관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그 관계가 바알과 아스다롯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바알의 형상들과 전들은 대개 높은 곳에 있었다.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군대 특히 아스다롯을 위한 제단들을 세웠다(왕하21:5-7). 예레미야는 지붕에서 바알에게 경배를 드린 유대인들에게 경고를 주었으며(렘32:29) 요시야는 아하스가 자기의 궁전의 난간에 세운 이런 제단들을 파괴시켰다(왕하23:12). 또 고대 사람들은 종종 인신 제물을 바알에게 드리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바알의 산당들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로 태워 바알에게 번제 헌물로 드린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을 책망하였다(렘19:5). 몰렉 참조.
이스라엘 자손은 바알을 섬기는 일에 잘 빠졌다(민25:3; 삿2:13-14; 3:7). 사무엘 시대에 그들은 우상들을 제거했으며(삼상7:4) 이 일은 다윗과 솔로몬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합의 통치 때에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로 말미암아 바알 숭배가 다시 크게 성행하였다(왕상16:31). 다른 단어들과 결합될 때 바알은 다른 거짓 신을 나타낸다. 바알베릿(Baal-Berith)은 ‘언약의 주’를 뜻하며 세겜 사람들의 신이었고(삿8:33; 9:4), 바알브올(Baal-Peor)은 ‘브올의 주’를 뜻하며 모압 족속의 우상이었으며(민25:3-5; 호9:10), 바알세붑(Baal-Zebub)은 ‘파리들의 주’를 뜻하며 에그론의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었다. 바알세붑 참조.
II. 바알이라는 말은 우상과 관계없이 여러 장소의 복합어로 사용되었다.
2009-04-26 00:54:39 | 관리자
아히야의 아들. 그는 이스라엘 왕 나답의 군대 대장이었지만 주전 953년경에 깁브돈에서 자기 주인을 배신하고 죽인 뒤 왕국을 차지했다. 그는 왕상14:7-14에 예언된 대로 여로보암의 친족을 모두 죽였지만 우상숭배와 극도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왕상15:1-34; 16:1-12).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언자 예후를 보내어 경고를 주셨고 이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가족이 몰살당함으로서 성취되었다(왕상16:12).
2009-04-26 00:53:54 | 관리자
림몬의 아들. 바아나와 레갑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섬기던 자들로서 다윗에게 보상을 얻을 줄 알고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들고 갔다가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삼하4:1-12).
2009-04-26 00:53:31 | 관리자
수확절 참조.
2009-04-26 00:52:24 | 관리자
시체를 땅에 묻는 일.
팔레스타인 지방은 더워서 시체가 금방 부패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이내에 묻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특별 상황이 아니면(삼상31:12) 그리스 사람들의 관습처럼 화장하지 않았으며 화장한 경우에도 뼈는 꼭 묻었다(삼상31:13). 사람들은 죽은 몸을 싼 뒤 열린 관에 올려놓고 매장지로 갔다.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시체는 땅을 낮게 파고 돌로 덮거나 돌무덤에 안장했고 매장하지 않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겨졌다(왕상14:11; 왕하9:36-37). 성경적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 매장, 부활을 상징하는 중요한 규례이다(롬6:3-5; 골2:12). 장사지내는 일, 침례 참조.
2009-04-26 00:52:01 | 관리자
망대는 바깥 성벽뿐만 아니라 도시 안의 높은 곳과(삿9:47-49; 시48:12; 눅13:4) 또 적군이 넘어올 수 있는 경계 지역에도 세워졌다(삿8:17; 사21:6-9; 겔33:2-6). 망대는 적군의 침입에서 거주민들을 보호하는 피난처가 되었고 종종 도시의 대부분이 함락된 경우에도 망대는 함락되지 않고 백성을 보호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망대가 되신다(시18:2; 61:3; 잠18:10). 한편 양떼나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낮은 높이의 망대를 세우기도 하였다(대하26:10; 사5:2; 미4:8; 마21:33).
2009-04-26 00:51:34 | 관리자
므리바 참조.
2009-04-26 00:51:10 | 관리자
가자 근처의 도시로 처음에 유다에게 배정되었으나 후에 시므온에게 배정되었다(수15:31; 대상2:49).
2009-04-26 00:50:44 | 관리자
우리 주님이 침례를 받고 승천하기까지 그분과 함께한 제자들 중의 하나(행1:21-26).
승천 이후에 그는 다른 열한 제자와 함께 사도로 임명을 받았으나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09-04-26 00:50:18 | 관리자
재물을 뜻하는 갈대아말.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6:24). 재물은 거기에 마음을 두는 사람에게 주피터나 다이아나 같은 우상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의 예를 들면서 보통 죄를 지으면서 얻고 또 사용하는 세상의 재물 즉 불의한 맘몬을 사용하여 우리의 친구이신 심판자 하나님을 소유하고 천국에서 참된 재물을 얻으라고 분부하셨다(눅16:9-11).
2009-04-26 00:49:53 | 관리자
I.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아들 하나님의 호칭 중 하나.
이것은 그분의 행동과 가르침에 의해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과 상관이 있으며 또 말에 의해 생각이 드러나는 것과도 상관이 있다(요일1:1; 5:7; 계19:13). 구약성경에서 흔히 나오는 ‘주의 말씀’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뜻하였다. 창조 기사에서 주 하나님의 행동은 모두 말씀으로 이루어졌으며(창1:3 등) 그래서 창조 사역은 그분의 말씀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었고(시33:6, 9) 그리스도가 오기 훨씬 전부터 많은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단어를 주의 말씀으로 대체하여 읽곤 하였다. 따라서 유대인 작가들에게 주의 말씀이 곧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와 그것이 우리 주님을 가리킴을 보여 주고자 하였는데 이는 그의 시대에 동방 철학에서 나온 영지주의 같은 이단 사상이 기독교 내로 깊이 침투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럽혔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말씀이 인격체로서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시며 동등하신 분이나 분명히 다른 인격체임을 보여 주었다. 그분은 아들로서 모든 창조물의 창조주이고 만물의 근원이시며 사람들의 빛으로서 충만한 때에 사람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분이었다(요1:1-3, 14).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매우 명확하게 증명한다(요20:31).
II.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그분을 하나님의 신격의 계시로 묘사하며 사용한 용어(요1:1, 14).
이 같은 호칭은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신성을 보여 주며(요1:1-2) 동시에 사람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성육신을 밝히 드러낸다(요1:14). 예수님을 ‘말씀’이라 부른 데는 심오한 생각이 담겨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말’(words)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한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채 하나님은 성육신한 말씀 예수님 속에서 자신을, 자신의 뜻과 의도를 사람에게 완전히 계시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해 사람이 알기를 원하는 모든 것이 성육신한 예수님 즉 ‘말씀’에 의해 완전하게 드러났으며 이런 차원에서 ‘말씀’ 예수님은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하나님의 계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아들 안에서 말씀하셨는데(히1:1-2) 이 아들은 곧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계시고 동등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신 바로 그분만이 문자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으로 설명할 수 있다(요1:18). 사도 요한의 이 같은 로고스관은 결코 그리스 철학에서 나오지 않고 구약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끝으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와 계시록에서 ‘말씀’이신 주님과 그분의 일을 심오하게 설명한다(요일1:1, 5, 7; 계19:13).
III. word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단어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4:4)고 할 때의 ‘모든 말씀’은 그분께서 숨을 쉬며 입을 통해 밖으로 계시해 주신 모든 단어를 뜻한다. 영감 참조.
2009-04-26 00:49:18 | 관리자
지워 없앰.
2009-04-26 00:48:27 | 관리자
날카로운 침을 가진 곤충.
주님은 말벌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앞에서 많은 가나안 족속을 내쫓으셨다(출23:28; 신7:20; 수24:12).
2009-04-26 00:48:05 | 관리자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아들. 그는 모압 여인 룻의 첫 번째 남편이었다(룻1:1-22).
2009-04-26 00:47:39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와 구약성경 기록자 중의 맨 마지막 인물.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주의 사자(使者)를 뜻하는 일반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학1:13; 말3:1 비교). 그는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 이후에 느헤미야 시대 후반에 대언하였는데 이때에는 백성과 제사장들 사이에 질서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그는 이것을 책망하였다. 그는 먼저 제사장들을 엄하게 꾸짖고 백성들이 이방 아내를 취하며 형제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아내와 이혼하며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지 않는 것을 꾸짖었다. 그는 느헤미야가 백성의 제사장들과 우두머리들과 맺은 언약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는 대언서의 후반부에서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오는 침례자 요한에 대해 대언하였고(말3:1; 4:5-6; 비교 마11:10, 14; 17:10-13; 눅1:17)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또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받을 복에 대하여 대언하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대언과 함께 끝나고 신약성경은 그 대언이 성취되면서 시작되었다.
2009-04-26 00:47:06 | 관리자
겟세마네에서 베드로에 의해 오른쪽 귀를 베었으나 예수님에 의해 기적적으로 다시 고침을 받은 종(마26:51). 우리 주님께서 두 번이나 자신의 신성을 보여 주신 후에도(눅22:51; 요18:6) 사람들이 그분을 체포한 것은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눈이 멀었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2009-04-26 00:46:3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