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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형제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생각나는군요. 평소에 말씀도 글 쓰듯이 하시면 되겠습니다. ^^ 하지만 저도 말은 글처럼 안되는게 사실이고 글로도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말은 희미한 기억과 함께 사라져도 글은 오래 남으니 가끔은 자기 생각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두는 것도 좋을성 싶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12-08-15 12:33:12 | 류인선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마트폰에서도 설교 등을 동영상으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누르시면 두 개의 버튼이 뜹니다. 위의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wmv 파일입니다. 스마트 폰에서 이것을 누르면 동영상 재생이 안 됩니다.   그밑에 보면 mp4 파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누르시면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시도해 보시고 문제가 있거나 개선 사항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08-07 18:05:11 | 관리자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듯 진솔하고 좋은 글에 어찌 이리 늦게 댓글을 올리게 되었는지....... 또 늦었지만 부질없는 제 격려의 한 마디를 보태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구구절절 의견을 달고 픈 부분이 많지만 다 각설하고 저는 김용묵 형제님의 솔직 담백하고 꾸밈이 없는 진리를 향한 열정을 참으로 사모합니다. 윗글에 녹아 있는 형제님의 선한 고민들이 꼬~~옥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결실로 수확되기만을 바랍니다 마음의 깊은 것이 녹아있는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2-08-06 10:46:19 | 김대용
이번 세미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성경 전체를 보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2년 전의 구원 바로 알기 시리즈 8편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이 이번 주제 역시 대단히 중요하므로 편견 없이 사실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컬러로 선도들도 모두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들으면 어떤 성도에게나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이상이면 누구나 시간을 내서 와서 듣기 바랍니다. 샬롬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계1:3).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2012-08-02 14:57:13 | 관리자
예전에 글을 통해 몇 차례 내 자신에 대해 소개했듯이, 본인은 개인적인 취향 및 성향이 심각하게 마이너하다. 컴퓨터에서 쓰는 글자판부터 마이너하고, 프로그래머라지만 주 관심사와 주력 개발 소프트웨어도 엄청 마이너한 분야에 속해 있다. 종교관도 마이너하고, 취미는 가히 안드로메다 화성인 급이다.   청개구리마냥 일부러 속세와 담을 쌓기로 작정하고 이런 길을 간 건 절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난 태생적으로 남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저런 거 도대체 왜 하나” 싶어서 관심이 안 가고, 내가 양심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엔 지지자가 별로 없는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난 성격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이고 내 진심을 못 숨긴다. 그리고 뭔가 이념적인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잘 받고 잘 감화하는 편이었다. 쉽게 말해서 좀 순진해 빠진 구석이 있다. 나도 내 성격에 대해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남에게 천박해 비치지는 않으려나 우려하여 요즘은 이 성격을 자제하려 애써 보기도 하지만, 천성을 부정하고 가식을 부리는 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해야 할 말을 당장 내뱉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1990년대 말, 뭔가 감화를 받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세벌식 글자판을 쓰기 시작했다. 전국민의 1%도 채 쓰지 않는 걸로 추정되는 듣보잡 글자판을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옳다는” 강한 확신이 왔다. 한글은 두벌식으로만 쓰기엔 너무 아까운 문자인 게 와 닿았으며, 세벌식이 두벌식보다 얼마나 편리하고 활용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알아 버린 이상 여기에 완전 몰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무렵엔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희한한 성경을 밀기 시작했다. 안 믿을 거면 아예 완전히 때려치우고 안 믿고 말지, 성경을 믿는다면서 변개된 역본을 옹호하는 건 내가 보기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나는 이 분야에서도 여러 글들을 쓰고 이런 저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미 굉장한 요주의(?) 인물이 됐다.   어디 그뿐이겠는가?2004년, 철도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내 인생은 또 완전히 뒤바뀌었다. 철도로 인해 내 인생에 생긴 선한 변화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기쁘게 보고를 드릴 수 있을 수준이 됐다.   이런 마이너 분야들을 섭렵하면서 본인은 철도는 차치하고라도 세벌식이면 세벌식, KJV면 KJV처럼 자신이 속한 분야를 남에게 알리려 애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곤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들의 인지도는 정말 안습한 수준이다. 세벌식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한국의 많은 ‘교인’들이 아직도 KJV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거나, 혹은 ‘KJV = 말보회 = 이단’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렇듯, 명분상으로는 옳지만 심하게 마이너하고 당장 돈도 안 되는 밑 빠진 독 같은 분야에, 지지자를 많이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본인은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의 대학 후배이고 현재 본인과 같은 교회에 나오고 있는, 아라크넹(필명)이라는 친구가 세벌식 사용자로서 꽤 시원시원하고 단호한 어조로 세벌식 evangelism에 대한 비평을 자기 블로그에다 올렸다. 본인은 이를 재미있게 읽었다. http://j.mearie.org/post/27713540987/what-is-wrong-with-sebulsik-evangelism   이 친구는 워낙 똑똑하고 아는 게 많으며, 세상을 보는 안목도 나보다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다 보니, 이념적인 면모 같은 건 일단 배제하고 그냥 두벌식보다 객관적으로 정말 빠르고 편하니까 세벌식을 의도적으로 익힌 케이스이다. 그에게 세벌식에 대한 지식은 자신의 여러 많고 많은 지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적인 떡밥(글자판의 역사, 타자기 어쩌구저쩌구)에 대해 무지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며,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라크넹은 맹목적인 세벌식 우월주의에 들어있는 허상과 이것이 잠재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역효과에 대해서 잘 짚었다. 나 역시 당연히 공감한다.   그는 어떻게든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용자를 늘리려면, 주변에 최대한 조용하게 딱 이렇게만 말하라고 권한다.     “한국어로 타자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세벌식 최종이라는 글자판이 무척 좋을 텐데 관심 있으면 써 봐라. 표준 두벌식보다 손이 편하고, 더 빠르게도 칠 수 있다고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 운영체제에서나 설정만 바꾸면 바로 세벌식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없다.”   저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는 지금 당장 세벌식 글자판을 쓰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곁다리는 처음부터 절대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타자기 시절부터 시작된 한글 기계화 왜곡의 역사, 한글 창제 원리 드립, 두벌식 도깨비불 현상, 세벌식 모아치기, 기계식 타자기, 기계간의 글자판 통일, 무한 낱자 수정, 직결식 글꼴 등등등!   골수 세벌식 매니아라면 저런 주제에 대해서 입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겠지만, 진정 남을 배려하고 한 명이라도 세벌식 사용자를 더 늘리고 싶다면 일단 참으라고 말이다. 그건 일단 세벌식 개종자를 만들어 놓은 뒤, 그 친구가 차츰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설명해 줘도 늦지 않다. 그래, 그게 백 번 옳은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저건 내게는 개인적으로 좀 가혹하게 느껴지는 요구사항이다. 나는 아라크넹 형제와는 정반대이다. 세벌식이 그저 손이나 약간 편하고 영문 쿼티와 드보락 자판의 관계처럼 배열만 더 효율적으로 바꾼 수준이라면, 난 애초에 세벌식에 이 정도로 애착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글쇠배열 몇 개나 바꾸는 수준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 두벌식과 세벌식의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차이를 감지하고서 세벌식 매니아가 됐다. 한글 기계화의 역사와 공병우 박사의 삶에 대해서 완전 감화를 받아서 지금과 같은 길을 가게 됐다. 철저하게 이념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세벌식을 소개할 땐 내가 세벌식에 대해 가장 강점이라고 여기는 특징을 배제하라니? 그 친구도 세벌식의 진짜 강점이 뭔지를 몰라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러니 딜레마이다. 사실은 그런 원론적이고 이념적인 부분은 얘기해 봤자 사람들은 혼동만 할 뿐 당장 이해를 못 한다.;;   복음 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넘쳐나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 받나?”, “서양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조선 시대 사람들은 다 죽어서 무조건 지옥으로 갔나?”, “평생 착하게 산 사람도 예수 안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 가나?” 복음에 대해서 별 희한한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많다. 신앙 변증에 이미 다 통달해 있는 베테랑 복음 전도자가 그런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해서 쩔쩔맬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그런 불신자가 그 성경적인 답변의 문맥과 배경을 이해할 리도 없다. 그러니 그런 불신자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나도 화려한 성경 지식과 신학 논리로 맞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선한 의도로 시작했던 복음 전파가 어느 샌가 논쟁과 병림픽으로 바뀐다. 그럼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는 흠..   그 불신자는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기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며, 그 의문이 해결되면 선뜻 예수 믿겠다는 의향으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할 때는 FM대로 죄와 심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죽으심과 부활, 대속, 복음, 하늘과 지옥 같은 개념만 진심을 담아 전할 뿐, 쓸데없는 논쟁엔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복음 다음으로 성경 이슈 문제로 넘어가 보자.과거에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정보들에 너무 압도당한 나머지 전하는 자세가 서툴렀다. 오로지 ‘없음’ 처리되어 삭제된 13구절과 6만여 군데의 변개된 구절에만 열폭하기에 바빴다. 그래, 그건 크리스천에게 당연히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게 중요하지 않거나 그 자체가 글러먹었다고 반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성경이 잘못되면 왜 큰일나는지 관념 자체가 아직 없는 사람들에게 앞뒤 문맥 다 끊고서 개역성경은 사탄의 성경이고 NIV는 불쏘시개감이라고 욕하고, 비성경적인 이단들과 기존 개신교회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욕하고 비판밖에 할 줄 모르면, 일반 신자들은 당연히 마음을 꽝 닫게 되지 KJV로 전향을 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그런 중요하고 충격적인 성경 이슈에 대해서 절대로 KJV 진영에게 문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네 교회 목사에게 문의를 할 것이고, 그 목사는 당연히 하다못해 자기 기득권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KJV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변을 할 확률이 99.9%에 수렴할 것이다. 그럼 게임 끝이다. 겨우 이러려고 KJV를 믿고 성경 번역까지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은 흠정역의 경우 광고를 할 때 처음부터 자극적인 변개/삭제 내역부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냥 종교 개혁자들이 쓴 성경, 뿌리와 연륜이 있고 정통성이 있는 성경, 역사적으로 부흥을 가져다 준 성경, 정확한 문법으로 읽기 쉽게 번역된 성경이라고만 홍보한다. KJV는 이단은 절대 아니라고 기성 교회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10년이 넘게 KJV 연구만 한 KJV 골수 프로 전문가들이 오죽 하고 싶은 얘기가 없겠는가? 뉴에이지 사상이 들어간 구절, 성적 문란함을 부추기는 구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구절,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구절,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뚜껑 열리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들이다. 그래도 일단은 참는다. 왜? 역설적으로 KJV 개종자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이다.   어휴, 끝으로 이런 원리를 내 개인적으로는 철도에다가도 적용해야 할 것 같다. 나야 개인적으로는 Looking for you를 들으면서 신흥 종교 교주에 맞먹는 천지개벽을 경험하고 철도 때문에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 간증하자면 시간과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만 늘어놓으면 오히려 난 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고, 특히 여자친구를 사귈 확률은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ㅠㅠㅠㅠㅠ   결정적으로 오늘날은 새마을호는 은퇴 직전이고 Looking for you 실황 연주는 없어진 지가 수 년째이다. 그러니 내 철도 간증은 남들에게는 덕이 되지도 못한다. 마치 타 언어가 타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고전 14:4, 9, 11)   그러니 남들에게 철도를 전하려면 “서울에서 부산 갈 때는 가능한 한 열차를 이용해 보세요. 철도는 정체가 없고 멀미도 없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는(전기 철도 한정) 저탄소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입니다.” 이런 말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전동차 구동음이 음악 소리 같다는 식의 오타쿠스러운 주제는 좀 나중에..;;   그래, 나야 철도가 그저 멀미 없고 안 막히는 저탄소 친환경 교통수단에 불과하다면 애초에 철덕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철덕 spirit을 전수해 주려면, 여타 마이너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부터 유추해 보더라도 일단은 철덕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면모부터 차근차근 순서대로 알려 주는 게 순서일 거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원리를 장터에서 약을 팔려는 약장수에다 비유하는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원숭이든 코브라든 꺼내서 재주를 부리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우글거리게 되면 그때야 약을 꺼낸다. 처음부터 심각한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모일 수 없다.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나는 그 심각한 본론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고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연구하면서 인생을 살아 왔다. 그것 말고 원숭이를 어떻게 키워서 재주를 부리게 해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다. 약을 빼면 할 얘기가 없다. 이 때문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다들 내가 완전 별종 괴짜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진지하고 심각하고 내 진심이 바로 드러나는 이야기를 우회 없이 온라인 공간에다 덥석 써 버리고, 정치관이나 종교관도 대놓고 자주 노출하는 편이다. 양심적으로 정말 해야겠다 싶은 말은 안 하고는 도저히 못 배기는 습성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 외람된 말씀 인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유하자면 렘 20:9 같은 기질이다.   이왕 이런 기질을 천성적으로 못 버린다면 그 기질이 목숨과 재산과 명예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정말로 진리를 위해서도 발휘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전시 상황이 아닌 평시에는 앞에서 여러 예를 들며 언급했듯이, 조금만 더 대중 친화적으로(?)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남에게 소개하는 기법을 익혀 나가야 할 것 같다.
2012-07-29 08:18:34 | 김용묵
    성경의 구원   삼위일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시간이 생기기 전에 신격 안에서 교제를 나누신다. 성경은 시간이 생기기 전의 어떤 언약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용하시고, 온 인류를 위한 속죄물로 자기의 아들을 제공하시고, 복음을 믿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믿음에 따라 걷든지 혹은 육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을 성령님을 통해 성화시키기 위해 일하신다.   아들은 또한 창조자 하나님이시며 온 인류를 위해 대속물로 죽으시고, 구원의 선물을 주시며,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인 자신의 의(義)와 칭의(稱義)를 주신다.   성령님은 창조 세계와 양심과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이끄신다.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특별한 내적 준비 같은 것은 없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부활을 확증해 주신다. 성도들은 섬기기 위해 재능을 부여받았다.   죄인들 중에서 복음을 믿고, 마음속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만 자신의 믿음을 두려는 자들은 이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하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믿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 놓이며, 그분의 의로 옷 입고, 구속의 보증으로 성령님을 받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과 교제한다. 이 외에도 성도의 신분상의 다른 변화들이 나타난다.   믿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개의 본성을 갖는다. 첫째는 능력이 파괴된 옛 사람과 육신의 몸 안에 여전히 거하는 죄의 본성이다. 둘째는 이미 이루어진 새 사람인데 이것은 곧 성도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 선택하는 그리스도이다. 성도는 구원을 유지하면서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삶으로써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내지만, 육신을 나타내는 삶을 통해 어떤 때는 여전히 죄를 짓는다.   구원은 복음을 믿으며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십자가에서 그분이 이루신 일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거나 그분을 배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채 태어난다.       칼빈주의의 구원   삼위일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신격 안에서 교제를 나누시고 구속(救贖)의 언약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창조를 작정하시고, 타락을 작정하시고, 어떤 자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시고 - 이를 통해 다른 자들은 정죄를 받도록 작정하신다 - 자신의 아들이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해 속죄를 이루도록 작정하시고,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적용하도록 작정하신다.   아들은 (1) 선택받는 자들을 위해 대속물로 죽으시고 (2) 그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땅에서 율법의 의를 획득하시면서 완벽한 삶을 사신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 모두가 구원에 필요하다).    성령님은 내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 (1) 그 속죄를 선택받은 자들에게 적용해서 그들이 믿기 전에 그들을 거듭나게(중생하게) 하시고 (2)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그들에게 가져와서 그들이 칭의(稱義)를 얻기 위해 - 중생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 복음에 반응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이끌림을 받은 ‘선택된 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1) 믿기도 전에 거듭나고(중생하고) (2) 은혜로 주어진 믿음을 받는데, 이 믿음은 선택된 자들이 예수님께서 땅에 사시면서 이룩한 의(義) 즉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의를 획득할 수 있도록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을 수 있게 해 준다. 이 의는 칭의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무조건적인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와 은혜로 주어진 믿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삶이 모두 필요하다.   선택받은 자는 단 하나의 새로운 본성만 갖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믿음의 선한 행위 속에서 견디면서 인내해야만 한다. 만일 행위가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도 겉으로는 성령님에 의해 창조 세계와 양심과 복음을 통해 이끄심을 받지만 그들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죽어 있고 또한 믿음을 살려서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는 ‘그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없으므로 믿을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일이며 선택받은 사람들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선택받은 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를 통해 믿기도 전에 구원을 받았다.   성경의 구원과 칼빈주의 구원을 요약한 글을 올립니다. PDF 파일은 우리말과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2012-07-26 17:33:18 | 관리자
저는 공지사항에는 거의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신자에게(특히. 목회자와 신학생) 그야말로 황금률과 같은 교훈입니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진리를 안다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모순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이 귀한 교훈을 가슴에 뜨거운 인두로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도 귀한 교훈을 일깨워 주심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2012-07-26 12:53:45 | 김대용
뉴에이지 이단을 가장 잘 알려주는 영화를 제작하는 Caryl Matrisciana의 사이트입니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자료를 분류하다가 찾게 되었는데 유익한 자료(특히 영상 자료)가 매우 많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뉴의 Articles에 가면 뉴에이지, 이슬람, 천주교, 칼빈주의 등에 대한 좋은 자료가 많습니다. 참조하세요. 샬롬
2012-07-26 11:38:53 | 관리자
네, 백 번 공감합니다. 음행으로 인한 이혼은 극단적인 경우에 정 안 되겠으면 허락한다는 뜻일 뿐이죠. 크리스천이 세상을 상대로 다른 곳에서도 본을 보여야겠지만, 결혼 생활에서도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다 툭하면 이혼한다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은 한번 결혼하면 평생을 가고, 지조가 있다는 평판이 있어야겠습니다. (과거 로마 시대에도 그런 선한 간증이 전해졌다고 하네요.)
2012-07-26 09:04:12 | 김용묵
이혼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마태복음 19장의 앞에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혼 이야기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간음이 이혼 사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자신의 배우자를 용서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또한 이혼 후 어린아이들이 겪게 될 아픔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012-07-25 23:45:19 | 김문수
귀한 글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사실 결혼이란 것은 많은 떨림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일이기에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이에 대해서 엄숙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겠습니다.
2012-07-25 20:34:35 | 소범준
안녕하세요?   요즘 저희 사이트에서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책들을 많이 소개하고 그분의 책 PDF 파일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게 하였습니다. 또한 9월부터 저는 젤러의 책을 주 교재로 해서 로마서 강해를 하려 하고 오전 설교에서는 라이켄 목사님의 예레미야 강해서를 중심으로 설교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듯이 저는 많은 경우 위어스비 목사님의 책을 보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성경 강해의 경우 럭크맨의 주석도 많이 봅니다. 설교의 정의에 관한 한 저는 로이드 존스와 위어스비의 책을 교재로 삼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모든 책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의 일정 부분이 내가 믿는 바와 다르다고 해서 책 전체를 읽지 않으면 나만 손해입니다. 낙스 목사님은 영문학을 전공했고 성경을 많이 읽은 분입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목사들 중 가장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솔직한 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책의 모든 부분이 저와 같지는 않습니다. 또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그분이나 저나 편견의 한계에 갇힌 채 성경을 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분의 글의 대부분이 읽을 만하다고 생각하여 추천하였습니다. 그 안에 저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보지 못한 많은 것을 알려주기에 내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러분에게도 추천하였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이분의 책들을 보라고 권합니다. 저와 믿는 점이 다른 데가 나오면 제가 설명해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말을 믿느냐는 성도들이 성경과 양심에 따라 최종 결정할 것입니다.   럭크맨은 대단히 영민한 사람입니다. 그분의 주석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경의 많은 진주즐을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다른 점이 여러 있지만 그분만이 본 진리를 수용해서 내 것으로 삼고 있고 가르칩니다. 현재 한국의 독립침례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이분을 통해 많은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분의 책을 읽다가 과격한 것, 성경을 뛰어넘어 상상하는 것, 공분하여 남을 욕하는 것 등이 나오면 그냥 통째로 넘어갑니다.   라이켄과 로이드 존스, 폴 워셔, 존 맥아더 그리고 김남준 목사님 등은 철저한 칼빈주의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대부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칼빈주의를 제외하고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다루는 데서는 어느 누구보다 예리하게 말씀을 강해하므로 저 자신의 경건의 시간을 위해, 설교 준비를 위해 이들의 책들을 봅니다.   댈러스 신학교 출신의 젤러는 성경 공부 지식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운영하는 미들타운바이블처치 성경 공부는 제가 보기에 세계에서 가장 좋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서 그 점을 배웁니다.   낙스와 럭크맨은 재창조를 믿습니다. 이 두 분은 또한 상상력이 풍부해서 어떤 때는 성경보다 앞서갑니다.  어떤 분은 지동설을 믿고 어떤 분은 천동설을 믿습니다. 럭크맨 같이 과격한 킹제임스 성경 신자도 있고 켄달과 같이 온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 다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내가 믿는 것과 똑 같이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믿고자 하는 대로 기록된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것도 비평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유명한 분의 의견이 내 의견과 다르면 이것을 기회로 삼아 내가 믿는 것이 맞는지 점검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그것이 안 되면 목사나 교사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제가 이 사이트를 통해 여러 사람의 책들을 소개한 것은 그 책들이 100% 옳거나 제 믿음과 같아서가 아닙니다. 배울 부분이 버려야 할 부분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조심해서 보면 큰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외한 모든 책을 볼 때에 늘 비평적 태도를 가지고 점검하며 읽으면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점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샬롬
2012-07-25 14:17:12 | 관리자