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참히 망가뜨리고 죽이는 흉악 범죄가 양지나 음지에서 무수히 저질러져 왔다. 그 중에도 죄질이 특히 나쁜 축에 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연약한 미성년자 내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을 납치· 감금하여 여럿이서 학대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고문까지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짓이다. 영어로는 torture murder이라는 비공식 용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엔 일본에서는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라 하여, 제목부터가 섬뜩한데 정말 인류 역사상 이 정도로 흉악하고 인간의 마귀적인 본성이 그대로 표출된 사건이 있었을까 싶은 torture murder가 벌어진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끼리 덕이 되는 내용은 아니니, 이 글에서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사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전인 1965년엔 미국에서도 실비아 라이컨스(Sylvia Likens)라는 소녀가 부모 사정으로 인해 타지에서 맡겨져 키워지던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와 주변 아이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학대와 왕따, 고문을 당한 끝에 겨우 1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채 경찰에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학대를 깊이 살펴보았노니,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라.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편에는 권세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전 4:1)
후자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법정 증언을 바탕으로 2007년엔 엘렌 페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An American Crime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 사건도 자국 내부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건 그냥 AV 배우를 동원해서 선정적인 고어물 성인물 영화로 돈이나 벌려는 의도에 가까웠다. 그 반면, 미국의 영화는 다른 나라도 아니고 꿈과 희망이 있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소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아메리카라는 나라에서까지, 옛날에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졌었다는 분노와 자성의 뉘앙스가 제목에 담긴 것 같다. 감독이 제목을 하필 왜 저렇게 뽑았겠는지를 생각해 보시라.
난 An American Crime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보다가 열받아서 차마 끝까지 못 본다고.. 모니터를 때려부수고 악역 배우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그런다. 아무 죄책감 없이 군중 심리로 피해자를 심심풀이 하듯 때리고 괴롭히고 굶기고 배에다가 불에 달군 바늘로 글씨를 새기고는... 나중에 법정에 가서는 “몰라요. 기억 안 나요. / 남들이 다 하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심한 잘못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이렇게 발뺌을 하는 뻔뻔한 인간 종자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짜증과 살인 충동이 하늘로 피어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 영화는 일본 영화와는 달리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실비아가 당한 가혹행위에 비해 영화의 묘사는 정말 정말 많이 희석되고 절제되고 수위가 완화된 것이다.
처참했던 실제 사건의 결말에 비해, 영화는 감독의 희망 사항 내지 관객의 해석이 필요한 여지를 결말에다 두리뭉실하게 남겼다. 실비아가 죽지 않고 거투르드 아줌마의 집을 탈출하여, 부모의 품에 안기는 설정이 들어간다. 그런데 다시 거투르드의 집으로 돌아가니 자기의 몸은 죽어 있고, 그와 함께 탈출한 줄 알았던 실비아도 싹 사라지고 다시 고향의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실제로 실비아는 극도의 영양실조에다 구타로 인해 발생한 뇌와 내장의 출혈이 도지면서, 목욕 도중에 사망했다.)
우울한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도 단조풍의 굉장히 구슬픈 여성 아카펠라 노래이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의 고통과 아픔, 슬픔으로부터 벗어난(상징적으로나마) 실비아가 혼자 회전목마에 탄 채, 다음과 같은 독백 대사를 읊는 것으로 쓸쓸하게 끝난다.
And me? I returned to the carnival. The only place I always felt save.Reverend Bill used to say, “For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뒤) 그리고 난.. 놀이동산으로 돌아왔어요. 내 마음의 유일한 고향으로요.빌 목사님은 전에 이렇게 얘기하셨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뜻하신 계획이 있으시다고.. 난 아직도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헤매는 중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본인이 보기에 이것은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실비아 같은 불쌍한 아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나?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긴 하나?”와 같은 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 메시지를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런 거야 세상의 불신자들이 역사상 한두 번 제기해 온 의문이 아니니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서 흥행하는 영화들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세워 주는 친기독교 성향의 결론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하나 있긴 하던가? 예수 믿는 사람은 십중팔구 무개념 광신자로 묘사되거나, 개나 소나 사랑이니 용서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위선자, 아니면 아니면 위급한 상황에서 쩔쩔매고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찌질이 루저로 나온다. 이 셋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용서를 못 하는 살인범을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냐?”(영화 <밀양>) 같은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거짓으로 왜곡하거나, 민감한 부분만 이상하게 배배 틀어 적용해서 오해를 사게 만들고, 뭔가 말이 안 되고 모순되고 몰상식한 것으로 전달한다.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런 왜곡에 불구하고 천주교 신부· 수녀에 대한 묘사는 교회 예배당이나 목사 쪽에 비해 월등히 더 낫다는 점도 특이한 점.
자, 대놓고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외하고, 여러분이 보았던 일반적인 세속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들 중에서 본인이 지금까지 열거한 특성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란다. 본인도 적극 고려하도록 하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본인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An American Crime에서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를 보아하니, 그 심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다음 찬양이 생각 나서였다.
바로, Ron Hamilton--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중년 남자 모습이 많이 뜨는데, 그분이다--의 Rejoice in the Lord 되겠다. 가사 첫 줄에 곧바로 “하나님은 섭리나 계획 없이는 결코 역사하지 않으신다”란 말이 나오니까.. 게다가 하나님은 실수도 결코 하지 않으신댄다!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When trying His servant and molding a man.Give thanks to the Lord though your testing seems long;In darkness He giveth a song.
O rejoice in the Lord. He makes no mistake.He knoweth the end of each path that I take.For when I am tried and purified,I shall come forth as gold.
이 곡은 클래식한 리듬과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최근인 1978년에 발표되었다.세상에는 성경의 욥이나 요셉이나 다윗처럼, 정말 억울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멘붕 상태에서도 우리 같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긴 인고의 시간을 잘 견딘 끝에 정말로 '황금처럼' 연단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물론 있다. (가령, 요셉은 누명이 벗겨지고 감옥에서 곧 풀려날 거라는 희망고문만 2년을 견뎌야 했다. 감옥에서 썩은 전체 기간이 2년이 아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다 그 사람들처럼 언젠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반드시 펴는 건 아니다.또한 실비아 라이컨스처럼 연단이 아니라 아예 폭력과 학대의 희생양이 된 채,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린 인생도 역사적으로 한둘이 아닐 것이다.찬양 가사는 세상의 참혹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저 비현실적인 망상에 불과한 것이며, 작사자는 그저 책임지지 못할 말을 쓴 것일까?
하나님의 뜻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고, 당장 보기 안 좋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 명목으로 잠시 '허락하시는 뜻'도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자에 속하는지에 대해서야 나라고 해서 뾰족한 해답을 알고 있을 리 없다.더구나 세상적으로 잘못되고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을 죄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욥의 친구들처럼), “예수 안 믿어서”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짓은 난 극도로 싫어하며, 그런 식의 논리 전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논증을 못 하면 마치 귀류법처럼 간접적으로, 역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어차피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신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더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던 죄인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십자가에서 못을 으랏차차 뽑아 내고 초자연적으로 내려와 버렸다고 해서 그들이 그분을 믿었겠는가?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믿길 진짜로 원하시는 그 성품과 면모를 믿고 따르겠는가!?) 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공개 석상에서 어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 신아, 네가 존재한다면 지금 3분을 줄 테니 이 공개 석상에서 날 죽여서 너의 영광을 드러내 보아라”라고 고래고래 독설을 날렸다. 성경에 기록된 그런 성품을 가진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진짜 그 무신론자를 죽여 버릴 리가 있겠냐 말이다.
솔로몬이 명판관으로 두고두고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가 과학 기술을 육성해서 최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로 진짜 애엄마를 논리적으로 가려내고,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아이 바꿔치기 범죄 따위는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통치자로 칭송받을지 모르나, 그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온갖 비극이 찾아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그걸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인간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고, 비록 불신자들이 당장 이해나 수긍을 못 할 방법을 쓰셨지만 죄 문제도 해결하고 구원의 길도 마련해 놓으셨다. 단지 그 방법에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창조주가 자기 피조물에게 학대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죽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반박당하거나 없어질 교리를 가진 체계가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참 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안 바라고 '믿음'이라는 것 하나만 원하신다. 히 11:6을 읽어 볼 것. 피조물이 있다면 창조자가 있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이건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바라는 것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지? (그러나 그게 소박한 요구가 아니라는 걸, 살아 보면 곧 알게 된다.. ^^) 어떤 사람은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등, 모든 물리적인 여건이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조건 같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요소는 정말로 공평하다.
설령 이 세상에서는 정말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다 요절하더라도, 현세와 내세를 모두 합하면 정말로 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고, 현세에서 못 받은 것은 죽어서 다 정산받게 된다.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도 못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죽거나 정신 지체 장애인 사람에게는 아예 특별전형까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경륜이 아직 여전히 100% 이해는 안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비난할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체계 하에서는 원칙과 질서가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반증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의 알량한 과학으로 정체가 덥석 파악 가능한 신이야말로 허접한 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물론, 창조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듯이 이 세상이 과학적으로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식의 증거들.. 아주 좋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조리와 비합리도 세상엔 응당 존재하며, 그 사실을 크리스천이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가령, 이 세상엔 아름다운 생명체도 있지만 파리· 모기나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생명체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이런 '아리까리'한 면모가 존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굴러가려는 영적 바퀴의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려 할 때 초기에는 정말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 다음에 이어질 내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아라. 그걸 극복하는 데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 논리 같은 다른 잘난 스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게 돼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가??
뭔가 그럴싸한 기독교 변증을 기대하고 있던 불신자라면 이런 무데뽀 정신승리법(?) 같은 본인의 결론에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엄연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신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선뜻 '믿음'을 선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증거도 먼저 남겨 주셨다. 이 갈림길로 인한 유신론 무신론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나, 그 믿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 사건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진지하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
2012-10-18 09:58:52 | 김용묵
반가운 소식에 감사합니다. 남도의 귀한 모임이 날이 갈수록 풍성해지고 언젠가는
진리를 수호하는 지역교회로 열매가 맺히는 일도 기대합니다. ^.^
저는 장로교인으로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게 된 후로 제가 사는 지역에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복수(複數)의 지역교회를 방문한 경험이 있습니다.
뜻밖에 동의할 수 없는 교리와 교회 운영상의 안타까운 점을 발견해 결국 출석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목사님들의 사역을 응원해 드렸습니다.
무조건 잘못된 것을 덮자는 생각도 잘못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시대 교회들 안에 가득한
비진리들에 신음하고 또 깊이 신음한 경험이 있는 성도들은 시행착오와 아쉬운 점이 존재하지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극소수의 지역교회와 섬기는 분들에게 보다 많은 격려와 응원이
절대로 필요함을 잘 알줄로 생각합니다. 매우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댓글을 남깁니다.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2-10-17 12:29:17 | 김대용
한국으로부터 복음 아닌 복음이 수출되고 부실한 사람들의 설익은 헌신이 춤추던 중국땅에
목사님의 노고로 보존된 말씀과 바른 진리가 널리 퍼지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10-17 11:40:05 | 김대용
귀한 사역하시고 오신 목사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오셨네요~
2012-10-17 11:10:58 | 위정복
한재석형제님. 반갑습니다. 이전에 목포서 교제나누던 떄가 눈에 선하군요.
그떄 선물주셨던 책 하나하나 잘 보고 있습니다. 몰아쳐서 봤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일로 바쁘다 보니 아직 다 보지 못했네요. 언제 한번 저의 집사람데리고같이 한번 뵈었으면 하네요~^^
위에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예리하십니다
2012-10-17 09:45:15 | 김재원
중국까지 가셔서 킹제임스성경을 전파하는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2012-10-17 09:38:39 | 김재원
귀한 소식 감사합니다. 형제님 수고에 기도로 후원합니다. 샬롬!
2012-10-16 22:35:06 | 송재근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다들 비슷비슷 하네요..
2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이청원 자매님이세요..형제님이 아니고...^^
2012-10-16 20:46:57 | 유해용
어떤 사역때문에 중국을 자주 방문하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것이 성경보급 때문인줄은 몰랐네요...
하고 계신 사역을 통해 많은 열매 맺으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2012-10-16 20:43:58 | 유해용
목사님께서 제게 답글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정녕 정동수목사님다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하여서 제게 역사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목사님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선시하려고 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2012-10-16 17:53:03 | 김재원
반갑습니다~~^^ 이청원형제님.
다음의 글이 간증2가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2012-10-16 17:32:28 | 김재원
3-4개월 전에 84세 되신 어르신께서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외모가 범상치 않은 분이신데 오자마자 저를 붙잡고 고린도전서 15장 23절 번역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고 같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15:23).
이 말씀을 읽더니 그분께서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흥분하셨습니다.
그분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3-4년 전에 교보 문고에 가서 고대 한국사 자료를 보며 연구하다가 누가 준 킹제임스 성경 팸플릿을 보고 곧바로 서대문의 생명의 말씀사로 달려가서 킹제임스 성경을 달라고 하니까 점원이 말씀보존학회의 우리말 킹제임스 성경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성경을 읽다가 고전15:23에 이르러 앞이 꽉 막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보존학회 성경이 ‘첫 열매’를 단수로 쓰지 않고 ‘첫 열매들’로 복수로 써서 그리스도를 복수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번역인가 하고 3년 동안 의아해 하다가 최근에 저희가 출간한 성경을 알고 곧바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실 킹제임스 성경을 망치는 사례입니다. 이 구절은 영어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But every man in his own order: Christ the firstfruits; afterward they that are Christ's at his coming.
영어로 보면 ‘Christ the firstfruits’로 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도가 복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번역자는 이런 것을 잘 이해하고 번역하여야 합니다. 여기의 ‘the firstfruits’는 형태는 복수이지만 사실 단수입니다.
원어 성경에 가서 firstfruits가 나오는 모든 구절을 살펴보면 firstfruits는 다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즉 영어로는 뒤에 s가 있어서 복수처럼 보이지만 집합체 형태의 단수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 명절이라고 해야지 첫 열매들의 명절이라고 하면 사실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firstfruits’는 성경에 모두 32회 나옵니다(구약25회, 신약 7회).
신약 성경의 그리스어(스트롱 번호 536, 아팔케)를 보면 이것이 명사며 분명하게 단수라는 것을 그리스어 성경(원어 분석)을 담은 소프트웨어 등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미션 소프트의 디럭스 바이블 등).
사실 영어로는 구분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서 16장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인사하라. 내가 매우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가야에서 그리스도께 첫 열매가 된 자니라.
Likewise [greet] the church that is in their house. Salute my wellbeloved Epaenetus, who is the firstfruits of Achaia unto Christ.
바울은 에배네도가 아가야에서 첫 열매라고 하면서 firstfruits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이 복수처럼 보이지만 원어는 who, is, the firstfruits 모두 단수라고 말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 그대로 ‘who is the firstfruits’라고 쓰면서 복수형의 ‘are’가 아니라 단수형의 ‘is’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든 원어든 firstfruits는 복수형이지만 실제로는 단수입니다.
고전15:23 같이 중요한 데서 그리스도를 복수로 만들어 놓는 것은 성경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입니다(사실 있어서는 안 되는 오류입니다). 그러니 그 노인께서 흥분하시며 서울에서 인천까지 급하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식의 번역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씀보존학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거기 있든지 거기서 나오든지 대부분 똑 같이 ‘첫 열매들’이라고 말하고 씁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어도 믿지를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영어도 원어도 지지하지 않는 것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안다는 사실에 취하여 스스로 번역해 놓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벽함을 믿습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그렇기 때문에 원어가 필요 없다고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혹은 영어가 원어보다 향상된 계시를 담고 있다고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원어를 가지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교정하려는 자들의 말은 더더욱 무시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라고 하면 머리를 긁고 더듬거립니다.이들에게는 최종 권위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벤카임 구약 본문 등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애처롭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되어 기록된 그대로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된 그대로가 곧 원어의 뜻입니다.다른 번역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손에 들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며또 동시에 그것을 최대한 우리말로 일 대 일 대응시켜 바르게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단에서 서슴없이 외칩니다.
우리 손에 들린 이 완전한 성경에 해가 되는 발언이나 번역은 이제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이제는 좀 고치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좋은 리더들이 이 땅에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2012-10-16 17:32:19 | 관리자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쿠바어를 전공하고 시님으로 다니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 많은 중국인들에게 킹제임스 성경으로 바른 말씀이 널리 전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왜 우리나라는 성경의 진실에 충격을 안 받죠???
2012-10-16 17:32:13 | 김재욱
원래는 간증글이 아닌 다른 주제를 정해 쓰려고 했습니다. ^^
저의 글이 후속편을 기다리게 한다니 놀라운데요 ㅎㅎ
2012-10-16 17:31:29 | 김재원
귀한간증 감사합니다. 큰 도전과 은혜가 됩니다. 형제님 가정에 평안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2-10-16 17:10:24 | 송재근
글쓰신 분이 제 이야기를 그대로 대신 써주셧네요~~감사합니다!~~^^
2012-10-16 16:08:10 | 최명희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저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드랬죠..
주님의 귀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2012-10-16 13:38:56 | 이태성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신 것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려고 노력하며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제게 영광이 돌아와서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대단히 염려스럽습니다.
어제 어느 분이 전화해서 저보고 사랑이 없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독재자라고 하더군요.
들어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니 저를 보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만 영광을 받기를 원합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2012-10-16 13:17:20 | 관리자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부족한 우리가 번역한 성경이 우리말을 쓰는 전 세계 여러 곳의 성도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쁩니다.
중국 사역이 흥황하도록 기도하고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0-16 13:14:47 | 관리자
감사합니다. '1318 신앙질문'의 책을 한재석형제님이 주셔서 읽어보았는데 매우 내용이 알차고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가 가서 넘 좋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2012-10-16 11:22:36 | 김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