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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11절 – 삭제된 심판의 경고   킹제임스 성경 (KJV) “...for a testimony against them. Verily I say unto you,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Sodom and Gomorrha i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at city.” 개역성경 / NIV “...그들을 대적할 증거로 삼으라.” (그 다음 구절 전체 삭제) NIV: “...as a testimony against them.” (후반부 없음)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 1. 심판의 확증 예수님은 단순히 “증거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신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극심한 심판의 상징이다 (창19장, 유다서 7절 참조).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윤리적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된 형벌의 예언이다. 2. 복음 거절의 엄중함 복음을 거절하는 도시는 구약 시대의 타락한 도시들보다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불경이 아니라, 하늘의 은혜와 계시를 거부한 죄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0:29 참조). 3. 병행 구절과의 일치성 (두세 증인의 원리) 마태복음 10:14–15: 같은 문장 구조와 의미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도시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누가복음 10:10–12도 동일 내용 포함 이것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이 확정되리라”는 원리(신명기 19:15, 고후 13:1)를 따른 것으로, 말씀의 신빙성과 경고의 중대성을 높이는 병행 구조이다. 사본적 증거 이 구절을 포함한 사본들: 대부분의 비잔틴 계열 다수 사본(Majority Text) Textus Receptus (TR):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 Vulgate(라틴 벌게이트), 시리아역, 고딕어 역본, C, D, K 사본 등 포함 생략한 소수사본: Codex Sinaiticus (ℵ), Codex Vaticanus (B) 등 소수 알렉산드리아계 사본에서 이 구절 누락 이들 사본은 천주교회 중심의 전승 라인을 따르며, 반복적으로 심판, 지옥, 경고의 문구를 제거한 경향이 있음 왜 천주교 소수 사본은 이 구절을 제거했는가? 로마 교회 중심주의 강화: – 복음을 거절한 도시에 대한 심판 경고는, 중세 교회 시스템과 그 권위에 정면 충돌 – 성경이 직접 경고하는 이 구절들은 종교 권력자들을 향한 비판으로 읽히는 것을 방지하려는 동기 가능 보편 구원 사상 정당화 시도: – 교황청의 보편 구원관, 연옥 교리 등은 **“영원한 심판”**의 개념과 긴장 관계 –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큰 형벌이라는 절대적 심판 선언은 이와 충돌 심판의 절대성과 복음의 유일성 희석 – 이 구절은 복음을 거절한 자에게 결코 관용이나 중립은 없음을 분명히 말함 – 현대신학의 다원주의, 종교적 포용성과 맞지 않음 결론 마가복음 6:11의 후반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복음의 유일성, 예수님의 선포 권위를 강력히 드러낸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의 병행 구조로 볼 때 삼중적 확증의 원칙에 부합하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다는 증거가 된다. KJV는 이 말씀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NIV와 개역성경 등은 이 심판 선언을 삭제하여 말씀의 중대성을 훼손한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6–7)
2025-05-20 10:11:34 | 관리자
마가복음 3 장 15절 – 병 고치는 권능이 삭제된 사본 왜곡 킹제임스 성경(KJV) “…to have power to heal sicknesses, and to cast out devils.” “…병 고치는 권능과 마귀들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더라.” (흠정역) 개역성경 / NIV “…to have authority to drive out demons.” (“병 고치는 권능” 생략) 왜 “병 고치는 권능”이 중요한가? 제자 사역의 이중적 권위 명시 – 병 고침과 귀신 추방은 예수님 사역의 대표적 표적들이었고, 제자들에게 이 동일한 권능을 주셨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위임받았음을 입증 성경 전체의 일관성과 부합 – 마태복음 10:1: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들을 제압하는 권능과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누가복음 9:1: “제자들에게 모든 마귀를 제압하고 병들을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시며” 복음 전파와 함께한 능력 사역 – 마가복음 6:13: “많은 마귀들을 쫓아내며 많은 병든 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고치더라” – 병 고침은 제자들의 실제 사역의 일부였고, 이 권능이 주어졌다는 언급 없이는 그 사역의 정당성과 기적의 근원이 불분명해짐 사본 증거 비교   포함된 전통 본문들 Textus Receptus (TR): KJV 기반 다수 사본 – “ἀθεραπεύειν τὰς νόσους” (병 고치는 권능)이 분명히 있음 Codex A (Alexandrinus), Codex C (Ephraemi) 등: 동일 표현 포함 Vulgate 라틴역, 시리아역, 고딕어 성경 등 여러 고대역본도 이 표현을 유지 생략한 소수사본 Codex Vaticanus (B), Codex Sinaiticus (ℵ): “병 고치는 권능” 생략 이 사본들은 천주교 전통에 의해 선호되었으며, 교리적 편향과 관련된 구절 삭제가 빈번 왜 삭제되었는가? 천주교 신학 전통은 사도적 권능을 교황권과 사제직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음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병 고치는 권능을 위임받았다는 진술은 이러한 구조를 약화시키기에, 천주교가 주로 사용하는 소수 사본들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삭제되는 경향이 있음 오늘날 일부 은사주의자들의 병 고침 주장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성경 본문 자체가 흐려지면 권능의 기준도 약해짐 결론: 왜 KJV 본문이 바른가?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과 능력으로 함께 이루어졌고, 제자들도 이 권능을 부여받았다. “병 고치는 권능”은 단순한 문장 하나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증거하는 수단이었다. 이를 삭제한 현대역본들은 제자들의 사역을 절반만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권위 위임과 복음의 능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2025-05-20 10:06:42 | 관리자
마가복음 3:5 – 회복의 온전함이 삭제된 사본 왜곡   KJV (흠정역) “…그가 내밀매 그의 손이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 회복되니라.” 개역성경 / NIV “…그가 내밀매 그의 손이 회복되었더라.”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 생략) 왜 이 표현이 중요한가? 기적의 수준과 결과가 명확해진다 – 단순히 회복되었다가 아니라, 기존의 건강한 손과 똑같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줌 – 이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부분적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완전함을 증명함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기적은 ‘온전한 회복’을 보여줌 – 눈 먼 자가 보게 되었고, 걷지 못하는 자가 뛰었으며, 죽은 자가 살아났듯이 – 여기서도 손이 정상적인 상태로 완전하게 회복됨 신학적 함의: 예수님의 치유는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회복하시는 전인적 구원의 상징 – "완전하게" 회복된 손은 복음의 전능하심과 치유 사역의 본질을 드러냄 사본 증거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가 포함된 다수 사본 Textus Receptus (TR): KJV의 기반이 되는 다수 전통 사본에는 이 구절이 완전히 포함 Codex A (Alexandrinus), Codex C (Ephraemi Rescriptus): 동일 문구 확인 고대 시리아어역(Peshitta), 라틴 벌게이트도 해당 문구 보존 생략한 알렉산드리아계 소수사본 Codex Vaticanus (B), Codex Sinaiticus (ℵ): 해당 구절 생략 이 사본들은 천주교 전통에서 보호·사용된 문헌으로, 반복적으로 중요한 신학 구절 삭제 경향이 있음 왜 이런 편집이 문제인가?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라는 표현은 단지 묘사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 권능, 메시아적 기적의 증거이다. 이를 제거하면 예수님의 기적이 “부분적 치료”처럼 보이게 되어 복음의 핵심인 전적인 구원 능력이 흐려짐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온전한 복음을 일부만 전달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거짓된 성경관으로 이어질 수 있음 결론 마가복음 3:5의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 회복되니라”는 삭제되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전능하신 기적을 완전하게 증거합니다. KJV는 다수 사본과 역사적 신학에 충실하며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습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은 천주교 소수사본에 근거해 본문을 축소하고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주어진 것일 뿐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삭제나 변개는 복음 그 자체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2025-05-20 10:00:12 | 관리자
마태복음 27:35 – 예언의 성취가 삭제된 이유는 무엇인가?   KJV (흠정역)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그분의 옷들을 제비 뽑아 나누니 이것은 주께서 대언자를 통해,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며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나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NIV / 개역성경 등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그분의 옷들을 나누고 제비를 뽑았다.” (예언 성취 구절 생략) 삭제된 구절의 의미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시편 22편 18절의 예언이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성취된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며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나이다.” (시22:18)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위의 행위 하나하나가 이미 구약 성경의 대언(예언)을 통해 선포되었고, 그것이 정확히 성취되고 있다는 성경 내적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현대 역본들은 바로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핵심 구절을 삭제하고 말았습니다. 사본상의 배경 킹제임스 성경은 **다수 사본 전통(공인본문, Textus Receptus)**을 따라 이 구절을 완전하게 보존 반면 NIV, NASB, 개역성경 등은 소수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예: Vaticanus, Sinaiticus 등)에 의존 이 사본들은 천주교 전통에 의해 보존된 것이며, 종종 예수님의 예언 성취, 신성, 복음의 핵심을 축소하거나 생략함 왜 이 구절이 중요한가?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참이다 – 예수님의 사역이 단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구약의 정확한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예언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간접적 공격 – 구약의 대언자들이 기록한 예언을 지운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 왜곡된 복음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음 – “예언의 성취”를 제거하면, 독자는 단지 “예수님이 고통당하셨다”라는 사실만 보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없게 됨 결론: 왜 KJV의 번역이 성경적으로 옳은가? “예언은 성취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마태복음 27:35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시22:18)의 성취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KJV는 예언의 정확성과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보존하고 있으며, 현대역본들은 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께 피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까 염려하노라.” (잠언 30:5–6)
2025-05-20 09:55:19 | 관리자
마태복음 23장 4절 – 무거운 짐인가, 감당할 수 없는 종교적 억압인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 4절은 그들의 본질적인 문제, 즉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종교적 짐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위선을 강하게 지적하신 대목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중요한 구절에서 “지기에 힘든”(grievous to be borne)이라는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의 강도와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말았습니다. 본문 비교 항목 - 킹제임스 성경 (KJV / 흠정역) : 개역성경 / NIV 등 마23:4 - “무겁고 지기에 힘든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그것들을 옮기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 “무거운 짐을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그것들을 옮기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기에 힘든” 생략) “지기에 힘든”의 중요성 **단순히 ‘무거운 짐’**만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교적 율법, 인간의 규례, 형식주의, 헌금, 헌물, 종교 의식 등의 강요를 의미 예수님의 핵심적인 책망은 바로 이런 사람의 전통과 규례가 하나님의 계명보다 앞서는 위선에 대한 경고였음 이는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화 있을지어다”**라는 가장 강력한 심판 선언 속에서 주어진 말씀임 현 시대의 종교인들, 바로 천주교 시스템의 모습 오늘날 이 말씀이 가리키는 종교인들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천주교 시스템 아래 있는 제도적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성례전, 고해성사, 미사 참여, 연옥을 위한 기도와 헌금, 형상 숭배, 교황 무오류 교리, 전통과 계율의 억압 등으로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짐을 지우고, 정작 자신들은 그 속에서 권위와 명예를 누리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시스템은 단순히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지기에 힘든” 짐을 오늘날에도 계속 짊어지게 만드는 위선 그 자체입니다.  사본 문제와 의도된 삭제 이처럼 중요한 진리를 전달하는 구절이 왜 삭제되었을까요? “지기에 힘든”(Greek: δύσβαστακτα, dysbastakta)은 공인본문(Textus Receptus)과 다수 사본들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음 그러나 소수 천주교 사본들(알렉산드리아 계열)은 이 구절을 삭제 개역성경, NIV 등은 천주교 사본에 의존해 이 말을 뺌 결과적으로 오늘날 현대 역본들은 천주교 시스템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진리, 즉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율법과 전통의 짐을 지우고 있다는 예수님의 강력한 책망을 제거한 셈입니다.  결론: 왜 이 구절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지기에 힘든”이라는 표현은 단지 말의 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종교 형식과 제도를 빌미로 백성들을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핵심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 말씀은 종교 제도 아래에서 진리를 왜곡하고 영혼들을 통제하려는 천주교 시스템의 실상을 폭로하는 빛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삭제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감추고 변개하려는 시도이며 우리는 반드시 정확하고 완전한 성경, 곧 킹제임스 성경(KJV)을 붙들고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2025-05-20 09:54:26 | 관리자
마태복음 20장 22-23절, “침례”란 무엇인가? 왜 이것이 중요한가?   예수님이 여기서 언급하신 침례는 물이 아닌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2:50: “그러나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겠느냐?” → 여기서도 “침례”는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0장에서의 침례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감당하실 구속 사역, 즉 속죄의 죽음을 의미하며, 제자들이 그 길에 동참할 것인지 질문하신 것입니다. 왜 이 구절의 삭제는 복음을 훼손하는가? 복음의 핵심 요소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흐려짐 “마실 잔”은 고난을 의미하고 “침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이 중 하나가 삭제되면 복음의 그림이 반쪽짜리가 됩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사명적 연대가 약화됨 예수님은 “너희도 나처럼 고난을 당할 것이다”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침례 부분이 삭제되면 이 연결이 끊기고, 단순한 상징이나 의지 표현으로 전락합니다. 신학적으로 희생과 자기부인의 본이 약화됨 제자들에게 고난의 사명을 맡기시는 메시지가 희석되어, 값싼 제자도(costless discipleship)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사본 문제: 소수 사본 vs 다수 사본 “나를 잠기게 한 침례로”라는 구절은 공인본문(Textus Receptus) 및 **다수 사본(majority text)**에 명백히 포함되어 있음. 그러나 소수 사본들(알렉산드리아 계열, 예: Vaticanus, Sinaiticus 등)은 이 구절을 생략함. 개역성경, NIV 등은 이 소수 사본을 따라 번역함으로써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약화시킴. 결론 요약 핵심 요소 - KJV (흠정역) : 현대역본 (개역, NIV 등) 복음의 고난 강조 - “침례로 침례받는다” 포함 → 십자가 지심의 예고 : 고난 요소 생략 → 복음의 희석 제자도의 희생 의미 -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각오 강조 : 단순한 “잔 마심”만 언급 사본 근거 - 다수 사본, 전통 공인본문소수 사본 : 천주교 알렉산드리아 계열 “침례”가 빠지면 단순한 제자도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진정한 복음의 무게가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감당하신 침례 – 십자가의 희생 – 이것이 제거된 복음은 더 이상 참 복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를 잠기게 한 침례로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는 말씀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본문 추가가 아닌 성경의 핵심 진리를 지키는 문제입니다.
2025-05-20 09:44:32 | 관리자
마태복음 20:7 – 정당한 보수 삭제로 인한 교훈의 왜곡   1. KJV 및 흠정역의 말씀 (공인본문 기반) KJV (Matthew 20:7) “They say unto him, Because no man hath hired us. He saith unto them, Go ye also into the vineyard; and whatsoever is right, that shall ye receive.” 흠정역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무엇이든 정당한 것, 그것을 너희가 받으리라, 하니라.” → 예수님은 주인이 일꾼에게 공정하게 보상할 것임을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2. 현대역본(NIV, 개역 등)의 문제점 NIV / 개역개정 “아무도 우리를 품꾼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 ⚠ “무엇이든 정당한 것, 그것을 받으리라” 삭제 3. 논리적 결함: 비유의 구조를 무너뜨림 포도원 일꾼의 비유(마20:1–16)는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보상 원리, 즉 은혜 vs 공의의 균형을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시점 - 고용된 사람 /약속된 보수 / 지급 근거 아침 일찍 - 첫 번째 일꾼 / 하루 한 데나리온 / 분명한 계약 3시, 6시, 9시 - 중간 일꾼들 / 없음 / 주인이 ‘정당하게’ 지급 11시 (거의 끝) - 마지막 일꾼들 / “정당한 것”⚠ KJV엔 있음 / 현대역본엔 삭제 → 이처럼 마지막 일꾼에게 “정당한 것”을 약속했다는 말이 빠지면, 왜 그들에게도 동일한 보수가 주어졌는지 주인의 행동이 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비유의 도덕적 핵심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4. 이 구절은 사본상 어디서 나왔는가? 공인본문(Textus Receptus), **다수 사본(majority text)**에는 “καὶ ὃ ἐὰν ᾖ δίκαιον λήψεσθε” (무엇이든 정당한 것, 그것을 받으리라)라는 표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 사본(예: 알렉산드리아 사본, Vaticanus, Sinaiticus)에서는 이 구절이 부분적으로 생략되거나 전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NIV와 개역성경은 이 소수 사본을 따라 본문을 변개되어 있습니다. 5.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결코 불공정하지 않으시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게 보상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은혜로 풍성하게 넘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일하는 시간의 길이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결론 항목 - KJV (흠정역) / 현대역본 (NIV, 개역 등) 본문 포함 여부 - “정당한 것, 그것을 받으리라” 있음 / 삭제됨 비유의 교훈 - 하나님은 공정하고 은혜로우심 / 보상 기준이 애매해짐 사본 근거 - 다수 사본 (전통적 본문) / 소수 사본 (천주교 알렉산드리아계) 신학적 결과 - 성도의 보상이 하나님의 의에 근거함 / 하나님의 ,공의를 흐리게 만듦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단어라도 결코 빼어서는 안 됩니다.” (신 4:2) “무엇이든 정당한 것, 그것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균형 있게 설명해 주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절입니다.
2025-05-20 09:40:27 | 관리자
마태복음 19:9 – 성경적 간음의 범위 왜곡 문제   1. KJV(킹제임스 성경) 및 공인본문의 말씀 Matthew 19:9 (KJV) “And I say unto you, Whosoever shall put away his wife, except it be for fornication, and shall marry another, committeth adultery: and whoso marrieth her which is put away doth commit adultery.” 흠정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이것은 간음하는 것이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니라.” 이 구절은 결혼과 재혼, 그리고 간음의 성경적 기준을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을 단지 배우자의 배신만이 아니라 잘못된 재혼 자체로도 성립될 수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2. 현대역본(NIV, 개역성경 등)의 변개 예 NIV / 개역개정 / RSV 등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의 이유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간음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이다” → 삭제   3. 삭제된 구절의 중요성 (1) 간음의 정의를 완성함 이 구절이 없으면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도덕적이거나 허용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방향에서 간음을 설명하셨습니다: A → B 재혼: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 → 간음 C → A의 전 아내와 결혼: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 → 역시 간음 즉, 간음은 배우자의 책임뿐 아니라 제3자의 행위로도 성립됩니다. (2) 가정과 결혼의 신성함을 보호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이혼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재혼 관계에서도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함을 명백히 하신 것입니다. 삭제된 구절이 없다면, 이혼한 여자에게 누구나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는 비성경적 해석의 여지가 열립니다. 4. 사본 문제: 왜 삭제되었는가? 이 구절의 삭제는 천주교 중심의 알렉산드리아계 소수 사본(예: B, א, 일부 라틴어역)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 교회의 혼인 무효 선언(divorce annulment)과 혼합된 결혼 교리를 반영하며, 다음의 동기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혼인 재판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님의 기준을 교회의 해석권 아래 둠 윤리적 기준을 낮춰 교회 제도를 더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하지만 다수 사본, 고대 교부들의 인용, 공인 본문(TR),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 구절이 분명히 존재하며,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구절을 기준 삼아 재혼의 도덕성을 판단했습니다. 5. 결론: 성경의 완전한 진리는 가감 없이 보존되어야 한다 기준 - 킹제임스 성경(KJV) / 현대역본(NIV, 개역 등) 본문 내용 - 간음에 대한 이중 경고 포함 / 한 쪽 방향만 설명 윤리 기준 - 배우자와 제3자 모두 경고 / 제3자의 책임은 침묵 사본 근거 - 다수 사본 및 교부 인용 / 소수 사본(알렉산드리아) 신학적 의미 - 혼인과 재혼의 경계 강화 / 윤리적 완화, 왜곡 가능성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더하거나 빼지 말아야 한다."(신명기 4:2)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불에 연단된 은같이 정결한 말씀입니다(시12:6). 따라서 마태복음 19장 9절도 반드시 킹제임스 성경과 같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2025-05-20 09:35:54 | 관리자
마태복음 5장 44절 삭제 문제: 원수 사랑의 본질을 왜곡한 현대역본   1. 킹제임스 성경(KJV) – 완전한 말씀 Matthew 5:44 (KJV) “But I say un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 흠정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악의로 대하는 자들과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 사랑’**이 단순한 감정적 태도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어떤 원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실천 지침입니다. 2.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 – 생략된 핵심 표현들 NIV / 개역개정 / 현대역본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삭제된 구절들: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악의로 대하는 자들을 위해” 이 삭제는 단지 텍스트를 짧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 사랑의 실제적 윤리적 적용 범위 자체를 흐려버리는 심각한 변개입니다. 3. 왜 이 표현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1) '누가' 원수인가를 설명해 주는 구절 단순히 “원수들을 사랑하라”고만 하면, 그 원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원수 역할을 하는지가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KJV의 표현은 이를 이렇게 구체화합니다: 저주하는 자들 → 언어적 공격자들 미워하는 자들 → 감정적으로 적대하는 자들 악의로 다루는 자들 → 고의적으로 해를 끼치는 자들 핍박하는 자들 → 공공연히 괴롭히는 자들 즉, “원수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원수의 유형과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함께 나옵니다. (2) 문맥적 조화와 누가복음과의 일치 같은 말씀은 누가복음 6장 27–28절에서도 나오며, 이 구조가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즉, 누가복음과의 조화와 두세 증인의 증거가 있어야 말씀의 확증이 이루어진다는 성경 원칙(고후13:1)을 생각할 때, 마태복음 5:44의 완전한 구조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합니다. 4. 사본 문제의 본질: 천주교적 의도? 현대역본들이 따르는 **알렉산드리아 소수 사본들(예: B, א, D)**은 위 구절의 후반부를 생략합니다. 이 사본들로 구성된 Nestle-Aland / UBS 본문은 천주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뿌리인 **서방 비평학자들(웨스트코트, 호르트)**에 의해 편집되었고, 그들의 노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 행위에 대한 죄의 책임을 약화 기독교 윤리를 상대화 성경을 인간의 도덕책 정도로 축소 결국, 예수님의 구체적인 명령이 삭제됨으로써, 복음의 윤리적 급진성과 실천성은 축소되고, 애매한 “사랑하라”는 명령만 남게 됩니다. 결론: 이 구절은 반드시 온전히 있어야 한다 기준 - KJV (흠정역) / 현대역본 (NIV, 개역 등) 본문 구조 - 4단계 실천 지침 포함 / 핵심 지침 2개 삭제 문맥 연결성 - 완전 / 불완전 신학적 명확성 - 고난 가운데서도 적극적 선행을 명령 / 추상적 윤리로 약화 사본 근거 - 다수 사본 + 교부 인용 일치 / 소수 사본만 따름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반드시 **“그들이 어떻게 원수 노릇을 하느냐”**를 밝혀야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5장 44절은 킹제임스 성경(KJV)의 형태로만 온전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2025-05-20 09:30:43 | 관리자
로마서 16장 24절 삭제 문제: 사도 바울의 서신 구조에 대한 사본 논쟁   1. 킹제임스 성경(KJV)과 다수 사본의 본문 (Textus Receptus) 로마서 16:24 (KJV)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Amen.” (흠정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다른 서신들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하는 마무리 문구입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후서 13:14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빌립보서 4:23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데살로니가후서 3:18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와 같은 문구는 사도 바울의 **고유한 서신 구조와 신학적 서명(Signature)**입니다. 2. NIV 및 현대역본의 삭제 NIV (Romans 16:24) 삭제됨 (보통 각주에 “어떤 사본에는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Amen.’이 있음”이라고 표기) 현대역본들은 **소수 알렉산드리아 사본들(B, א 등)**의 부재를 이유로 이 구절을 본문에서 제외하고, 각주로 내리거나 완전히 생략합니다. 3. 왜 이 말씀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1) 사도 바울의 서신적 전형 구조와의 일치 바울 서신은 거의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하거나 끝납니다. 로마서만 예외로 “영광을 돌리노라”로만 끝난다면, 이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구조입니다. 그러나 16:24절이 포함되면 다음과 같은 논리적 정리가 됩니다: 16:24 – 바울의 인사로 서신의 본문 종료 16:25–27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Doxology)으로 마무리 이는 고린도전서나 빌립보서와 매우 유사한 흐름입니다. (2) 다수 사본과 교부들의 증언이 이 구절을 지지 대다수의 비잔틴 사본과 라틴 역본(Vulgate), 시리아 역본, 아르메니아 역본은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음 초기 교부들도 이 말씀을 인용하거나 반영한 흔적이 존재 (3) 사본 삭제 동기의 문제 현대역본의 기준이 되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삭제 성향이 강한 사본 계열입니다. 어떤 이유로 이 구절이 삭제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능합니다: 16:20과 16:24, 25–27 사이에서 본문 정리상의 혼란으로 일부 서기관들이 혼동 또는 송영을 마지막 인사로 착각하여 중복으로 여겨 생략 하지만 이것은 정경의 본문을 의도적으로 변경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4. 결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바울 서신의 고유 서명이다 로마서 16장 24절은: 바울 서신의 통일된 구조를 유지시켜 주며, 바울이 영적으로 서신을 끝맺는 공식 선언이며, 성도에게 주는 복음의 정수를 요약한 축복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로마서는 마치 바울의 글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고, 성경 전체의 일관성과 정경적 권위가 손상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말씀은 반드시 성경에 있어야 하며, 그 삭제는 성령님의 의도와 바울의 패턴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우리는 **다수 사본과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을 따르는 **킹제임스 성경(KJV)**을 신뢰해야 한다.
2025-05-20 09:25:18 | 관리자
사도행전 28장 29절 – 사도 바울의 설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KJV(흠정역) “그가 이 말들을 하매 유대인들이 떠나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이더라.”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   삭제됨 1. 이 구절은 바울의 마지막 설교의 직접적인 반응이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은 로마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의 왕국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득력 있게 증거합니다(28:23–28). 그런데 바울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는데, 그 반응이 빠져 있다면 전체 흐름이 끊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28:29은 바로 그 설교의 열매, 즉 “유대인들이 떠나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이는 바울의 메시지가 유대 사회 내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복음이 단순히 무시된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켰다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합니다. 2. 이 구절이 없으면 앞뒤 문맥이 연결되지 않는다 28:23–28 : 바울이 왕국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열정적으로 증언함 28:30–31 :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며 사도행전이 끝남 그런데 28:29이 삭제되면, 바울의 설교에 즉각적인 반응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유대인들과의 논쟁과 갈등, 즉 복음이 유대 사회를 나누는 효과가 사라집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3. 소수 사본의 편집자가 왜 이 말씀을 제거했는가? 알렉산드리아계 소수 사본(B, א 등)은 이 구절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수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있습니다. 시리아어, 라틴어, 아람어 역본들에도 이 말씀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기 교부들의 언급에서도 사도행전 28:29의 존재가 확인됩니다. 천주교 사본을 따르는 현대 역본들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내부에서 큰 논쟁을 벌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삭제함으로써, 복음이 유대 사회에 미친 충격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4. 결론 – 왜 이 말씀은 반드시 성경에 있어야 하는가?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더하지 말며 아무것도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2) 사도 바울의 복음 선포는 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반응이 “믿음”이든, “논쟁”이든 그 역사적 결과는 기록되어야 합니다. 28:29절은 복음의 분명한 역사성과 전도의 열매를 보여주는 핵심 본문이며, 그것을 삭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은폐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수 사본과 공인 본문(TR)**을 따르는 **킹제임스 성경(KJV)**의 온전한 보존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가 이 말들을 하매 유대인들이 떠나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이더라.” – 이 말씀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2025-05-20 09:18:28 | 관리자
사도행전 24장 7절의 삭제는 문맥을 무너뜨린다 – 천주교 소수 사본의 왜곡과 본문 훼손 – 개역성경과 NIV 등 현대 역본들은 다음 중요한 문장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행 24:7 “그러나 총대장 루시아가 우리를 기습하여 큰 폭력으로 우리 손에서 그를 빼앗아 데리고 간 뒤” (한글개역, NIV 등: 삭제) 행 24:8 “그의 고소인들에게 명령하여 각하께 오라고 하였으니…” 이 삭제로 인해 앞뒤 문맥이 단절되고 누가 무엇을 했는지 모호해지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1. 루시아 총대장의 등장 없이 말이 이어질 수 없는 구조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폭행당하고 있던 중, 로마 군대의 총대장 루시아가 급히 와서 그를 구출해 갑니다(행 21:31–33). 이후 여러 차례 바울이 로마의 보호 아래 재판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중심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루시아입니다. 그런데 24:7이 삭제되면, 루시아라는 핵심 인물이 왜 갑자기 24:8에 언급되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갑작스레 등장한 루시아라는 이름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과 공인본문(TR)은 이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총대장 루시아가 우리를 기습하여 큰 폭력으로 우리 손에서 그를 빼앗아 데리고 간 뒤 그의 고소인들에게 명령하여 각하께 오라고 하였으니…” 이 흐름 속에서 재판이 왜 총독 벨릭스 앞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의 불만이 왜 총독에게 향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삭제된 이유는 천주교 사본의 영향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계열 소수 사본에서는 루시아의 개입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들의 편집자들은 로마 제국이 바울을 보호한 긍정적 역할을 가능한 한 줄이거나 제거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본, 그리고 라틴 벌게이트, 시리아 역본, 초기 교부들의 인용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현대 역본들은 소수 부패 사본을 따름으로써 본문을 훼손한 것입니다. 3. 정경적인 중요성과 “두세 증인의 확증” 성경은 말씀의 확증에 대해 이렇게 명확히 말합니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될 것이니라.” (고후13:1, 신19:15) 이 원칙에 따라 행 24장 7절은 다음의 연결과 확증을 만들어냅니다: 행 21장에서 루시아의 개입 행 23장에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 동원 행 24장에서 그 후속조치에 대한 공소 이처럼 본문은 서로를 해석하고 확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24:7이 삭제되면 이 확증 고리가 끊어지며 독자는 내용의 흐름을 오해하거나 놓치게 됩니다. 4. 결론: “말씀이 삭제되면, 해석은 왜곡된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말씀에 순수하시며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시니라. 그분의 말씀들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시고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잠30:5–6, KJV) 행 24:7은 없어도 되는 설명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할 본문입니다. 그 삭제는 로마의 역할을 흐리게 하려는 목적, 그리고 복음 전파의 흐름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사본 편집자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2025-05-20 09:14:35 | 관리자
사도행전 15장 34절의 누락은 말씀의 논리적 흐름을 깨뜨린다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은 사도행전 15장 34절을 본문에서 삭제하거나 각주로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분리된 후, 바울이 신라(실라)를 데리고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다. 1. KJV vs. 현대 역본의 차이 성경행 15:34 내용 KJV"Notwithstanding it pleased Silas to abide there still."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라는 거기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기뻐하였으며 개역성경 / NIV(본문에서 삭제) 또는 각주 처리 ※ 예: "어떤 사본에는 '실라는 거기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였다'가 있음." 2. 이 구절이 왜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논리적 연결이 깨지지 않기 위해 행 15:33 “며칠 지낸 뒤 그들이 (곧 유다와 실라) 평안히 형제들에게 작별하고 보내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 여기까지만 보면 실라가 안디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행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떠나며…” → 실라가 안디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전제가 없으면 이 장면은 문맥상 불연속이 된다. ▶ 행 15:34은 그 불연속을 해소하는 필수적인 연결 구절이다. 3. 사본 증거는? Scrivener’s TR (Textus Receptus)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Nestle-Aland / UBS 소수 사본계열 이 구절을 누락하거나 괄호 처리. 연합성서공회의 비평주석에 따르면, 이 구절은 다수 사본들(특히 비잔틴 계열)에는 들어 있으며, 사도행전 전체의 문맥적 정합성 측면에서도 삭제가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구절이다. 4. 삭제의 위험성과 교리적 왜곡 NIV, 개역성경 등은 이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다음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문맥 붕괴 실라가 떠났다고 해 놓고 다시 바울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내러티브를 훼손한다. 역사적 사실 왜곡 신라(실라)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서 이후 사도행전 전체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 구절의 삭제는 그의 지속적인 활동 배경을 없애버리는 오류를 유발한다. 결론 행 15:34은 단순한 한 구절이 아니다. 그것은 신약 역사 기록의 신뢰성과 연속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누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기록을 손대는 일이며, 이는 결국 성경의 신뢰성과 영감에 대해 사람이 판단하고 가위질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딤후 3:16) 그러므로 행 15:34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반드시 본문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또 한 번 KJV가 성경을 가장 정확히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2025-05-20 09:08:15 | 관리자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 왜 이 말씀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그들이 각기 자기 집으로 가니라…” 이 구절로 시작하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는 수많은 현대 성경들에서 각주로 밀리거나 아예 본문에서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성경의 원문적, 역사적, 신학적, 문맥적 정합성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내적 증거: 앞뒤 문맥이 이 구절을 요구한다 이 구절이 없다면 요한복음의 문맥 연결이 불가능해집니다. 요 7:52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요 8:12로 넘어가면,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이 나옵니다. → 그러나 독자는 갑자기 예수님이 왜 성전에 계신지, 왜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요 7:53–8:2이 들어가면 문맥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7:53: 모든 사람이 집으로 간다 8:1: 예수님은 올리브 산으로 가심 8:2: 아침에 다시 성전에 오심 → 사람들이 모이고 → 예수님이 가르치심 이어지는 간음한 여인 사건 이처럼 본문의 흐름과 시간의 진행, 지리적 이동, 등장인물의 설명은 이 구절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2. 역사적 증거: 교부들과 사본들이 이 구절을 인정함 현대역본(NIV, 개역성경 등)은 이 구절이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교부 어거스틴 (c. 400): 어떤 사본에서 이 구절이 빠진 이유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용서가 간음을 부추길까 두려워 이 본문을 제거했다”고 지적. 암브로스, 파시안, 니콘 등 수많은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언급했고 설교에 사용함. 사본 증거: 5세기 D 사본에 포함됨 라틴 벌게이트 역본에도 제롬이 이 본문을 포함시킴 디다스칼리아(3세기 문헌), 사도들의 헌장, 유세비우스, 파피아스 등도 간접적으로나마 이 본문을 지지하거나 존재를 암시 오히려 이 본문은 초기 금욕주의 기독교 세력(특히 이집트 지역)에서 도덕적 이유로 일부러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3. 신학적 증거: 이 본문은 예수님의 공의와 긍휼을 모두 보여주는 복음의 핵심이다 이 사건은 다음을 강조합니다: 율법과 긍휼의 조화: 예수님은 죄를 정당화하지 않으셨지만,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정죄하지 않으심. 예수님의 권위: 사람들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시고,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고 하심.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은 회개와 변화된 삶의 명령. 이 구절이 없으면 신약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용서의 장면 중 하나가 사라지며, 율법과 복음의 조화도 손상됩니다. 4. 사본 배치의 증거: 요한복음 내 위치가 일관되며 일부 배치는 후대 변형이다 일부 사본에서는 이 본문이 요한복음 끝이나 누가복음 21장 뒤에 붙어 있으나, 이는 오히려 원래 본문을 삭제한 후 애매하게 덧붙인 흔적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본에서는 요 7:52와 8:12 사이에 정확하게 위치합니다. → 이는 이 본문이 본문 속 문맥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5. 현대역본의 각주는 왜곡된 정보 제공 현대역본(NIV, ESV, 개역개정 등)은 이 본문에 대해 “가장 오래된 사본에 없음” 또는 “다른 위치에도 있음”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을 왜곡합니다: “없다”고 주장하는 사본은 소수이며 특정 지역(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편향된 전통.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은 오히려 이 본문이 존중받아 따로 보존되려는 흔적일 수 있음. 오히려 이 구절은 대부분의 사본에 포함되어 있으며 위치가 일관됨. 6. 결론: 삭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일이다   이 구절이 없으면 문맥이 맞지 않고, 역사와 교리가 훼손됩니다. 이 구절을 삭제하거나 괄호로 묶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을 의심하고 훼손하는 일입니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씀이 확정된다 (신명기 19:15). ‘간음한 여인의 기사’는 성경의 다른 교훈들과도 완벽히 조화되며, 본문과 문맥, 사본과 교부들, 신학과 은혜의 중심이 모두 이 본문의 정당성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사본의 소수성보다 말씀의 통일성과 문맥적 완전성을 볼 것인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복음을 지울 것인가, 지킬 것인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지워야 할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보존된 말씀입니다. ✦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나이다." (시편 119:89) 따라서 요한복음 7:53–8:11은 단순한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정확하고 살아 있는 말씀으로써 존중받고 읽혀야 합니다.
2025-05-20 09:04:04 | 관리자
누가복음 23장 17절의 삭제   누가복음 23:17이 왜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 삭제된 말씀은 문맥을 혼란케 하고, 복음의 증거를 약화시킨다 1. 삭제된 말씀: 눅 23:17 (KJV vs 현대역본) KJV "(For of necessity he must release one unto them at the feast.)" (이는 그 명절이 되면 필히 빌라도가 반드시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더라.)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 이 구절 전체 삭제 개역성경에서는 아예 절 번호 없이 건너뜀 NIV에서는 각주로 "어떤 사본들에 이 구절이 있음"이라고만 언급함 2. 문맥상 왜 이 말씀이 반드시 필요한가? 누가복음 23장의 본문을 읽어보면, 빌라도가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장면과 군중들이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외치는 장면 사이에 아무런 연결 설명 없이 넘어간다. 즉, 왜 군중들이 갑자기 죄수 하나를 놓아달라고 외치는가? 이유가 없다면 본문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23:17절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이는 그 명절이 되면 필히 빌라도가 반드시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더라.” →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바를 요구했던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과 바라바를 놓고 선택하게 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3. 성경적 확증: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씀은 확정된다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들에서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7: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요청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더라." 마가복음 15:6 "명절이 되면 백성을 위하여 놓아주고자 하는 사람 하나가 있었더라." 요한복음 18:39 "너희가 내가 유월절에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으니…" 따라서 누가복음 23:17이 삭제되면 신약 성경의 4복음서 중 3개 복음서만 해당 관례를 언급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씀이 확정됨을 요구한다(신명기 19:15, 고후 13:1). 누가복음 23:17이 있음으로써 4복음서 모두가 그 사실을 증거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보다 풍성하고도 확정된 증거를 얻게 된다. 4. 왜 삭제되었는가? — 사본 문제 이 구절은 대다수 비잔틴 사본들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소수의 **알렉산드리아 사본들(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에서는 누락되어 있다. NIV, NASB, 개역개정 등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이 소수 사본을 기준으로 삼아 본문을 삭제하거나 각주로만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35) 말씀이 유지되어야지,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 5. 결론: 삭제된 구절은 문맥도, 복음도 약화시킨다   누가복음 23:17은 단순한 편집상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 본문의 맥락을 정리하고, 다른 복음서들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말씀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구절이다. 그럼에도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근거로 이 구절을 삭제했다. 그러나 **“말씀이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된다”**는 원리를 따르는 우리는 KJV와 같은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정결하며, ✦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의 방패시니라. (잠 30:5) 결론: 누가복음 23:17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복음의 문맥과 성경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된 말씀이다. **삭제된 성경이 아니라 보존된 말씀(KJV)**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붙들고 전해야 할 참된 기준이다.
2025-05-20 08:55:18 | 관리자
누가복음 17장 36절: 개역 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 눅17:36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36, 왜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 하나님의 말씀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된다 1. 삭제된 말씀: 누가복음 17:36 (KJV vs 현대역본) KJV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Luke 17:36, KJV) NIV/개역성경 등 현대역본들 이 구절 전체가 삭제되어 있음. 난하주로 "어떤 사본들에 이 구절이 있음" 정도의 각주만 덧붙임.   2. 마태복음과의 연결: 하나님의 말씀은 조화를 이룬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24장 40절과 정확히 평행구절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리니,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 (마 24:40, KJV)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선포된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씀이 확정되리라.” (고후 13:1, 신명기 19:15) 그러므로 같은 내용을 두 복음서에 두셨다는 사실 자체가 말씀의 확증이다. 그런데 현대역본은 그 중 한 곳을 제거함으로써 이 말씀의 조화를 깨뜨린다.   3. 삭제의 문제: 재림 시 유대인들의 환난 교리에 대한 혼란 누가복음 17:36은 예수님의 재림 시,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는 사건”, 즉 재림 시 유대인들의 환난 교리에 대한 중요한 묘사이다. 이 구절을 삭제하면: 마태복음과 연결되는 문맥이 단절되고 신약 성경의 재림과 심판의 교리 체계가 약화된다 4. 사본 증거: 이 구절은 왜 KJV에 들어 있는가? 연합성서공회의 주석에 따르면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사본들에 확실히 포함되어 있다: 다수의 비잔틴 사본들 라틴 벌게이트 시리아역본 고딕역본 고대 교부들의 인용 이는 누가복음 17:36이 소수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없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정통 사본 전통에서는 분명히 있었음을 입증한다.   5. 결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반복하여 확증하신다 성경은 반복을 통해 교리를 세우고 강조하신다. 예수님도 진리를 말씀하실 때 종종 **“진실로 진실로(Verily, verily)”**라고 반복하셨다. 누가복음 17:36은 마태복음 24:40과 더불어 같은 진리를 반복하여 확증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삭제되면: 말씀의 증거가 약화되고 성경 전체의 통일성과 조화가 훼손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되지 않아야 한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씀이 확정된다.” (신 19:15) 누가복음 17:36은 그 중 하나이며,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두신 확증의 말씀이다. 삭제된 현대 역본이 아니라,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KJV)을 붙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5-05-20 08:50:52 | 관리자
하늘의 상급을 지우는 성경 변개: 성도들의 소망을 땅으로 끌어내리다 — NIV는 왜 “하늘에”를 삭제했는가?   1. 하늘의 상급은 신약 성도의 참된 소망이다 신약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아…” (골로새서 1:5)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부활을 바랐느니라.” (히브리서 11:35) 신약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땅의 유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였다(골 3:1–2). 2. 그러나 현대역본은 “하늘에”라는 구절을 삭제한다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서 **“하늘에”**라는 명백한 표현이 제거되어 있다: 히브리서 10:34 KJV: “너희는 하늘에 더 나은 것, 곧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앎으로 기쁘게 당하였느니라.” NIV: “너희에게 더 좋은 것, 더 영구한 소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점: “하늘에”가 삭제됨 이 표현이 사라짐으로써, 성도들의 소유와 상급이 이 땅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신학적 왜곡이 발생한다. 3. 왜 이 차이가 문제인가? 이 세상은 썩고 사라질 것들로 가득하다. 성도들이 소망을 두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늘의 기업이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상속 유업을 바라보라” (베드로전서 1:4) 그런데 NIV와 개역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하늘에”**라는 표현을 고의적으로 삭제함으로써 성도들의 시선을 이 땅에 고정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 인생관”**이 사라지고, **“이 땅에서의 번영과 성공”**을 추구하는 뉴에이지 신앙으로 교회를 물들게 한다. 4. 바울의 삶이 보여 주는 하늘의 실체 사도 바울의 삶은 극심한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말한다: “굶주리고 헐벗고 매 맞고 떠돌았다.” (고후 11:23–27)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처럼 여김을 받는다.” (고전 4:13)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 있는 영구한 처소”(고후 5:1)**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나니” (고후 4:18) 그는 알았다. 진짜 영구한 실체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5. 결론: 성도는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NIV 등 현대 역본들은 하늘의 개념을 흐림으로써 성도들의 시선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에 고정시키려 한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세속적 번영을 추구하게 되고, 성도는 하늘에 쌓을 상급보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안락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것, 곧 영구한 실체를 바라본다.” (히 10:34, KJV)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온전히 전하는 정확한 본문, KJV를 붙들자. 이 땅은 지나가지만, 하늘에 있는 유업은 영원하다. “하늘에 있는 너희 상급이 크니라.” (마태복음 5:12) 이 진리를 지우는 자들은 복음을 땅에 가두려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자. 영원한 것을 위하여.
2025-05-20 08:47:06 | 관리자
왜 현대역본들은 지옥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는가? — 마가복음 9장과 지옥 삭제 문제를 중심으로   1.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장에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경고하셨습니다: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4, 46, 48) 이 말씀은 결코 가벼운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실제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 번이나 같은 표현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만큼 지옥은 피해야 할, 절대로 가서는 안 될 무서운 실체입니다. 2. 그러나 현대역본은 이 구절을 두 번이나 삭제했다 KJV는 위 경고를 44절, 46절, 48절에서 세 번 모두 포함합니다. 반면 NIV, 개역성경 등 현대역본은 44절과 46절을 통째로 삭제하고, 오직 48절에서만 한 번 언급합니다. 절KJVNIV / 개역 9:44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삭제됨 9:46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삭제됨 9:48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유지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강조점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3. 왜 삭제했는가? 소수 사본 편집자들의 “불편함” NIV 등 현대역본이 의존하는 알렉산드리아 계열 소수 사본들은 지옥(Hell)에 대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삭제하거나 모호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예: 헬(Hell) → 음부(Hades) 또는 스올(Sheol) 지옥의 불 → 불, 또는 생략 이는 지옥의 실제성과 형벌성을 추상화하거나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고 영원한 형벌의 장소라는 사실은 많은 현대 사본 편집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마 카톨릭이나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 영향을 받은 편집자들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영원한 형벌”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인본주의적 전제가 작용했습니다. 4. 구원받은 사람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지옥을 반복적으로 경고하신 이유는 두려움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경고라는 점입니다. 지옥은 존재하며, 그곳은 결코 가서는 안 될 곳이며,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는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므로 KJV가 세 번 반복해서 지옥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경고가 되고, 믿는 자에게는 확신이 됩니다. 5. 결론: 성경은 지옥을 감추지 않는다 예수님은 중요할 때 **“진실로 진실로”**라고 반복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대한 말씀도 세 번 반복하신 것은 절대적인 주의 요구이며, 현대역본의 삭제는 이 경고를 약화시키는 위험한 시도입니다.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을 두 번 삭제하는 것은 단순한 편집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와 형벌을 가리는 의도된 변개입니다. 지옥은 존재하며, 반드시 피해야 할 곳입니다. 그리고 KJV는 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세 번이나 전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본문이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참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20 08:38:10 | 관리자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에게 임하는가? — 사본 문제로 본 에베소서 5장 6절   현대역본들(NIV, 개역성경 등)과 킹제임스 성경(KJV) 사이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하는가에 대한 중대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1. 본문 비교 킹제임스 성경 (KJV) Let no man deceive you with vain words: for because of these things cometh the wrath of God upon the children of disobedience. 아무도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런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느니라. 현대역본 (NIV, 개역성경 등) Let no one deceive you with empty words, for because of such things God’s wrath comes on those who are disobedient. 이런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한 자들에게 임하느니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표현의 누락이 있습니다. 2. “불순종의 자녀들”(children of disobedience) vs. “불순종한 자들”(those who are disobedient) KJV의 “불순종의 자녀들”은 헬라어 υἱοὺς τῆς ἀπειθείας(휘우스 테스 아페이데이아스)로, “불순종이라는 본성 아래 있는 자들”, 즉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엡 2:3)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현대역본의 “불순종한 자들”은 단순히 한 번 불순종한 사람들, 혹은 실수한 자들처럼 들릴 수 있어 죄에 대한 엄중한 정죄의 개념이 흐려집니다. 3. 사본 차이: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가? 이 문제는 다시금 사본의 차이로 돌아갑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수 사본(비잔틴 본문, 전통적 공인본문)에 따라 "불순종의 자녀들"로 번역합니다. 현대역본들은 소수의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에 근거하여 단순히 "불순종한 자들"이라고 바꾸거나 축소합니다. 즉, KJV는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복종하는 존재들 전체를 진노의 대상으로 삼고 계심을 강조하는 반면, 현대역본은 이 진노의 범위를 단순히 행위의 수준으로 제한하려 합니다. 4. 교리적 함의: 누구에게 진노가 임하는가? 이것은 단순한 어휘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대상에게 임하는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복음의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분 - KJV / 현대역본 대상 - 불순종의 자녀들(본질적, 정체성) / 불순종한 사람들(행위 중심) 강조점 - 죄인의 상태와 본질 / 특정 행위 신학적 무게 - 타락한 인간 전체의 정죄 / 부분적 도덕 실패의 결과 즉, KJV는 인간의 본성과 구원의 필요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이유와 범위를 더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5. 결론: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단 한 단어라도 빠짐없이 정확해야 합니다. **“불순종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인류가 본질적으로 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반드시 그 진노를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이 진리를 정확히 지키고 있는 번역은 단연 **킹제임스 성경(KJV)**이며, 현대역본들은 이 핵심 진리를 완화하고 축소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엄중함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임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뿐이다.
2025-05-20 08:30:39 | 관리자
마태복음 25장 13절 – 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구절이 중요할까?   성경은 마지막 때에 대비하여 항상 깨어 있으라고 우리를 경고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3절은 바로 그 대표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에서는 이 중요한 구절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1. 원문 비교 킹제임스 성경 (KJV) "Watch therefore, for ye know neither the day nor the hour wherein the Son of man cometh."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 현대역본 (NIV, 개역성경 등)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가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함이니라.” 무엇이 빠졌습니까? 바로 핵심인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이유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2. 중요한 핵심: 무엇이 오고 있는가? 이 구절은 단순히 시간이 불확실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은 “누가 오시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과 시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NIV는 그 문장을 삭제함으로써, 이 구절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경고라는 점을 흐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3. 해석의 혼란 KJV는 독자에게 이렇게 명확히 말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과 시각을 모르니 깨어 있으라." 하지만 NIV는 이렇게만 말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르니 깨어 있으라." 그럼 무슨 날이고 무슨 시각입니까? 설명이 없습니다. 문맥상 무엇이 오는지를 독자가 추측해야 합니다. 이것은 “쉽게 읽히는 번역”이 아니라, 핵심 진리를 생략하여 혼동을 유발하는 번역입니다. 4. 왜 이것이 중요한가? 마태복음 25장은 ‘열 처녀 비유’의 결론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13절에서 예수님은 그 주제를 다시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대 역본은 이 결정적 결론을 지워버렸습니다. 5. 결론: 왜 KJV가 필요한가? 현대 역본들은 때때로 불필요한 단어를 줄여서 더 “현대적”이고 “간결한” 성경을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우리가 임의로 줄이거나 바꿀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한 단어, 한 문장 속에 교리 전체가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마25:13의 경우,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히 언급하지 않으면, 깨어 있으라는 명령도 힘을 잃고 맙니다. “Watch therefore, for ye know neither the day nor the hour wherein the Son of man cometh.” (Matthew 25:13, KJV)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분이 오신다는 사실이 생략된 성경은 진짜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고의 말씀은, 정확하고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에만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2025-05-20 08:26:0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